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더스: 소속이라는 의무로부터 벗어나기

수습편집위원 날

by 문우편집위원회

2014년부터 내가 속해있던 집단은 연극·뮤지컬(이하 연뮤) 팬덤, 이른바 ‘연뮤덕’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흔히 상상할 수 있는 각종 포털 사이트 동호회 카페의 느슨한 버전이다. 이들은 먼저 SNS 상에서 모인 후 각자가 좋아하는 연극·뮤지컬 작품 또는 배우를 중심으로 그 안에서 다시 갈라진다. 대학로를 포함한 서울의 수많은 극장에는 짧게는 보름, 길게는 세 달씩 다양한 작품들이 상연되며 그만큼 배우의 수도 많고, 사람의 취향은 또 그 수만큼 다양하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 이 SNS는 트위터였다.

아무리 지인이라 하더라도 SNS 상에서나 아는 사이지 특별히 약속을 잡지 않으면 만날 일이 없는 아이돌, 영화, 드라마 팬덤과는 달리 연뮤덕들은 온라인에서 처음 만났다고 하더라도 오프라인 만남을 필수적으로 동반할 수밖에 없다. 무대 공연은 현장성의 예술이기에 직접 보지 않고 좋아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덕질’하는 대상을 시사회나 무대 인사, 콘서트 등에서나 이따금 볼 수 있는 다른 팬덤과 다르게 이 집단은 배우와 공연장에서 비교적 쉽게 만날 수 있어 거리가 상당히 가까운 편이다. 그래서 이들 사이에는 이들만의 아주 세밀하고도 암묵적인 룰이 있다. 제일 대표적인 것으로 ‘시체 관극’이 있다. 공연 티켓값이 기본적으로 6만 원 선인 데다가 크게는 10만 원을 호가하므로 타인의 공연 관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움직이지 않고 시체처럼 가만히 공연을 보는 행위를 말한다. 이 ‘시체 관극’은 비단 손발을 가만히 두는 데서 끝나지 않고 크게 웃거나 울지 않기, 슬픈 내용의 공연이라 눈물이 흐를 때에도 부산스럽지 않게 조용히 닦기, 아프거나 몸에 이상이 생겨도 뒷사람의 시야에 방해될 것을 우려하여 공연이 끝날 때까지 중간 퇴장을 최대한 삼가는 분위기 등으로도 확장된다. 또 공연이 끝나고 퇴근하는 배우에게 감사 인사나 공연의 감상을 전하는 ‘퇴근길’ 문화 및 자기가 좋아하는 작품, 특히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하는 작품이라면 같은 공연을 10회, 20회 넘게 관람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회전문’ 문화 또한 연뮤덕의 암묵적이지만 확고하게 형성된 문화로 꼽을 수 있겠다.

공연계 미투 운동으로 시작된 공연계의 페미니즘 열풍을 맞아 연뮤 팬덤에도 새로운 흐름이 생긴다. 작품 제작 환경에서도 소외되기 쉽고, 팬덤 규모도 작은 편이었던 여성 배우에게 주목하는 '여배덕'이라는 집단이 나타난 것이다. 이들은 여성 배우가 주연하는 극을 더 열심히 보러 다니고 한 작품의 여성 캐릭터와 그에게 주어지는 서사에 특히 중점을 두어 관람한다. 남성 배우를 좋아하는 일이 훨씬 흔한 대학로의 주류 덕질 문화에서 떨어져 나와 여성 배우의 팬이 되기를 ‘자처’한, 소규모라 필연적으로 똘똘 뭉칠 수밖에 없는 하위집단이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사 년 동안 ‘연뮤덕’이라는 이름을 달았고 지난해부터는 ‘여배덕’이라는 명찰을 하나 더 달았다.



사람 마음이란 게 원래 조이스틱처럼 가눌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나는 여러 작품과 배우를 전전했고 지난해 초 한 여성 배우에게 반해 그 배우의 팬이 되었다. 자연히 그 배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친해졌고 그들이 여배덕이었기 때문에 나도 여배덕이 되었다. 여성 배우가 주연하는 극이 있다면 거의 의무적으로 보러 다녔다. 사실 못 만든 작품이 많았다. 그러한 작품들은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외면하는 제작사와 투자자, 정식 공연 전의 트라이아웃이나 리딩 공연에서 있었던 여성 캐릭터가 본공연에서는 삭제되는 대학로의 현실을 헤치고 부족한 재원으로 어렵게 올라온다. 작품을 만들면서 쓸 수 있는 자금도 작품의 완성도에 크게 기여하거니와, 시행착오를 거듭할수록 완성도는 높아지는 법인데 애초에 여성 주연극은 작품이 한두 개 올라오는 상황이므로 시행착오를 거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한 번에 완벽한 작품이 나오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렇게 보러간 적지 않은 작품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형편없었고 극의 얼개는 허술했으며 장면과 대사는 단단히 이어지지 않고 무너진 레고처럼 무대에 쏟아져 있었다. 얼결에 그 블록들을 밟은 후 짜증을 내는 건 내 몫이었다. 나는 그럼에도 그런 극들을 보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 작품은 보통 아마추어나 소규모 극단에서 올리는 게 대부분이므로, 내가 쓰는 이 몇 푼 안 되는 돈이(소형 극단 작품들은 대형 제작사 작품에 비해 티켓값이 매우 저렴하다) 그들의 창작에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내가 투자한 돈과 시간이 아까울 정도의 작품이나 배우를 만나서 몇 시간 동안 불쾌한 기분이 가시지 않을 때에도 SNS에 공개적으로 나의 불호 후기 쓰는 것을 삼갔다. 관대해지려고 노력했다. 어쨌든 여성 배우가 연기한 여성 주연극이었으니까. 그게 단 하나의 이유였다.

내가 여배덕으로 살아가고 있는 동안 대학로에는 모든 역을 남배우로만 캐스팅한 극이 잇달아 올라왔다. 올라올 뿐만 아니라 전 회차 전 좌석 매진 행렬을 이어갔다.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한 남배우는 차기작도 팬들도 끊이지 않았다. 미투 운동을 조롱한 남배우는 아무런 사과문이나 해명 없이도 멀쩡히 잘만 활동했다. 데뷔한 지 이백 일이 넘은 남배우는 두 번째 작품에서 바로 2인극의 주연을 맡았고 그 뒤로도 계속 주연에 캐스팅되었다. 남배우에 한해서만은, 한 작품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작품에 캐스팅되어 연습에 돌입하거나 두세 작품을 한꺼번에 공연하는 것마저도 일반적이었다. 남배우의 ‘퇴근길’을 기다리는 줄은 큰 공연장을 한 바퀴 두 바퀴씩 감쌀 정도로 길었다. 그러나 무대 인사에서 ‘(탈의실이 구별되어 있지 않아서) 같이 연기한 남배우들 신체 부위를 자주 보게 된다’고 말한 여배우는 다음 날 실명으로 기사가 났고 자필 사과문까지 써야 했다. 여성 캐릭터를 주연으로 삼은 극은 객석이 하도 텅텅 비어서 팬들이 사비로 표를 구매해 공연을 홍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주연 배우가 ‘홍보 과장님들처럼 그렇게 열심히 노력해주셔서 정말 고맙다’고 무대에서 눈물로 감사 인사를 전할 정도였다. 데뷔 십 년이 다 되어가는 어떤 여배우는 이번 작품에서 주연이 처음이라고 했다. 십 년 넘게 대극장 주연을 맡아 왔던 정상급의 배우를 포함한 수많은 여배우들이 할 역할이 없어 연기를 쉬고 있었다. 일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남배우가 삶을 고뇌하고 시련을 극복하는 역할을 맡을 때 여배우는 그에게 성폭행당하는 여성, 아픈 아들 때문에 속 썩는 엄마, 버림받은 싱글맘,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남편을 포용하고 꾸준히 내조하는 아내 따위로 등장했다. 여배우의 ‘퇴근길’은 아주 소규모로 이루어졌으며 그들은 심지어 자신을 기다리고 자신에게 싸인을 요청하는 팬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정상급의 여배우가 자기 퇴근길에 온 팬에게 싸인해주면서 “00이(주연 남배우) 보러 오신 거죠? 곧 나올 거예요.”라고 말한 것은 여배덕들에게 널리 알려진 슬픈 일화다.

우리는 이 모든 것에 화가 났다. 주구장창 남배우만 기용하는 제작사에도 화가 났고 남배우 자체에도 화가 났으며 같은 연뮤덕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환멸이 났다. 맥락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앞서 말했지만, 여배우는 남배우에 비해 할 수 있는 역이 훨씬 적었고 남배우가 했다면 그대로 묻혔거나 쉬쉬하고 넘어갔을 연기나 노래, 대사 실수로 팬덤 내에서 쉽게, 부당하게, 그리고 더 많이 욕을 먹었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연뮤 팬덤 일각에서 한 여배우를 공개적으로 ‘(낙)하산’이라고 부르며 도중하차하라고 비아냥거렸다는 일이 알려졌다. 실력이 부족함에도 소위 말하는 ‘연줄’로 주연 자리를 꿰찼다는 이유였다.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성토했다. 나 역시 그 일원 중 하나였다. 그동안 수많은 남배우는 본인이 설사 범죄를 저질렀어도 그 행각이 별명 삼아 불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실제로 창작진의 인맥으로 들어와 실력이 떨어졌던 ‘낙하산’ 남배우들은 그 점이 문제시되기는커녕 적당히 눈을 감고 지나가졌다. 게다가 몇 작품을 거친 후에는 이제는 연기를, 노래를 잘하니 한 번 보라고들 홍보되며 연뮤덕들에게 다정다감하게도 받아들여졌다. 아무리 실력이 없어도, 무대에서 연기라는 미명 하에 상대 배우의 뺨을 때리거나 목을 조르는 폭력을 휘둘러도, 미투 운동을 조롱하거나 혐오발언을 해도 그 주어가 남배우라면 연뮤덕들은 쉬쉬하며 사건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삼갔다. 내가 싫어하고 보지 않는 배우여도 남에게는 좋아하는 배우일 수 있으니 기분 상하지 않게 서로 조심하자고 했다. 그런데 주어가 여배우가 되는 순간 그들의 태도는 달라졌다. 앞서 말한 사건처럼 관대함은 날카로움으로 대체되었고 하차하라는 말까지 공개적으로 해댔다. 연뮤덕들도, 그들의 비호를 받는 남배우들도 미웠고(더 적절한 단어를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을 일부러 보지 않기 시작했다. 극을 잘 만들었다고 해도 남자가 여자보다 많다면 그게 싫어서 보지 않았다. 남자만 나온다? 볼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의식적으로 남배우를 눈 밖으로 치웠다. 공연을 보러 가서도 남배우만 나오는 장면에서는 집중하지 않고 시간 가기만 기다렸다. 남배우를 좋아하는 사람들 또한 비판했다. 저런 사람들이 배우만 보고 계속 표를 팔아주고 객석을 채워주기 때문에 제작사들이 객석 가격을 터무니없이 올리는 거고, 변하려는 노력 없이 꾸준히 남배우만 기용하는 거라고 말했다. 범죄를 미화하고 단순히 자극적인 소재로만 쓰는 극이라면 도의적으로 보지 말아야 하는데도, 자기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니 생각 없이 보러 다닌다고 비난했다. 그럴 시간에 차라리 여성 주연극에나 돈을 쓰라고.

비단 나만 한 일은 아니었다. 내가 속한 여배덕이라는 집단 모두가 깊든 얕든 이에 동의했고 동참했다. 그들 중 아무도 나에게 이런 의식과 행동을 강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내가 속한 집단을 사랑했다. 어딘가의 일원이 된다는 느낌은 어떤 집단에 속해본 적이 없었던 나에게 생각보다 훨씬 행복하고 든든했으므로 나는 더 깊숙하게 ‘우리’가 되고 싶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떨어지지 않게 단단히 팔을 붙들고 엮고 싶었다. 그래서 더 대학로를 투쟁하는 사람처럼 걸어 다녔다. 그 마음은 적어도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연뮤덕의 의무 또한 충실히 수행했다. 적게는 일곱 번, 많게는 스무 번까지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하는 공연을 다회 관람한 것이다. 물론 공연은 그날 배우의 컨디션, 배우 조합, 관객의 구성과 그들의 집중도 및 호응도에 따라 얼마든지 결이 달라질 수 있다. 어제 했던 동작을 오늘 안 할 수도 있으며 어제는 끝을 물음표로 맺은 문장을 오늘은 느낌표로 맺을 수도 있다. 내가 본 것들은 같은 이름과 대본을 가지고 있는 전부 다 다른 극이라는 것, 이런 식의 관람이 분명 재미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도 한두 번이지, 다회 관람을 하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지쳐갔다. 예전보다 공연을 보는 재미가 훨씬 반감되어 앞에서 연기를 하고 있어도 곧잘 하품이 나왔고 가끔은 졸 때도 있었다. 공연을 보러 돈을 내놓고도 멍하니 있으면서 적당히 넘기다가 배우가 지난번과는 다른 동작이나 대사를 할 때나 집중하면서 보았다. 그럼에도 표를 취소하거나 양도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배우인데...’, ‘내가 그래도 이 배우 팬 중에 이름난 사람인데...’라는 얄팍한 간판들 때문이었다.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편도 두 시간, 왕복 네 시간의 이동거리와 그만큼의 교통비 지출을 감수하면서도 나는 그런 이름들이 소중했다.



팬심을 동력 삼아 일 년 동안 열정적으로 이 의무들을 수행하던 나는 결국 올해 초에 크게 다쳤다. 원래부터 있었던 약간의 신경증과 강박감이 ‘오늘 공연 하나도 놓치지 말고 다 봐야 해.’, ‘시체 관극해야 하니까 몸 상태가 최상이어야 해. 중간에 화장실 안 가게 물도 적당히 마셔야 하고 혹시 얹히지 않도록 소화 잘 되는 음식 먹어야 해. 꼬르륵 소리 나서 방해되면 안 되니까 밥 먹기 싫어도 먹어야 돼.’ 같은 압박을 만나면서 트라우마로 굳어진 것이다. 극장만 가도 머리가 띵 울렸고 로비에서는 제대로 숨도 쉴 수 없었으며 차라리 기절했다가 공연이 시작하면 일어나고 싶을 정도로 제정신을 차릴 수 없게 됐다. 저녁에 공연 관람 예정이 있는 날에는 그날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서 벌벌 떨다가 식은땀이 나는 몸을 겨우 이끌고 대학로로 향했고, 가는 동안에도 이전에 먹은 음식을 모두 게워내야 공연을 멀쩡히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충동에 시달렸다. 이러다 공연이고 뭐고 내가 죽겠다는 생각이 명확하게 들었다.

공연을 보기도 싫었지만 볼 수 있는 몸 상태도 아니었다. 때마침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지금 하던 공연을 끝내면 휴식기를 가지겠다고 선언했고 나는 홀가분하게 그 어떤 티켓도 예매하지 않았다. 때마침 개강을 했으므로 원래 공연을 일주일에 서너 번씩 보던 생활을 그만두고 수업이나 과외에 집중했다. 종로2가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대학로를 가는 삶보다 왼쪽으로 돌아 신촌을 가는 삶에 더 익숙해졌다. 공연 관람 일정을 기록해두는 스케줄러가 텅텅 비어갔다.

그러면서 나는 여배덕 지인들과 멀어졌다. 그들을 싫어하게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은 증상이 한창 심했을 때 로비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는 나를 걱정했고 오늘은 괜찮으냐고 물었으며 정 안 좋으면 가진 표를 놓으라고 당부했다. 나와 이따금 식사를 같이 하게 되면 내가 먹는 양을 신경 썼고 너무 무리해서 먹지 말라고 나를 안심시키기도 했으며 어쩌다 공연장에서 마주치면 다정히 안부를 건넸다. 그러나 증세가 있는 것은 나뿐이었으므로 내가 탈진하여 쉬고 있는 동안 그들은 열심히 공연을 보러 다녔고 그러면서 여배덕의 이름으로 더욱 단결했다. 그 즈음하여 상연된 2인 뮤지컬 <해적>이 한 배우가 남성 캐릭터 하나, 여성 캐릭터 하나씩 1인 2역을 연기하여 극 중 총 4명의 캐릭터가 등장하도록 꾸몄는데, 이때 남성 페어 두 쌍과 여성 페어 한 쌍을 캐스팅했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특히 여배덕들의 분노를 샀기 때문이다. 아무리 젠더프리 캐스팅이 요즘 트렌드라지만 ‘여자의 몸으로는 차별받기 때문에 남장하고 배에 오른 실존 여성 인물’을 남배우가 연기한다는 점, 그것마저도 남성 페어가 많다는 점이 기만적이라고 비판받은 것이다. 나 역시 이 주장에 동감했지만 그때 나는 이런 문제에 같이 분노할 수 있는 정도의 기력마저도 없었으므로 곧 잊어버렸다. 해당 공연이 올라와 있는 내내 이 점은 남성 페어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여성 페어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문제가 있다/없다’로 끊임없이 논쟁이 되었다. 후자에 속하면서 공연 기간 내도록 전자와 싸우고 분노했던 내 지인들은, 극이 폐막했을 때 ‘원래 이 정도였나?’ 싶을 정도로 남배우 혹은 여배덕이 아닌 연뮤덕 전체에 대한 분노로 똘똘 뭉쳐 있었다.

그들과 만날 때마다 나는 상당히 당황했다. 남배우 이야기를 지나가듯이만 꺼내도 “뭐, 그건 별로 관심 없고.”, “그 소식을 또 언제 봤어? 나는 못 봤는데.”하며 오가던 말을 끊는 일, 남배우에 대해서는 알아야 할 필요도 이유도 없음을 노골적으로 표출하는 일, 남배우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눈을 감고 있었거나 졸았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일에서 나는 괴리감을 느꼈다. 예전 같았으면 분명 동조하거나 앞장서서도 했을 일에서 어떤 의미도 찾지 못했다. 자신을 여배덕이라고 소개했으면 오로지 여배우만 좋아해야 하는 것 아니냐, 어떻게 여배우와 남배우를 같이 좋아할 수 있느냐며 분노하는 것, 그 점이 불쾌하다며 상대와의 이야기를 끊어버리거나 계정을 차단하는 것이 거북하기만 했다. 그들이 무기로 삼는 분노와 비웃음이 전처럼 해학과 풍자로 보이지 않았다. 자신들에게 아직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은 대상을 가상의 적으로 설정해두고 마구 공격하며 내부의 단결을 다지는 행위로만 느껴졌다.

여배덕과 멀어지면서 그 상위 범주인 연뮤덕과 그들이 신봉해온 ‘암묵적인 룰’에 대해서도 거리를 두게 되었다. 먼저 좋아하는 배우라고 다회 관람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극이 개막하고 내용이며 만듦새가 어떻다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캐스팅만 보고 도박하듯 표를 여러 장 예매하는 것, 실황 OST나 영상, 공연 포토북 등 다관람자를 위한 혜택을 받기 위해 공연을 보러 가는 것, 전혀 재미가 없는데도 좋아하는 배우라는 명분 때문에 보는 것 등이 전부 부질없게 느껴졌다.

배우를 성역화하거나, 절대 다가가서도 다가오는 걸 두고 봐서도 안 되는 금지(禁地)처럼 여기는 연뮤 팬덤의 문화에도 의문이 들었다. 이 집단이 암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배우와 팬은 항상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일반의 논리에 위화감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 판이 자신이 ‘덕질’하는 대상에게 말을 건넬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그만큼 세밀하고 엄격한 규칙들이 생기는 것도 자연스럽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지만 특히 배우와 팬처럼 한쪽이 일방적으로 상대를 알고 있고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관계, 무엇을 부탁했을 때 거절하기 어려운 관계일수록 적절함의 경계를 넘기가 더 쉽지 않은가. 인기도 및 인지도가 중요하지 않다고는 할 수 없는 배우에게 그 인기를 주는 주체인 팬이 제 이름 좀 외워 달라고, 한번 안아달라고, 길 갈라질 때까지 같이 퇴근하자고 말한다면 관계는 적절의 영역을 쉽게 뛰어넘어 섬뜩의 영역으로 진입한다. 그러한 상황들이 실제로 있었고 적지만 여전히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이곳에는 수많은 규칙이 존재하고 더욱 촘촘해지고 있다. 그때마다 이를 어긴 사람을 겨냥하고 문제시하며 공개적으로 글을 업로드하는 행위도 동반하면서. 하지만 인간적인 호감이 일방적이지 않고 양방향에서 오가고 있다면? 배우가 내 이름을 부르며 먼저 반갑다고 인사하고, 안부를 물으며 안아주고, 다음번에 또 언제 보느냐고 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친근하게 느끼고 있다면? 그런데도 ‘규칙’이 있기 때문에 ‘일정한 거리’를 지키며 이러시면 안 된다고 물러서야 하나?

시체 관극 문화 또한 그랬다. 강박과 불안증이 생기기 전에도 나는 자꾸만 내려오는 안경을 공연 도중 틈틈이 밀어 올리거나 간지러운 곳을 긁곤 했다. 또 오래 긴장한 채로 가만히 있다가 어깨나 팔뚝, 다리 등에 통증이 느껴질 때 위치를 바꾸는 일도 잦았다. 사소한 움직임에 지나지 않아도 모두 ‘혹시 옆 사람한테 방해되려나?’ 걱정하며 하던 일이었다. 그런데 몸이 안 좋아지고 난 후에는 내가 혹시 ‘시체 관극 룰에 어긋나게’ 중간 퇴장을 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나를 더욱 불안하게 했다. 한때 너무나 당연했던 것들인데도 어느 순간 내가 의무들을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수행’하고 있다는 느낌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그러한 규칙들을 내려놓기로 했다. 여배덕 집단에 대해서는, 사회 운동을 하듯 관극하고 언제든 싸울 태세를 장착하고 있는 것을 포기했다. 굳이 보고 싶거나 끌리는 작품이 아닌데도 여성 주연극이라는 이유만으로 보러 가는 것을 그만두었다. 누군가는 무대에 많은 여성 캐릭터가 나오는 것만으로도 재미를 느낄 수 있겠으나 적어도 나는 아무리 여성 캐릭터가 세 명 네 명씩 나온다고 하더라도 일단 재미있고 지루하지 않아야 볼 마음이 든다는 것을 인정했다.

남배우와 그들의 팬을 미워하는 것에 쓰던 내 에너지를 줄이기로 했다. 완벽하지는 않다. 데뷔하자마자 차기작이 끊이지 않는 신인 남배우 및 현격한 실력 차이에도 여배우보다 잘나가는 모든 남배우가 싫고 그들을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팬들도 여전히 밉다. 이건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굳이 소리 내어 그들을 비아냥거리고 조롱하거나 어떤 일이 일어나기도 전부터 일부러 미워하지는 않기로 했다. 그러면서 소모하는 것은 결국 내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하산’ 사건처럼 필요할 때에만 적절하게 분노하기로 했다. 구태여 트집 잡을 상황을 찾아다니며 내 한정된 체력을 투자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이건 단지 취미 생활이며, 이것이 어떤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투쟁이 목적인 것은 아님을 머리뿐만 아니라 가슴으로도 받아들였다.

연뮤덕 집단에 대해서는, 먼저 내 의사와 관련 없는 다회 관람을 멈췄다. 앞서 언급했듯 좋아하는 배우의 출연과 재관람 혜택 같은 명분들을 내 소중한 돈과 시간 앞에 두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억지로 보다가 건강까지 더불어 잃고 나니 ‘좋아하는 배우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열성팬’이라는 타이틀은 자기최면과 위로에 지나지 않고, 나나 내 주위 사람들이라는 좁은 영역 내에서나 유지되다가 쉽게 잊힐 간판이라는 점이 보였다. ‘시체 관극’처럼 나를 얽매는 규칙에서 벗어나 연뮤덕들의 눈치를 조금 덜 보기로 했다. 주위 사람에게 피해 주기를 삼가야 하는 것은 맞으나 과도하게 나를 속박하지는 않기로. 다리나 팔을 움직일 수 있고, 몸이 힘들면 중간에 나갈 수도 있고, 내가 할 수 있듯 남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니까 공연 보는 것이 훨씬 편해져서 불안 증세도 제법 나아졌다. 퇴근길 문화 역시도 마찬가지다. 배우와 ‘선’을 어느 정도까지 지켜야 하는지의 문제야말로 나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했는데 그 점에 대해서도 내 갈 길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퇴근길을 모든 관객들이 다 가는 것은 아니고, 또 그 줄에 서는 모든 팬들이 다 같은 목적으로 말을 전달하려고 공연이 끝나고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는 그날 본 공연의 감상을 전달하고 싶어서, 누구는 공연 전체보다는 배우의 연기에 대한 감상을 말하고 싶어서,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배우니까 얼굴 한번 보고 인사라도 드리고 가자 싶어서. 이 자리는 앞서 말했듯 타 팬덤과는 다르게 내가 ‘덕질’하는 대상에게 직접 말을 건넬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서 만나는 곳이다. 하여 배우에게도 무례를 범하지 않고, 같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피해 주지 않으려고 만들어진 규율이 아주 많다는 점도 언급했다.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끝낼 것, ‘이거 들고 사진 찍어주세요’, ‘이런 자세 취해주세요’ 같이 자세 부탁은 하지 말 것, 퇴근길이 끝나고 퇴근하는 배우와 방향이 겹친다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쫓아가지 말 것 등이다. 이 예시들은 실제로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은데도 10분, 20분씩 배우를 붙잡고 공연 감상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생활까지 시시콜콜 이야기하거나, 퇴근하는 배우에게 ‘어디까지 가세요?’, '댁이 어디세요?'하며 뒤를 따라가는 사건들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에 그럴 때마다 이를 경계하기 위해 만들어진 규칙들이다. 그리고 이런 규칙들 덕분에 이 팬덤이 자정 작용이 되면서 큰일 없이 이만큼이나마 유지되어온 것도 맞다. 그러나 이것들은 점점 심해져서 배우와 적당한 선을 지켜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와 친해지는 것을 아예 금하는 추세가 되어가고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번 학기 나는 조금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한 공연에서 새로 좋아하게 된 배우가 알고 보니 나와 같은 동네에 사는 초·중학교 동문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동네에서 몇 번 마주치기까지 했다. 또 다른 배우는 꾸준히 공연을 보러 오는 나를 보고 먼저 반가워하며 손을 잡거나 안아주곤 했고, 자신이 차기작이 없으니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하며 내게 고맙다고 작은 선물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었던 5월에는 동시에 ‘배우가 한 걸음 다가온다면 두 걸음 물러날 줄 아는 현명한 팬이 되어야 한다’ 같은 말이 크게 리트윗되며 많은 사람의 동의를 얻었다. 그때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내게 배우가 특별한 것처럼 배우에게도 내가 특별할 수 있다. 내가 싫지 않다면 상대에게 물러나라고 요구할 이유도, 또 내가 물러날 이유도 없지 않은가. 배우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며 이건 결국 내 인간관계의 일부이므로 이 관계는 내가 알아서 할 영역이지 남이 무어라 참견할 계제가 못 된다. 그러나 나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그 배우들과 친해 보인다고, 말을 쉽고 편하게 건넨다고 그러한 행동을 ‘자제’할 것을 요구받았다. 나를 지적한 이는 이런 전후관계를 아는지 모르는지 내게 “우리는 배우의 수많은 팬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상기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불편하고 불쾌했다. 이건 명백히 '다 같이 배우와 친해지고 특별해질 수 없다면 다 같이 평범해지자' 따위의 견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연뮤덕의 룰에 내가 어긋난 것을 송구스러워하며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행동을 시정했을 일이나, 말했잖은가. 나는 그들이 말하는 ‘암묵적인 룰’과 조금 거리를 두게 되었고, 나를 구속하는 것들을 내려놓고선 그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지기로 했다고. 전혀 합리적이지 않아 보이는 규칙까지 내가 속한 집단의 것이라며 따라줄 생각은 더는 없었으므로 나는 그 요구를 거부했다.

이러한 일련의 재인식 경험들은 내가 속해 있던 집단을 되돌아보고 그 집단의 규율에 얼마나 비합리적인 것이 많은지, 그것들이 나 자신을 얼마나 속박하고 있었는지를 파악하고 조금 거리를 두게 만들었다. 나를 빠져나올 수 없는 어떤 규율 안에 가둔다는 것부터가 나에게는 불안증의 시작이었으므로 전체적으로 건강 상태도 많이 좋아졌다.

한 학기 동안 내게 일어난 일들은 결국 나와 집단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집단에서 원하는 것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대신 나의 욕구를 인정하고 나를 보살피는 것. 한때 내 욕구와 집단의 요구가 완전히 일치한다고 믿었던 적도 있다. 그럴 수 없다는 걸 조금 일찍 깨달았다면,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할 만큼의 역량도 되지 않으며 그만 지쳤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면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미 일어난 일인 이상 나는 지금부터라도 나를 인정하고, 내가 ‘집단에 소속된 누구’이기에 앞서 먼저 ‘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중이다. 내가 나를 살필 수 있도록 많은 조언과 관심을 아끼지 않은 친구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

짧지 않은 글을 쓰는 내내 생각했다. 나는 이제부터 연뮤덕 내부에서 변절자나 배신자로 이야기될지도 모르고, 규칙을 어기겠다고 당당히 선포한 이단아로 여겨질 수도 있다고. 특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비난받거나 외면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고는 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나는 나를 지키는 선택을 했고, 내가 변한 것이 꽤 마음에 든다. 느긋하고 느릿하게 살아가는 게 제법 편하고 몸에 맞으며 결정적으로는 행복하다. 혹여나 나와 같이 집단과 나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는 이가 있다면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최은영을 인용하여 한 마디 건네고 싶다.

넌 네 삶을 살 거야. (최은영, 「아치디에서」, 『내게 무해한 사람』, 2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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