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우편집위원회 일동
사람들은 종종 소수자와 다수자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단순한 수적 비율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소수집단을 정의내리는 데에 그들은 머릿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의 성별, 인종, 성적 지향성, 국적 등의 정체성이 사회가 설정한 보편에 어긋나고, 그 어긋나는 단일한 요소로만 개인이 낙인찍히게 될 때 그들은 소수자로 규정됩니다. 즉, ‘소수자’란 자신의 비규범적 정체성으로 인해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소수자들의 목소리는 아무리 많이 모여도 잘 들리지 않습니다.
총여학생회는 그 중에서도 주체로서 조명받지 못했던 가장 대표적인 소수자인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연세대 내 여학생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결사된 단체입니다. 총여학생회는 가부장적 사회 구조에서 단지 여성이기에 억압 받던 역사에 저항하고, 학내 성평등한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습니다. 총여학생회라는 이름이 남녀 성별 이분법에 근거해 그 외의 성과 여성 외의 다른 소수자성을 포괄할 수 없다는 한계를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었지만, 학내 다른 소수자 대표 단체들과 연대하며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왔습니다. 이처럼 총여학생회는 오랫동안 사회에서 지워진 이들을 학내 공론장으로 이 끌어내고 상호 연대를 도모함으로써 그 자체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왔습니다.
총여학생회 재개편 추진단은 제시하신 ‘학생인권위원회’가 소수자들을 포함한 모든 연세 학생들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과연 이 ‘학생인권위원회’가 진정 소수자와 함께 할 수 있는 방식이 맞는지, 재개편안이 정말로 소수자 권익을 지키려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듭니다. 인권 보호라는 방향성을 제시할 때에는 반드시 소수자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숙고하고, 가시화되지 못한 소수자들도 배제하지 않기 위해 늘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학생인권위원회에서 ‘보호’하고자 하는 소수자들은 누구입니까? 소수자들의 권리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키고자 하는 것입니까? 구체적인 시행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보편 인권 지킵시다’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안일한 태도입니다. 여전히 여성을 비롯한 많은 소수자들의 권리가 침해받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 당사자들로부터 시작한 총여학생회의 존재와 다른 소수자 단위들과의 연대 가능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소수자성에 대한 숙고 없이, 당사자들의 이름을 지운 ‘학생인권위원회’라는 공허하고 막연한 약속은 절대 소수자들을 보호할 수 없고, 소수자 당사자들을 대표하지 못합니다.
이에 덧붙여, 총여학생회 재개편 추진단이 주장하는 ‘보편인권’이란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연세 학생사회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서는 ‘보편’이라는 이름 아래 너무나 많은 개별 존재들이 배제되어왔습니다. 이성애가 절대보편인 사회에서 동성애, 양성애, 범성애, 무성애 등의 이른바 비-이성애는 부정되거나 아예 언급조차 되지 못했고, 남녀 성별 이분법 구도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은 분명히 언제나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으로 이해될 수 없다는 이유로 담론장에서 완전히 지워졌습니다. 비장애가 기본 값으로 설정된 한국에서 서로 다른 종류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보편’의 시각에서 한 등급 안에 묶였으며, 작은 땅덩어리에 유난히 단일 민족이 강조되는 한국에서 특정 국가 출신 이주민들은 출신 하나만으로 쉽게 무시당하고 늘 타자 취급을 받았습니다. 한 개인은 다양 한 정체성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소수자 정체성을 지닌 이들은 그저 그 정체성 하나로만 인식되고 보편범주에서 제외되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보편’을 단순히 모든 인간, 모든 국민, 모든 학우라 칭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이에 지금껏 철저히 비가시화되었던 인간들까지 포함되어 있습니까? 이 사회에서 ‘보편’으로 불려왔던 집단들에 앞서 언급한 존재들이 정말로 함께하고 있었습니까? ‘보편’이라는 개념은 우리 사회에서 제 언어와 목소리를 가지지 못한 존재들을 지워버리는 폭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다수결 원칙으로 대표된 ‘보편’ 주체들의 의사만 존중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다수결 원칙 체제 하에서 소수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법률이 존재하는 것도 입법부의 자의적 판단에 의한 선택적 인권 보호이고 반민주적인 것이라 할 수 있나요? 민주주의 체제에서 미처 대표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은 단순한 기계적 평등이 아닌, 실질적 평등을 보장해주는 가장 최소한의, 적어도 ‘인간답게’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삶의 정치입니다.
중앙운영위원회는 개회를 선언할 때 흔히 자치규약이라 일컫는 ‘대학 내 공동체를 위한 반성폭력 자치규약’을 가장 먼저 읽고 넘어갑니다. 대부분의 학우 여러분들께서는 입학 후 새내기 오리엔테이션에서 혹은 각종 단과대 행사 등에 서 이를 접해보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규약, 누가 만들었는지 알고 계십니까? 총여학생회가 최초로 제정한 것입니다. 총여학생회는 늘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지난 한 주에 걸쳐 개최된 제2회 인권 축제에서도 총여학생회는 여성인권, 장애인권, 성소수자인권 등에 대한 문제를 환기하는 강연, 공연, 말하기 대회를 기획한 것을 비롯, 다양한 성평등 이슈에 연대하고자 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총여학생회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자 총여학생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또 하나 인권 보호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주장에 묻고 싶습니다. 정말 인권 보호가 필요한, 소수자성을 지닌 학내 당사자 대표 기구들의 입장은 알고 계신지 말입니다. 연세대학교 장애인권위원회와 중앙 성소수자 동아리 컴투게더는 입장문을 통해 총여학생회의 존립에 대한 지지를 분명하게 표현한 바 있습니다. 컴투게더의 입장문에서 총여학생회가 그동안 성소수자 인권포럼, 인권축제 등에서 이들과 연대하며 그들의 인권 향상에 일조해왔음을 알 수 있고, 장애인권위원회 측도 ‘여성’ 과 ‘장애인’이 각각의 이름으로 존재하고, 연대하는 것이 필요함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학내에서 여러 소수자성을 대변하는 단체들이 총여학생회가 필요하다 말하고 있습니다. 인권 보호가 필요한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인권 위원회는 도대체 누구의 인권을 위한 기구인지 의문스럽습니다.
구체적인 시행안을 전혀 내놓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총여학생회를 재개편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금까지 총여가 수행해온 기능들을 묵살하고 이를 폐지하겠다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소수자의 기본적 정의와 그들의 교차성에 대한 깊은 고찰 없이 보편인권이라는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중립적인 표현 속에서 진정한 권력의 평등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인지, 모두가 다시 한 번 돌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는 구조적 불평등이 산재되어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담론장에서는 너무나 많은 소수자 개인의 목소리가 지워집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바로 서는 그날까지, 우리에게는 아직 총여학생회가 필요합니다.
문과대학 자치언론
문 우 편 집 위 원 회
위 자보는 6월 4일부터 중앙도서관에 게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