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이 모자라

정리정돈 온귀

by 문우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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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주는 아빠에서 함께하는 아빠로”

아빠들은 서툴지만 육아에 도전합니다. 머리도 잘못 묶고, 아이 밥 주는 속도도 느려 터졌지만 엄마는 아빠의 발전하는 모습을 칭찬합니다. 광고는 남편들에게 육아를 ‘도와주지’말고 ‘함께하라’고 덧붙입니다. 이밖에도 요즈음 여러 상품 광고들은 남성이 가사 노동, 돌봄 노동을 함께 하는 모습을 연출하곤 합니다. 남편은 아이를 돌보고 아내는 빨래나 청소를 하거나, 때로는 가족들이 식탁에서 식사를 기다리고, 아버지가 주방을 오가며 밥상을 차리는 모습이 등장하기도 하죠. 텔레비전만 보면 참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거참 살기 좋은 세상이네요.


현실이 광고에 나온 것만큼이라도 된다면 참 좋을 텐데, 안타깝게도 현실은 아직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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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15년 자료에 따르면, 부부의 경우에 평균적으로 남성은 49분, 여성은 4시간 20분 동안 가사 노동을 한다고 합니다. 남편 외벌이 가구는 물론이고, 맞벌이 가구, 부인 외벌이 가구, 부부 미취업 가구까지 대부분 여성들이 가사 노동을 더 많이, 전담하다시피 하죠. 예전보다야 많이 나아졌다고, ‘집안일 하는 남편’ 꽤 많아졌다고 하지만, 실제 가정에서는 여전히 한참 부족합니다.


‘24시간이 모자라’는 여성과 남성의 일과 시간표를 짜보는 프로그램으로, 가사 노동과 돌봄 노동이 여성에게 편중되는 현실을 직접 상상해볼 수 있도록 기획되었습니다. 게임 안의 두 사람은 직장 일에 집안일까지 짊어지며 ‘24시간이 모자라’도록 일하는 맞벌이 가정의 부부로 설정되었습니다. 시간표를 채울 블록은 ‘출근 준비, 설거지, 빨래, 청소, 아이 돌보기, 야근’ 등 일반적으로 아내에게, 남편에게 주어지는 일과거리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래에 제시된 블록들을 가지고 맞벌이 부부의 24시간을 채워봅시다. 통상적인 가정을 상상해도 좋고, 스스로가 접해온 가정을 생각해도 좋습니다. 참고로, 블록을 채우고 남은 시간은 취침 시간입니다. 해야 할 일만 생각하고 블록을 마구 붙이다 보면 잠잘 시간이 1시간밖에 남지 않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인권축제 문우 부스에 오지 못한 60호 독자 여러분도 아래에 시간표를 그려보아도 좋겠습니다.


6살 아이를 둔 30대 맞벌이 부부 김지은씨와 이지훈씨. 이들의 직장은 모두 집에서 1시간 거리에 있고, 아이를 유치원에 직접 데려다 주어야 한다. 김지은씨와 이지훈씨 모두 직장에서 근속 연수가 아직 많지 않으며, 잔업과 야근을 하지 않으면 육아 비용이나 주택 대출 이자까지 마련하기 어렵다. 심지어 곧 있으면 승진할 기회가 있을 것 같기도 하기에, 육아 휴직을 내기에는 너무 눈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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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축제 문우 부스에서 참여자들 대부분은 잠잘 시간이 3, 4시간밖에 남지 않는데도 여전히 여가 생활은 하지도 못하는 현실에 분노하고 개탄했습니다. 일부 참여자들은 ‘설거지, 빨래, 청소 1시간 안에 못한다’며, ‘그러면 잠잘 시간이 더 줄어든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참여자들이 만들었던 시간표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 우리 집은 이렇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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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부는 전통을 잘 지키는 부부래요. 아내는 아침 6시부터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하고, 아이를 챙기죠. 퇴근하고 나서는 늦게나마 아이의 저녁을 챙겨주고, 청소와 설거지를 하고 나서야 일과가 끝납니다. 하지만 남편은 야근에 지친 몸을 끌고 돌아와서 야구를 보고 잠에 드네요. 통계에 나오는 평균적인 가정과 크게 다를 바가 없군요!



# 남편은 노느라, 아내는 일하느라 … 못하겠다, 멘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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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부는 좀 더 심합니다. 남편은 야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친구들과 저녁 모임을 나서고, 돌아와서는 핸드폰 좀 보다가 야구를 보고 잠에 드네요. 이렇게 여가를 충실히 보내다 보니 잠잘 시간이 4시간밖에 없어요! 노는 것도 참 힘듭니다. 그럼 남은 집안일은 누가 할까요? 아내가 해야겠네요? 하지만 이걸 다하려면 잠을 자면 안 되겠어요. 이 시간표를 짜던 참여자분은 아내의 시간표를 놓고 결국 멘붕에 빠지셨답니다. 이거 어떻게 한꺼번에 안 될까요? 으악!



# 여가도 하고 집안일도 하고, 잠은 언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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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부는 여가 생활에 충실합니다. 남편은 게임과 야구보기, 아내는 저녁 모임과 미드 보기. 섹스도 빼놓지 않네요. 그러다보니 어느새 시간은 새벽 3시. 집안일을 좀 더 해야 하는 아내는 3시간밖에 자지 못합니다. 남편도 5시간밖에 못 자네요. 그래도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어요! 아이 저녁밥은 누가 차려주나요? 아이가 배고파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아요.



# 일에 치이다 보니 새벽 1시에 장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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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도 아내가 집안일을 도맡아 하네요. 아내는 잠도 5시간밖에 못 자고 퇴근하고 나서도 아이를 챙기느라 바빠요. 청소까지 하고 나니 어느새 밤 12시! 장도 봐야 하는데 어떡하죠? 한밤중에 장을 보게 생겼네요. 다행히 스마트폰 어플로 간편하게 식재료를 주문한다고 합니다. 장보기 어플 없었으면 큰일 날 뻔 했어요.



# 남편도 같이 해야지! 그런데 오늘 안에 다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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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부는 남편이 집안일을 많이 도맡아 하네요. 그런데 할 일이 산더미죠. 야근도 해야 하는데, 결국 한 칸에 일과 블록이 우수수 쌓여 버렸어요. 1시간 안에 퇴근하면서, 아이도 하원 시키면서, 장도 볼 수 있을까요? 아내도 만만치 않군요. 야근까지 마치고 아이를 돌본 후 유일한 여가 시간은 미드 보는 시간 뿐. 새벽 5시에 일어날 생각에 미드를 여유롭게 보기도 힘들겠어요.


가사 노동, 돌봄 노동은 엄청나게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는 엄연한 ‘노동’입니다. 집안 청소를 하고 밥상을 차리는 것에도 직장일 못지않은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죠. 그러나 가사 노동, 돌봄 노동은 아직도 ‘노동’으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통 사회, 남성 중심적인 기존 사회는 ‘노동’으로서의 가사 노동, 돌봄 노동의 의미를 지우고, 이를 ‘집안에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 특히 ‘여성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왜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요? 왜 자꾸만 가정에서 여성의 역할은 ‘당연히 해야 할 일’, ‘가벼운 일’로 평가 절하되어야 할까요? 왜 여성들은 아이를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저임금 일자리를 떠돌게 되는 굴레에 갇혀야 하는 것일까요? 이제는 그 낡은 틀을 바꿀 때도 되었는데 말이죠.


집안일을 여성에게 떠맡기고 사회가 얻어내는 것은 ‘사회적 재생산 비용의 절감’입니다. 사회가 복지 차원에서 제공해야할 서비스를 여성들의 대가 없는 노동으로 대체하는 것이죠. 집안일이 별거냐, 집안일이 무슨 사회적 재생산이 되냐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통상적으로 한국 가사 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GDP의 21~33%로 추정할 만큼 가사 노동과 돌봄 노동은 사회 유지에 기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집안일에 ‘노동’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것, 가정의 구성원들이 가정 내의 노동을 동등하게 함께하려는 움직임이 여전히 많이 필요한 것이죠.


사실 가사 노동, 돌봄 노동은 아내와 남편이 똑같이 나눠 맡는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24시간이 모자라’의 참여자들이 자주 호소했던 안타까움은 ‘일도 하고 집안일도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모자라다’, ‘남편이 같이 한다고 해도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 하겠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24시간이 모자라’는 힘겨운 현실은 한국의 노동자들에게 주어지는 과도한 노동 시간과도 맞닿아 있는 것이죠. 자꾸만 노동의 부담을 가정과 개인에게 떠넘기는 사회는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워라밸’이 지켜지는 사회, ‘저녁이 있는’ 사회. 가사 노동, 돌봄 노동을 가정 구성원들과 사회가 모두 함께 나눠 맡는 그런 모습들 말이에요. 그러기엔 아직 멀고도 멀었지만, ‘24시간이 모자라’를 통해 그 문제의식을 계속 고민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문우편집위원회 부스에 오셔서 함께하고 공감해주신 참여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참고자료

새로운 육아 문화 만들기 – 아빠 육아 응원 캠페인 (보건복지부, 2017.05)

[페미니즘 경제학] 주부의 가사노동은 왜 ‘무급’으로 따져야 하나 (한경BUSINESS, 2018.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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