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바쁘면 회사 생활에 매몰되어 사는 삶을 살지만 그렇다고 K가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아빠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서라도 한 시라도 짬이 나면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고,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그렇게 하는 게 맞았었다.
하지만, 회사에 나오면 일하는 동료들과 육아 이야기를 나누며 아무 짝에 쓸모 없는 '경쟁심', '조바심'을 느끼게 되었다.
"O부장님 아들은 이번에 과학고에 갔대요."
"ㅅ차장님 딸은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갔대요."
회사에서 오가는 이야기들은 이렇게 한껏 부러움을 사는 잘난 자식들 이야기 뿐이니, K의 맘에도 여지 없이 욕심을 갖게 만들었다.
K의 자식들은 K의 성화에 못이겨 아침에 눈을 비비자마자 책상앞에 앉아 '기적의 계산법'을 제 또래 이상의 난이도 문제를 풀며 아침을 시작해야 했다.
어리석은 K는 그렇게 문제집 한, 두장을 풀리고 출근할 때면 발검을이 가볍고 마음은 뿌듯하였다. 99%에 부족한 1%를 채운 것 마냥 꽉 차고 만족스러웠다.
K는 자신에 이어, 자식들까지도 속은 비었고 겉은 번듯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 때는 몰랐었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아이들 마음속에 쌓인 불편과 불행의 씨앗은 싹을 키우고 줄기를 세워 결국 여러 가지의 열매를 맺었다.
큰 딸의 담임 선생님은 딸이 학급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고 하였다.
딸과 이야기를 해 보면 별 말을 하지 않는데, 어쩌다 학부모 참관수업을 가면 딸아이는 발표 한번을, 다른 아이들과 말 한번을 나누지 않고 있었다.
둘째 아들은 더하였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부터 처음에는 한 달에 한번,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많이.. 담임선생님, 학원선생님, 학원의 셔틀버스 기사님, 다른 아이들의 엄마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댁의 아드님이 소리를 지르고 OO를 때렸어요.'
회사에서 동료들과 그윽하게 커피 한 잔을 두고 담소를 나누고 있는 중에 이러한 전화가 걸려 오면 K의 등줄기는 식은 땀이 흘렀고, 어느 곳이 가장 안전하게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조심시킬께요.' 하고 전화를 받을 비밀의 장소를 찾아 재빨리 숨어야 했다.
이러한 전화를 받은 날은 하루 종일 우울했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이해하고 타일러 보기도 하고, 왜 그랬냐며 혼쭐을 내 보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쉽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이들을 붙들고 함께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
남편이 번듯하게 직장을 잘 다니고, K가 은행이 아닌 월급이 적은 직장을 다녔다면, 오히려 아이들을 위해 직장을 그만 두는 결정이 쉬웠을 것이다.
둘째 아이의 초2 담임선생님.
유난히도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많고 학부모 상담에 진심이신 분이셨다.
언젠가는 그 분의 조언으로 아이와 함께 '비폭력대화' 센터에서 하는 교육에도 참여를 했었다.
막상 가 보니 둘째 아이의 반에서 두 명의 아이가 엄마와 함께 참여했었다. 초면에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1차로 아이들 교육이 진행되고 2차로 엄마들을 대상으로 교육이 진행되었다.
그러던 중.
밖에서 허겁지겁 센터 관계자 한 명이 뛰어 들어와 '아이들이 싸우고 있어요!' 라고 하였다.
놀이터에 나가 보니 K의 둘째 아이가 함께 온 같은 반 아이의 뺨을 때렸다는 것이다!
그 아이의 엄마는 미간을 찌푸리며 노발대발 화를 퍼붓더니, 경찰을 부르겠다고 했다.
심장이 부들부들 떨리는 심정의 K는 머리가 하얘지는 것을 부여 잡고 당장에 그 엄마 앞에서 무릎을 꿇고 연신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계속되는 사과에 화가 풀리지 않는 듯, 당장에라도 경찰을 부를 기세인 아이의 엄마를 보고, 중간에 낀 센터 관계자들도 어쩔 줄을 모르다가 아이의 엄마를 달래기 시작했다.
K는 눈물을 흘리며 아들에게 '너도 어서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해라.' 하였지만, 아들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두 주먹을 쥐고는 엄마의 옷자락 한켠에 바짝 붙어 있었다.
한참 시간이 흐르고, 빰을 맞은 아이의 엄마는 '이번만 넘어가겠다' 고 하며 모임은 그렇게 정리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며, K는 자신의 황망한 마음보다 아들이 걱정되었다.
'뺨을 때리는 것은 아주 나쁜 일이야. 그렇게는 하지마. 제발..'
무릎까지 꿇은 엄마에게 미안했는지 풀이 죽은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며 K는 집으로 돌아와 맛있는 음식으로 아이와 자신의 속을 달랬다.
이러한 시간들은 K가 회사를 그만 둔 후에도 계속 되었다.
K는 두 아이들을 데리고 심리상담센터를 몇 년을 다녔다.
'불안장애'
아이들이 겪고 있는 현재의 모습이었다.
가슴 아픈 시간들은 끝이 없는 것처럼 계속되었지만, K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육아서적을 읽으며, 아이들의 먹거리와 등하교길을 챙겼다.
그렇게 시간이 한참 흐르고 흘러, 아이들은 자신들의 굴레에서 조금씩 벗어나 양지 바른 햇볕으로 나와 조금씩 조금씩 웃음을 짓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