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유연
농담이 아니다. 1996년 연세대 한총련 사태 때 대학생들은 연세대 종합관(현 교과관)에 갇혔고, 2008년 쇠고기 파동 촛불집회에서는 경찰버스로 만든 차벽인 ‘명박산성’이 등장하여 광장을 둘러싸고 막았으며, 2009년 용산 참사 때는 남일당 건물이 완전히 봉쇄되었다. 전장연 출근길 선전전이 있는 아침마다 서울교통공사는 시민들을 몰아넣을, 본래 용도는 휠체어 경사로였던 큼직한 플라스틱 판을 꺼내오고, 지난달 남태령에서는 농민들의 트랙터가 지나갈 수 없게끔 경찰 버스 몇 대가 차도를 가로막았다.
광장, 우리는 그 이름을 들으면 자유롭고 너른 공간을 상상하곤 하지만 사실 광장의 역사는 이토록 고립과 봉쇄로 점철된 것이다. 너무 춥거나 너무 덥고, 몸과 몸이 부닥치며 마찰하고, 숨이 조여오는. 때론 물대포나 최루액 혹은 진압봉이 들이닥치며 공포와 불안이 떠다니는, 언제 이 갑갑한 곳을 벗어날 수 있을지조차 짐작할 수 없는 끔찍하고 두려운 용광로.
찰찰하게 닫아놓은 철문에 길을 내기 위해 사람들은 용광로를 달군다. 단체를 조직하고 깃발을 흔들고 구호를 외친다. 모든 운동은 그러한 열기가 필요하고, 끓는 열기는 용광로 속의 것들을 녹인다. 같은 구호를 외치고 같은 발언을 듣는 광장에서 어떤 몸들은, 그 몸들이 겪어온 시간은, 그에 부착된 감정들은 녹아내린다.
앞으로는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광장이라는 말을 들으면 8년 전을 회상한다. 박근혜를 탄핵하기 위해 촛불을 들고 나선 광화문. 8년 전의 나는 초등학생이었고 기억도 감정도 명확하지 않아 대신 기록과 재현에 기대어 그때를 인식한다. 작가 황정은은 그의 자전적 소설 『디디의 우산』에서 박근혜 탄핵 집회 당시 ‘악녀 OUT’이라는 새빨간 팻말을 마주친 ‘나’의 감정을 이야기한다.
그는 자기처럼 이 자리에 나온 많은 여성들은 왜 보지 않을까. 惡女라고 빨갛게 지칭할 때 ‘그 사람’의 여성은 그렇게 선명하게 보면서도. 그 팻말 앞에서 나는 이렇게 하지 말라고, 이렇게 말하지 말라고……
말했어?
말할까 말하지 말까를 계속 망설였는데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우리니까……
모두가 좋은 얼굴로 한 가지 목적을 달성하려고 나온 자리에서 분란을 만드는 일을 거리끼는 마음이 내게 있었고 그래서 결국은 그 팻말 앞을 그냥 지나쳐 왔는데 오늘 밤 집에 돌아가서 이 일을 계속 생각할 것 같다고 나는 말했다. …(중략)… 우리가 무조건 하나라는 거대하고도 괴로운 착각에 대해서도.[1]
8년 전의 광장에서 “우리는 우리”였고, 하나의 우리일 수 없게 하는 ‘말하기’가 곧 “분란”을 만드는 일이 되었다. 여성혐오를 지적하는 말, 비하와 혐오 표현을 문제시하는 말, 성추행을 고발하는 말이 분란이었다. 당시 여성단체들이 광장의 성폭력과 여성혐오를 고발하며 진행한 기자회견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하나의 광장’, 절절 끓는 용광로에서는 ‘암탉’, ‘병신년’, ‘강남 아줌마’와 같은 말이 오갔다.[2]
그러나 이러한 문제 제기에 대해, 사소한 일로 대의를 망치지 말라는 압박으로 대응한 기록 또한 무수히 남아있다. 여성의 몸, 경험, 감각은 유서 깊게 사소하고 사적인 영역으로 분류되어 왔으며 이는 광장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많은 여성들은 분란이 허용되지 않는 광장에서 자신의 불쾌감과 공포를 그저 속으로 녹여야만 했고, 흘러내려 바닥에 눌어붙은 그것들을 사람들은 모르거나, 못 본 체하며, 때로는 적극적으로 짓밟았다. 여성과 소수자는 공권력과 함께, 어쩌면 그보다도 더 옆자리의 동지를 두려워해야 했다.
『디디의 우산』의 ‘나’는 “혁명이 이루어진 날,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혁명은 마침내 도래한 것일까”(314)라고 비판적으로 자문한다. 아마 아닐 것이다. 급박한 정국에서 자주 혼동되곤 하지만 탄핵은 민주주의의 도구 중 하나이지 민주주의 자체가 아니며, 그 자체로 혁명도 아니다. 말할 것도 없이, 민주당 대통령의 선출도 민주주의가 아니다. 여성도 장애인도 청소년도 상처 입고 피 흘린 광장, 그것들이 녹아 눌어붙은 광장에서는 민주주의도 혁명도 없었다.
‘모두의 광장’은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하 비상행동)에서 자주 사용하는 캐치프레이즈이다. 이번 탄핵 집회는 두 갈래의 주최 단위가 따로 두 개의 집회를 진행하고 있는데, 하나는 민주당 계열의 촛불행동이고 다른 하나가 1600여개의 시민단체가 모인 비상행동이다. 촛불행동은 계엄 이전부터 꾸준히 탄핵 집회를 열고 있었다. 그런데 불법 계엄령의 발령 이후, 탄핵의 목소리가 드높아지며 촛불행동과 함께하고 싶지 않은 단체와 개인들이 비상행동을 조직했다. 촛불행동에 김민웅 씨가 상임대표로 활동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사건 당시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여 유죄를 선고받은 적 있으며, 이 사실이 퍼져나가자 많은 참여자들이 비상행동 주최의 집회에 참석하기를 선택했다.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성폭력은 이제 광장에서 용납 불가하다
또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우리는 이제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여전히 광장은 폭력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쥴리 계엄이다”, “술집 여자가 영부인이 되었다”와 같은 말들이 하나둘씩 등장한다. 그러나 8년 전에는 승인되지 못했던 “분란”이 이제는 전면에 드러난다. 지난 12월 7일, 페미당당의 활동가 심미섭 씨는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어떤 이들은 투쟁 현장에서 혐오를 지적하는 의견을 “나중에, 나중에 얘기하자” 또는 “국론을 분열시키지 말라”라는 말로 일축합니다. 그러나! 기꺼이 한 명의 시민으로 광장에 존재하고 싶었던 여성들의 자리를 혐오가 빼앗는다면, 그 무엇보다 심각한 “국론 분열”이 아닙니까! …(중략)... 페미당당을 비롯한 소수자 단체들은 늘 여기 광장에서 여성, 페미니스트, 퀴어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대통령 탄핵을 외칠 것이며, 동시에 투쟁 현장에서의 성소수자 혐오를 막을 것입니다.[3]
녹은 것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의 광장에 디딘 몸은 용광로의 바닥이 아니라 바닥에 눌어붙은 것들 위에 서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그때 녹였던 기억과 감정을 다시 마주한다. 어렸던 나와 같은 이들은 기록과 재현을 통해 이 바닥에 녹아서 켜켜이 쌓인 것들을 보게 된다, 마침내 우리는 그만 녹자고 이야기한다. 용광로의 열기가 여전히 녹이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지 살펴보고, 혹 누가 ‘사소한’ 것들은 녹여버리라고, 탄핵을 위해 하나가 되라고 압박하지는 않는지 주변을 살핀다.
용광로는 여전히 뜨겁지만 우리는 서로를 지키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마침내 품속에 적당한 따뜻함을 안고 서로를 본다
우리는 하나가 아니다
우리는 다르다
다름을 본다
우리 안의 다름이 불쑥 튀어나오고 더는 하나가 아닌 우리가 우리를 마주할 때 우리 ‘모두’는 어떻게 광장에 존재할 수 있을까? ‘모두’라는 도달 불가능한 지점은 어떻게 지향될 수 있을까?
지난 12월 22일 남태령에서 한 젠더퀴어 발언자가 “스스로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여성이라고 소개하지 않아도 되는 날을 고대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 발언이 끝난 후 집회의 사회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많은 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이야기합니다. 우리 사회가 특정 정체성을 밝히는 이유만으로도 때로는 차별을 하고 때로는 굉장한 폭력을 행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용기 내어 자기를 소개해 주시고 발언해 주신 분들께 다시 한번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몇 시간을 떨며 새벽을 지샌 사람들에게서 크고 강한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자유발언자가 자신의 소속이나 직업을 이야기하는 것은 본래도 흔한 일이었지만 이번 광장에서는, 남태령에서의 사회자가 말했듯 ‘정체성’을 이야기한다. 젠더퀴어 같은 성정체성부터 연뮤덕, 뜨개인과 같은 취미인 정체성까지. 때로는 윤석열 탄핵이라는 직접적 목표와 관련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이제 광장이 하나의 이야기가 영원히 반복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마주하는 것을 또 하나의 목표로 삼았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광장은 그 목표를 훌륭하게 달성한다. 이를테면 보수적인 직장에 다니는 회사원이 젠더퀴어를 만날 기회가 얼마나 있겠는가? 혹은, 서울에 사는 대학생이 농민을 만날 기회는?
모두는 각자가 택한 정체성으로서 광장에 존재할 수 있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지난 22일, 남태령에서 투쟁한 사람이 “딸들 수고했어”라는 말을 듣고 “충격 논바 진짜 계심”이라는 깃발을 들며 “감사합니다! 근데 사실은 저희가 딸이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이에 돌아온 답은 “그렇구나 알아두겠다!”였다.[4] 이때 광장에서 정체성의 인정은 김현경이 말한 대로 이루어진다.
정체성에 대한 인정은 특정한 서사 내용(“나는 레즈비언이다”)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서사의 편집권에 대한 인정이다. 우리는 정체성운동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갖지 못했더라도(펨femme이나 부치butch 같은 단어를 모른다 해도) 그저 귀를 기울이고 고개를 끄덕이는 행위를 통해 그러한 인정을 표현할 수 있다(“네가 레즈비언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네가 오늘은 레즈비언이라고 고백하고 내일은 그것을 부인해도 상관없다. 나는 너에 대해서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너 자신임을 인정한다”).[5]
이처럼,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모두’의 광장은 각자가 느끼기에 자신을 잘 설명하는 정체성으로서, 비록 그것이 남들에게는 설명되지 못할지라도 인정받음으로써, 불완전하게나마 모습을 갖춰나간다.
열기가 만드는 우리의 하나됨은 이제 녹음이 아니라 붙음이다
서로를 보고 (정체성으로서) 인지하고 인정하고 그리하여 모두가 모두일 수 있게
그러나 다른 사람을 마주하는 순간은 때로 폭력적으로 변한다. 누군가는 ‘어떤 정체성은 빼라’라고 요구한다. 어떤 정체성과는 함께하고 싶지 않다고, 붙고 싶지 않다고. 12월 말 트위터(현 X)에서는 트랜스젠더가 존재하지 않으며, ‘여성혐오를 답습하는 여장남자’일 뿐인 트랜스젠더와는 연대할 수 없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트랜스젠더가 언제 광장에 나왔냐며 그들이 ‘모두’의 광장에 존재할 수 없게끔 하는 흐름이 이어졌다.
사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
사진 1에서 3은 비상행동에서 배포하는 “평등하고 민주적인 집회를 위한 모두의 약속”이다. 사진 1은 여의도 곳곳에 크게 현수막으로 게시되었다. 집회를 시작하며 참여자들은 모두 사진 2와 사진 3의 약속을 함께 낭독한다. 광장에서 존재해도 안전하다는 감각, 존재할 수 있다는 느낌은 개인과 개인 간의 유대와 약속만으로는 충분히 채워지지 않는다. 공식적인 원칙, 선언, 문화가 중요하다. 혐오의 표출과 확산을 막을 수 있는 참여자들의 힘은 그것이 허용될 수 없다는 원칙과 선언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광장에는 여전히 트랜스젠더가 존재하고, 존재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이 함께하기 싫다고 이야기하는 약자들은 그럼에도 여전히 존재를 밝힐 수 있고, 존재한다. 혐오는 은밀하게 공기 중을 떠다니지만, 적어도 ‘모두의 광장’에서, 그 정당함을 인정받을 수 없다.
부산에서는 자신을 ‘술집 여자’로 소개한 발언이 있었다. 그는 사람들의 술집 여자에 대한 편견적 시선을 인지하고 있고, “무식한 사람이 나댄다”와 같은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꼭 해야 할 말이 있어서 나왔다고 밝혔다.
저기 쿠팡에서는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파주 용주골에선 재개발의 명목으로 창녀들의 삶의 터전이 파괴당하고 있습니다. 동덕여대에서는 대학 민주주의가 위협을 받고 있고, 서울 지하철에는 여전히 장애인의 이동할 권리가 보장되고 있지 않으며, 여성들을 향한 데이트 폭력이, 성소수자들을 위한 차별금지법이, 이주 노동자의 아이들이 받는 차별이, 그리고 전라도를 향한 지역혐오가, 이 모든 것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완벽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이 고비를 무사히 넘기는데 성공하더라도, 이것이 끝이고, 해결이고, 완성이라고 여기지 말아주십시오. 편안한 마음으로 두 발 뻗고 잠자리에 들지 말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6]
한번 붙은 사람들은 떨어지더라도 그 접합부에 다른 색을 남겨둔다.
정체성의 광장은 이미 탄핵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
일전 대학은 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인 공동체 중 하나였다. 학생운동은 사회운동의 큰 축을 담당했고, 대학생은 늘 정치적인 집단으로 호명되었다. 그러나 학생운동의 종말이라고도 불리우는 1996년 연세대 한총련 사태 이후로 대학생은 차차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집단으로 탈바꿈되었다. 종합관이 불타고 다시 지은 교과관에 과거의 역사가 기록되지 않은 것처럼, 지금의 대학사회는 운동 그리고 정치와 엄격하게 선을 긋는다.
지난 12월 13일, 신촌에서는 19개 대학 총학생회 연합이 주도한 ‘전국 대학생 총궐기 집회’가 열렸다. 참여 신청 란에는 반입 가능(권장) 물품으로 소속 학교 등을 나타내는 깃발, 피켓이 적혀 있었다. 반면 반입 불가 물품에는 특정 정치단체의 깃발 등 본 집회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은 물품이 적혀 있었다.
국회와 광화문 앞 광장에는 정당의 깃발도, 시민단체의 깃발도, 급조한 재밌는 깃발도 존재할 수 있었다. 국회 광장의 제1원칙은 모두의 광장이었고, 허가와 상관없이 우선 모두를 들여놓은 뒤 혐오적이거나 배제적인 내용을 지적하는 공간이었다. 반면 대학이 만든 광장은 어떤가? 대학생이 아닌 모두를 배제하는 공간에서 정치 단체나 시민 단체에 소속된 대학생은 허가될 수 없었다. 반입 가능(권장) 물품에는 심지어 배후 정치 세력이 없음을, 우리는 정치적 반동분자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시작된 역사를 가진 ‘재밌고 이상한’ 깃발이나 피켓조차 적혀있지 않았다. 대학의 광장은 특정 대학 소속만을 정체성으로 가진 대학생을 요청한다. 그리고 그런 대학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순수한 대학생 되기를 요구하는 총학생회와 학내 여론은 거의 대부분의 대학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로 보인다. 지난 22일 남태령 집회에서 서강대 인권실천모임 노고지리에서 활동하는 학생 활동가의 발언이 있었다.
저희가 자보를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인 에타에 올리고 나서 욕을 조금 먹었습니다. 왜 이런 걸 하냐, 정치적인 이야기 좀 하지 마라. 대학가에서 요즘 좋아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라. 집회를 하면 대학생의 순수함에 맞춰서 해라.[7]
차가운 용광로인데도
어떤 다른 것과도 붙을 수 없다고 그렇게 색이 옮겨붙는 것은 오염이라는 감각
그러나 그것은 진실로 ‘오염’되는 것인가?
이때 오염되는 순수한 대학생은 대체 무엇인가?
‘정치적으로 편향된 소재는 이야기하지 말고, 순수하게 퇴진만을 요구하자’는 요청 혹은 강요는 대부분의 학교에서 꾸준하며, 이는 연세대학교에서도 똑같이 등장한 논쟁이다. 연세대학교 학생이자 대학언론인인 나의 ‘정체성’을 렌즈 삼아, 우리 학교가 지나온 시간을, 그 속에서 내가 포착한 문제적 순간들을 몇 가지 주의 깊게 살펴보고자 한다.
12월 4일의 중운위에서 자주 등장한 말은 “좌우편향”, “정치적 중립”, 그리고 “연세대 총학생회의 이름을 걸고”였다. 일부 중운위원들에게 연세대 총학생회 명의로 입장문을 낸다는 건 연세대 학생 대다수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고, 대다수의 찬성이 곧 정당성을 담보했다. 총학생회는 의견이 있는 기구라기보다는 다수 의견 학생을 대리하는 기구였는데, 이는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투명한 학생정치라는 욕망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8일의 중운위는 시국선언대회와 학생총회 개최 여부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는데, 이때 이것을 ‘왜’ 진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단지 실무적으로 총회 개회가 가능할지 여부와, 시국선언대회와 총회의 개최 순서를 어떻게 정할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을 뿐이다. 이는 4일의 중운위에서 사회과학대 학생회장이 “[총학 명의 입장문의] 논조는 절차적 정당성 한 가지만 짚고 싶습니다. 기타 하야나 후적조치에 관해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헌법 77조나 계엄법 2조 등 법적인 내용으로만 입장문이 작성된다 한다면 좌우논리에 편향되지 않”을 거라 이야기한 정서와 공명한다. 학생회는 절차에 기대고, 법적 정당성에 기댄다. 이는 그것이 중립적이고 그래서 무결하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그러한가?
법과 절차와 그것이 보장하는 정당성을 획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은가?
계엄 선포 이후 총학생회가 중운위와 학생총회를 통해 ‘공론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총학생회는 실시간 속기록을 제공하지 않았고, 속기는 녹음으로 대신하였으며, 이후 회칙상 14일 이내에 공개하게 되어 있는 회의록과 속기록도 시간 내에 업로드하지 않았다. 중운위에는 참관인으로, 학생총회에는 프레스로 나와 함께한 친구들은 자체적으로 실시간 속기록을 작성하였다. 공유 문서를 만들며 우리는 의문을 던졌다. 총학생회는 왜 청각장애인의 총회 접근성을 보장하지 않는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참여가 간절하다면서? 이에 덧붙여 또 다른 의문이 떠오른다. 턱이 높은 잔디밭에 학생들이 앉게 구성한다면, 휠체어 사용자는 어디서 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학생총회 공지 어느 곳에도 휠체어 사용자가 착석할 수 있는 자리는 안내되지 않았다. 쌓이는 의문들에 대한 답은 하나로 좁혀졌다. 총학생회는 장애가 있는 학생이 ‘우리’일 거라고 상상하지 못한다.
한편 연세대 구성원임에도 구성원으로서 인정되지 않고 배제당하는 존재들이 있다. 학생총회가 열린 잔디광장은 ‘재적생’임을 연세포탈 화면을 보여주고 인증함으로써 입장할 수 있었다. 본인이 재적생임을 아는 학생들은 그 재적생의 기준이 누구는 포함시키고 누구는 포함시키지 않는지 질문하지 않았다. 그저 중립적인 총학생회가 중립적인 제도를 통해 잘 처리했으리라고 생각하거나, 재적생이라는 단어에 대해 아예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자신이 재적생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학생만이 재적생의 정의에 대해 질문했다. 연세대 미래캠 학생, 미래캠에서 신촌캠 전공을 복수전공해 신촌캠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은 재적생이 아니었다.
대학사회는 정치에 오염되기 전의 순수한 대학생이라는 허상을 믿는다
하나의 대학생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그저 녹였을까
연세대학교 광장에는 얼마나 많은 감정들이 기억들이 녹아 눌어붙어 있을까
그렇게 누군가를 상상하지 않고, 호명하지 않고, 포함하지 않음으로써 만들어진 ‘광장’은 단지 연세인의 동질성을 재확인하는 자리에 불과했다. 사회대 학생회장은 “무엇보다 지금 대통령을 하고 있는 사람이 그저 싫으니 나오는 분들이 많은 것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은 대학생, 연세인으로서 무엇에 분노하고 있는지 명확히 알아야 한다”라고 발언했다. 그 논리는 무엇을 암시하고 있나? 연세인은 지성인이라는 엘리트주의다. 또한, 분노할 이유는 다른 정체성이 아닌 연세인, 대학생이라는 정체성이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서로를 처음 마주하며 다양한 자기소개부터 시작한 집회와 다르게, 총회의 소개는 학과와 학번으로 통일되었다. 페미니스트 대학생, 노동자 대학생, 장애인 대학생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오로지 대학생이라는 정체성으로서의 발화만 허용되는 공간에서 2시간가량 이어진 학생총회는 결국 도돌이표였다. 비상식적 계엄령, 민주주의의 파괴, 선진국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외국인 유학생에게 부끄러운, 국회에 병력 투입… 똑같은 발언이 반복되자 친구가 프레스석에 앉아있는 내게 다가와서, 자신이 자유발언을 신청해서 내가 단위 명의로 쓴 성명을 대신 낭독하겠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친구에게 모자와 마스크가 있는지 살폈고, 빠르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내가 쓴 성명에는 “페미니스트로서 요구합니다”라는 말이 있었다. 나는 친구가 삼천여 명가량의 동질적인 연세인 앞에서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게 둘 수 없었다. 이 광장은 안전하지 않았다.
8년 전, 하나의 광장을 경험하지 못했어도 나는 그때의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지금 대학이 바로 하나의 광장이다.
계엄 이전, 연세대에서 시국선언 대자보를 작성하자는 기획이 있었다. 오픈카톡방을 통해 참여자가 들어왔기에 기존 학내 단체에서 활동하거나 학생회를 했던 사람도 있었지만 학내 운동 경험이 아예 없는 사람들도 여럿 들어왔다. 오픈카톡방 참여자가 60명을 넘길 즈음, 계엄이 선포되었다. 대자보 톡방은 텔레그램으로 옮겨갔고, 50명 남짓이 넘어왔다. 그 안에서 또 실무를 할 사람들을 모집하니 서른여섯 명이 남았다. ‘윤석열의 계엄령을 규탄하는 재학생 및 졸업생 모임’(이하 규탄모임)은 그렇게 구성되었다. 규탄모임은 대자보를 작성해 게시했고, 연세대 구성원을 상대로 연서명을 받았으며, 12월 8일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서른 명 넘게 존재하는 이 공동체는 계엄을 시초로 구성되었고 본래 서로 알던 사람도 있었지만 얼굴도 이름도 처음 본 사람도 많았다. 어떤 구성원은 대학원생이었고, 어떤 구성원들은 정당원이었으며 정당원보다는 시민단체의 회원이 더 많았다. 어떤 구성원은 아예 운동 경험이 없다시피 했다. 연서명과 기자회견 진행을 위한 회의는 아주 조심스럽게 진행되었다. 서로의 정체성을 존중하리라는 기본적인 합의는 된 상태였지만 서로의 정체성은 잘 모르거나 들어도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하는, 그래서 조금은 아슬하고도 위태한 연대였다. 돌이켜보면 이 작은 공동체가 연세대 안의 ‘정체성의 광장’이 아니었을지 싶다.
그러나 이 광장은 공식성이 없었으며, ‘순수’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소수였다. 대학 밖의 광장에는 백만 명, 이백만 명의 시민이 있었는데, 대학 안의 광장은 서른 남짓이었다. 에브리타임과, 규탄모임이 운영한 연서명 관련 정보 공유 오픈채팅방을 통해 구성원의 순수성과 비정치성에 대한 질문이 꾸준히 들어왔다. 혹시 정치랑 관련 있는 것 아니냐, 그런 연서명에는 참여하기 싫다는 말부터 노동자연대가 엮여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럼 서명한 내 정보가 노동자연대에 넘어가는 거 아니냐는 억측까지 다양한 의심이 우리를 공격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순수성의 증명이었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순수함을 증명하지 못하는 것이 두려웠다.
모두의 약속도 모두를 위한 광장을 위한 현수막도 없는 이 광장에서
분란을 일으키는 것이
내가
규탄모임은 기자회견을 마친 후 학내에서의 활동보다는 학외 활동, 즉 매주 토요일 국회 앞 집회에 참석하는 데에 무게를 두었다. ‘연세대 공동행동’이라는 이름의 파란 깃발을 새로 뽑았고, 그 깃발 아래 학생들이 결집했다. ‘연세대’의 이름을 걸고 집회에 참석하는 건 총학생회로서는 할 수 없는 ‘정치적’인 행동이었고, 규탄모임의 의의를 그때 나는 그 지점에서 찾았다.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고, 정국이 길어지며 나와 규탄모임의 몇몇은 이 모임을 장기적인 네트워크로 발전시키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마치 ‘모두의 광장’처럼, 학내에 존재했지만 서로 다르고 서로 몰랐던 우리가 느슨하게 엮이게 된 공동체가 흩어지지 않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조금 더 서로의 삶과 생각을 공유하고 싶었다. 이에 정치적 활동을 하고 싶어 모인 학내의 사람들이 학내에서 우리의 정치를 만들어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더해졌다. 절대 중립적이지 않고, 늘 다수결도 아닌 정치, 다양한 정체성으로 존재할 수 있는 광장을 학내에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함께하는연세인권네트워크(이하 함연넷)을 발족시키게 되었다. 연세대학교와 엮인 다양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 우리 학교 정상 영업하지 않습니다를 필사적으로 외치는 광장을 원하면서. 학교의 광장이 내게 존재할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면, 나는 이 학교에 모두의 광장을 만들어 내 존재의 자리를 놓고자 한다. 그건 아주 오래 걸릴 것이며, 내가 학교를 다닐 동안에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믿는 구석이 있다.
이 글은 나의 개인적인 기록과 재현이다. 녹은 내가 광장 바닥에 있다. 녹은 이들이 바닥에 켜켜하다. 분란을 일으키는 것을 꺼리는 마음, 공격에 대한 두려움, 말하지 못함에 대한 모멸감, 존재할 수 없다는 무력감, 상상되거나 포함되지 못함에 대한 허망함, 지나치게 정치적인지 걱정하다가 문득 밀려오는 슬픔. 하루 종일 에브리타임에 연서명을 검색하던 시간들과 에브리타임을 삭제한 기억, 대자보를 붙이며 뒤를 흘끗 돌아보던 순간과 다음날 대자보 자리에 남은 테이프만을 발견한 기억,
언젠가 다른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대학에, 연세대학교 광장 바닥에 녹은 기억과 감정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위에 서게 될 것이다, 우리가 8년 전의 광장 위에 섰듯이. 그러면 어쩌면 그들은 그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 더는 녹지 말자고, 우리는 더 이상 녹지 않겠다고.
이 글이 나의 믿는 구석이다. 나는 논바이너리가, 트레비앙 직원이, 페미니스트가, 비정규 교원이, 과학관 청소노동자가, 장애인이, 그리고 정치인이 발언하는 미래의 학생총회를 꿈꾼다.
~영업~
이 글이 발행될 3월, (모든 수순이 계획대로 진행되었다면) 함연넷은 첫 신입 회원을 절찬리 모집 중입니다. 이 글을 읽고 학내 행동에 관심이 생겼거나, 인권행동을 함께할 동료를 만나고 싶다면, 혹은 그저 느슨하게 학내외의 인권행동 소식을 꾸준히 접하고 싶다면 함연넷은 여러분 모두를 환영합니다! 또, 2월 초에는 함연넷에서 “계엄 이후의 수다회: 우리 대학 정상영업 한 적 없습니다”를 진행하였습니다. 해당 수다회의 속기록이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되어 있으니 이 글을 읽고 대학사회 탈정치화 혹은 학내에서 할 수 있는 인권 및 정치행동 등에 관심이 생겼다면 한번 찾아보세요! (물론 글을 쓰고 싶은 독자 분들은 문우편집위원회가 환영합니다 <3)
인스타그램: @yonsei.rights.action 이메일:
yonsei.resignation.action@gmail.com
[1] 황정은. 『디디의 우산』. 창비, 2019, 306. 강조는 인용자.
[2] 이유진. “페미니스트 시국선언 “‘여성’을 팔지도, 비하하지도 말라”“. 한겨레, 2016.11,26,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72101.html
[3] @gosms. “윤석열 탄핵 표결을 앞둔 촛불집회에서 발언한 내용입니다”. 트위터(현 X), 2024.12.07., 10:28 a.m., https://x.com/gosms/status/1865327583388459481
[4] @4_MY3612TH. “어떤 아저씨가 우리 딸들 수고했어!! 하시길래”. 트위터(현 X), 2024.12.22., 9:52 a.m., https://x.com/4_MY3612TH/status/1870754153376735722
[5]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지성사, 2015, 215.
[6] @roundsummer. “2024.12.11 (수) 부산 서면 집회 노동자 발언자”. 트위터(현 X), 2024.12.11., 16:59 p.m., https://x.com/roundsummer/status/1866875547948814416
[7] @nogojiri_sogang. “어젯밤 남태령으로 진입하던 전봉준 투쟁단의 트랙터 행진이 경찰에 의해 막혔습니다.” 인스타그램, 2024.12.22.,
https://www.instagram.com/reel/DD3VswoSVER/?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MzRlODBiNWFlZA==
참고문헌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지성사, 2015.
황정은. 『디디의 우산』. 창비, 2019
이유진. “페미니스트 시국선언 “‘여성’을 팔지도, 비하하지도 말라”“. 한겨레, 2016.11,26,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721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