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아이들에게 무엇이 되랴
나는 수학선생이다. 피아노 배우면 피아노 선생님, 유치원 다니면 유치원 선생님이 꿈인 아이들처럼 그렇게 눈앞에 선생이 보였고 그럴듯해 보였으니 하고 싶었을 것이다. 오지랖이 넓고 훈수 두는 것을 좋아하는, 한 마디로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성품을 그대로 발현해도 흉이 안 된다는 직업의 특성이 맘에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중 내가 제일 잘할 것 같은, 그리고 학교에서 가장 우위를 차지하는 과목인 수학을 선택한 건 뭐 자연스러운 행보였을 테고.
임용 직후에는 포부가 컸다. 상담심리를 제대로 공부해서 제대로 아이들의 인생에 영향력을 끼치고 싶었고, EBS 강사가 되어서 전국적으로 잘난 척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너무 일찍 결혼해서 미국에 가버리며 그런 것들은 물 건너갔다.
돌아와서 복직해서는 선생이면서 동시에 엄마였다. 둘 다 펑크만 안 내고 해내도 다행이었고 그 요령을 터득하느라 한참을 허덕였던 거 같다. 아, 물론 내가 이도저도 자신 있게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도 엄청 노력해야 했다. 그러다 올해는 뭔가 자리를 잡은 느낌, 이제 뭘 좀 알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내 수업의 정체성이나 방향성도 잡은 것 같았고 입시도 이제 좀 알 것 같았다. 그래, 이제 새로 1학년 신입생을 맡았으니 흰 도화지에 그려나가는 작품의 시작처럼 이 애들을 잘 만들어가보자, 뭐 그런 새로운 희망과 자신감이 있었다.
3월부터 우리 반을 선생님들이 다 칭찬하셨고, 중간고사에서는 과목 대부분에서 반 평균 1등을 차지했다. 체육대회에서 계속 지기만 하자, '괜찮아요. 우린 공부를 잘하니까' 하며 웃을 줄도 알았다. 그래서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 주에 반에서 가장 모범적이고, 그래서 눈에 가장 안 띄던 아이들 중 두어 명이 정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부모도 담임도 놀랄 정도로 아무 전조증세 없이 그냥 뻥 터졌다. 학교에 오면 숨이 막힌다고 했다. 우울이 병적 수준임이 드러났다.
아이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애들에게 물어봤다.
"괜찮니?"
안 괜찮단다. 괜찮은 척 보이려고 엄청 노력하고 있지만 사실은 너무 불안하고 너무 힘들단다. 밀려오는 수행평가 때문에 잠도 못 자고 버겁고 정신없고. 중간고사 성적을 보면 자신이 너무 가망성 없는 인간처럼 느껴지고 이걸 올릴 수는 있는 건지 우울하기만 하다고. 밥이 안 넘어가 급식을 거의 못 먹는 아이도 있었다. 그냥 봐도 안 괜찮은 것이 눈에 보이는데 왜 나는 지금까지 그걸 보려 하지 않았을까.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다독이고 수학도 재미있게 가르치며 입시안내까지 해주는 선생이라니, 우리 반 35명은 이런 담임을 만나 너무 운이 좋은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학교에 오면 숨이 막혔던 것이다. 대체 우리가 학교라는 이름으로 애들에게 뭘 하고 있었던 걸까? 아니 나는 내 교실을 어떤 공간으로 만들어놓았던 걸까? 우리 교실에서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불안하고 비참해졌다면 그건 누구의 책임일까? 이럴 때 자괴감을 느낀다고 하는 거구나 싶었다.
물론 이 아이들은 이전의 아이들과 조금 다르다. 코로나를 중심으로 BC(Before COVID)와 AD(After Disease)로 나뉜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 아이들은 사춘기 때 코로나를 겪었다. 20년, 21년, 22년에 초6, 중1, 중2를 보냈고 중3 때 겨우 마스크를 벗은 뒤 고등학교에 올라왔다. 초6, 중1, 중2는 아이들의 정체성과 사회성을 형성하는데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으므로 이 시기를 지나며 비로소 사회적 존재로 태어난다고 한다면 지금 아이들은 AD 세대이다.
이 아이들은 우리가 기억하는 학교와는 다른 학교를 다닌다. 휴대폰이 신체의 일부이지만 거기에 친구의 전화번호는 저장되어있지 않다. 친한 듯 보이지만 교문을 나서며 각자의 방향으로 걷기 시작하면 그 친구가 다니는 학원이나 사는 집은 알 필요도 없는 정보이다.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그래서 외로웠을 것이다. 아마 그게 외로움인 줄도 모른 채 고립되었을 것이다. 갑자기 아픈 것을 알게 된 그 친구도 그런 마음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다. 내 앞에서는 너무나 행복한 듯 수다를 떨었지만 자기 속마음은 내비치지 않았고, 공부하느라 바쁜 친구들에게는 부담주기 싫어 자신의 마음을 나누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들이 유별나서라고만 치부하기에는 아무래도 내 책임이 없는 것 같지 않다. 무언가를 잘못했다기보다는 무언가를 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일까?
'난 너희 같은 아들을 둔 적 없다'며 극구 반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도에서 만나면 '엄마~엄마~'하며 졸졸 따라다니는 놈들이 다수 있기는 하지만 나는 이 아이들의 엄마가 아니다.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친 후 그 결과로 줄을 세우고, 35명의 아이들의 일과를 챙기고 학교 전체를 돌리는 내 몫의 행정업무들을 문제없이 해 내는 것이 내 일이다. 뭔가를 더 할 수 있는 여력도 시간도 허락되지 않았고 누구도 더 요구하지 않지만 왜 나는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을까.
지친 한 주를 보내고 인후염이 악화되어 토요일에는 열까지 났다. 일고여덟 시간 자는 동안 다섯 번도 더 깼던 것 같던 그 토요일 밤, 나는 밤새도록 아이들을 잃어버리는 꿈을 꾸었다. 내가 잃어버린 아이들은 우리 집 아이들이기도 했고 우리 반 아이들이기도 했다. 3등급 2등급의 체로도 모자라 1등급의 체로 울타리를 만들어 지켜보려 했지만 아이들은 그 구멍 사이로 쑥쑥 빠져나가 어떤 나쁜 존재에게 잡혀갔다. 아이들을 단단히 움켜쥘 더 촘촘한 체가 필요했다. 1, 2등급 학업 성적의 체가 아닌 뭔가 영적인 체여야 할 것 같았다. 아이들을 잡아가는 그 존재가 어떤 악령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간절한 마음에 우리 집 막내 하나를 겨우 찾아와 잠시 안도했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또 그 악령에게 아이를 빼앗겼다. 정말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는 암담함 속에서 잠이 깼다.
월요일 아침 조례시간에 아이들을 만났다. 아! 왜 이 아이들은 저렇게도 연약할까. 왜 자기 자신도 스스로 지켜내지 못할 만큼 여리디여릴까. 나더러 어쩌라고 저리도 여리어 나에게 죄책감마저 들게 하는 것일까. 아이들의 미숙함과 불안한 눈빛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날 밤 나만의 기도를 시작했다. 노트북 앞에 앉아 하나님께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낮은 자존감과 우울, 불안 등을 내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하며 나의 자괴감과 무력감을 털어놓았다. 한참을 그렇게 하고 나니 아이들 한 명 한 명에 대한 기도가 나왔다. **이는 웃는 모습도 슬퍼 보이죠? 열심히 하는데 수학은 아무래도 모르겠나 봐요. 내일 어떻게 공부하고 있는지 좀 물어볼까요? 아, 우리 두드림 수학교실에 청강생으로 들어오라고 말해 볼까요? **이는 아이들이랑 자꾸 엇박자가 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아이들이 따돌리거나 하지는 않아 다행인데 그래도 좀 고립되는 거 같은 느낌이에요. 내일 반장한테 살짝 물어봐야겠어요....
기도는 내가 일방적으로 신에게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이미 그분이 아신다고. 기도의 주체는 내가 아니고 내 속의 성령이라고. 그분이 탄식하며 기도할 것을 가르치신다고 했는데 그날은 정말 그렇게 35명 아이들 하나하나에 대해 순식간에 하나님과 상의할 수 있었다. 3개월 동안 보려 하지 않았고, 보여도 인정하고 싶지 않던 아이들의 문제에 대해 내가 그렇게 많이 알고 있었는지 나도 그날 처음 알았다.
다음 날, 내가 개인상담 일정을 잡고 싶다는 말을 비추자마자 상담 요청이 빗발쳤다. 3월 초에 첫 상담을 진행할 때도 35명 전체를 다 만나는데 한 달도 넘게 걸렸다. 중간고사 끝나고 다시 한번 만나자고 했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체육대회며 여러 수행평가 등으로 통 시간을 못 냈던 것인데, 아이들은 쉬는 시간, 점심시간을 쪼개서라도 상담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날만 네 명이나 되는 아이들과 상담을 했고 이전과는 다른 속마음들을 보따리로 들고 와 묻지도 않았는데 내 앞에 쏟아놓았다. 남자친구 얘기도 했고 진로를 바꾸고 싶다는 얘기도 했고 우울증 진료를 받고 싶은데 엄마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도 했다.
성적에 대한 고민을 선생님 말고는 털어놓을 곳이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공부를 잘하는 축에 드는 아이들이 성적고민을 친구들에게 얘기하면 재수 없다 소리만 듣고, 안 그래도 영 못마땅해하시던 부모님께 얘기해봤자 더 열심히 하라는 말밖에 못 듣는다. 아이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지, 이만큼이라도 해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아는 사람은 의외로 나밖에 없다. 학원 선생님들도 본인들의 입장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의 현 상황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처방을 내릴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내 집의 아이들에게 엄마인 내가 대체불가인 유일무이한 역할이 있듯이 이 아이들에게도 내게 기대되는 대체불가한 역할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아이들에게 수학강사도, 엄마도, 컨설턴트도 아니었다. 나는 이 35명 아이들의 담임이다. 담임이 이 아이들에게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내 안에도, 옆자리 선생님 안에도 없다. 이 나라 모든 담임에게 요구되는 역할이 고정될 수 없는 것은 그 담임들 각자의 인격과 경험, 현재 그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있는 시선과 올해 그분의 상황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나만 해도 어제와 오늘의 내 역할에 대한 관점이 달라졌듯이 말이다.
생각해보니 그 답은 내게 찾아와 손을 내미는 우리 반 아이들 각각의 안에 있다. 그 아이들이 내게 기대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해주어야 하는 나의 역할이다. 그 아이들만이 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자신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러니 열심히 물어야 한다. 샘이 뭘 알아주길 원하니? 샘이 뭘 도와주길 원하니? 그렇게 그 아이들을 읽고 그 아이들도 나를 읽으며 일 년을 함께 살아내는 것이 내 역할인 것 같다. 가슴 설레는 성장이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선생이든 학생이든) 감옥 같다는 그 공간에서 함께 일 년을 살아내주는 동반자가 이 아이들의 담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