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정돈 데어
12월 3일 이후 문우의 시간은 가쁘게 돌아갔습니다. 문우방의 책상에 써 있던 “글로V도 투쟁하는 문우가 되길”이라는 문구에 걸맞게도, 문우는 많은 글을 썼습니다. 계엄령과 민주주의의 앞에서 문우가 쓴 글을 남겨놓습니다.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9분(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본문 기준)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해당 비상계엄 선포 자체의 실체적·절차적 요건이 애초부터 충족되지 않았음은 이미 수많은 기사에서, 수많은 단체의 성명서에서 지적된 바 있으며 문우편집위원회도 이에 동감한다.
문우편집위원회는 출판 단체이자 학생언론으로서 비상계엄 선포 담화를 구성하는 언어를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하였다고 말했다. 여기서 상정된 “북한 공산 세력”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이며 “자유대한민국”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은 누구이고 “우리 국민”은 누구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이때껏 적극 배양한, 익숙하고 지겨운 이분법의 언어가 반복된다. 장애인으로, 외국인으로, 여성으로, 노조로… 윤석열 대통령이 선량한 국민과 구분되는 ‘적’을 설정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고자 한 것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우리는 편을 갈라 나와 타자를 구분하고 약자를 배척하게 하는 모든 교활하고 혐오적인 언어를 거부한다. 그것이 종래에는 긴급계엄의 명분으로 채택되는 사태를 더더욱 거부한다.
또한 비상계엄 선포 이후 벌어진 일련의 일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실체적·절차적 하자를 안고 있는 긴급계엄에도, 계엄사령부는 포고령 1호를 발령하여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모든 언론과 출판을 통제한다고 밝혔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국회로 빠르게 모인 의원들의 출입을 무려 국회 경비대, 경찰, 총을 든 군인과 특수부대가 무력으로 막았고, 의원들은 담을 넘고 총과 방패의 틈을 비집으며 본회의장으로 들어가야 했다. 국회 본청의 창문과 문이 깨졌고, 계엄 사태를 막기 위해 국회 앞으로 모인 시민들은 소화기의 연기와 맨몸으로 무기를 든 자들에게 맞서야 했다. 모두가 새벽을 뜬눈으로 지새우거나 충격적인 소식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묻는다. 당신이 무엇이기에 우리에게서 세상을 읽는 창구와 세상에 말하는 활동을 모두 앗아가는가? 당신이 무엇이기에 살아 숨 쉬는 자들에게 폭력적 권력을 행사하는가? 당신이 무엇이기에 혐오의 언어를 토대로 국가공동체에 연결된 모든 존재의 삶을 뒤흔드는가? 결론적으로 계엄 해제가 공고되었다지만, 이제 우리는 긴급계엄 선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끔찍하고 공포스러운 광경에 우리는 허망함을 느꼈고, 두려워했고, 불안에 떨었고, 절망했다. 모두가 한순간에 앞으로의 안녕을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 다시 묻는다, 당신이 무엇이기에 자유와 민주주의와 존재를 위협하는가?
우리는 일제의 감시 속에서도 『문우』에 시를 쓴 윤동주와 송몽규를, 결국 출판 탄압으로 발행이 중단되었던 『문우』를 기억한다. 그리고 이 땅에 새겨진 무수한 억압과 혁명의 역사를, 불온하다며 ‘동료 시민’의 자격을 박탈당하며 잔혹한 이분법에 맞서 존재를 주창하던 수많은 약자 ‘동료 시민’의 것까지 기억한다. 이 모든 기억이, 탄압에 주저하지 않고 써 내려간 글들로 우리에게 전해져 당시에 대한 자료인 동시에 앞으로의 지침이 되고 있다. 이에 우리도 펜을 들어 오늘에 대한 글을 쓴다. 그리고 과거의 글 속 남겨진 모습처럼 깃발을 든다. 『문우』가 몇 번이고 되살아나 발간되었듯이, 우리는 지워지는 대로 다시 적을 것이고 짓밟히는 대로 다시 저항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그 공모자들은 지금의 쏟아지는 목소리들을 막을 수 없을 것이며, 미래에 길이 남을 오명을 씻을 수 없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관련자들은 즉시 사퇴하고 자신의 죗값을 치르라.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자치언론 문우편집위원회
변/혁/의/펜/을/높/이/들/자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온갖 곳에서 범람하는 요즈음이다. 윤석열의 반헌법적이고 폭력적인 계엄 선포 이후 모든 언론에서, 성명서에서, 집회 피켓에서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민주주의가 파괴되었다,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민주주의를 회복하자… 비록 긴박하게 돌아가는 정국일지언정, 우리는 잠시 멈춰 고민해보아야만 한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민주주의라 이야기하고 있는가? 의원 200명이 모여 탄핵 찬성 투표를 하면, 그래서 윤석열이 탄핵되면 그건 진정한 민주주의의 회복이 될 수 있는가?
지난 7일 시위를 우리의 상처입은 민주주의를 치유하는 과정이라 부를 수 있을지 돌이켜보자. 되려 우리가 상처입는 시간이 아니었나? 아무리 소리쳐도 들리지 않는 것 같은 국회에, 절박한 심정으로 읽지도 않을 것 같은 문자를 보내고, 결국 할 수 있는 건 너무 많은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돌아오십시오’라고 호소하는 것뿐인 목메이는 시간들. 그들은 우리의 대변인이 아닌가? 우리는 왜 우리의 대변인에게 투표할 것을 간청해야 하는가, 그런데 어째서 그 목소리조차 묵살되는가.
국민의힘에게는 윤 대통령 탄핵 반대라는 ‘당론’이 있었다. 국회 앞에 모인 국민들의 애타는 외침, 투표하라는 요구에도 그들은 민의 대신 당론을 따랐다. 우리는 분노하는 동시에 그 이유를 파고들어 봐야만 한다. 국민의 대표자, 국회의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한 명 한 명의 후보들은 새 정장을 입고, LED 전광판이 달린 트럭을 몰고 지역구 곳곳을 돈다. 인력 자원과 금전적 자원을 무지막지하게 쏟아부어 선출되는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우리의 국회를 보자. 여성도 퀴어도 장애인도 노동자도 농민도 너무 없다. 분명히 우리 국민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이 국회에는 없다. 결국 국회의원은 다수의 약자가 아니라 소수의 강자를, 부자를, 당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된다.
사실 이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알고 있다. 아직 ‘전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생활동반자법과 포괄적 차별금지법, 동성혼 법제화를, ‘선량한 대다수의 시민’에게 민폐라며 야유받는 장애운동과 노조파업을 알고 있다. 폭력 시위라며 외면받은 동덕여대를 알고 있다. 2/3의 참석 인원을 넘지 못해 탄핵 투표가 무산된 다수결에 국회 앞의 국민들이 좌절하기 이전에 먼저 다수결의 민주주의에 묵살된 그들이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있다.
문우편집위원회는 제안하고 싶다. 지금 탄핵을 외치는 이 자리, 민주주의를 외치는 이 시기가 적기이다. 함께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해 고민해보자. 셀 수 없이 다양한 목소리와 사람들이 우리이고, 우리 옆의 사람들이다. 지난 7일 집회, 페미당당의 활동가 심미섭 씨의 자유발언이 있었다. 광장에서의 성평등과 페미니즘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어떤 이들은 내려오라고, 지금 그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라고 외쳤다. ‘탄핵이 먼저’라고. 그러나 지금이 아니면 언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나? 우리는 대통령의 계엄으로 인한 민주주의의 유린을 규탄하면서 동시에 그 민주주의조차 완전하지 않았음을 지적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탄핵을 동일시하지 말라. 민주주의는 우리 안의 균열을 직시하는 것이다. 이 광장의 모두가 같은 의견이라고 주장하는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것이다. 다수결의 승리를 바라지 않는 것이다. 서로를 듣고자 하는 것이다. 집회에서 드러나는 차이를 뭉개려 들지 않고 함께 가야만 탄핵으로 얻는 것이 진정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 ‘민주당 대통령’이 아니라.
문우편집위원회는 제안하고 싶다. 민의가 아닌 당론을 따른 국민의힘을 잊지 말라, 그들이 왜 그러한 선택을 했는지를 잊지 말라. 집회에 모인 장애인들을, 무지개 깃발들을, 응원봉을 잊지 말라. 이 시국이 끝나더라도 서로가 마주한 이 순간을 잊지 말라. 필요할 땐 ‘발견’했다가 다수결로 의견을 통일할 수 없을 것 같을 땐 ‘버리는’ 것을 그만두라. 2030 여성은, 장애인은, 퀴어는 민주시민으로서 항상 광장에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들을 이제 그만 ‘재발견’하고, 대신 민주주의를 재발명하라. 그리하여 다음 대선 때는, 더 다양한 사람들을 국회로 보내자. 국회에는 소수자를, 약자를, 노동자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운동하자. 하나의 목표와 서로 다른 이유로 모인 사람들을 만난 경험, 서로의 차이를 드러내고 직시한 경험을 기억하며 계속해서 만나자. 공부하고 이해하자.
문우편집위원회는 제안하고 싶다. 나아가 근본적인 대의제-다수결의 원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대의제라는 제도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대표자의 다양화를 꾀함과 동시에, 다수결의 제도 바깥을 상상해볼 힘이 우리에게는 충분히 있다. 모두가 그 부당함을 아는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이 ‘다수결’에 의해 여전히 대통령인 이 12월 11일, 어떤 옳음이 다수결과 상관 없이 옳은 미래를 상상해보자. 다수가 장애인의 이동권에 ‘찬성’하기 때문이 아니라, 장애인 이동권 보장이 옳기 때문에 보장되는 미래를. 다수가 노동권 보장에 ‘찬성’해서 보장되는 세상이 아닌, 노동권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보장하는 세상을. 불가능하고 막막해 보이는 미래인가? 그러나 더 막막한 건 윤석열이 아직도 탄핵되지 않은 지금이다. 바로 지금, 우리가 꿈꿔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문우편집위원회는 제안하고 싶다. 12월 12일 17시에 연세대 학생총회가, 그 이후 시국선언대회가 열린다. 학생회장은 학우분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싶다고 지난 긴급 중운위에서 이야기했다. 동시에 중운위에서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넣지 말라고, 오로지 순수하게 퇴진만을 이야기하자는 발언이 이어졌다. 퇴진 이외의 정치적 발언을 성명문에서 하지 말자고? 그렇게 회복할 수 있는 민주주의란 없다. 우리 모두 총회와 시국선언대회에 가서, 우리의 이야기를 하자. 페미니스트로서 퇴진을 요구한다고, 노동자로서 탄핵을 요구한다고 말하자. 그리고 학생회와 중앙운영위원회는 이 이야기들을 들어라. 진정한 민주주의를 원한다면, 민주주의의 회복을 원한다면 더는 ‘정치’를 두려워하지 말라. 민주주의는 정치적 중립 따위로 성취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024.12.11
변/혁/의/펜/을/높/이/들/자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자치언론 문우편집위원회
문우는 이와 동시에 언론출판협의회(이하 언협)의 일원으로서 언협에서도 함께 두 차례 대자보를 작성하고 부착하였습니다. 언협의 인스타그램 @yonseipresscommittee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