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19

편집위원 어디

by 문우편집위원회


정신건강 역시 의료의 대상이자 스스로 관리해야 하는 영역의 하나가 되어 가는 요즘, 트라우마라는 단어는 이전보다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트라우마는 죽음이나 신체적 외상, 폭력 등의 위험에 노출되어 나타나는 심리적 외상 경험을 의미한다. 흔히 연상되는 사례는 상이군인을 포함한 전쟁 생존자나 그 가족, 유족 등일 것이다. 현대에 들어서서는 가정폭력, 성폭력, 국가폭력 등 다양한 폭력 생존자의 심리적 외상 역시 익숙하게 접해볼 수 있다. 중요한 관계의 단절이나 갑작스러운 주변인의 사망 등을 경험한 이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이 어색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것이다.


국립정신건강센터 산하 국가트라우마센터는 재난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재난 경험자의 심리적 고통을 완화하고 정신적 안정을 도모하며, 정신건강 고위험군을 조기 발견하여 적절한 치료개입을 제공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지역사회 전체의 회복을 지원”하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국가트라우마센터에서는 재난 경험자를 아래의 다섯 단계로 분류한다.


1차: 재난 피해자 - 재난으로 인해 직접적인 충격이나 손상을 받은 사람

2차: 재난 피해자와의 친구, 가족, 동료 등 - 1차 피해자의 가족이나 친인척, 가까운 지인

3차: 재난 지원인력 - 재난 상황에 참여하였던 재난업무종사자들로 구조·복구 작업에 참여한 소방관, 경찰관, 응급대원,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상담가, 성직자 등

4차: 지역사회 - 재난이 일어난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주민

5차: 전국민 - 매스컴이나 대중매체를 통하여 간접적인 심리적 스트레스를 겪는 사람


2차 경험자나 3차 경험자까지는 재난을 가까이에서 경험한 사람이라고 흔히 여겨진다. ‘덕분에 챌린지’라는, 지역사회 구성원과 전 국민이 코로나 19 사태를 앞장서서 막아낸 의료진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한 캠페인이 큰 관심을 받은 것만 보아도 그렇다. 그렇지만 4차 경험자와 5차 경험자의 설명에서는 멈칫하게 될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직접 재난을 겪은 것도, 그 당사자도 아닌데 재난을 경험했다니?


본인도, 가까운 사람도 확진 판정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많다. 여전히 확진자는 국민 오천만 명 중 만 명이다. 그렇지만 매일 쏟아지는 재난 문자로 감염자와의 접촉 가능성을 경고받고, 가벼운 기침이나 열감만 있어도 “혹시 나도?” 하는 걱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정 지역에서 일시적으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닌 감염병의 특성은 4차, 5차 재난 경험자 개념을 와닿게 한다.


지금 코로나 19 사태는 많은 사람에게 ‘트라우마적’이라고 호명되지만 가장 큰 트라우마를 겪고 있을 1~3차 경험자, 그러니까 확진자나 격리자, 그들의 가족, 의료진과 방역 주체의 실제 트라우마는 잘 다루어지고 있지 않은 듯하다. 그중에서도 확진자나 격리자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인적 접촉에 의해 감염되는 특성상 본인의 책임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언론은, 또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착하고 모범적인 확진자와 나쁜 확진자를 구분하여 칭찬하거나 비난한다. 슈퍼감염자라고 불리는 이들은 가까운 사람이라면 개인을 특정할 수 있을 정도로 정보가 공개되어 있고 관련된 소식을 어디에서나 접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니 언제나 감염의 공포에 놓여 있는 지역사회 구성원이 ‘일상’의 안정감, 안전감을 보장받기까지는 훨씬 오랜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대한민국은 지금까지 재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 왔을까. 재난은 늘 일어나기 마련이라는 안이한 말들 사이에서 생존해야 했던 사람들이 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생존자인 산만언니[1]는 여전히 생생한 사고의 경험을 증언하는 한편 세월호 침몰 사고 생존자나 유가족을 향한 시선에 문제를 제기했다. 굳이 일간베스트의 폭식 농성과 같은 전면적인 공격이 아니어도, SNS나 인터넷 기사 댓글 등지에서 여전히 찾아볼 수 있는 ‘지겹다’는 말들, 보상을 바란 것이 아니냐는 식의 비난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세월호 사고 이후 6년이다. 국민 다수가 함께 괴로워하고 애도를 표한 인재(人災)의 근본적인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지금, 다른 인재는 물론 책임을 물을 상대조차 없는 자연재해 등으로 고통받은 사람들은 잠깐의 관심 뒤로 흐려져 가고 있다.


‘피해자다울 것’은 거의 모든 생존자에게 요구되어 왔다. 평범하고 선량한 시민이었던 사람에게 갑자기 찾아온 재난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는 서사만이 부각된다. 여타 재난 상황과는 달리 확진자의 동선으로 최근의 행적을 파악하고 추론할 수 있는 상황에서, 개인의 태도는 늘 도마 위에 오른다. ‘모범 확진자’는 잠시 치하할 대상이 되어 입에 오르내렸다가 사라진다. 닫힌 공간에서 긴 시간 근무해야 하거나 마스크를 착용한 채 일을 하기 어려운 업종에 종사 중인 사람은 어쩔 수 없었겠다며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동시에 ‘슈퍼 감염자’가 될 수밖에 없다. 철없는 20대가 유흥시설에서 감염되면 당연하게 비난의 대상이 된다.


물론, 개인이 방역 수칙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나도 동선이 공개되면 비난받을 만한 행동을 하나라도 하지 않았는지 하는 고민은 의심 증상이 나타나고부터 진료를 받기까지의 시간을 늦출 뿐이다. 재난 상황에서 최소한으로 해야 하는 ‘필수적인’ 활동이 자의적인 기준에 맡겨져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에 대한 검열은 늘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4차, 5차 재난 경험자가 기존의 재난보다도 훨씬 큰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게 한다.


지금까지 확진자의 동선과 신상에 대한 정보 공개는 다양한 시행착오와 논의를 거쳐서 그 수준을 조정해왔다. 확진자가 지나간 장소는 역학 조사가 완료된 곳이라면 상호를 밝히지 않는 것이 원칙이 되었고, 정보 고지 역시 전국에 방송되는 지상파 뉴스로 내보내는 대신 해당 지역 거주민에게 별도의 웹사이트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성별과 연령대 정보가 공개되고 있고, 익명성을 위해 붙여진 ‘특정 지역의 몇 번째 확진자’라는 이름은 여전히 개인을 특정해낼 수 있을 정도이다. 감염에 대한 불안이 커질수록 거짓 소식들이 지역사회 안에서도 전달되고 있고, 확산이 진행될수록 이를 막을 인력도 재원도 부족한 상황이다. 나에 대한 수많은 추측과 비난이 오가도 손쓸 수 없을 것이라는 공포는 어쩌면 감염 자체보다도 사람을 좀먹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정보가 언제 드러날지 모르니 마스크를 꼭 끼고 방역 수칙을 지켜야겠다, 하는 마음은 처음에는 어느 정도 확산 예방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 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예측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공포와 자기 검열을 통한 방역이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까. 국민적 트라우마를 관리하기는커녕 키우고 있는 분위기가 바이러스 자체보다도 먼저 퍼져 오래 남게 될 듯하다.




[1] 삼풍백화점 생존자로서의 수기를 연재하고 있다. 본명 이선민. (https://brunch.co.kr/@2sanman2#articles)


참고 문헌

주디스 루이스 허먼 지음, 최현정 옮김, 『트라우마: 가정폭력부터 정치적 테러까지(Trauma and Recovery : The Aftermath of Violence)』, 열린책들, 2012.

박정훈, “‘삼풍 참사’ 생존자의 일갈, “세월호 혐오가 돈 되는 세상”,” 「오마이뉴스」, 2020.06.29.,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54266)

윤병기, “‘코로나 19’ 확진자 및 격리자를 위한 심리사회방역 지침 발표,” 「후생신보」, 2020.03.27., (http://whosaeng.com/116684)

정승원, “10명 중 2명은 코로나 트라우마 심각...선제적 조기발견 필요,” 「뉴스팜」, 2020.04.10., (http://www.newspim.com/news/view/20200410001109)

김정현, ““식당 주인들 트라우마 호소”…코로나 19 확진자 오래된 ‘동선정보’ 지운다,” 「뉴스원」, 2020.06.10., (https://www.news1.kr/articles/?3961007)

김지수 기자 인터뷰, “[이슈점검] 메르스보다 무서운 '트라우마' (출연: 김동철 심리학자),” 「연합뉴스」, 2015.06.24., (https://www.yna.co.kr/view/MYH20150624010500038)

김태열, “[메르스 넘자] 급증하는 격리해제자ㆍ퇴원자…트라우마 극복 지원도 중요.” 「헤럴드경제」, 2020.06.24., (http://biz.heraldcorp.com/view.php?ud=20150624000308)

선정수, “박원순은 그대론데, 서울시 '감염병 용어'는 인권침해 역주행,” 「뉴스토프」, 2020.06.21., (http://www.newstof.com/news/articleView.html?idxno=10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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