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단(丹)
잘 살기가 마냥 쉽지만은 않은 세상입니다. 요즘은 세상이 더 좋아지고 있다는 말이 쉽사리 공감되지 않습니다. 나는 그저 나로서 존재하고 있을 뿐인데, 자꾸만 내가 부족하고 못나고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잘’ 되어야 한다는 말은 지금의 내가 바뀌어야만 한다는 뜻일까요? 발전과 성장을 부르짖는 지금 세상에서 우리는 주류라는 단일한 기준에 탑승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문우는 이번 학기에 ‘정상성’과 ‘이분법’에 대하여 공부하며, 정상사회 밖에 배제되어 위험하고 이상하다고 여겨지던 ‘비정상’ 존재들을 바라보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고민에서 출발한 이번 호의 메인기획 〈건강 정상성〉에는 우리 사회가 평가하고 추구하는 몸과 마음의 정상성을 탈피하기 위한 고민과 저항의 흔적이 담겨 있습니다. 니나는 이상적 신체에 대한 강박을 강화시키는 일상 속 요소들에 주목하며, ‘팻토크’ 대신 「우리 다른 이야기하자」고 소소하면서 다정한 목표를 제시합니다. 「건강 중심 세계에서, 다시 중심 잡기」에서 조조는 생명정치 개념을 통해 몸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해체하고, 오늘날 유행하는 건강관리 담론의 한계를 지적합니다. 펭의 「난 그냥 나이고 싶어」는 생산성을 지니는 몸을 정상적 몸이라고 여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롯된 선망을 섬세하게 짚어나가며, 노화에 대한 두려움과 나이중심주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합니다. 한편, 건강하다고 여겨지는 몸과 마음에서 벗어난 존재와 공명하는 글들이 있습니다. 오소리는 미디어를 통해 재현되는 정신병의 은유를 면밀하게 되짚으며, 「“내 시간 속에 나로 존재하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개인적인 질병의 경험에서 시작하여 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시간을 치밀하게 고민하는 밤의 글은, 오소리의 글과 더불어서 ‘질병권’이 보장된 사회의 모습을 상상하게끔 하여 「온전하지 않은 몸으로 온전한 미래 꿈꾸기」를 가능하게 합니다. 메인기획 〈건강 정상성〉을 통해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적인 몸의 모습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고, ‘정상적’인 신체의 강박과 환상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몸을 상상해봅시다.
72호 문우의 눈을 여는 글은 해로의 「지상의 달, 옥상에 올라간 사람들」 입니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에 소속된 박정혜씨의 고공농성 투쟁 현장을 선명하게 따라가는 인터뷰에서, 해로는 노동자의 권리 투쟁에 응원과 지지를 요청합니다. 이러한 마음은 전태일 열사의 생애를 담은 음악극 〈태일〉에서 뻗어나간 색다른 두 개의 글로 이어집니다. 단화의 「나는 기억되고 있습니까?」는 과거와 현재의 노동 현장을 교차시키며,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아직 찾아오지 않았기에 여전히 태일이 기억되고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단화의 목소리를, 〈태일〉을 통해 실천하는 연대의 힘을 체감한 여백의 「내미는 손, 붙잡는 손」이 이어나갑니다. 여백은 탄핵 시국 속 광장의 기억을 떠올리며, 연대의 힘을 통해 태일이 부르짖었던 부당한 현실을 차츰 바꿔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응원합니다.
에멜무지로는 텍스터마이닝 등 양적방법론을 활용해 공론장 속 캔슬컬처와 배제의 역학을 분석하고자 하였습니다. 「입틀막의 역학 – 캔슬 컬처는 어떻게 작동하는가」는 금기와 정치권력이 작용하는 여러 공론장을 넘나들며 소수자가 어떻게 배제되는지, 그리고 캔슬컬처를 만들어낸 인지부조화와 목적론적 오류에 근거를 제시합니다. 함함 역시 온라인 페미니즘 공론장 속 배타적 ‘여성서사’에 주목하며, ‘순수한’ 여성서사만을 선별하는 현상의 한계를 지적합니다. 함함의 「[ ]한 여성서사를 찾아서」는 멋진 여성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이상한 여성의 이야기까지 모두 그 자체만으로 여성서사임을 말하며 마무리됩니다. 노동과 투쟁의 현장, 그리고 디지털 공론장을 넘나들며 혐오와 연대를 고민하는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을 배우고, 함께하기 위해 노력하며, 우리 속에 자리잡은 혐오에 대해 고민할 수 있습니다.
제 책상 위에는 얼룩덜룩하게 커피 물이 든 머그잔 두 개가 며칠째 놓여 있습니다. 무릎에서 잠든 강아지는 숨을 엇박으로 쉬어서 매일 가루약을 먹습니다. 청소기가 닿지 않는 책장 구석은 언제나 먼지구덩이입니다. 블라인드조차 제대로 닫히지 않아서, 햇빛이 들쑥날쑥한 궤적을 남기며 방안 곳곳에 스며듭니다. 무엇 하나 제대로 되었다고 말하기 어려운 방입니다. 그렇지만 더러운 곳을 깔끔하게 닦아내고, 망가진 곳을 수리하고,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을 감추고 버린 후에도 계속 이상한 부분이 눈에 띄었습니다. 결국 어떠한 비정상들을 방 밖으로 밀어낸다고 해서, 모두가 생각하는 완벽하고 이상적이고 ‘정상적’인 방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 지금의 조금 더럽고, 어쩌면 이상한 방을 꽤 멋지다고 여기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이상하고 비정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생생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비정상은 정상과 대비되며 존재하는 그 자체로 저항의 지표입니다. 또한, 자신 외에도 정상성에서 밀려난 이들의 존재를 긍정하고 배제된 존재들과 함께할 가능성을 여는, 연대의 정체성입니다. 그래서, 우리 문우 비정상 영업합니다. 어딘가 망가진 구석이 있는, 남들같지 못해 괴롭고 외로운, 이상하고 또 불온한 존재를 위해 이곳에 있으려고 합니다. 불완전하고 기이하며 번민하고 삐걱거리며 기울어지고 얼룩진, 우리와 당신과 그들의 존재에 공감하고 연대하고 저항합니다. 그러니 정상성 밖에 살아 숨쉬는 인간, 비인간 존재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모든 형태와 소리와 마음을 기다리며, 편집장 단(丹)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