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편짐위원 어디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는 말을 이곳저곳에서 들을 수 있는 요즘이다. 이 말의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오늘날 페미니즘이 개인 차원 이상의 위력을 갖게 된 것은 맞다. 기업의 여성혐오적인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항의를 하거나 불매 운동을 장려하는 소비자 문화가 확산되고 있고, 여성 친화적 운영을 하는 기업의 상품을 적극적으로 구매하는 등의 행동 양식도 많이 보이고 있다. 지난 6월 28일 공개된 배스킨라빈스 광고는 여자 어린이가 성인처럼 꾸미고 분홍색 립스틱을 바른 채 아이스크림을 먹는 장면을 클로즈업해서 담고 있었는데, 이 영상이 명백하게 섹스 어필을 의도한 것이라는 네티즌의 비판이 거셌다. 다음날인 29일 배스킨라빈스는 “불편함을 느끼시는 고객님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해당 광고 노출을 중단했습니다.”라는 내용을 포함한 사과문을 게시했다. 사과문이 적절했는지를 떠나, 하루 만에 피드백이 이루어질 만큼 소비자의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우리는 소비 없이 생활할 수 없다. 생필품을 마련하는 것부터 기호나 취향에 가까운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까지. 나아가 광고 제거권 등을 구매하는 대신 잠재적 소비 가능성인 광고에 노출되는 것도 넓은 의미의 소비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소비하고 향유하는지로 규정되는 세대가 일상 속에서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적인 실천을 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돌아보기 쉬운 것이 소비생활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페미니즘적인 실천을 소비생활에까지 이어가는 것도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보인다.
최근 텀블벅을 비롯한 펀딩 사이트들을 통해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다. 목표 기간과 액수를 정해 놓고 모금에 성공하면 후원에 대한 감사 표시로 ‘리워드’를 제공하는 방식인데, 특이한 점은 이 리워드가 상품을 구매하는 개념이 아니라 투자나 후원(텀블벅의 경우 사이트에서도 공식적으로 ‘밀어주기’라고 표현한다)에 대한 답례인 것으로 약속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기부 계좌를 열어 두는 것보다 효율적인 모금이 가능하기에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개인이나 집단이 빈번하게 이용하는 추세다. 모금 목표액만큼 돈이 모이지 않으면 결제가 되지 않는 데다 카드 결제도 가능하고, 정기적으로 출금이 되는 것이 아닌 일회성 모금이기에 후원자에게도 부담이 적다. 사람들은 프로젝트의 리워드와 비슷한 시중 상품보다 가격이 비싸더라도 취지에 동의한다면 펀딩에 참여한다. 말하자면 해당 프로젝트의 취지와 의의에 동의하고 지지하는 표시로 ‘팔아 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사는’ 것은 구매하는 것이고, ‘파는’ 것은 판매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팔아 주는’ 것은 무엇일까. 이 말은 개인이 구매 행위를 통해 개인적인 효용을 얻는 것은 물론 그 상품의 판매량을 늘리는 것도 염두에 두는 소비라는 맥락에서 주로 쓰인다. 단기간의 판매량이 실적의 전부가 되는 대표적인 상품인 영화의 경우를 보자. 최근 몇 년 사이 영화라는 상품을 소비하는 소비자인 관객들이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여성 서사를 팔아 줄 것’을 권장하고, 본인이 직접 영화관에 가지 못하더라도 티켓을 구매하여 ‘영혼을 보내는’ 행동 양식이 그것이다. 영화는 재개봉, 재상영 등의 변수가 있다고는 해도 개봉 후 한두 달 동안 집계된 관객 수가 흥행의 지표가 된다. 평론가나 네티즌의 평가도 물론 중요하지만, 흥행에 성공했는지는 결국 손익분기점 대비 관객 수라는 양적 지표로 판가름 난다. 관객 수가 적더라도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라면 다음 투자를 기약할 수 있겠지만, 관객 수가 많았던 작품만큼은 아닐 테니 말이다.
영화진흥위원회는 2018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서 한국영화 성인지 통계를 발표했는데, 이에 따르면 2018년 총제작비 10억 원 이상 또는 최대 스크린 수 100개 이상의 상업 영화는 총 77편이었고 그중 여성 참여 영화 편수는 감독 10편, 제작자 15편, 프로듀서 23편, 주연 24편, 각본 23편, 촬영 0편이다. 대부분의 영역이 전 해에 비해 증가한 수치임에도 그렇다. 2018년 한국 실질개봉영화(IPTV 등을 노리고 형식적으로 개봉한 영화를 제외한 영화를 말함) 194편 중 여성이 감독한 영화는 27편인데 이중 여성 주연 영화는 19편으로 70.3%에 달한다. 보고서는 “여성 서사 영화 편수를 늘리기 위해서는 여성 감독 수가 증가해야 하며, 여성 감독 수를 늘리기 위해선 여성 서사 영화가 많이 제작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관객 수를 채워 주기 위해, 소비자는 객석에 ‘영혼을 앉힌다’. 한 영화를 여러 번 관람하는 사람도 있지만, 상영 시간대가 일정과 맞지 않거나 굳이 반복해서 관람하고 싶지는 않지만 영화를 응원하고 싶은 사람들이 주로 택하는 방법이다. 이들은 실제로 영화를 관람하는 이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잘 팔리지 않는 구석 자리를 예매하거나 관람객이 적은 새벽이나 심야 시간대의 티켓을 구매한다. SNS에 홍보 게시물을 자발적으로 올리고 추첨 이벤트를 진행해 본인의 돈을 들여 티켓을 나눔하는 이들도 있다. 제작사나 배급사 측에서 고용한 사람들이 SNS에 게시물을 올리는 바이럴 마케팅이 아니라, 진심으로 영화가 잘 되기를 응원하고 많은 이들이 보아 주었으면 하는 의도에서다. 배급사의 규모가 크지 않아 주요 시간대 상영관이 확보되지 않아 영화를 볼 수 없다면 마음이 맞는 이들을 모아 관을 통째로 대관하여 실 관람객 수를 늘리기도 한다. 여성 캐릭터가 주연한 <미쓰백>, <걸캅스> <허스토리> 등이 ‘영혼 보내기’를 비롯한 소비 장려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작품이다. 특히 <미쓰백>은 초반의 객석점유율로는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어려워 보았으나 ‘여성 서사’라는 말과 함께 이루어진 온라인상의 적극적인 홍보와 관람 독려로 꾸준히 관객 수가 늘었고 결국 손익분기점을 넘겨 흑자를 달성했다.
<미쓰백>(이지원 감독, 한지민 주연) 시놉시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매 순간 날 배신하는 게 인생이야.”
스스로를 지키려다 어린 나이에 전과자가 되어 외롭게 살아가던 ‘백상아’, 누구도 믿지 않고 아무것도 마음에 두지 않던 어느 날 나이에 비해 작고 깡마른 몸, 홑겹 옷을 입은 채 가혹한 현실에서 탈출하려는 아이 ‘지은’을 만나게 된다. 왠지 자신과 닮은 듯한 아이 ‘지은’을 외면할 수 없는 ‘상아’는 ‘지은’을 구하기 위해 세상과 맞서기로 결심하는데….
“이런 나라도, 같이 갈래?”
백상아는 전형적인 캐릭터다. 남성 캐릭터였다면 그랬을 것이다. 주변에 사람을 잘 두지 않고 스스로만을 생각하며 고독하게 생활하는 거친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런 여성 캐릭터는, 그런 ‘여자 주인공’은 흔치 않다. 가정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지은과 처음에는 엮이지 않으려 하지만 점차 추억을 쌓아 가며 가까워진다. 백상아는 결국 목숨을 걸고 지은을 지켜내고 둘이 함께 생활하게 될 것을 암시하며 영화는 끝난다. 훌륭한 여성 주연 영화다. 아동을 객체가 아닌 주요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그려낸 영화가 많아지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여성 서사’라고만 할 수 있을까? ‘여성 서사’란 도대체 무엇이라는 말인가?
이하 본문에는 <미쓰백>, <미성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성 창작자가 많은, 혹은 중심이 되는 작품의 흥행은 페미니스트로서 물론 기분 좋은 일이다. <미쓰백>과 같은 작품을 많은 사람이 ‘보아 준’다면(팔아 주는 행동과 비슷한 맥락에서, 관심이 없었거나 굳이 찾아볼 생각이 없던 작품이라도 여성 인물을 중심으로 다룬다는 사실을 주된 근거로 관람하는 양상), 이것이 또 다른 창작활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부정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무엇을 팔아 줄 것인지를 어떻게 판단하는지 묻고 싶은 것이다.
인물의 성격과 행동에 타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작품이 가장 쉽게 택할 수 있는 방식은 ‘그럴듯한 과거’를 주는 것이다. 백상아는 거칠고 날카롭게 행동하는 인물이다. 왜? 고등학생이던 시절 성폭행 피해 경험이 있었으나 가해자가 판사의 손자라는 이유로 편파적으로 진행된 취조를 겪었고, 살아남기 위해 가해자를 공격한 사실이 정당방위로 인정받지 못해 살인 미수죄로 교도소에 갔던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백상아는 스스로 강한 것이 아니라 ‘잔인하고 부조리한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강해져야만 했던’ ‘여성 인물’인 셈이다. 실제로 많은 후기와 해석들이 백상아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
<미쓰백>에 아쉬운 점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못 만든’ 영화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백상아에게 주어진 설정 때문에 이 영화의 의의가 사라진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여성 창작자가 만든 여성 주연 작품이라면 내용과 무관하게 지지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남성에 종속되지 않고 성장해나가는 여성이 중심이 되는 작품의 제작진 다수가 남성이라면 어떨까. 여성 인물은 모두 남성 인물과의 관계에서만 등장하고 수동적인 역할만 수행하는 작품을 여성 제작진이 만들었다면?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여성 인물이 딱 한 명 등장하고 나머지 인물이 모두 남성인 작품은 훌륭할까? 모두가 서로를 깎아내리고, 사회적 여성성을 그대로 재생산하기만 하는 여성 인물이 많이 나오는 작품은 게으르다고 이분법적으로 말할 수 있을까?
<미성년>은 두 여성 청소년과 이들의 어머니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영화다. 김윤석은 배우이자 감독으로 영화에 참여했는데, 불륜을 저지르고 이 사실이 발각될까 봐 딸과 또래인 여학생에게 쩔쩔매는 ‘찌질한’ 남편 역할로 등장한다. 남성성이 얼마나 우스워질 수 있는지, 다양한 입장의 여성들이 어떻게 함께하는지를 다루는 영화임에도 ‘남감독’이 만들었다는 이유로 “여성 서사가 아니니 굳이 봐줄 필요 없다.”고 이야기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걸캅스>는 정다원 감독의 라미란, 이성경이 주연인 코미디 액션 영화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두 명의 여자 경찰이 범죄 사건을 파헤치고 범인을 잡는 내용이다. 캐릭터 설정, 사건에 개입하게 되는 계기 등 다른 요소들은 장르의 문법을 충실하게 따라가는데, 여타 액션 영화에서 나왔던 전형적인 인물들 대부분을 의도적으로 여성으로 설정한 점이 눈에 띈다. 주인공들이 추적하는 사건이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고, 시누이와 올케 관계인 캐릭터 두 명이 주연이라는 점 역시 특징적이다. 그럼에도 이 역시 “캐릭터가 여성이기만 할 뿐 여성 서사는 아니다.”와 같은 비판을 직면해야 했다.
여성 서사란 무엇인가. 또, 무엇이 여성 서사인지를 규정하려는 시도는 왜 반복되는가. 여성 서사는 한 가지 모양이 아니다. 마치 인터넷 쇼핑을 하듯 몇 가지 기준을 정해 필터링해서 마음에 맞는 것만 골라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여성 제작자가 남성 제작자에 비해 창작물과 그 과정에서의 여성혐오에 민감해질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여성 제작자가 여성 서사만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물론 그들이 남초 작업장에서 여성으로서 창작을 이어나가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또, 남성 중심 사회에 문제의식을 느낀 남성 제작자가 남성성에 균열을 내고자 시도한 창작물에 단순히 여성 인물의 수가 적다고 해서 ‘여성 서사가 아니다’라고 단언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캐릭터가 조금이라도 기존의 사회적 여성성을 답습하는 묘사가 있다고 해서 ‘팔아 주지 말아야 할’ 작품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어떤 점에서 예민하지 못했는지, 어떤 관성에 젖어 있었는지에 대한 섬세한 비판이 다음 창작의 밑거름 삼을 재료가 되지 않을까.
‘여성 서사’를 요구하는 이들 중에는 객체화된 여성 인물을 생색내기 용으로 보여주기만 하는 이야기보다 여성이 중심이 되는, ‘주체적’인 여성 인물 이야기를 구매하고자 하는 이가 많다. 여성이 대상화되는 것은 비단 문학에서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여성의 소비 활동은 사치 혹은 남성 가족 구성원의 재산에 ‘빌붙는’ 형태로 흔히 묘사되어 왔다. 그러나 여성은 소비자라는 집단으로 묶였을 때 새로운 타깃이 된다. 기업은 항상 소비자의 동향을 예의주시해왔지만, 인터넷을 통한 양방향 정보 교류가 빨라지며 기업의 공식 SNS 계정이나 메일, 유선상으로 항의나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게 된 지금처럼 소비자의 목소리가 직접적으로 상품이나 콘텐츠 생산에 영향을 준 시기는 드물다.
당연히 여성도 동등한 소비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상품이 소비자가 누구냐에 따라 모양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면, 소비자는 개인의 특성과 관계없이 동일한 가치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같은 제품이 여성용으로 포장만 바꾸어 출시되었을 때 가격이 올라가거나 품질이 떨어지는 상품, 머리 길이와 무관하게 고객의 겉보기 성별로 비용을 다르게 청구하는 미용실 등은 ‘핑크 택스(Pink Tax)’의 대표적인 부당 대우 사례이다.
또한 문화산업 중 여성 소비자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분야에서조차 소비자의 성비를 맞춘다는 구실로 남성만을 대상으로 한 이벤트를 진행하는 등, 소비자 입장에서 기만적이라고 여겨질 만한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일부 네티즌은 2018년 7월부터 매달 첫 번째 일요일마다 “소비 중단을 통한 여성혐오 근절”이라는 목적하에 여성 소비자의 영향력과 중요성을 드러내기 위해 일체의 소비와 지출을 중단하는 <여성소비총파업>을 실천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소비시장에서 본인의 입지를 확실히 하고, 본인이 쓴 돈이 ‘정당하게’ 돌아오기만 한다면 상관이 없는 것일까.
누군가가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거나 소비자로서의 정체성을 내세울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억압받는 타자가 존재하기에 가능하다. 특정 상품을 ‘팔아 주’고 특정 문화를 향유하는 것이 곧바로 여성 인권을 ‘발전’시키거나 ‘후퇴’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여태 객체화되어왔던 존재가 스스로에게 소비‘주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게 할지는 몰라도 모두를 불평등하고 폭력적인 자본 권력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롭게 만들지는 못한다.
기존의 소비생활에서 문제점을 성찰하고 거기에서부터 변화를 시작해나갈 수는 있다. “내 돈 주고 내가 사는” 작품이 나를 비난하고 있다면 팔아 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타당하다. 그러나 소비 활동에서 도덕성을 발굴하고 ‘윤리적 소비’만이 유일하게 옳은 방법이라는 믿음에 근거한 운동이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윤리적 소비를 가르는 명확한 하나의 기준이 실제로 존재하기는 할까. 질문할 필요가 있다. 작품에는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한다. 창작자의 의도를 뛰어넘는 훌륭한 캐릭터가 탄생할 수도, 정형화된 창작을 이어가다 점차 더욱 다양한 서사를 쌓아나갈 수 있는 창작자가 나타날 수도 있다. 비판받을 점이 있기 때문에 절대 소비하지 않는다, 좋은 점이 있기 때문에 무조건 많이 팔아 준다. 이런 이분법은 다양한 비판과 발전의 가능성을 자본을 통해 차단해버리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변화는 극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과거의 역사 위에 지금이 세워져 있고, 또 지금까지의 계보를 딛고 나가야 다음이 존재할 수 있다. 정치적 올바름을 그저 쇼핑하듯 골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고 그름을 가르는지에 대해 더욱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참고문헌
영화진흥위원회, 『2018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2019
최일성 (2017). 탈중심화된 주체, 혹은 소비주체의 등장. 정치사상연구, 23(1), 31-49
손희정 (2015). 페미니즘 리부트: 한국 영화를 통해 보는 포스트-페미니즘, 그리고 그 이후. 문화과학, 83, 14-47
남성 대비 여성 임금 비율
http://www.index.go.kr/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2714
BBC 라라오웬, 윤인경. 영혼 보내기: 여성 중심 영화 지지자들의 새로운 관람 문화
https://www.bbc.com/korean/news-48636838
노컷뉴스 최영주. '여성서사'는 늘 다르게 상상되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https://www.nocutnews.co.kr/news/5169646
스타뉴스 전형화, '걸캅스'와 영혼 보내기..소비가 힘이다
http://www.sportalkorea.com/butterfly/view.php?gisa_uniq=20190515095804638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