스크린 너머의 물질 세계

수습편집위원 펭

by 문우편집위원회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휴대폰 알람 소리가 들리면 대충 준비를 마친 뒤 바깥을 나선다. 익숙한 길인데도 지도 앱을 굳이 들여다보는 건 버스와 지하철이 언제 도착할지 실시간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대중교통 안에서 스트리밍 앱으로 음악을 듣거나 전자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다. 할 일을 하다가 카카오톡 메시지를 확인하고, 인스타그램을 열어 스크롤을 몇 번 올리면 시간이 금방 간다.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집. 버튼 몇 번 눌러 주문한 음식이 배달 오면 넷플릭스 드라마를 시청하며 저녁을 먹는다. 휴식을 취할 겸 웹서핑을 하고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다가 졸음이 밀려오면 휴대폰을 끄면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딱히 특별할 것 없는 하루일 것이다. 디지털 기술은 이미 우리 일상에 깊게 녹아들어 필수 불가결한 삶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이는 지나치게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워, 자칫 사소해 보이기까지 하나 실은 어떤 거대한 전환을 불러일으킨다.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세계가 기후 변화에 일조하여 우리 삶에 실질적인 위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 과정에는 우리가 여태껏 인지하지 못했던 환경 파괴적 행위가 기업들의 전략하에 동반된다.



잠식

팬데믹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의 디지털 전환은 가속화되었다. 오프라인 기업들의 온라인 진출 속도는 빨라졌고, 공공 서비스, 보건, 상업 등 수많은 분야가 디지털로 전환되었다. 소비자들의 온라인 구매량은 크게 증가했고, 소셜 미디어의 이용자 수는 전 세계 인구수의 절반을 넘겼으며, 재택근무와 원격교육 등이 보편화되었다. 음식이나 물건을 터치 몇 번으로 손쉽게 주문하는 것 외에도, 은행 업무를 모바일로 해결하거나 공문서를 다운로드하여 집에서 프린트하는 등 우리는 사소하거나 사소하지 않은 많은 일을 인터넷에 의존하여 처리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인터넷 사용량은 늘어났고, 이에 따라 기업들의 사회적 영향력 또한 강해졌다. 구글은 3년 연속으로 가장 인기 있는 인터넷 서비스 1위를 차지했고, 페이스북과 애플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렇게 지배적인 위치를 지닌 IT 기업들을 이른바 빅테크 기업이라 부르는데, 이들을 일컫는 FAANG(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 MAGA(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 아마존) 등의 신조어들은 이러한 인터넷 시장의 흐름을 반영한다. 최근에는 AI 기술이 부상하면서 딥마인드, 오픈 AI, 엔비디아, 데이터브릭스, 앤스로픽이라는 5개의 AI 관련 기업을 가리키는 DONDA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하였다.


1분마다 약 630만 명이 구글에서 검색을 하고, 3만 개의 유튜브 영상을 시청한다. 6만 개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서 공유하고, 45만 시간 분량의 영화나 드라마를 넷플릭스에서 본다. 지금 이 문장을 쓰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350만 개의 트윗, 1,600만 개의 문자, 2억 개의 메일을 주고받고 있다.[1] 그러나 이렇게 일상에 깊이 뿌리내린 기업들은 스마트폰 화면에서 고개를 드는 순간 사라진다. 브랜드 이름을 내건 간판이나 상품으로 내놓는 서비스 같은 것들은 대부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향유하는 것들은 모두 물리적인 현실 세계를 벗어나 비물질적인 디지털 세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연 디지털 기술이 물질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디지털 기술의 비물질성은 환상에 불과하다.



환상

일부 사람들은 실물 자원의 사용을 최소화하는 디지털 기술의 특성이 탄소 중립을 이루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여기서 탄소 중립이란 인간 활동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고 흡수량을 증대하여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가장 단순하고 대표적인 방법은 바로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것이다. 제품을 덜 사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업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최대한 오래 사용하여 간접적인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재화의 사용 효율을 극대화하여 자원을 아끼는 것도 모두 포함된다.


디지털 기술은 ‘탈물질화(dematerialization)’를 추구한다는 바로 이 지점으로 주목받는다. 옥스퍼드 사전은 탈물질화를 물리적 실체에서 자유로운 상태가 되는 것으로 정의한다.[2] 가령 실제 기록물이나 문서의 매체를 종이가 아닌 컴퓨터 시스템으로 대체한다면 탈물질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널리 통용되는 개념은 한 단위의 동작을 수행하거나 제품을 생산할 때 사용되는 자원의 양을 줄이는 것이다. 극소량의 자원만을 가지고도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컴퓨터 칩이 바로 대표적인 예시이다. 나아가 디지털 기술은 물질을 가상 현실에서 대체하기까지 하면서 실물 자원의 사용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최대한의 효용성을 자랑한다.


사람들은 종이책 대신 전자책을, 신문 대신 인터넷 뉴스를 읽으며, MP3 플레이어 대신 스트리밍 앱을 사용한다. 심지어는 사회적 교류마저 SNS상에서 이루어진다. 이렇게 가상의 디지털 세계가 실물을 점점 대체한다면 무언가를 직접 제조하거나 가동하지 않더라도 콘텐츠를 향유하고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 일부 기업가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사실, 에너지와 기술은 ‘대체’되는 대신 ‘추가’되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4년 전 세계 석탄 소비량이 전년 대비 1% 증가하여 사상 최고치를 넘을 것으로 예상하였으며,[3] 환경 제지 네트워크(EPN)에 따르면 종이 사용량은 지난 50년간 4배가량 증가하였다.[4] 디지털 기술은 실물 자원을 대체하지 못했으며, 단지 우리 삶에 또 다른 종류의 자원으로써 더해졌을 뿐이다.


게다가 디지털 기술은 물질성을 탈피할 수 없다. 예컨대 인터넷은 해저 케이블이나 데이터 센터, 인공위성, 화력 발전소, 희귀 금속 등 실제 자원과 에너지가 있어야만 사용이 가능하다. 컴퓨터나 태블릿 PC, 스마트폰 등 실제 기기를 제조하고 운송하고 판매하는 과정, 그리고 영상을 시청하고 게임을 즐기고 사진을 공유하기 위해 인터넷에 접속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디지털 탄소 발자국은 인터넷의 등장 이후로 점점 증가하여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사각지대

이메일을 보관하는 데에 탄소가 발생한다는 이야기는 아마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메일 한 통을 전송할 때는 약 4g의 온실가스가 배출되며, 이메일 1GB를 1년간 보관하면 이산화탄소 14.9kg이 배출된다. 그러나 이메일의 탄소 영향력은 전 세계 데이터 흐름의 60%, 인터넷 트래픽의 80%를 차지하는 온라인 동영상에 비하면 새발의 피이다. 프랑스 환경단체인 시프트 프로젝트의 연구에 따르면 온라인 영상을 30분간 재생할 때 1.6kg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5] 자동차로 6.3km를 운전했을 때 발생하는 탄소량과 맞먹는 양이다. 이는 전자 기기와 데이터를 유통하는 전송망과 이메일을 보관하는 데이터센터가 사용하는 자원 때문에 생긴다.


데이터 센터는 온라인상의 모든 데이터를 저장하고 전송하는 시설이다. 컴퓨터, 태블릿 PC, 스마트폰과 같은 기기는 해저 케이블이나 안테나와 같은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데이터 센터에서 저장 및 처리되는 정보들을 주고받는다. 300만 개의 데이터 센터가 전 세계에 흩어져서 365일 24시간 가동되는데, 신속하게 웹페이지를 화면에 띄우기 위해 중복 시스템이 사용된다. 예를 들어 동영상을 사이트에 한 번 올리면 전 세계의 데이터 센터 중 적어도 7곳으로 분산되어 저장되며, 메일은 여섯 차례 복사되어 보관된다. 그래서 보안이나 만일을 위해 대기 상태로 전원만 켜져 있는 설비와 유령 서버가 많다. 또한 트래픽이 과하게 몰려 서버가 과부하 되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기업들도 인프라를 무리하게 확장하고 있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보다는 데이터의 고가용성을 위해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린피스가 2017년 발표한 보고서에서는 디지털 대기업들이 이렇게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어디에서 끌어오는지 지적하기도 하였는데, 일례로 전 세계 인터넷 트래픽의 15%를 차지하던 넷플릭스의 경우 약 30% 정도를 석탄을 때서 얻은 전기로 충당하였다.[6]


또한 서버 가동 시 발생하는 열을 식히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한데, 이때 부식이나 박테리아 번식을 막기 위해 깨끗한 담수를 사용해야 한다. 문제는 습도 조절 과정에서 다량의 물이 증발하고, 수질에 따라 3~10번만 재활용된 뒤 금방 배출되고 만다는 것이다. 챗 GPT의 등장으로 인공지능 산업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탄소 배출과 물 소비는 더욱 늘어났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보고서에 따르면 챗 GPT-3는 훈련 과정에서 1,287MW의 전기를 소비하여 502톤의 탄소를 배출하였다고 한다. 이는 전 세계 사람들이 100년 동안 배출하는 양에 해당한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연구진은 챗 GPT와 10~50개의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것을 한 번의 대화로 쳤을 때, 대화를 한 번씩 할 때마다 물 500ml가 소비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페트병 한 병만큼의 물.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챗 GPT의 주간 활성 이용자 수가 2억 명이 넘는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무시할 수 없는 양이다.[7]


데이터에 접근할 때 없어서는 안 될 전자 기기는 어떨까? 컴퓨터, 스마트폰, 태블릿 PC와 같이 인터넷에 접속하기 위한 출입문 역할을 하는 ‘인터페이스’ 혹은 ‘단말기’는 이제 현대인의 필수품이 되어버렸다. 전 세계적으로 약 340억 대의 디지털 기기가 지금도 인터넷에 연결된 것으로 추산된다. 이 수많은 기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부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광물을 채굴해야 하는데, 기기의 성능이 발전하면서 이러한 원자재의 수요도 급증하였다. 시간을 거슬러 되짚어 보자. 1960년대의 다이얼 전화기에는 알루미늄과 아연 등 최소 10가지의 재료가 들어갔다. 조금 더 발전한 1990년대의 벽돌 휴대폰에는 구리, 납을 포함한 29가지의 원자재가 들어갔다. 이제 2025년. 손 안에 쏙 들어오는 최신형 스마트폰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금, 리튬, 마그네슘 등 54가지의 금속이 필요하다. 스마트폰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한 번이라도 궁금해한 적이 있는가? 우리는 각각 1g도 안 되는 재료들로 이루어진 최신 문물을 매일 들고 다니면서도 그것들의 존재와 정확한 용도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스마트폰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단순히 그것을 사용할 때 배출되는 무지막지한 양의 이산화탄소뿐만이 아니다. 금속을 채굴하고 전자 부품으로 변형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발자국은 스마트폰 한 대가 생성하는 탄소 발자국의 절반이나 되며, 전체 수명 주기 동안 소비하는 에너지의 80%가 스마트폰 제조 과정에서 쓰인다. 따라서 제품을 소비할 때 나오는 물질뿐 아니라 그 제품을 제조하는 데에 들어가는 물질의 영향을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측정하는 개념이 바로 MIPS(Material Input Per Service unit), 즉 서비스 단위당 물질 투입량이다. MIPS는 제품의 제조, 사용, 재활용까지의 과정에서 투입되고 이동한 모든 종류의 자원의 총량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한 광물 자원, 전기를 만들 석탄을 채굴하기 위해 베어낸 나무, 끌어다 쓴 물과 화학물질 등 모든 것이 포함된다. 따라서 이 방식에 의하면 150g짜리 스마트폰 한 대에 필요한 원자재는 무려 183kg에 달한다. 게다가 2g짜리 전자 칩의 집적 회로에는 1,600배에 해당하는 32kg의 원자재가 소요된다![8] 기업들은 더 얇고, 더 가볍다는 점을 내세워 전자 기기를 광고하지만, 사실 스마트폰은 엄청나게 무거웠던 셈이다.


거대한 정보 통신 산업은 현재 전 세계 구리 생산량의 12.5%, 알루미늄 생산량의 7%, 은 생산량의 23% 등 수많은 자원을 소비하고 있다. 여기서 금속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 희토류의 경우 화학적인 추출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때 엄청난 양의 물과 에너지가 사용된다. 그뿐만 아니라 채굴 후에도 화학 약품, 방사성 물질, 중금속 등 다량의 폐기물이 발생해 토양과 하천, 대기를 오염시키기까지 한다. 현재 중국이 전 세계 희토류 생산의 95%를 담당하고 있지만, 이는 ‘희귀한 흙’이 중국에 몰려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환경과 비용 문제를 이유로 채굴을 그만둔 미국과 유럽이 환경 규제 및 인프라가 취약하고 비용이 저렴한 중국에 희토류 생산과 가공을 떠맡긴 것이나 다름없다. 그 결과 중국 최대 희토류 생산지인 바오터우시의 호수에는 독성 폐기물이 떠다니게 되었고, 인근 마을 주민들은 평균치보다 더욱 높은 방사능에 노출된 채 생활하게 되었다.


이 금속들은 채굴 과정뿐 아니라 처리 과정에서도 환경을 오염시키고 생명을 위협한다. 희귀 금속은 전자 기기에 극소량밖에 들어있지 않으며 그 과정이 복잡하고 비용도 많이 들기에 재활용하기도 어렵다. 폐기물은 인건비가 싼 개발도상국으로 보내지는데, 노동자들은 처리 과정에서 화학 독성 물질에 노출된 채 일을 하게 된다. 게다가 값비싼 금속을 회수하고 나면 나머지 폐기물은 땅에 매립하거나 소각하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대기 및 토양 오염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유해 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을 금지하는 바젤 협약이 이미 오래전 체결되었지만, 세계 최대 전자 폐기물 생산국인 미국은 지금까지 이에 비준하지 않았다. 게다가 폐기물 수출입은 여전히 암암리에 이루어지고 있다. 협약의 강제 여부가 개별 회원국에 달려있어 국제 사회 차원에서의 효과적인 강제 수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렇게 전자 폐기물이 하나둘씩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종국에는 폐기물이 새로운 광물로 변하여 지구 표면의 구성마저 변화시킬지도 모른다.


이제 땅에서 하늘로, 지구에서 우주로 시선을 돌려보자. 무엇이 보이는가? 참고로 최근 내가 목격한 것들은 안개처럼 희뿌연 미세먼지와 별처럼 반짝이는 인공위성이었다. 그렇다. 초고속 인터넷을 공급하는 통신 인공위성은 그 수요에 따라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이제는 스페이스 X, 카이퍼, 아테나 등 민간 기업들까지 뛰어들어 너도나도 인공위성을 쏘아올리고 있다. 스페이스 X는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서비스를 위해 한 해에만 로켓을 약 100회 발사하기도 하였다. 로켓은 지구 대기권을 뚫고 나가기 위해 알루미늄, 질소, 이산화탄소 등이 섞인 그을음을 발산한다. 이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자동차 한 대가 지구 74바퀴를 돌면서 내뿜는 양과 맞먹는다.[9] 게다가 로켓이 뿜은 배기가스가 성층권에 쌓여 오존층에 구멍을 뚫어 자외선으로 인한 피부암이나 백내장 등의 위험이 높아질 것이라는 예측도 존재한다. 우주선에서 빠져나온 금속 덩어리들이 우주 쓰레기가 되어 지구 주변을 맴돈다는 사실도 덤으로 딸려 온다. 그럼에도 각국 정부나 민간 기업들은 이러한 환경 문제는 고려하지 않은 채 우주 개발 경쟁에만 몰두하여 무분별하게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있다.


오늘날 데이터 전달에 있어 우주 고속도로보다도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해저 고속도로, 즉 해저 케이블이다. 전 세계 트래픽의 99%가 공중이 아닌 지하, 즉 해저 광케이블을 통해 이동한다. 바다 깊은 곳에 설치된 케이블의 길이를 모두 합치면 지구 둘레의 30배에 달하며, 지금도 해저 케이블망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그러니까 ‘무선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람들의 생각은 그저 착각일 뿐이며, 실은 우리 모두가 ‘유선 세계’에 살고 있는 셈이다. 케이블 자체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앞서 언급한 요소들에 비하면 미미하다. 그러나 구글, 아마존 등의 거대 기업 소유의 해저 광케이블은 계속해서 늘어가고 있으며, 인터넷이 일으키는 환경 문제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증설되는 해저 케이블은 데이터의 흐름을 증가시키고 디지털 세상의 확장을 가속하기만 할 뿐이다.



녹색 거짓말

디지털 산업은 전 세계 전기 발전량의 10%를 사용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약 4%를 차지한다. 이는 항공 산업에서 발생하는 양보다 2배나 많다. 게다가 에너지 소비량은 연간 9%씩 증가하고 있다.[10] 기업들도 디지털 인프라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분명 인지하고 있으나, 여전히 비물질의 미학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그렇게 하면 마치 환경 오염이 아예 없는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디지털 기술이 친환경적이라는 인식을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심는 것이다.


이른바 ‘그린 워싱’이다. 가령 전 세계에 이미 여러 개의 데이터 센터를 갖고 있는 구글은 새로운 센터를 건설할 때 구글이라는 이름 대신 병풍 회사를 대신 내세운다. 미국의 검색 엔진 업체들은 데이터 센터를 건설할 도시에 엄격한 기밀 유지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물이나 전기 소비량 등을 비밀에 부친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삼성 같은 다국적 기업들은 화석 연료 사용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로 100% 전환하겠다는 약속, 즉 ‘RE100’을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생산은 세계 각지의 공급업체들이 맡고 있으며, 이들의 재생 에너지 전환율은 아직도 현저히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가장 싼 노동력을 구하기 위해 전 세계 곳곳에서 제조 단계를 거치다 보니 이동 과정에서 탄소 발자국은 더욱 증가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반도체 칩 하나를 제작하기 위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석영을 채굴하고, 일본에서는 규소 판을 만들며, 볼 베어링은 독일에서, 그리고 조립과 내장은 각각 베트남과 중국에서 맡는 식이다.


게다가 전자 폐기물 양은 전자 제품의 짧아진 수명 혹은 교체 주기로 인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기업들은 끊임없이 신제품을 출시하고 광고함으로써 유행을 만들어내고, 구매 욕구를 자극하면서 ‘구형’ 모델을 버리고 신형 모델을 사도록 부추긴다. 또한 구형 모델의 시스템 업데이트를 중단하거나 다른 액세서리와 호환이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실제로 2017년에는 애플이 시스템 업데이트를 통해 구형 모델의 성능을 고의로 저하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이 ‘배터리 게이트’ 관련 소송에서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판결이 내려진 적이 있다.[11] 그뿐만 아니라 부품을 재사용하거나 수리하기 어렵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하나만 고장 나도 기기 전체를 몽땅 버릴 수밖에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디지털 기업들이 사용자들을 자꾸만 온라인 공간으로 끌어들인다는 점이다. 그들은 무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가로 이용자들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광고 회사에 되팔고, 타깃을 최대한 많이 설정하여 광고를 내보낸다. 검색 엔진부터 GPS 앱, 온라인 게임, 소셜 미디어, 뉴스 사이트 등… 인터넷 활동의 대부분이 이러한 모델을 기반으로 한다. 최근 스마트폰을 초기화한 후 다시 사용하면서 이 사실을 절감할 수 있었는데, 앱을 하나씩 실행할 때마다 해당 앱이 내 활동을 추적하도록 허용할지 말지 선택하는 알림창이 화면에 떴기 때문이다.


많은 앱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사용자들의 정보를 수집하고, 온라인에서 보내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갖은 전략을 취한다. 그 결과 우리는 시선을 끌기 위해 고안된 알림, 색상, 알고리즘, 추천 시스템, 디지털 피드백 등의 여러 자극에 노출된 채 점점 더 오래 화면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자기도 모르게 우리의 뇌를 앱이 엿보고, 조종할 수 있게 허락한 셈이다. 이러한 시스템 안에서 생산되는 데이터양은 급격하게 늘어나고, 그에 따른 에너지 소비량도 늘어만 간다.



정보의 바다에 가라앉지 않으려면

우리는 흔히 웹을 액체 비슷한 것으로 표현한다. 인터넷에서 파도처럼 밀려오는 데이터를 ‘서핑’한다고 말하고, 영상이나 음악을 재생할 때는 물줄기처럼 흐른다는 뜻에서 ‘스트리밍’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데이터를 컴퓨터가 아니라 인터넷으로 연결된 서버에 저장하는 개념에는 하늘에 떠 있는 구름처럼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다는 의미에서 ‘클라우드’라는 이름을 붙였다. 보일 듯 말 듯, 잡힐 듯 말 듯한 데이터의 특성을 연상시키는 단어들이다. 그러나 데이터는 분명 물질의 형태로 실재하며, 특정한 물질을 통해 만들어져 또 다른 물질을 낳기도 하면서 나비 효과를 일으킨다.


수도꼭지에서 흐르는 물 한 방울을 1Byte라고 치면, 이메일 한 통 정도의 크기인 1KB는 물 100ml가 된다. 1분짜리 MP3 파일 정도인 1MB는 100L, 두 시간짜리 영화 한 편인 1GB는 10만 L에 해당한다. 이렇게 계속 확장해 나가다 보면 전 세계 인구가 해마다 생산하는 47ZB의 데이터가 지중해와 흑해를 합친 정도의 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12] 오늘날 우리는 넘쳐흐르는 데이터의 바닷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부끄럽지만 나 역시 쌓여가는 이메일을 감당하지 못하고 정리를 포기한 지 1년이 넘었기 때문에 여태껏 상당한 양의 탄소 발자국을 남겼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쯤에서 고백한다. 그리고 쌓인 메일의 상당수는 학교를 비롯한 각종 사이트에서 발송되었다는 사실도. 학교에 다닌 지 꽤 되었는데 아직도 ‘수신 거부’할 목록이 남았다는 것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모두 내 탓이라 한다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기야 하겠지만, 조금은 억울할 것도 같다.


어쨌든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우선 개인적 차원에서의 행동을 논의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를 유인하기 위한 인터넷의 전략에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까? 우리가 평소에 시도할 수 있는 방법에는 메일함 정리하기, 자동 재생 기능 꺼놓기, 잠깐이라도 디지털과 거리 두기, 혹은 흑백화면 사용하기 등이 있다. 디지털 과소비를 줄이고 데이터 처리량을 줄여나가면서 우리의 일상에 대한 통제 능력을 되찾는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사용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시스템의 산물이기도 하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절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거대 디지털 기업들의 생태계 영향력을 규제하고 디지털 서비스의 소비를 관리하려는 국가적 노력이 당연히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디지털 기술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설정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좋든 싫든 우리는 거의 평생을 디지털과 함께해야 할 운명에 처했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은 만능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도구일 뿐. 무엇이 필요한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도, 얼마만큼 ‘친환경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도 모두 인간의 몫이다. 기술이 가져올 혜택, 그리고 그 너머에 숨겨진 실체를 온전히 인식할 때 우리는 비로소 기술과 동행할 수 있을 것이다.



[1] Susie Marino. “What Happens in an Internet Minute: 90+ Fascinating Online Stats.” LocaliQ, 2023.12.4., https://localiq.com/blog/what-happens-in-an-internet-minute/.

[2] Smil, Vaclav. Making the Modern World: Materials and Dematerialization. Wiley, 2013.

[3] 에너지경제연구원. “IEA, 2024~2025년 세계 석탄 수요가 2023년과 비슷한 수준에서 유지 전망.” 세계 에너지시장 인사이트. 2024.08.12., https://www.keei.re.kr/board.es?mid=a10103020000&bid=0014.

[4] 삼성물산 상사부문. “디지털 시대, 종이는 과연 사라질까요?” 네이버 블로그. 2019.10.08., https://blog.naver.com/hongbosangsa/221671703809.

[5] 지식채널 e 제작팀. 『EBS 지식채널 ✕ 기후시민』. EBS BOOKS, 2023.

[6] Gary Cook. Clicking Clean: Who is winning the race to build a green internet? Greenpeace, 2017.

[7] 곽노필. “대화 한 번에 ‘생수 한 병씩’…챗GPT의 불편한 진실.” 한겨레, 2024.06.29., https://www.hani.co.kr/arti/science/technology/1090180.html.

[8] 기욤 피트롱.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가』. 양영란 옮김, 갈라파고스, 2023.

[9] 필리프 스콰르조니. 『만화로 보는 디지털 시대의 기후변화의 모든 것』. 윤여연 옮김, 다른, 2024.

[10] 위의 책.

[11] 노르 난지. “배터리 게이트: 애플, 수백만 영국 아이폰 사용자에게 1조2000억여원 배상하나.” BBC NEWS 코리아, 2022.06.17.,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61836374.

[12] 기욤 피트롱, 앞의 책.


참고문헌

곽노필. “대화 한 번에 ‘생수 한 병씩’…챗GPT의 불편한 진실.” 한겨레, 2024.06.29., https://www.hani.co.kr/arti/science/technology/1090180.html.

기욤 피트롱.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가』. 양영란 옮김, 갈라파고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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