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영웅난립

편집위원 이지

by 문우편집위원회

코로나 시대의 영웅난립: 기적도 구원도 없는 곳에서


무협 소설에서 영웅은 꼭 필요한 요소 중 하나다. 신분도 출신도 다양한 그들은 우연히 나이 든 무림 고수를 만난다거나, 능력을 높여 주는 약을 마시고 전설의 검을 획득하는 등 기연(奇緣)을 얻는다. 그렇게 그들은 영웅으로 거듭난 뒤 속칭 강호 무림이라고 하는, 자신이 속한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세력에 맞서 싸우고 결국 무림을 구해낸다.


비단 무협 소설이 아니더라도 영웅은 장르를 불문하고 계속 등장한다. 이는 압도적인 능력으로 악을 척결하고 세계를 구한 뒤 귀환하는 영웅의 존재가 읽는 이로 하여금 통쾌함과 만족감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위협과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심지어 빈사 상태가 되더라도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 불굴의 의지로 세상을 구하는 완벽한 선(善) 앞에서 장애물도, 적군도, 외계 생명체도 무의미하다. 정부와 군대 등 인류가 구축해놓은 시스템 역시 영웅 앞에서는 그를 지원하고 보조하는 역할로밖에 남지 않는다. 영웅만 있다면 이 사회는 안전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코로나19의 시대는 곧 영웅의 시대다. 코로나는, 아니 코로나에 대응하고 있는 우리 사회는 지금껏 수많은 영웅을 호명해왔다. 코로나가 확산되기 시작한 1월 이후 매일 두 번의 정례 브리핑을 하며 반 년 넘게 이 비상상황을 버텨 온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본부장이 단적으로 그렇다. 취임 초기의 사진과 코로나 확산 후 브리핑을 하는 사진을 비교하면 고생이 얼마나 심했는지 눈에 띄게 보일 정도다. 2월 브리핑 자리에서는 기자에게 직접 건강이나 휴식 관련한 질문을 받았고,[1] 7월 들어서는 ‘내가 먼저 쉬어야 직원들도 쉬겠다’는 생각에 겨우 이틀 휴가를 얻어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2] 정은경 본부장 외에 다른 의료인 역시 빼먹을 수 없다. 코로나 확산 이후 집에도 가지 못하고 계속 일하고 있는 간호사들이나, 대구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을 때 만사를 제치고 달려간 의료진들 역시 사회적인 영웅이 되었다.[3] 기존 업무 이외에 코로나로 증가한 업무를 보다가 과로로 사망한 공무원[4]이나 교사[5]도 영웅으로 기억된다. 코로나에 ‘맞서’ 우리를 ‘지키다가’ 쓰러지고 탈진한 사람들.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포스터나 영상 같은 매체와 지자체, 질병관리본부, 도로교통공사 등 주체를 막론하고 수많은 곳에서 발행한 ‘손을 씻는, 개인 방역 수칙을 지키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당신이 영웅입니다’라는 홍보물이 넘쳐난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TV에서, 스마트폰으로 보는 짤막한 광고에서도 이런 홍보를 볼 수 있다. 이렇게 코로나 시국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나도 모르게 내가 속한 집단의 방역 책임자가, 영웅이 되어 있고 또 그러기를 요청받는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 영웅인 사회는 역설적으로 어떤 영웅도 존재하지 않는 사회일 것이다. 모두가 특출난 영웅이라면 지켜야 할 일반인도 맞서 싸워야 할 적도 없으니 구분이 무의미해지지 않겠는가. 영웅이 되어야만 하는 사회에서 영웅이 아닌 자는 곧바로 공동체를 안전을 위협하는 악마, 적, 빌런이 된다. 그가 자기 의지로 영웅이 되지 않은 건지, 아니면 불가피한 사유로 될 수 없었는지 사람들은 알 수 없는데 말이다. 물론 이 문구가 수사(修辭)를 위해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목표를 동원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캐치프레이즈를 쓴 쪽도, 홍보물을 의뢰하고 승인한 측에서도 모두가 영웅이 되는 사회가 이루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공식적으로 국민 보호의 의무가 있는 공공기관이 나서서 사용해도 되는 문구가 되는가? 정말 모두가 영웅이 될 수 있다면 정부의 존재 의의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이는 공공기관의 본래 의무를 어느 정도나마 방기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개인이 방역 수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니 이런 불가능의 수사가 문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뭐가 나쁘냐고. 과장되게 말하더라도 그걸 보고 자극을 받아서 모두가 방역 수칙을 잘 지키는 사회가 되면 안전하고 좋은 것 아니냐고. 그러나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 거리두기가 불가능한 근무 환경, 정보에 대한 접근 능력― 개인의 책임으로 돌아온 방역 앞에서는 이 중 어떤 것도 변명거리가 되지 못하고, ‘이 시국에 마스크도 안 쓰고 제정신이냐’는 식의 비난을 듣거나 공개된 동선으로 신상이 파헤쳐지기 십상이다. 개인의 노력이 실제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차치하고서라도, 방역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은 이렇게 한 사람이 해야 하는 노력의 정도를 임의로 규정해버린다.


마스크 꼭 쓰기. 2미터 이상 거리두기. 아프면 쉬기. 모두가 지키면 아주 완벽할 터다. 그러나 이 수칙을 전부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정부는 자꾸만 잊는다. 지난 3월 집단감염이 발생했던 콜센터의 근무환경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혀 불가능할 만큼 열악했다. 예방 차원에서 마스크를 쓰고 근무하면 고객들은 소리를 더 크게 내달라고 불만을 표한다. 하루 8시간 이상씩 말을 해야 하는 이들이 마스크를 쓰고 평소보다 큰 소리로 고객을 응대하다 보면 어지럼증은 당연하다. 콜센터 상담사는 칸막이가 있어도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에 차곡차곡 앉아 한 층에 보통 상담원 이삼백 명이 근무하는 이곳이 ‘닭장’ 같다고 표현한다. 코로나 이전에도 감기 환자가 한 명 나오면 며칠 만에 동료의 절반에게까지 전염되는 일이 잦았을 정도였다. 콜센터 상담원은 “한국 서비스업에서 청소 노동자와 함께 가장 불안정성이 큰 직군”으로 꼽히며 당장 생계가 급급한 사람들이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하는 구조다. 회사 사정으로 휴업을 하더라도 개인 연차를 쓰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이다보니 코로나라는 재난 시대에도 병가를 내기는 어렵다.[6]


거리두기 수칙을 지킬 수 없는 근무환경인 물류센터도 별반 다르지 않다. 1년 넘게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용직으로 일해 온 노동자는 “적정 시간 안에 물량을 해결하지 못하면 관리자가 소리를 지르니 마스크를 턱에 걸첸 채 뛰어다닐 수밖에 없고, 음식을 취급하는 신선센터의 경우는 온도차 때문에 마스크 안에 금방 습기가 차서 계속 쓰고 있기가 더욱 힘들다”고 증언했다. 게다가 쿠팡 물류센터 일용직은 전날 오후 6시에 어플로 출근 확정을 받고 결근 일수가 서너 번 쌓이면 출근을 신청해도 일거리가 주어지지 않다보니 ‘아프면 쉬기’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7] 코로나는 이렇게 아파도 쉴 수 없는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며 콜센터에서 물류센터로, 몇 번을 연쇄하며 퍼졌다. 이들은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개인 방역 수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코로나에 감염되었다.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악마가 되어버린 것이다. 영웅이 되겠다고 한 적도 없고 될 수도 없는 상황이었으며 애초에 그들을 이러한 상황에 몰아넣은 것은 쿠팡이라는 기업이 만든 열악한 노동환경이었는데도 말이다. 개인에게 지워진 책임은 이렇게 그 뒤에 있는 구조를 가린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7월 초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서도 휴대폰을 끄고 잠적한 전라도 광주의 118번 확진자는 감염병 확산 사태의 심각함을 미처 인지하지 못한 60대 남성이었다.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던 그는 광주에서 55km 떨어진 영광까지 일거리를 찾으러 갔다가 그곳에서 신병(身柄)이 확보됐고, 확산 사태가 심각함을 이해하고 나서야 격리 지침을 받아들였다. 그러면서도 격리 기간 동안 일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더 크게 낙담했다.[8] 60대, 일용직이라는 두 단어에서 그의 계급성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광주시는 이 같은 사실을 무시하고 원론적으로 접근했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브리핑에서 “광주 118번 확진자의 이탈 행위가 시민의 생명과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매우 큰 범죄 행위로 판단하고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 조치할 예정이다”라고 밝혔으며 “광주 시민과 공동체를 지켜내기 위해 방역 수칙과 행정 조치 위반 등 안전을 위협하는 모든 행위는 무관용 원칙으로 일벌백계 하겠다”고 밝혔다.[9]


이는 전 세계적으로 모범이라 칭송받는 대한민국 방역의 그늘을보여준다. ‘국민 여러분은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 머물러 주시길 바랍니다.’ 즉 ‘국민 여러분’은 밖에 나가지 않고 지속적으로 머물 수 있는 안정되고 쾌적하며 비좁지 않은 공간이 있고 밖에 나가서 당장 일을 하지 않아도 생계가 급급하지 않을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가정.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는 방문을 자제하여 주시고 방문 시 마스크를 꼭 착용해 주세요.’ 모두가 사람들과 충분히 거리를 두고 마스크를 내내 쓸 수 있는 환경에 있다는 착각, 혹은 알면서도 모른 채 하는 외면. ‘○○시청 ◇◇◇번 확진자 발생, 역학조사 후 관련 정보는 SNS 및 홈페이지 통해 공개하겠습니다.’ 전 국민이 자기 휴대폰을 안정적으로 소지하고 있고 기기를 통해 온라인에 접속해 정보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는 믿음.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사례는 턱없이 많다. 이렇게 특정 개인들만 지킬 수 있는 정해진 방역 수칙을 무조건 준수하라고 요구하며, 그러지 못했을 시에 ‘일벌백계’하는 것이 대체 누구를 지키는 방역이란 말인가? 대부분 저임금과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는 불안정한 비정규직, 혹은 일용직은 지금껏 살핀 것처럼 표준 방역 수칙을 지키기 어렵다. 우리는 일부에게만 해당되는 비대면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이들에게 위험한 대면 업무를 외주했고 코로나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그 업무량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 우리가 안전한 집안에 머물며 비대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은 위험을 외주화한 채 이들의 보이지 않는 노동에 의존하고 있고, 그 노동이 이 현대 사회를 작동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손을 놓는 순간 이 불안한 비대면이 멈추리라는 것도 잊고서 우리는 지금 누구를 비난하고 악마로 돌리고 있는 것인가?


방역이 개인의 의무가 되고 ‘코로나에 걸리지 않을 책임’이 중요하게 이야기될수록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한 사람들, 즉 확진자들은 사회적으로 소외된다. 코로나 완치 이후 직장으로 복귀하려던 부산의 한 완치자는 “주위 동료들이 자신을 꺼려하는 불편한 시선을 느껴서” 경제적 수입이 없는데도 직장으로의 복귀를 연기했다. “복귀를 앞두고 회사에 인사하러 갔는데 악수를 피하는 동료를 비롯해 멀찌감치 떨어져 인사하는 동료들이 더러 있었다”는 것이다.[10] 또한 코로나19 완치자는 2주 간 지자체의 능동감시(격리되진 않지만 증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건소에서 모니터링하는 것) 대상이 되어 증상 재발현 여부를 확인하는데,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한 뒤에도 회사에서 능동감시 기간이 끝날 때까지 연차 사용을 강요받거나 감염력이 없다는 추가적인 진단검사 결과를 요구받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치료기간에는 법정 전염병 감염에 따른 치료비나 생계비를 지원받지만 완치 판정 이후에는 더 이상 지원을 받을 만한 법률이나 기관이 없다. 분명히 부당한 처우이고 불이익이지만 이를 하소연할 만한 곳은 드물뿐더러 퇴사를 각오하지 않는 이상 노동 분쟁 접수는 현실적으로 어렵다.[11]


KakaoTalk_20200821_184717609.png 코로나 19에 대한 인식조사. 한의신문


의무가 필요 이상으로 과중되면 확진자를 막론하고 ‘코로나에 걸려 주변 사람들한테 민폐 끼치면 안 된다’는 부담감 역시 심해진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팀이 전국의 성인 1,000명을 상대로 진행한 코로나19 설문조사(조사기간 1월 31일~2월 4일)에 따르면 ‘상황별 두려움을 느끼는 정도’ 항목에서 ‘내가 확진자가 됐을 때 주변으로부터 받을 비난과 추가 피해’를 두려워하는 정도는 5점 만점에 평균 3.52점이었다. 나머지 두 응답인 ‘무증상 감염되는 것’(3.17점), ‘주변에 증상이 의심되는데도 자가신고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두렵다’(3.10점)보다도 더 높았던 것이다.[12]


주변의 비난을 더 두려워하는 이러한 인식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팀이 약 육 개월 후 경기도 내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자 총 1,498명(확진자 110명, 접촉자 138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인식조사(조사기간 6월 3일~17일)에서 일반인의 30.7%가 ‘코로나19 환자의 감염에 대한 책임은 환자 자신에게 있다’고 응답했는데, 이는 같은 항목에서 확진자의 9.1%, 접촉자의 18.1%만이 ‘그렇다’고 대답한 것과 비교된다. 비슷한 맥락에서 ‘감염된 것은 환자 잘못이 아니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일반인 34.6%, 확진자 60%로 확진자 응답 비율이 높았고 ‘감염은 환자 스스로 막을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 역시 일반인 41.2%, 확진자 18.6%로 일반인 응답 비율이 훨씬 더 높았다. 심지어 코로나19 확진자들의 두려움 정도를 5점 척도로 살펴보았을 때도 ‘주변으로부터 받을 비난과 피해를 더 두려워한다’가 3.87점으로 나왔는데, 이는 ‘완치되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2.75점), ‘완치 후 다시 감염될 수 있다는 두려움’(3.46점)보다 높은 수준이었다.[13]


설문조사를 진행한 유명순 교수는 “확진자들이 완치나 재감염 여부보다도 자신이 끼칠 사회적 피해, 즉 민폐를 많이 두려워한다”면서 “감염 발생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면 가해자-피해자 구도로 확진자를 향한 낙인이 생길 수 있다. 그런 낙인은 감염병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은경 본부장 역시도 브리핑에서 꾸준히 ‘감염력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완치 판정을 내리며 퇴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변에 완치된 지인이 있다면 꺼리지 말고 따뜻하게 맞아달라’고 당부하고 있지만 잘 이루어지지 않는 실정이다.


사회적으로 영웅을 지목하고 획일적인 방역 수칙을 모두에게 지키도록 요구하며 개인들이 필요 이상의 압박을 떠안을 때 정작 본래 방역 의무가 있는 집단, 공동체, 사회, 그리고 정부는 그 책임론에서 한 발 벗어난다. 단적인 예시로 ‘덕분에 챌린지’가 있다. 보건복지부는 4월 16일 공식 블로그를 통해 ‘(의료진 덕분에) 감사합니다’를 수어로 표현하며 SNS의 지인들을 태그하는 ‘덕분에 챌린지’를 시작했다. “코로나 진료 현장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계신 의료진에게 감사”를 전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대한민국 의료진에게 경의와 응원을 표한다는 보건복지부의 이러한 입장과는 다르게, 대구에서 코로나가 확산되었을 때 달려갔던 파견간호사들은 위험수당을 지급받은 반면 대구지역병원 소속 간호사들은 받지 못하는 일이 일어났다. 게다가 보건복지부는 3차 추경에서 간호사 수당 예산을 311억 원 편성하겠다고 했으나, 정작 정부가 발표한 추경 예산 35조 3000억에는 약속과 다르게 수당예산이 포함되지 않았다.[14] 코로나19 대응 현장에서 간호사들의 번아웃이 가장 심각하다는 조사 결과[15]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보상은커녕 인력 충원도 없었다. 그런데도 이를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보건복지부는 공식 트위터에 “위험수당, 전문직 수당 등은 자원봉사를 희망하여 코로나19 환자를 진료하는 병원에 파견한 의료인들을 위한 수당으로 대구 시내 10개 종합병원 소속 간호사는 수당이 책정된 지원 대상이 아니었음을 알려드립니다”라는, 변명이라고도 할 수 없는 글을 게시했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와 행동하는 간호사회에서는 이런 상황을 비판하며 지난 6월 29일부터 7월 3일까지 청와대 앞에서 간호 인력 부족, 열악한 교육, 업무환경의 개선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이어 7월 6일 기자회견을 열면서 “‘덕분에’라는 말보다 간호사 노동환경 개선과 감염병 대응 세부지침 마련, 그리고 공공병원 병상 확대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16]


이처럼 국가 차원에서 직접 영웅을 호명하는 것은 사실상 시스템의 적극적인 개선 없이 미봉책으로 상황을 모면하려고 하는 게으른 노력에 불과하다. 영웅만 있다면 시스템이 져야 하는 부담은 훨씬 줄어들기 때문이다. 어떤 히어로물에서도 주인공인 영웅 대신 국가가 나서지 않으며 군대는 그저 영웅을 보조하고 후방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을 뿐이다. 그러나 모든 위기 상황에서 언제까지나 영웅을 불러오고 그의 희생과 활약 아래 생존할 수는 없다. 개인의 활약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효과는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계속 희생되고 과도한 부담을 떠안을 것이다. 개인이 모든 일을 감당하지 않아도 되도록,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만든 것이 제도고 그런 일을 막아야 하는 것이 구조다. 영웅이 등장하지 않으면 올바르게 작동하지 않는 사회는 틀렸다.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에서 지동설을 주장한 죄로 증언대에 선 갈릴레이와, 갈릴레이가 죽음이 두려워 진실을 버리고 주장을 번복했다고 비난하는 제자 안드레아를 등장시켰다. 안드레아는 종교 재판에서 돌아온 갈릴레이에게 찾아가 그를 지탄하고 진실을 사수하려는 자가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영웅 없는 불행한 이 나라여!”하고 한탄하지만, 갈릴레이는 이에 맞서 “영웅을 필요로 하는 불행한 이 나라여!”라고 받아친다. 이 희곡은 작년 4월 명동예술극장에서 상연되었다. 1938년 덴마크에서 처음 발표된 지 약 70년이 지난 2019년 “영웅을 필요로 하는 불행한 이 나라여!”라는 대사가 한국에서 울려 퍼지고, 그로부터 일 년 후 전 지구적인 위기상황에서 ‘이 나라’가 영웅을 찾기 시작한 것은 기막힌 우연일 터다.


소수의 의료진과 공무원이든, 다수의 평범한 일반인이든 개인의 능력에 의존하는 방역은 결국 이 위기만 잠시 넘길 수 있는 단기적 방책에 불과할 뿐, 제2, 제3의 확산과 후에 등장할지도 모를 또 다른 감염병을 막을 수 없다. 지금 코로나로 드러난 그늘을 돌아보고 정부의 책임을 되새기며 장기적인 대응책을 구성해야 한다. 현실에는 무림의 고수도 슈퍼 히어로도 존재하지 않지만, 모든 것을 책임지고 감당해낼 수 있도록 일상적으로 동작하는 제도만이 기적도, 구원도 없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장치일 것이다.




[1] 소봄이, 「'코로나19' 환자 급증…정은경 본부장, 하루 일과 들여다보니」, 『세계일보』, 2020.02.21; 이에스더, 「‘두달째 비상근무’ 정은경 본부장, “체력적으로 괜찮냐”질문에...」, 『중앙일보』, 2020.02.05.

[2] 이서현, 「질본 직원들 편히 휴가 내도록 ‘186일 연속근무’ 후 첫 휴가 떠난 정은경 본부장」, 『에포크타임스』, 2020.07.30.

[3] 윤영채, 「대한간호협회, ‘이달의 간호사 영웅’ 10명 선정」, 『메디케이트뉴스』, 2020.05.13., (https://medigatenews.com/news/1903351333)

[4] 김동민, 「코로나19 지원업무 합천군 공무원 숨져…과로사 추정」, 『연합뉴스』, 2020.04.27., (https://www.yna.co.kr/view/AKR20200427046500052); 이지현, 「‘코로나19 업무 과로’ 전주시 40대 공무원 순직 결정」, 『KBS9』, 2020.05.22., (http://mn.kbs.co.kr/news/view.do?ncd=4452833)

[5] 박미라, 「코로나로 등교·온라인수업 병행 등 과로 탓…60대 교사, 수업 중 쓰러져 사망」, 『경향신문』, 2020.06.16.,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2006162050005)

[6] 김혜란, 「상담사들 “터질 게 터졌구나”…콜센터 집단감염에 전국 비상」, 『동아닷컴』, 2020.03.11., (https://www.bbc.com/korean/features-51867202); 김혜경,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로 드러난 콜센터의 민낯」, 『BBC코리아』, 20.03.13 (https://www.bbc.com/korean/features-51867202)

[7] 강예슬, 「[코로나19 슈퍼전파 쿠팡 물류센터] 이번에도 아파도 일하는 비정규직 덮쳤다」, 『매일노동뉴스』, 2020.05.29.,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4745)

[8] 정회성, 「'돈 벌어야 한다'…잠적 확진자, 코로나 심각성 뒤늦게 인지」, 『연합뉴스』, 2020.07.07., (https://www.yna.co.kr/view/AKR20200707082951054)

[9] 장덕종, 「광주시, 잠적한 확진자·무단 이탈한 자가 격리자 고발」, 『연합뉴스』, 2020.07.07., (https://www.yna.co.kr/view/AKR20200707114400054)

[10] 이은지, 김윤호, 「"만남 거절당하는게 더 상처···완치 40일, 아직도 못 나간다"」, 『중앙일보』, 2020.05.21., (https://news.joins.com/article/23781922)

[11] 황영진, 「완치 판정 받아도 서로 불안…불이익 호소할 곳 없는 완치자」, 『경기매일』, 2020.04.28., (http://www.kgmaeil.net/news/articleView.html?idxno=240230)

[12] 한동훈, 「'신종코로나, 감염도 두렵지만...주위 비난 더 무서워"」, 『서울경제』, 2020.02.07., (https://www.sedaily.com/NewsVIew/1YYTWCY3BM)

[13] 최성훈, 「코로나19 감염 책임 놓고 일반인·환자 인식차 크다」, 『한의신문』, 2020.07.01., (http://akomnews.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40113)

[14] 황병우, 「간호사 코로나 수당 제외 분노 "결국 희생만 남았다"」, 『메디컬타임즈』, 2020.06.05., (https://www.medicaltimes.com/Users/News/NewsView.html?ID=1134095)

[15] 변진경, 「‘#덕분에’도 좋지만, 전력 보강이 필요해」, 『시사인』, 2020.07.06.,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358)

[16]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 공식 홈페이지 (https://actnownur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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