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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먼지 Mar 06. 2024

死海의 물고기

단편소설

바다는 암벽의 뼈까지 핥았다. 수년에 걸쳐 모래를 갈라 먹고, 들어오는 모든 것을 소금으로 절여냈다. 바다가 길러낸 최초의 생물은 아가미를 버리고 탈출했다. 이후 분노한 대해에 맞서던 사람들은 튜브나 구명조끼 따위를 발명했으나 모두 헛수고였다. 인간은 부레도 없다. 간혹 부레옥잠 같은 것들이 퇴화를 시도하긴 했으나, 바다에 맞서진 못했다. 


학교 행사 때문에 오늘은 야간자율학습이 없었다. 현관문 앞에서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아버지가 돌아왔을 시간은 아니었다. 비밀번호를 치고 문을 열었다. 현관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오른쪽, 한때 어항이 있던 자리엔 마리아상이 놓여있었다. 그 자리가 비어있을 때완 다른 의미로 숨이 턱 막혔다. 다녀왔습니다. 작게 내뱉자 태주가 방에서 쏜살같이 튀어나왔다. 


또 게임을 샀는지 손에는 새로운 게임팩이 들려 있다. 어머니는 장을 보러 갔다고 했다. 태주의 손에 이끌려 방 안으로 들어갔다. 당연하단 듯이 컨트롤러가 손에 쥐어졌다. 가방도 못 내려놓고 모르는 게임을 시작했다. 더위는 한풀 꺾였지만, 불쾌한 기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너 언제까지 이러고만 지낼 거야?” 


뱉어놓고 보니 말이 너무 날카로웠다. 태주의 손이 천천히 멈췄다. 곧 화면이 빨갛게 물들고, 스피커에서 비명소리가 나며 게임이 끝났다. 


“형이 무슨 상관인데?” 

“아무리 봐도 한심해서 그런다.” 

“고작 게임 몇 달 했다고?” 


태주의 눈이 또렷이 나를 마주 봤다. 시선을 피하며 뒷목을 더듬거렸다. 인간에게 아가미가 있다면 이쯤이지 않을까. 만져봐도 아무것도 없었다. 


“학교도 그만두고 이러고 있는 거, 남들이 알면 뭐라고 하겠냐?” 


태우야! 크게 호통 치듯 어머니가 외쳤다. 어머니가 집에 돌아온 것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장바구니가 옆으로 쏟아졌다. 태주가 자리를 박차고 있어 섰다. 때리기라도 할 줄 알았는데, 자기 방으로 가서 문을 크게 닫았다. 한 대 얻어맞은 개처럼 어머니의 눈치를 봤다. 


얼마 후 태주는 호주로 떠났다. 예견된 일이었다. 원래도 영어를 잘했으니 금방 적응할 거라고, 이모가 어머니를 달랬다. 공항에서 한 마지막 식사에서 태주와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모와 이모부는 엉뚱한 농담을 치며 우리의 마지막을 좋게 장식하려 했다. 억지웃음만 짓게 될 뿐이었다. 어류였던 인류는 이제 비행기를 타고 날 수 있다. 어느 날 다리가 퇴화되면 그땐 날개가 돋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모를 따라 캐리어를 끌고 태주가 떠났다.   



밀폐된 공간에서 휘슬 소리가 울리면, 그것은 멀리 퍼져 벽이나 천장에 닿았다가 튕겨져 나왔다. 이윽고 그것이 물에 빠지면 잦아들었다. 수영장의 희미한 락스 냄새가 코를 찔렀다. 넘실대는 물결이 선수들의 어깨에 부딪혀 눈이 부셨다. 아버지가 물속에서 유영하는 것은 어떤 관경과도 견줄 수 없이 아름다웠다. 마침내 금메달을 목에 걸던 아버지의 모습. 경기가 끝나면 태주와 나를 양손으로 한 번에 들어 올리곤 했다. 오랫동안 물에 있던 아버지의 손가락이 쭈글쭈글해져 있었다. 아무리 긁어내도 그 감촉은 오랫동안 남아 살갗이 간질거렸다. 아버지는 은퇴했지만 한 때 국가대표로도 나갔던 수영선수였다. 그맘때 집에 있는 장식장 안엔 먼지 한 톨 없이 반짝이는 메달과 트로피들이 놓여있었다. 주말이면 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그것들을 마른 수건으로 금칠이 닳도록 닦았다. 


부모들은 자식이 자신의 못다 한 꿈을 이뤄주는데 로망이 있다. 태주와 나는 남들보다 발육상태가 좋았다. 태우랑 태주가 또래보다 키도 커요, 어머니. 유치원 선생님의 말을 들은 어머니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쌍둥이라 그런가, 누구 하나 모자란 부분 없이 컸다. 일곱 살이 되던 무렵, 아버지는 우리를 수영장에 데리고 갔다. 키가 컸지만 성인용 풀의 높이엔 어림도 없었다. 바다에선 조금 뜨는가 싶었는데 수영장에선 돌처럼 가라앉았다. 


태우는 몸이 안 뜨네. 


아버지의 말 한마디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태주는 금방 물에 익숙해졌다. 능숙하게 수영은 못했지만 물 위로 쉽게 부유했다. 내게는 비트판을 주고 아버지가 태주에게 수영연습을 시키기 시작했다. 날이 지날수록 태주는 수영에 재능을 보였다. 나는 비트판 없이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었는데 태주는 혼자의 힘으로 성인 풀을 헤엄치고 다녔다. 수영에 흥미를 잃은 것은 물론이었다. 심지어 물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물을 실컷 마시고 고개를 들면 아버지는 태주만 보고 있었다. 나는 점점 늪으로 가라앉았다. 내 몸엔 아무런 부력도 없는 게 확실했다. 


온몸이 저렸지만 특히 갈비뼈가 아렸다. 병원에서 정신을 차렸다. 걱정스러운 눈빛의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내 가슴팍에 붕대가 감겨있었다. 그날따라 락스 냄새에 머리가 아팠다. 태주가 물고기처럼 물살을 가르고 쏘다닐 때, 사고가 일어났다. 어린이용 풀에서 다리에 쥐가 났는데,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눈앞이 하얘졌다. 괴롭기보단 이대로 숨을 못 쉬면 죽는 건가,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막 정신을 잃으려는 순간에 아버지가 나를 건져 올렸다.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그 과정에서 갈비뼈가 부러졌다. 병실에서 눈을 뜬 나는 울면서 외쳤다. 나 이제 수영 안 하고 싶어. 


갈비뼈는 금방 붙었다. 원래 어린아이의 갈비뼈는 잘 부러지는 만큼 잘 붙기도 한단다. 그 이후로 다쳤던 갈비뼈 부근을 만지는 게 습관이 되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흉부에 올려놓은 손이 같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초등학생이 되자 나는 수학학원에 다녔고 태주는 수영학원에 다녔다. 학원에 다녀온 태주가 덜 마른 머리를 들이밀었다. 학습지 위로 물방울이 떨어졌다. 한 손으로 머리를 밀어내고 한 손으론 종이에 셈을 썼다. 아직 구구단도 못 외우는 게. 태주가 품속에서 책을 꺼냈다. 책을 넘기더니 어느 한쪽을 펴 내 쪽으로 넘겼다.

 

사진 속사람들이 물 위에 동동 뜬 채로 책을 읽고 있었다. 이스라엘에 있다는 사해에 대한 글이었다. 그곳의 바닷물은 밀도가 높아 사람의 몸이 쉽게 떠오른단다. 그리고 염도가 높아 세균을 제외하고는 어떤 생물도 살지 못한다고, 그곳에선 물에 뜨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이스라엘에서 사해를 ‘소돔과 고모라의 바다’라고 부른다. 많은 죄를 지었던 소돔과 고모라가 신의 신판을 받고 사해에 빠져 죽었다고 성경에 적혀있다. 또한 그들이 생각하는 천국에는 바다가 없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다는 두려움의 장소였다. 바다에는 리워야단이라는 용이 산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사해로 가자. 그렇게 약속했다. 언제 어떻게 갈지 계획은 하나도 없었다. 그냥 가자고 하기에, 나는 알겠다고 했다. 


태주의 재능은 독보적이었다. 번번이 대회에서 상을 탔다. 적지 않은 주목을 받았다. 학교에 기자가 인터뷰를 하러 올 때도 있었다. 아버지를 따라 수영선수가 될 거라고 말하면 다들 박수를 쳤다. 전문으로 코치에게 수업을 듣느라 학교도 잘 나오지 않았다. 태주는 살이 항상 하얬다. 체육관이나 수영장만 오가니까 햇빛을 볼 겨를이 없었다. 


사람들은 태주의 스케줄을 나에게 물었다. 태주가 어디 있는지 아느냐, 오늘도 학교에 안 오냐, 선물 좀 전해줄 수 있냐. 아무 질문에도 답할 수 없었다. 나 역시 집에서도 잘 마주치지 않았다. 합숙소에서 묵는 태주를 부모님이야 자주 보겠지만 나는 학교에 다니느라 가지 못했고. 가끔 내가 태주인 줄 알고 처음 보는 사람이 말을 걸 때도 있었다. 명찰이 꽂아진 가슴팍이 간지러웠다. 


태양 아래 모든 것은 평등하게 화상을 입었다. 7월의 자연은 무자비했다. 명백히 경고의 의미였다. 더위에 미쳐버린 사람들은 종종 자살행위를 벌였다. 인류를 버린 바다로 돌아가려 발버둥 치는 것이다. 형체를 잃은 소금기가 끈적하게 살에 달라붙고, 해수면에 비친 햇살은 눈부셨다. 태주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긁적이며 다른 손으론 젖은 수영복을 떼어냈다. 


“정말 안 들어갈 거야?” 


바로 옆 파라솔 아래엔 연인이 있다. 눕듯이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던 그들의 팔이 엉켰다. 뿌리는 선크림을 몸에 한 번 더 뿌렸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다시 바다로 걸어 나갔다. 어머니는 책을 읽다가 잠에든 모양이다. 파라솔의 그늘에 벗어난 그녀의 엄지발가락이 일광에 타고 있다. 땀 한 방울이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돗자리 위를 침범한 모래를 툭툭 털어냈다. 


태우야. 당장 가방 챙겨서 집에 가봐라. 


선생님의 낯빛이 흑색이었다.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음으로 해놨던 핸드폰에 연락이 수차례 와있었다. 청소시간이라 어수선한 복도를 뛰어가며 전화를 걸었다. 대걸레를 들고 가던 애와 부딪혀 발목이 젖었다. 


태주가 집에 돌아오던 길에 육교 계단에서 발목이 삐끗했다고 한다. 그대로 굴러 떨어졌다. 왼쪽의 전방 십자인대가 파열되고, 반월상 연골판이 손상되었다. 치료할 수 있는지가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있었고, 수술 후에 전처럼 운동하는 건 무리일 거라고 의사는 말했다. 태주는 며칠 동안 말이 없었다. 병문안을 온 사람들도 모두 돌려보냈다. 부모님은 돌아가며 병원에 묵었지만 나는 시험기간이었다. 병원 복도에선 하루종일 소독약 같은 약품 냄새가 났다. 내 어깨를 감싸고 어머니가 말했다. 집에 가있으라고, 나도 알겠다고 했다. 도망치듯 병원을 나섰다. 


시험이 끝난 날, 집에 돌아오자 트로피나 메달이 싹 사라져 있었다. 태주의 것은 물론이고 아빠가 받았던 것까지. 커다란 박스들이 창고에 생긴 걸 보니 거기에 넣어둔 듯싶었다. 아버지의 선택이었다. 그는 베란다에 나가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아버지가 들어올 때까지 소파에 앉아 기다렸다. 


“상들, 다 치우셨네요.” 

“그래. 태주 퇴원하려면 멀었지만 미리 치워뒀다. 안 보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내가 왜 말을 꺼냈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머리에 열이 오르니 정신이 멍해졌다. 뭐라고 말을 꺼낼지 모르겠다. 


“제가 물에 빠져 죽을 뻔했을 때는 놔두더니, 이제 와서 왜 치워요.” 

“그게 무슨 뜻이냐?” 

“전 지금껏 집 들어올 때마다 거북했는데. 태주는 다리 좀 다쳤다고 그것들 보면 속상할까 봐요?” 


눈앞이 번쩍했다. 아버지의 손이 저렇게 크던가. 한 대, 그리고 또 한 대가 날아올 때마다 귀가 먹먹해졌다. 


“다리 좀? 다리 좀 다쳤다고?” 


아버지가 기가 차다는 듯이 말했다. 제정신이 차려지지 않았다. 옆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다. 제대로 고개는 들지도 못하고, 그쪽을 흘깃댔다. 어항 속에 채워져 있던 자갈이 온 바닥을 굴렀다. 물비린내가 퍼졌다. 물고기가 아가미가 뻐끔대며 붉은 속살을 드러냈다. 그 소리가 방을 가득 채운 듯했다. 검은색 지느러미가 빠르게 튀다가 점점 움직임이 느려졌다. 방 안의 모든 움직임이 멎자, 아버지가 밖으로 나갔다.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집에서 서성이다가 어항의 잔해들은 내가 치웠다. 


차라리 해일이 몰아치면 좋을 텐데. 주제넘는 인간들을 모두 덮쳐서 몰아낸다면. 모두 쓸어버린다면. 그때는 모두가 공평하게 휩쓸려가겠지. 모든 것이 바다로 돌아가면 인류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처음부터 다시.   



태주는 재활치료를 끝내고 완전히 집으로 돌아왔다. 다리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흉터가 남았지만 일상생활엔 문제가 없었다. 대회로 학교를 빠질 땐 출석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그는 치료를 마치고도 학교를 가지 않았다. 집에서 잠을 자거나 게임을 할 뿐이었다. 어머니가 내게 부탁했다. 


“태주가 기운이 없으니 네가 옆에서 도와주렴.” 


이런 것만 철저히 내 몫이지. 


원래도 말이 없으시긴 했는데, 태주가 호주로 떠나고 나니 아버지는 집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와는 대화를 하지만 나하곤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나름 편했다. 어머니는 날 신경 썼다. 밤에 공부하고 있으면 자주 방에 와 간식거리를 챙겨주었다. 내가 상처받지 않았을까 하는 눈치였다. 쓸데없는 걱정이다. 난 그보다 창밖에서 깜빡거리는 가로등이 신경 쓰였다. 점멸하는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겨울이 되었다. 12월의 무자비한 추위가 생명들을 훑고 지나갔다. 하얀 눈송이가 세상을 가득 채웠다. 눈은 모든 것을 뒤덮어버렸다. 집에 들어가자 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손을 내밀라더니 편지를 넘겨주었다. 편지봉투 안엔 편지와 사진 한 장. 사진 속에 나와 똑 닮은 남자가 서핑보드를 들고 웃고 있다. 사내의 살이 보기 좋게 탔다. 편지엔 태주가 서핑을 배워 강사로 일하고 있다고 적혀있다. 선명했던 흉터자국도 살이 타며 흐릿해져 있었다. 


우리 사해에 가자. 그렇게 약속했다. 언제 어떻게 갈지 계획은 하나도 없었다. 편지에서 그냥 가자고 하기에, 나는 알겠다고 답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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