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데어
2월 13일 늦은 저녁, 네 명의 대원이 분홍색 고무장갑을 들고 연희관의 지하 출입구로 들어선다. 수업이 일찍 끝나는 기말고사 기간의 연희관은 무척 조용하다. 네 사람은 인적 없이 전등불만 켜진 지하 로비와 강의실을 지나 사회과학대학 자치도서관 앞의 쓰레기통 앞에 선다. 왼쪽에는 종이, 가운데에는 일반 쓰레기, 오른쪽에는 재활용. 커다란 쓰레기통은 은빛으로 빛나는 상자처럼 보인다. 오늘은 이 보물 상자를 열어보기로 한다.
보물 상자를 여는 데에 다소 시행착오가 있다. 어떻게 열어요? 여길 눌러야 돼요. 그러면 손잡이가 튀어나와요. 이전에 만나서 먼저 탐험을 진행한 사람이 시범을 보인다. 세 개를 모두 열고, 두 명이 고무장갑을 낀다. 남은 두 명은 스마트폰을 들고 기다린다. 먼저 상자 속 쓰레기통을 끄집어내고 사진을 찍는다. 그런데 이거 나중에 볼 때 어디에 있는 무슨 쓰레기통인지 헷갈리면 안 되니까, 영상도 남겨야 돼요. 사진을 찍은 사람이 동영상을 켜고 말한다. 연희관 지하 1층 왼쪽 자도 앞, 재활용 쓰레기통. 그제야 고무장갑을 낀 사람들이 쓰레기를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한다.
근처 강의실에서 행사를 진행했는지, 종이 칸에 읽기 자료와 이름표가 들어있다. 일반 쓰레기에는 현수막도 있다. 옆의 플라스틱 칸에는 페트병과 테이크아웃 잔, 일회용 용기가 들어있다. 언뜻 보기에는 분리수거가 잘 된 것 같다. 하지만 쓰레기를 하나하나 꺼내자 그렇지만은 않다. 페트병과 테이크아웃 잔에 음료가 남아있다. 페트병에는 라벨지가, 테이크아웃 잔에는 컵홀더가 끼워져 있다. 샌드위치가 들어있었던 것 같은 다회용 용기에는 소스가 묻어있는 채이다. 카메라를 켠 사람이 각 칸에서 나온 '잘못된' 쓰레기의 사진을 찍는 동안, 다른 사람은 스마트폰 메모장에 어떤 종류의 '잘못됨'인지 기록한다. 잘못된 칸에 들어간 것인지, 잘못된 방법으로 버려진 것인지 기록하고 나면 그다음은 그것들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차례이다. 라벨지는 떼서 일반 쓰레기통에 버린다. 컵홀더는 종이 칸에 들어가야 한다. 남은 음료는 당연하지만 비워줘야 하고, 일회용 용기의 소스도 씻어내야 한다. 쓰레기가 모두 제자리를 찾아 들어가면 쓰레기통을 집어넣고 상자를 닫는다. 이제 다음 보물 상자를 찾을 때다.
네 사람은 연희관 지하부터 4층을 돌아다니며 모든 쓰레기통과 재활용함을 뒤지고 기록하고 분리수거를 했다. 재활용 칸의 페트병이나 테이크아웃 잔에서 음료가 제대로 버려지지 않은 경우가 가장 흔했지만, 재활용 쓰레기가 일반 쓰레기 칸에 버려져 있거나, 음식물 쓰레기가 비닐에 싸여 버려져 있는 일도 있었다. 다음 날과 그 다음날에는 학생회관에서 똑같은 조사를 했다. 쓰레기를 꺼내 제대로 버려지지 않은 쓰레기를 기록하고 자료를 모았다. 이들은 '연세대 쓰레기 탐험대', 학교에서 쓰레기로 발생하는 문제를 찾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보기 위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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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쓰레기는 어떤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가? 그 원인은 무엇이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생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또 학교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쓰레기 탐험대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한다.
연세대 쓰레기 탐험대(이하 쓰레기 탐험대)는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연세대 분회(이하 연세대 분회), 문과대학 자치언론 문우(이하 문우), 연희관 015B(이하 공일오비), 연세대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 중앙교지 연세편집위원회(이하 연세지)의 다섯 개 단체로 구성된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는 연세대학교에서 꾸준히 제기되었던 청소노동자 관련 문제, 특히 2022년의 청소노동자 쟁의에 쓰레기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청소노동자들은 꾸준히 노동 인원에 비해 업무가 과중함을 지적해 왔다. 그 원인으로는 정년퇴직 인원이 충원되지 않는 것도 있지만, 코로나로 이후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경우가 늘어나며 쓰레기양이 증가하고 분리수거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도 있다.
쓰레기 탐험대가 만들어진 것은 2023년 9월 3일이지만, 쓰레기 문제에 대해 학내 구성원의 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그 이전부터 있었다. 23년 6월, 연세대 분회에서 공대위에게 쓰레기 문제를 같이 다루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건넸다. 당시 공대위는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였으나, 정확한 상황을 파악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문제에 대한 해결책 역시 명확하지 못했다. 또한 문제의식이 연세대 분회와 공대위 내부에서만 공유되어, 해결을 위한 활동을 진행하기에는 인력이 부족했다.
따라서 공대위는 첫 번째로 문제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두 번째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론을 수립하고, 세 번째로 활동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이는 '연세대 쓰레기 배출 및 수거 문제 해결을 위한 교내 소통 간담회'로 구체화되었다. 공대위는 공일오비, 문우, 연세지 등 자치언론과, 환경 관련 동아리, 워크스테이션 등 여러 학내외 단체들에 간담회 공동주최를 제안했다. 이에 응한 단체들이 모여 8월 4일 간담회가 진행되었다.
간담회 1부는 이류한승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조직부장님의 발제로, 2부는 실제 학교에서 노동을 담당하고 계시는 청소노동자의 현장 발언으로 진행되었다. 간담회에서 오간 내용을 요약하면, 대학교는 기본적으로 강의 및 연구시설, 행정시설, 교내에 입점한 식당과 매장, 주거시설 등이 자리 잡은 복합시설이며, 수만 명이 이용하는 공간이다. 특히나 연세대는 국내 대학교 중 두 번째로 큰 면적과 교직원과 간접고용 노동자를 제하고도 재학생만 3만 명에 달하는 인구를 자랑하기 때문에, 교내의 쓰레기 문제가 주변 환경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더불어 코로나19를 거치며 배달 음식이 보편화되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일회용품, 포장용 플라스틱과 비닐 폐기물 배출량이 크게 늘었으며, 코로나19로 정착된 배달 음식 문화가 대면학기에도 그대로 이어져 생활폐기물 배출량이 증가했다. 쓰레기의 절대적인 양이 늘어난 것과 함께 음식물 쓰레기의 양도 늘었으며, 각종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가 혼입되는 경우도 늘었다. 이 경우 이를 정리하는 것이 청소노동자 업무에 포함되기 때문에, 청소노동자들은기존보다 업무의 강도가 세졌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음식물 쓰레기통을 설치하는 것이 해결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은지에 대한 질문이 나왔으나, 학교에서 원칙적으로 취식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명시적으로 음식물 쓰레기통을 설치하는 것이 어려우며, 쓰레기통을 설치할 경우 처리해야 할 쓰레기가 늘어날 우려가 있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일부 건물이 암묵적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는 공간을 두고 있지만, 건물 외부의 구석진 곳에 있는 경우가 많아 찾기가 어려우며, 이 때문에 음식물 쓰레기를 그냥 일반 쓰레기 칸에 버린다는 지적이 있었다.
학생과 노동자는 배달 음식에 대한 규제 혹은 학교 차원의 대응이 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 학생과 노동자가 쓰레기를 매개로 연결되어 있으며, 두 주체가 협력하여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을 나누었다. 간담회를 통해 청소노동자가 노동 현장에서 실제로 겪고 있는 문제 상황을 공유할 수 있었으며, 이후 활동을 위한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동월 18일, 공대위는 송도 국제캠퍼스의 청소노동자와 만나 쓰레기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신촌과 비슷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음식물 쓰레기통이 있지만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분리수거가 안 된다는 점, 학생들이 쓰레기 문제를 모르고 있거나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점 등이 문제로 지목되었다. 학생들이 해당 문제에 체감할 수 있도록 교육이 필요하며, 개선 노력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공대위는 두 차례의 간담회에서 얻은 내용을 바탕으로 9월 3일 간담회 공동주최 단위들과 회의를 진행했고, 9월 9일 연세대 쓰레기 탐험대를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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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대가 구성된 후 가장 처음으로 진행된 활동은 간담회였다. 지난 간담회가 쓰레기 문제에 관한 문제의식을 이미 공유하고 있는 단체와 진행한 것이었다면, 이번 간담회는 쓰레기 문제에 관심이 있는 모든 개인과 단체를 대상으로 했다. '연세대 쓰레기(에 관심있는 자) 모두모두 모여라 간담회'에서는 8월 4일 진행된 간담회의 발제를 정리하고 보강하여 다시 한번 발제를 진행했으며, 이와 관련하여 궁금한 점을 질문하고 해결 방안을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쓰레기 탐험대를 소개하고 활동 계획을 공유하였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쓰레기 지도와 르포 작성, 학내 구성원 대상 설문조사, 쓰레기 이동 경로 추적 등 활동 방향을 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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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쓰레기 탐험대는 학교의 쓰레기 발생 현황에 대해 더 직접적인 데이터를 얻을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여러 논문과 보고서에서 대학교의 쓰레기 배출량에 대한 데이터를 제시하지만, 그러한 데이터가 현실에서 어떤 형태로 드러나는지 알지 못한다면 그 데이터는 공허할 뿐이다. 예를 들어 대학에서는 대체로 한 개의 단과대학이 한 개의 건물을 중점적으로 사용하며, 단과 대학의 특성에 따라 발생하는 쓰레기의 종류와 양이 다르다. 각종 실험이 진행되는 공과대학에서는 실험 관련 폐기물이 많이 나오는 식이다. 또한 시간대에 따라 쓰레기가 발생하는 양이 다르므로, 청소의 강도 역시 다르다. 예를 들어 화장실은 빨리 더러워지므로 오후에 다시 청소가 필요하다. 새벽 시간에는 교직원과 학생이 학교에 도착하기 전 청소가 끝나야 하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이 짧고, 따라서 가장 노동강도가 높다고 한다. 또한 절대적인 쓰레기 배출량과 더불어 재활용 혼입률, 음식물 쓰레기 혼입률이 노동 강도에 영향을 많이 미친다.
이와 같이 현장에서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청소노동자께 양해를 구해, 23년 9, 12, 13, 14일 청소를 진행하지 않는 시간에 연희관과 학생회관의 쓰레기통을 열어 안의 쓰레기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또한 조사를 진행하며 쓰레기의 양을 파악하는 동시에 해당 자료를 어떻게 수치화할 것인지―예컨대 쓰레기를 개수로 센다면 무엇을 쓰레기 '1개'라고 할 수 있는지, 개수를 세지 않는다면 무엇을 세어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했다. 이를 바탕으로 잘못된 쓰레기가 버려진 '횟수'를 세고 기록하며, 이러한 쓰레기를 '밀봉된 음료', '밀봉되지 않은 음료',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 혼입', '일반 쓰레기 혼입', '종이 혼입'의 다섯 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 통계를 내고 지도로 작성하기로 결정했다.
조사 결과, 특정 단과대생이 주로 이용하는 연희관보다는 모든 학생이 폭넓게 이용하는 학생회관의 쓰레기 배출량이 더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두 건물의 거의 모든 쓰레기통에서 음식물과 음료, 혼입된 쓰레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쓰레기통에 쓰레기가 거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세 가지 문제 중 최소한 하나는 꼭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음식물과 음료의 경우 혼입된 쓰레기의 개수보다는 혼입된 쓰레기가 존재하느냐의 문제가 좀 더 중요했다. 분리배출을 노동자가 직접 진행해야 하는 문제도 있었지만, 테이크아웃 잔과 같이 밀봉되지 않은 쓰레기는 쓰레기통을 비우는 과정에서 엎어지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통 안의 쓰레기 전체가 오염되어 재활용이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있었으며, 바닥에 쏟을 경우 이를 청소하기 위한 노동이 추가로 필요한 상황이다. 대부분의 학생이 쓰레기를 올바르게 분리배출하더라도, 밀봉되지 않은 음료 하나가 통 전체를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에, 혼입 쓰레기에 대한 문제의식이 전반적으로 공유되어야 한다.
많은 쓰레기통이 쓰레기통의 절반 혹은 절반 이하가 차 있었다. 평소 학기 중의 쓰레기통 상태를 고려해 보았을 때 조사 기간이 기말고사 기간이라는 점이 영향을 미쳤으리라 짐작한다. 시험은 보통의 수업보다 일찍 끝나며, 이후 많은 학생들이 집에 가거나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므로 각 건물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기 때문이다. 때문에 해당 조사가 쓰레기의 양 측면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표본이었는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또한 방학이 시작된 이후로 쓰레기 배출량이 줄어들어 조사가 진행된 건물이 두 곳이라는 아쉬움이 있으며, 조사 초반 쓰레기 분류에 대한 기준이 확립되지 않아 조사가 엄밀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이를 바탕으로 다가오는 24학년도 1학기 좀 더 체계적인 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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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는 일회성으로 끝날 수 없으며, 끝나서도 안 된다. 쓰레기 문제 자체가 일시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곳에 있는 한 쓰레기는 끝없이 생산될 것이다. 따라서 쓰레기 탐험대는 단순히 쓰레기 문제에 대한 경각심 고취 같은 단기적 해결책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또한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장기적 해결책을 찾고자 한다. 연세대학교 고등교육혁신원의 워크스테이션 지원을 통해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쓰레기 분리수거 교육 등의 교육 프로그램이 학내에서 안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만들고자 한다. 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일차적인 방법은 쓰레기를 생산하는 학생과 교직원의 의식 제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에 대한 장기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학내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재활용 쓰레기를 재활용 칸에 넣는 것만으로 재활용이 되지 않는다. 쓰레기는 올바른 위치에, 올바른 상태로 버려져야 한다. 그런데 학생들이 버린 쓰레기가 매일 새벽 트럭에 실려 학교를 떠나면, 그 쓰레기는 재활용을 위해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그린피스의 2021년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의 생활폐기물 재활용률은 25%를 겨우 웃도는 수준이다.[1] 때문에 쓰레기 탐험대는 학교 밖으로 나간 쓰레기가 어떤 과정을 거쳐 재활용되는지에 대해 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쓰레기는 어디로 가는지, 그곳에서 무엇이 되는지, 우리는 왜 이 과정에 대해 하나도 알지 못하는지. 쓰레기 탐험대는 새로운 질문을 갖고 다시 한번 출발한다.
[1] 김나라, 최혜원, 장용철, 권영선, 송하균, 김병환, 정지현, 플라스틱 대한민국 2.0: 코로나19 시대, 플라스틱 소비의 늪에 빠지다 (서울: 그린피스 동아시아 서울사무소, 2023)
사진 출처
연세대 쓰레기 탐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