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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먼지 Mar 02. 2024

삼각형

단편소설

"사람은 둥글게 살아야 하는 기라. 봐라. 주변에 둥근 사람 싫어하는 사람이 우에 있노, 모난 것들이 미움받는 게지."


각진 목재가 거친 소리를 내면서 갈렸다. 엄마의 굳은살 박힌 손을 따라 사포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내가 아무 대답도 없이 그것을 눈으로 좇으니, 익숙한 솜씨로 사포질을 하던 엄마는 손을 멈추고 웃으셨다. 어딘지 모르게 씁쓸한 낯빛이었다. 


"그럼 난 모난 사람이라 미움받는 거야? 삼각형이나 사각형처럼?"


내 물음에 그녀는 묵묵히 다시 일을 시작했다. 사포 가는 소리가 작업실을 가득 채웠다. 








집에 들어오니 주위가 온통 싸늘하고 어두웠다. 잦은 야근 때문에 이미 익숙해진 관경인데도 문득 낯설게 느껴졌다. 불을 켜고 씻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웠다. 창밖이 어두워서 바깥이 보이긴커녕 유리에 백열등 아래 밝혀진 집 안이 비쳤다. 


서류가방을 열어 앨범을 꺼냈다. 회사에서 갑자기 어린아이의 사진이 필요하다고 해서 아침에 통째로 들고 갔던 앨범이었다. 탕비실에서 사진을 꺼내는 김에 심심풀이로 펼친 앨범을 보고 선배들이 한 마디씩 했다. 


“혜원 씨는 어릴 때부터 순둥이였는 줄 알았는데, 사진을 보니 아니었나 보네?” 


아기 때부터 초등학생 시절까지 이어진 앨범 속엔 어색한 모습이 한가득이었다. 운동회 때 계주를 뛰다가 넘어져서 무릎을 쥐고 우는 사진과, 얼굴에 생크림을 한가득 묻히고 손으로 케이크를 퍼먹는 사진, 동생의 인형을 뺏어든 채 우는 동생을 웃는 표정으로 보고 있는 사진까지 있었다. 직장동료들도 크게 웃으며 구경하느라 난리였다. 


“언제 이렇게 참해진 거야? 아주 사고뭉치였나 봐.” 


장난스러운 어조에 아무렇지 않은 척 대응했다. 


"어릴 때야 뭐 다들 그렇죠."


비교적 얌전해 보이는 사진을 몇 개 빼내고 급하게 앨범을 닫았다. 낯이 후끈거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급하게 앨범을 챙겨 가방에 봉해두듯이 넣어두었지만, 일을 하면서도 자꾸 사진이 눈에 아른거렸다. 마치 약점이라도 숨겨놓은 것처럼 신경이 온통 가방 속 앨범에 가있었다. 


앨범을 꺼내어 다시 책장 구석에 꽂아놓았다.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그렇게까지 창피한 과거도 아닌데. 어릴 땐 다 그런 게 아닌가? 야근으로 피곤해진 몸이 무거웠다. 나도 모르게 잠에 빠져드는 새에도 계속 사진이 생각났다. 


'사람은 둥글게 살아야 하는 기라.'


어릴 때라 정확한 년도는 기억나지 않는다. 계절이 여름이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내가 덥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난리를 치다가 공구함을 떨어뜨려서 직원아저씨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혼난 후였으니까. 


부쩍 초등학교에서 혼나는 날이 많아졌던 때였다. 수업시간에 가만히 있지 못한다고, 선생님한테 말대꾸를 한다고 여간 야단을 맞았던 게 아니다. 또래 아이들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나서기 좋아하는 성격이 학창 시절 친구들 사이에선 독이 됐다. 


같은 반 아이들이 노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던 순간. 선생님께 혼난 후 책상에 엎드려 창밖을 흘기던 순간. 거친 면이 사포로 갈릴 시간이 필요했다. 그 순간의 기억이 선명했다. 









전날 사진에 지나치게 신경을 쓴 탓인지 아침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앓게 된 신경성 위염이 도진 것 같았다. 업무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쓱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아무렇지 않게 앉아있었다. 물론 모니터만 볼뿐,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은 몇 없는 듯했다. 채팅창을 옆으로 띄워놓고 타자를 빠르게 치던 미연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망설이던 말을 꺼냈다. 


“저 오늘 먼저 가도 될까요?” 

"어머. 혜원 씨. 왜?”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요, 죄송합니다. 월차 쓸게요.” 

“그래. 집 가서 쉬어.” 


가방을 챙겨 들고 나오는데 뒤에서 미연선배의 말소리가 작게 들렸다. 


"지금 한창 바쁜데. 여기 안 아픈 사람이 어디 있다고, 다 참고 일하는 거지."


그 옆에서 커피를 타 내오던 지연선배가 가볍게 대꾸했다.


"혜원 씨가 그럴 사람이 아니잖아요. 진짜 아픈가 보죠. 뭐…."


회사를 나오는 발걸음에 점점 힘이 빠졌다. 애써 몸에 힘을 주고 꼿꼿하게 길을 걸었다. 집을 들어오다가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봤다. 이렇게 방에 햇빛이 환하게 들다니. 


정시에 퇴근을 한 적이 몇 번 없고, 주말에도 집에서 밀린 잠만 잤다. 그래서 어두운 집안에 익숙해졌나 보다. 창문을 열자 어느새 부쩍 따듯해진 봄바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도형은 변이 많을수록 원에 가까워진다. 그런 도형들 중에서 최소한의 변으로만 만들어진 삼각형은, 원과 가장 먼 형태가 아닐까? 


사랑받기 위해서, 매끈하게 다듬어진 원이 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조금씩 사람들에게 성격을 맞추고 필요 없는 말을 줄이자 조용한 사람이 되었다. 그런 나를 모두들 만족스러워했다. 


이미 엄마의 사포아래서 내 모난 구석은 다 사라졌다 생각했는데, 남들보다 튀어서 눈 밖에 나는 일은 이제 없어진 줄 알았는데. 


사포로 가구를 문지르는 소리가 귀에 아른거렸다. 책장에 꽂아두었던 앨범을 꺼냈다. 찬찬히 사진들을 눈에 담았다. 그 작은 아이는 언제 떠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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