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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먼지 Mar 05. 2024

검은 낮

단편소설

시가지의 밤공기가 술렁였다. 제때 잠자리에 들지 못한 도시는 어수선했다. 술집의 귀를 찌르는 노랫소리와 선명한 불빛은 행인을 이끌었다. 술은 그들의 상스러움을 낭만이라는 핑계로 끄집어냈다. 술에 취한 사람들은 지나치게 색정적이나 폭력적이거나, 혹은 둘 다였다. 거리낌 없이 이성을 만나고, 길에서 부딪친 누군가와 싸우기도 하며 우연히도 그들의 욕망이 새어 나왔다. 


“여기서 내려줘요, 아니면 저기서?” 


택시기사가 물었다. 신호등이 없는 도로의 차와 사람이 뒤섞여 머뭇거렸다. 차가 좀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여기서 내려서 걸어갈래요? 고개를 끄덕이고 돈을 지불했다. 차 밖의 공기는 생각보다 쌀쌀했다. 코트를 여미며 걸음을 옮겼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았다. 인상이 선한 덕에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기 어렵지 않았다. 좋은 인상을 쌓기도 쉬웠다. 그들의 관심사를 듣고 그에 대해 아는 것들을 끄집어내어 대답하는 게 다였는데도, 쉽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새로운 사람을 좋아한다는 소리는 익숙한 사람과의 관계가 어렵다는 것과 같았다. 안정적인 관계는 흐르지 않는 물이나 마찬가지였다. 한번 고정된 관계는 쉽게 깨어지지 않았고 나이를 먹을수록 그것은 심해졌다. 나는 그런 사이가 따분하다고 느꼈다. 


익숙한 술집들을 지나고 낯선 가게의 앞에 섰다. 붉은색 네온사인의 간판을 빼고는 희미한 빛도 새어 나오지 않는 건물이었다. Dawn,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열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붙여진 걸까. 편안한 분위기를 강조한 칵테일 바였다. 지나다닐 때마다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곳이었다. 겉을 살펴보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다. 입김을 내뱉으며 그것을 받았다. 


“지금 앞에 왔는데, 어디 있어요?” 

“곧 도착해요. 먼저 들어가 있을래요?” 


처음으로 나눈 대화였다. 문자가 아니라 음성으로 나누는 대화. 생각보다 낮은 음색의 목소리가 좋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그는 차를 타고 온 것 같았다. 내비게이션 속의 여성이 좌회전을 요청하는 소리가 들렸다. 전화를 끊고 그의 말대로 먼저 술집에 들어갔다. 자정이 넘어가는 시간이라 이미 Dawn 안의 사람들은 대부분 취해있는 듯했다. 자리에 앉아 가벼운 샷 한 잔을 주문했다. 서로의 귀나 코를 쓰다듬으며 손장난하는 앞 테이블의 커플을 구경하다 보니 금세 그가 도착했다. 


그와는 커뮤니티에서 만난 사이였다. 연락한 지 별로 안됐지만 나는 딱히 사람을 가리는 성격도 아니었다. 자주 이렇게 술 약속을 잡았다. 만나는 사람은 사는 곳이 멀수록, 나온 학교가 다를수록 좋았다. 어차피 몇 번 만나다 보면 자연스레 멀어질 테니. 


“예상한 것보다 훨씬 어려 보이시네요.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맞춰 봐요. 몇 살로 보이는데요?” 


장난스럽게 물은 건데도 그는 꽤 고심했다. 드물게도 진지한 성격의 남자 같았다. 그의 이름은 민요한, 나이는 서른이었다. 


“저는 정미아라고 해요. 스물여덟 살이고요.” 


요한은 직장인이었다. 오늘 날씨부터 시작해서 직장 상사의 욕, 첫사랑과의 추억까지 얘기하니 마신 술잔이 몇 개인지 셀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요한은 처음엔 경직되어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자 가벼운 농담도 곧 잘했다. 속으로 요한의 평가를 좋게 내렸다. 앞으로 자주 불러서 술을 마셔야겠다고 다짐했으나 그 평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취소됐다. 안주로 시켰던 과일을 거의 다 먹어갈 때였다, 그가 울먹이기 시작한 것은. 잘못 걸렸군. 콜택시라도 불러서 먼저 집에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술주정뱅이는 나쁘지 않았지만 우는 사람은 질색이었다. 요한이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보여주었다. 


“잘 그렸죠?” 


미술실에 가면 흔히 보이던 아그리파 조각상을 그린 그림이었다. 잘 그렸든지 못 그렸든지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일까. 턱을 괸 채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사진을 빤히 보더니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 저한테 동생이 한 명 있거든요. 그 그림은 요한의 동생이 그린 것이라 했다. 요한이 하는 말은 미대를 목표로 재수하고 있던 동생이 며칠 전에 가출했다는 이야기였다. 


안 들어도 뻔했다. 입시도 힘든데 집에서는 구박하고, 뭐 그래서 가출했겠지. 더 들어주면 밤새 고민 상담만 하게 될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밤이라 잡히지도 않는 택시를 잡아 요한을 태웠다. 택시에 탄 요한은 창문 너머로 자꾸만 내 팔을 붙잡았다. 출발해주세요. 그 팔을 거칠게 떼어내고 뒤돌았다. 혼자 술집으로 돌아와 남은 술을 마시는데 그가 팔뚝을 잡던 감촉이 생생했다. 


“네. 고객님. 지난달에 도착한 고지서를 다시 확인해주시겠습니까?” 

“아니, 거기 안 쓰여있다니까 왜 말을 안 들어? 너 누구야. 어디 살아?” 


주말 동안 편히 쉬지 못해 그런지 목덜미가 뻐근했다. 퇴근까지 삼십육 분 남았다. 이 남자가 삼십육 분 동안 떠들 수 있을지 계산해 보았다. 


“왜 대답을 안 해? 내가 너 잘리게 해줄까?” 

“고객님. 대단히 죄송합니다. 본사에서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을 다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콜센터에서 일할수록 느는 것은 몰래 딴짓하는 기술뿐이었다. 헤드폰을 되도록 귀에서 멀리, 비스듬히 걸치고 새 인터넷 창을 열었다. 저번 주에 봤던 영화의 주연이 교통사고가 났다는 인터넷 기사와 사지도 않은 주식의 분석 글을 읽었다. 적당히 대꾸해주니 도돌이표처럼 돌아오는 대화가 질릴 만도 했다. 남자는 마지막으로 내게 찾아오겠다는 경고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얼굴이나 알아야 찾아오든 말든 할 텐데. 그는 내 이름이나 사는 곳, 무엇 하나 알지 못했다. 


요한은 동생을 찾았을까. 호기심이 많은 편도 아닌데 궁금해졌다. 다 큰 남자가 우는 걸 본 것도 오랜만이었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냉장고를 열어서 남은 맥주 캔의 수를 세어보았다. 집에 안줏거리도 없고, 나가서 마시는 게 나았다. 그때 났던 짜증은 다 잊어버리고 핸드폰을 꺼내 최근 통화 목록으로 들어갔다. 


그가 머쓱해 하며 인사를 건넸다. 저번에 콜택시로 주소를 부를 때 알았는데, 그와 같은 동에서 살고 있었다. 서로의 집 주소를 아는 것도 아니었지만 가까이 산다는 게 찝찝했다. 일부로 다른 동에서 약속을 잡았다. 요한은 회사에서 곧바로 왔는지 서류 가방을 들고 팔뚝 부분이 잔뜩 구겨진 셔츠를 입고 왔다. 


“차 찾아오느라 고생했어요. 어디에 대 놓은 지 기억이 안 나서.” 


아차. 그때 그를 보내는 게 급해서 생각을 못 했다. 차를 끌고 왔으니 대리운전을 부르는 게 나았을 텐데. 황급히 요한을 보냈던 일을 사과하자 그는 오히려 자신이 미안하다고 말했다. 동생은 아직도 찾지 못한 상태였다. 동생이 집을 나가고 그가 실종신고를 한 지 벌써 일주일은 되었다. 마음먹고 가출했다면 성인이니 못 갈 곳도 없고, 찾지 못하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가볍게 그를 위로하며 술을 마셨다. 요한은 동생이 왜 집을 나갔는지 짐작되는 바가 있다고 말했다. 


그가 독감으로 아팠던 날이었다. 약을 먹고 회사에서 버티다가 반차를 쓰고 일찍 퇴근했다. 그의 동생은 학원을 나가지 않고 집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날이 추워지니 손도 얼고,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서 그림이 쉽게 그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재수하느라 힘든 동생에게 잔소리하고 싶지 않았다. 오랜만에 함께 밥을 먹으려 동생에게 말을 걸었다. 동생의 방에 들어오자 색이 진하게 칠해진 도화지가 눈에 띄었다. 무엇을 그린 건지 알 수 없는 그림에 물감이 덕지덕지 발라져 있었다. 


“이게 뭐야?” 


동생은 대답 없이 마우스 커서를 움직였다. 요한의 열이 오른 머리가 지끈거렸다. 성큼 발을 옮겼다. 그가 바로 뒤에 왔는데도 동생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대학에 가고 싶어도 못 갔어. 아빠 전 회사에서 정리해고 당했던 건 아냐? 고등학생 때부터 용돈도 없이 내가 벌어 쓰고…….” 

“아, 듣기 싫어. 나도 대학 안 가고 싶어.” 


평소였다면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을 텐데. 동생도 아무 일 없이 그렇게 학원을 쉴 리 없는데. 책상에 놓여있던 그림을 들어 올려 요한은 단숨에 그것을 찢어버렸다. 종이를 거칠게 찢어버리고 그 쪼가리들을 동생의 등으로 던졌다. 


“비싼 물감 사줬더니 이딴 거나 그려?” 


요한의 야단에도 동생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집을 떠났다. 


술을 따르던 요한의 손이 미끄러져 술잔을 타고 술이 몇 방울 바닥으로 떨어졌다.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고 있으니 무언가 떠오르려 했다. 비슷한 이야기였던 거 같은데, 기억이 흐릿했다. 그와 잔을 부딪치고 술을 단숨에 삼켰다. 


“그런데 미아 씨는 자기 얘기 잘 안 하는 편인가 봐요.” 


여럿이 마시는 술자리는 시끄러워서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둘이나 셋이 마시면 어느새 서로에게 너무 가까워지고 말았다. 얕은 줄 알고 들어간 물이 어느새 허리춤까지 차 있을 때, 나는 어떻게 할지 방법을 몰랐다. 발목만 담그는 물놀이는 너무 싱거운 걸까. 고개를 저으며 말을 돌렸다. 


“제 얘긴 들어도 별로 재미없을 거예요. 요한 씨 얘기나 더 해주세요. 어떤 회사에서 일한다고 했죠? 상사를 욕했잖아요, 저번에.” 

“들어주기만 하는 대화는 더 재미없어요.” 


눈을 마주치는 행위가 묘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두 눈을 마주쳤을 뿐인데 옷을 다 벗은 것처럼 나 자신을 숨길 수 없고, 요한과 몸의 한 세포가 연결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얘기할 거리가 무엇이 있을까. 매번 콜센터에서 내게 넘겨지는 진상과 자주 놓치는 35번 버스, 적어도 요한이 바라는 얘깃거리는 그런 게 아닐 듯싶었다. 옆 테이블의 시끄러웠던 사람들마저 나가고 나니 술집 안이 너무 조용해져 버렸다. 


“하고 싶어도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흔히들 그런 얘기를 하잖아요? 누가 밉고, 뭐가 슬펐는지. 저는 그런 얘기를 해본 적이 거의 없어요.” 


같은 동에 살면서도 여태껏 한 번도 만난 적 없던 사람인데, 우린 얼마큼 가까운 사이일까. 딴청을 피우려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깥이 어두워서 뭐가 보이기는커녕 내 얼굴이 비쳤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자신의 얼굴을 마주 볼 수 없다. 어딘가에 비치고, 찍히고, 반사된 얼굴만을 보는 것이다. 평생토록 왜곡된 자신을 인정하며.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습관적으로 머리맡을 뒤져 핸드폰을 찾아냈다. 알람을 끄니 조용해졌다. 목이 칼칼해서 물을 찾으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요한은 아직도 자고 있었다. 나와 반대로 그는 밝은 색을 좋아하는지 이불이며 커튼이 모두 베이지색으로 꾸며져 있었다. 불을 켜지 않아도 바깥이 환했다. 술에 취해 어디서 넘어지기라도 했는지, 시큰거리는 무릎을 살펴보니 멍이 들어있었다. 그가 눈을 뜨기 전에 짐을 챙겨 나섰다. 


어젯밤, 요한의 집에 오고 나서도 한참 동안 진지한 대화를 나눴던 것 같은데. 그와 무슨 얘기를 했는지 도통 기억나질 않았다. 어차피 술김에 하는 소리는 다 헛소리였다. 아무도 제대로 기억 못 할 텐데, 왜 술에 취하면 사람들은 말이 많아질까. 불어오는 바람이 뺨을 때리고 형태도 없이 사라졌다. 한없이 가벼웠다. 요한에게서 오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왜 자꾸 쓰지도 않았는데 별도로 요금이 나가는 거야?” 

“가입할 때 선택하신 요금제대로 청구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모두 고지서에 적혀있는 대로고요.” 

“됐고, 너 이름이 뭐냐고. 고소할 거야. 이젠 싹수없는 네 면상 볼 수 있겠네.” 

“고객님. 저는 매뉴얼대로 방안을 전달할 뿐입니다.” 

“고소할 거라고!” 


점점 커지는 목소리에 옆자리에 앉은 직원들이 힐끔거리며 이쪽을 봤다. 파티션 너머로 눈이 마주치자 홱 고개를 돌렸다. 닭장처럼 한 평도 안 되는 공간에 앉아 온종일 전화만 받다가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만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곤 했다. 참을 수 없이 속에서 메스꺼움이 올라왔다. 


“내 이름이 그렇게 궁금하면 말해줄게. 정미아야. 정미아라고!” 


내 화난 목소리가 낯설었다. 이보다 더 힘들 때도 잘만 참아왔는데, 왜 화났는지 나조차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정작 듣고 싶어 하던 것을 말해주니 남자는 말이 적어졌다. 더듬거리며 뭔가 더 말을 이으려 하기에 다시 쏘아붙였다. 


“나야말로 당신 얼굴 궁금하다. 어디서 뭐 하는 인간인데 이렇게 허구한 날 시비야?” 


내 머리에 걸려있던 헤드폰이 빠져나갔다. 어느새 실장이 내 뒤에 서 있었다. 그녀가 내 헤드폰을 들어 올렸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고 뭔 짓을 저질렀는지 뒤늦게 자각했다. 실장은 착잡해 보이는 얼굴로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바닥만 보고 있자 실장이 말했다. 피곤해 보이니 오늘은 먼저 퇴근하세요. 결국 쫓겨나듯이 회사를 나섰다. 몇몇 직원에게서 괜찮냐는 연락이 왔지만 답장하지 않았다. 


터덜거리며 길을 걷다가 핸드폰을 들었다. 자주 들어가던 커뮤니티를 확인했다. 가까운 곳에서 수많은 번개 모임이 열리고 있었다. 이럴 때야말로 모르는 사람이 필요했다. 내가 겪었던 일을 마음대로 없애거나 바꿀 수 있도록. 그곳에서 나는 다시 밝은 척을 하면 된다. 게시판에 댓글을 달던 도중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무시하려 했지만, 발신자가 신경 쓰여서 그럴 수 없었다. 요한이 보낸 문자였다. 


집에 와서 일찌감치 씻고 누웠다. 착잡한 마음으로 잠이나 잘까 했는데 자꾸 잡생각이 났다. 고민 끝에 이불을 개키고 설렁설렁 포차에 도착했다. 그는 연로한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날 기다린 거 같아 괜스레 가여워 보였지만 내색하지 않고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언제부터 마신 거예요? 술도 못 마시던데.” 

“조금 마셨습니다. 안 오는 줄 알았어요.” 


안주 하나 시켜놓고 마신 술병이 꽤 되었다. 잔에다 물이나 부어주었다. 


“제가 동생 찾는데 왜 같이 있어야 해요? 어디는 지는 어떻게 알고.” 

“요 앞이 근방에 제일 큰 찜질방이니 거기 있을 수도 있죠. 그냥 기다려보려고요.” 


취중 객기론 보이지 않았다. 술에 취하기 전부터 일찌감치 기다리고 있었을 테니. 다만 왜 내게 문자를 보냈는지 모르겠다. 역 앞 포차에서 동생을 찾고 있으니 함께 있어달라고. 며칠간 연락을 무시한 게 무색하게도 이끌리듯 오고 말았다. 


그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내가 저번에 무슨 얘기를 했었느냐고. 별말 안 했다면 다행이지만 나도 기억 안 나는 내 얘기를 그가 알고 있을 거란 사실이 걸렸다. 요한은 마음을 숨기는 게 어색한 사람이었다. 내가 저번 일을 따지기라도 할 것 같았는지 눈을 마주치질 못했다. 오기로 말 한마디 없이 몇 시간 동안 술만 마셨다. 내 마음대로 시킨 꼼장어와 곱창을 먹다가 물었다. 


“동생 친구들한텐 연락해봤어요? 친구한테 가 있을 가능성도 있잖아요.” 

“아는 내에선 연락해봤지만 전부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숨겨주는 거라고 해도 꼬치꼬치 캐묻기도 그렇고, 곧 돌아오겠지 하는 마음에.” 

“경찰한테도 아무 연락 없어요?” 

“네. 미아 씨는…….” 


그가 어물거리는 기색으로 물었다. 


“가출했을 때 어디 있었나요?” 


밤의 가장 큰 단점은 추위와 어둠이다. 추위는 사람의 몸을 움츠리게 만들고 어둠은 마음을 약하게 만든다. 밤을 견디고 있을 그의 동생이 떠올랐다. 어디서 무너지고 있을까. 어떻게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그와 나눴던 대화가 그제야 기억났다. 나는 참다못해 내가 집을 나갔던 경험을 고백하고 말았다. 훌쩍 떠나버린 그의 동생이 남 같지 않아서. 


“몇 달 동안 길거리와 피시방을 전전하며 보냈어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고요?” 

“돌아가고 싶었죠. 동시에 누가 찾아주길 바랐어요.” 


바깥에서 오랜 시간 동안 견뎠다. 낮에는 카페나 피시방에서 지낼 수 있었지만, 밤이 되면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쫓겨났다. 어두워진 밤거리는 위험했고 갈 곳이 없었다. 이상한 사람이 말을 걸기도 했고 소지품을 도둑맞기도 했다. 


한계라고 생각했을 때 공원에서 잠을 자다가 경찰에게 붙잡혔다. 경찰서에서 내 이름을 조회해봤지만 돌아갈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실종신고도 되어있지 않았으니까. 부모님은 날 찾았을까? 내가 서성이던 날 밤, 요한처럼 훌쩍이며 날 위해 울어줬을까? 돌아간 집에선 아무 말도 없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술기운이 알딸딸하게 올랐다. 평소였다면 마시지 않을 만큼 많이 마셨다. 물꼬가 트인 것처럼 오늘 회사에서 싸웠던 고객의 욕을 실컷 하다 보니 그랬다. 비척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포장마차를 나왔다. 그를 노래방 건물의 계단에 앉혀놓고 숙취 음료를 사 왔다. 


“이것 좀 마셔봐요. 오늘 출근은 할 수 있겠어요?” 


돌아오니 요한이 앉은 채로 자고 있었다. 억지로 깨워도 일어나지 않아 그의 옆에 앉았다. 어느새 사위가 밝아오고 있었다. 새벽이라 어슴푸레하게 안개가 꼈다. 사람들이 빠지기 시작한 지 오래라 길거리가 한산했다. 그들의 행색을 보고 있다가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술이 덜 깨 환영을 보는 걸지도 몰랐다. 침침한 눈을 비비고 다시 그 사람을 눈에 담았다. 요한을 닮은 남자가 한 건물에서 나오고 있었다. 열 살이나 차이가 난다지만 멀리서 봐도 그와 닮은 구석이 있었다. 요한의 어깨를 흔들면서 그 남자를 가리켰다. 


“요한 씨, 일어나봐. 요한 씨…….” 


요한은 잠이 깊게 들어서 눈을 뜨지 않았다. 그의 동생으로 보이는 사람을 부르려 입을 열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손을 슬며시 내렸다. 이름을 몰라서 부를만한 호칭도 없었다. 과연 그의 동생이 맞을까? 아니, 내가 붙잡아도 되는 걸까? 남자는 내가 부를 새도 없이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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