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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먼지 Mar 01. 2024

세신사

단편소설

숨을 들이쉬면 습기를 머금은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온다. 숨을 내쉬고 때수건을 두른 손으로 손뼉을 한번 친다. 자, 다음 분! 창문틀에 빼곡히 걸쳐진 열쇠는 손님의 순서를 말한다. 오십일 번 손님 다음엔 이십삼 번 손님이 기다린다. 어깨 가득히 인생을 수놓은 남자가 눕는다. 


“팍팍 밀어주쇼.”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살과 근육이 몸에 가득 찬 손님이다. 쉽지 않으리라 예상된다. 팔뚝부터 우리의 호흡은 시작된다. 세신사란 직업이 단순히 때밀이만 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는 손님의 리듬과 몸의 비율을 계산하며 움직인다. 문신이 있는 손님은 때를 밀기 까다롭다. 문신이 있는 부위를 지나치게 세게 밀어선 안 된다. 생판 남의 몸을 만지는 행위는 본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림이 없는 팔의 안쪽부터 밀기 시작한다. 어허으. 손님의 추임새가 내 기운을 북돋는다. 용기를 얻어 잉어가 그려진 왼쪽 갑골을 때수건으로 문지른다. 조금씩 몸의 긴장이 풀어진다. 어디까지나 우리는 겉을 벗길 뿐이지만 손님은 자신의 안을 드러낸다. 


“잉어가 살아 움직일 듯이 팔딱거리네요.” 


한숨처럼 웃음을 내뱉은 그가 말한다. 


“잉어를 새기면 아랫사람이 잘 따른다던데, 이번 신참들은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항상 그렇죠.” 


잉어의 아래에 새겨진 흉터가 간지러운지 그는 어깨를 들썩인다. 손을 배 위로 옮긴다. 배는 남에게 보이기 은밀한 장소다. 약점에 가까운 부위, 그러므로 더 조심스레 밀어야 한다. 그의 사타구니 위로 조금씩 때를 밀어낸다. 살이 붉게 달아오른다. 물을 한 바구니를 들어 그 위로 붓는다. 짝짝. 박수는 반전을 요구한다. 기다렸다는 듯이 남자는 몸을 뒤집는다. 그의 등에는 길게 한 여인이 그려져 있다. 여인은 몸을 반쯤 헐벗은 채 손길을 기다린다. 목덜미부터 아래로 내려간다. 여인을 밈과 동시에 남자를 민다. 발뒤꿈치까지 온 힘을 다해 민다. 뱃사공이 노를 젓듯이 나는 밀물과 썰물 사이의 호흡을 가다듬는다. 삼십 분이 안 되는 사이에 그의 목부터 발끝까지 어루만진다.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띤 상태로 일어난다. 곧바로 다른 이가 다가온다. 


일이 끝나면 보통 저녁이다. 퇴근 후, 세신사들끼리 밥이나 술을 먹기도 한다. 같이 국밥집에서 술을 자주 마시던 형진은 오늘 일찍 들어가 버렸고, 여탕에서 일하는 여자 둘과 밥을 먹는다. 미주는 젊고 쑥스러움이 많아 나에겐 거의 말을 걸지 않는다. 다른 한 명인 정민은 건강한 기운이 내게도 느껴질 정도로 활기에 차 있다. 항상 낯빛이 밝은 여자다. 나는 티브이에 틀어진 뉴스를 집중해서 본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 두 여자가 깔깔거리다가 정민이 내게 말을 건다. 


“주말엔 나라시일 안 하죠? 어디 놀러 갈래요?” 


정민은 여탕에서 세신사를 하는 마흔둘의 여자다. 마사지 일을 하다가 서른이 될 무렵 때밀이를 배워서 경력이 꽤 된다. 일을 빼먹을 때도 가끔 있지만, 목욕탕 주인과 친해 잘리진 않는다. 그녀는 해도 안 뜬 새벽에 먹을 것을 바리바리 싸 들고 와서 과일 한 봉지를 주기도 했다. 염치없이 받아먹은 적이 많아서 거절하지 못한다. 


“그럽시다. 저도 얻어먹은 게 있어 거절은 못 하겠네요.” 


미주는 웃으며 정민의 어깨를 슬쩍 손바닥으로 친다. 그녀는 나까지 약 올리는 눈빛으로 흘긴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국밥에 남은 밥을 마저 던다. 


“그날 제 아들도 같이 와도 되죠? 애가 혼자 있는 걸 싫어해서.” 


정민은 아들이 있지만, 꽤 오래전에 남편과 이혼한 것으로 안다. 가끔 목욕탕 주인이 있는 방에 남자아이가 한 명 있는 것을 보았다. 목욕탕 주인은 막내가 대학생이라고 하니 다른 세신사의 자식일 것이라 생각했다. 아마 그 아이가 정민의 아들일 듯싶다. 


“예. 그렇게 합시다. 일요일에는 일이 있으니 토요일에 만날까요?” 

“좋아요.”   


벌써 한시다. 정민이 오지 않는다. 날이 적당해 춥거나 덥지는 않았지만, 공원 벤치에 한 시간 동안 앉아있으려니 지친다. 원래 연락하는 사이도 아니고 약속 장소랑 시간만 달랑 잡아서 정민의 번호를 모른다. 엉덩이를 떼고 일어난다.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한 아이가 눈에 띈다. 커다란 삼단 도시락을 품에 끌어안은,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반대편 벤치에 앉아있다. 내가 일어서자 눈에 보이게 동요한다. 설마 하는 생각에 눈을 찌푸리고 자세히 보니 입이 작고 눈이 큰 게 정민을 닮았다. 뒷머리를 쓱쓱 털면서 아이에게 다가선다. 


“혹시 정민 씨 아들이니?” 


주먹만 한 고개를 주억거린다. 한참 전부터 이곳에 와있던 거 같은데. 버거워 보이는 도시락을 대신 든다. 허벅지에 도시락 모양대로 눌린 자국이 보인다. 


“엄마는 안 오셨어?” 

“목욕탕에 급한 일이 생겼다고…….” 


들어보니 주말에 일하는 여자 세신사가 목욕탕에 못 나와서 정민이 급하게 대신 일 하러 간 것이다. 아이는 목욕탕에서 몇 번 나를 본 적이 있어 내 얼굴을 알고 있었다. 정민은 준비한 도시락을 건네주며 나를 만나라고 했건만 아이는 말을 못 걸고 한 시간이나 앞에서 보고만 있었다. 끈기가 있다고 해야 할지, 아둔하다 할지. 그냥 집에 가지 않아 다행이다. 뒤늦게 아이를 차에 태워 수목원으로 간다. 안전띠를 매 줘야 하나 고민한다. 말하지 않아도 아이가 혼자 안전띠를 맨다. 어린아이는 어렵다. 어디까지 해줘야 하고, 어디서부터 안 해줘도 되는지 헷갈린다. 


볕이 좋아 봄꽃이 활짝 피었다. 수목원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주말이기까지 해서 많이들 온 모양이다. 적당한 나무를 골라 그 아래에 돗자리를 편다. 도시락을 꼭 안은 아이가 눈치를 보다가 돗자리의 가장자리에 앉는다. 이름이 도진이라고 한다. 도진은 고사리손으로 삼단 도시락을 펼친다. 손이 큰 정민은 성인 넷이 먹어도 될 만큼 도시락을 쌌다. 우리 둘이 다 먹기엔 힘들 것이다. 이 정도면 꽤 무거웠을 텐데, 도진은 불평이 없다. 뚜껑을 차례대로 연다. 여러 가지 재료를 써서 한입 크기로 만든 주먹밥과 가지런히 칼집을 낸 소시지, 껍질까지 보기 좋게 깐 과일들이 고개를 내민다. 


둘 다 말없이 도시락을 먹는다. 나는 원체 말 주변머리가 없고 아이는 낯을 가리는 것 같다. 아이에게 학교생활에 대해서나 정민의 평소 취미 같은 것을 물어본다. 몇 마디 안 하고 말이 끊긴다. 밥을 먹고 나서 수목원 안을 걷는다. 단란한 가족들의 모습들을 지나치며 더욱 서먹해진다. 그냥 보내기엔 마음이 불편해서 차로 강가 주변을 한 바퀴 돈다. 알 수 없는 표정을 한 도진을 집으로 데려다준다. 둘이 산다는 빌라에 내려준다. 도시락을 전해주려 나는 문 앞까지 간다. 도진이 문을 여니 방 안에서 잘 마른빨래의 향이 난다. 도진은 도시락을 받아 들고 쪼르르 집 안으로 들어간다.   


어린 시절, 서해에 있는 작은 섬에서 아버지와 둘이 살았다. 해산물의 비린내며 차가 덜컹거리는 오래된 도로, 자기 일처럼 우리 집 일에 참견하는 사람들까지. 아버지는 그 동네의 크고 작은 사정을 모두 아꼈다. 익숙한 것이 좋은 것이라 믿는 사람이었다. 굳이 다른 곳으로 가봤자 다를 것 없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슈퍼를 물려받으라고 했지만 나는 뭔가 다른 것을 하고 싶었다. 동네에 몇 없는 슈퍼라 닫을 수 없었고, 아버지는 자주 내게 슈퍼 일을 맡겼다. 유통기한이 지난 것들을 버리고 계산 후 거스름돈을 주고 새 물건을 채워 넣었다. 바코드를 찍지 않아 물건들의 가격은 내 마음대로 자주 바뀌었다. 섬은 어디로 가든 바다의 짠내가 배어있다. 항상 뭍으로 가고 싶었다. 보일 리 없는 뭍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바닷가를 맴돌았다. 


고등학생 때까지 나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언제든지 배를 타고 떠날 수 있게 가방에 속옷, 옷가지, 모아놓은 비상금 등을 넣고 다녔다. 하루에 두 번밖에 없는 배편을 외웠다. 뭍으로 가겠다. 머릿속으로 수백 번 생각했다. 섬을 떠나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영영 간다고 생각하니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매번 항구 앞에서 머뭇거리다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도 아무렇지 않게 하교했다. 그런데 좀처럼 갈림길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대로 졸업하면 나도 이 섬에서 평생 머물 것 같아서. 옆집 개처럼 헐렁한 목줄을 차고도 줄이 닿는 그 좁은 공간에만 갇혀버릴까 봐. 주저앉아서 아스팔트 위에 돌 하나를 집어 들고 동그라미를 그렸다. 몇 번이고 그어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어질 때쯤 벌떡 일어났다. 고민하는 새에 한여름이라 교복 셔츠가 축축하게 젖었다. 화장실에서 교복을 사복으로 갈아입고 표를 샀다. 아버지가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 조마조마했다. 배가 출발하고도 한동안 자리에서 고개를 못 들고 있었다. 땀이 식어서 차가워질 무렵 고개를 들어 창을 봤다. 넘실거리는 바다가 실감 나지 않았다. 


미성년자를 받아주는 곳은 거의 없었다. 겨우 들어간 공장에서 종일 북어를 손으로 찢으며 돈을 벌었다. 일이 끝나고 고시원에 들어가면 북어 냄새가 났다. 손끝에서 비린내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때는 휴대전화도 거의 없어서 아버지와 연락할 수단도 없었다. 같이 일하는 형들과 술도 마시고 놀러 다녔다. 섬에서 살았다고 하니 다들 깜짝 놀랐다. 가족 얘기는 일부로 하지 않았다. 


“그래도 고향이 그립지 않아? 돈도 모았을 테니 한번 가봐야지.” 

“에이. 가서 뭐 해요. 나와서 성공을 한 것도 아니고.” 

“가족들한테 연락은 하냐?” 

“하죠. 가끔…….” 


휴일을 맞아 다 같이 해변으로 놀러 간 날, 바다를 보고 있으니 섬에서 있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완 기분이 달랐다. 세상의 끝처럼 느껴지던 바다가 이제는 별거 아니었다. 형의 조언에 따라 표를 끊어 섬으로 가보았다. 물질하는 아주머니들, 좁은 비포장도로, 항구에 줄지어 선 배. 대부분이 그대로였으나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 조금씩 하늘이 저물었다. 어느 정도 걷다가 헐레벌떡 언덕의 오르막길을 뛰기 시작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개들이 나를 보고 짖었다. 슈퍼에 도착했는데 불이 꺼져 있었다. 안에 물건들도 정리되지 않았고 유리문엔 때가 끼어있었다. 문을 쾅쾅 두드리는데 옆집 아저씨가 소리를 듣고 나왔다. 내 얼굴을 보고는 대뜸 이름을 묻는다. 


“너 창석이지.” 

“네. 아부지 어디 가셨어요?” 


아저씨는 손을 들어서 내 등짝이나 얼굴을 마구 때렸다. 말없이 집을 나갔으니 맞을 만했다. 두 손을 올려서 그것을 막는데 그의 손에서 힘이 조금씩 빠졌다. 


“야 이놈아. 왜 이제야 왔어, 못난 놈아…….” 


퍼뜩 정신이 들어 아저씨의 어깨를 잡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가 말했다. 내가 없는 몇 년 새아버지는 많이 아팠다고. 짧은 치료 기간 끝에 세상을 떠났고 상주도 친척이 맡아서 했다. 멍한 정신으로 다시 뭍으로 돌아가 일을 했다. 유골이 있는 봉안당의 주소를 알아와 수첩에 적어두었지만 차마 갈 수가 없었다. 서랍 깊숙이 수첩을 넣어두었다. 아버지라고 좁은 섬 구석이 좋아서 있었을까. 나 혼자 좋자고, 내 안위만 살핀 것이다. 발길질하던 새 멀어졌던 뭍처럼, 그에게서 영영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고향에 다녀온 후 얼굴이 눈에 띄게 수척해지자 형들이 무슨 일이냐며 물어왔지만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대했다. 아버지께 성공해서 돌아가겠다는 다짐이 있던 것도 아닌데, 한번 가기라도 해 볼걸. 어디로 가는지 말이라도 하고 떠날걸. 그즈음 공장에서 나오고, 세신사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미안해서 어떡하죠? 내가 연락을 해야 했는데 번호를 몰라서…….” 

“괜찮아요. 도시락 고마워요. 아주 맛있었어요.” 


주말이 지나고 다시 월요일이다. 정민이 사과한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니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 도진과 놀아줘서 고맙다고 정민이 말한다. 


“도진이가 아주 좋아하더라고요. 오랜만에 소풍을 갔다고.” 


조용한 아이라 티가 안 나서 몰랐다. 그래도 즐거웠다니 다행이다. 수영복 바지로 옷을 갈아입고 목욕탕 안으로 들어간다. 


기가 허한 손님은 힘들다. 보통 그런 손님은 골격이 왜소하고 마른 편이다. 밀릴 때마다 온몸이 같이 밀려나는 것도 그러하고, 나까지 움츠러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프십니까? 그는 고개를 홱홱 젓는다. 나는 손에 힘을 집중한다. 그에 따라 살가죽이 쓱쓱 움직인다. 갈비뼈 안으로 팔딱팔딱 뛰고 있을 심장이 손 아래로 느껴진다. 때를 불리고 왔으면 좋을 것을. 때도 잘 나오지 않는다. 더 밀었다간 아플 게 분명하다. 아쉬울 정도로 살갗을 민다. 뭍으로 낚아 올린 생선처럼 그의 몸이 움찔거린다. 때수건을 벗어내고 어깨를 안마해 주었다. 뭉친 몸은 조금씩 물처럼 유해진다. 땀인지 수증기인지 모를 것이 내 턱을 타고 흘러내린다. 발뒤꿈치까지 밀고 나니 가뜩이나 뽀얀 살이 더 하얘 보인다. 왜소한 손님은 안경을 쓰고 감사 인사를 한다. 오늘은 같이 일하는 장 씨가 교대한다. 나는 때를 밀고 나서 냉탕으로 빠져든다. 차가운 물은 정신을 단숨에 끌어올린다. 


온종일 몸 쓰는 일을 하니 근육통이 흔하다. 욱신거리는 어깨를 돌리며 목욕탕을 나선다. 늙은 주인은 바나나 우유를 하나 건넨다. 빨대가 꽂힌 그대로 나는 그것을 쪽쪽 빨며 밖으로 나간다. 한밤중이라 공기가 쌀쌀하다.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린다. 밖은 딴 세상이다. 모두 옷을 입고 자신의 곁을 내어주지 않으려 발버둥 친다. 세신사를 이십 년 가까이한 나는 옷 태만 봐도 상대의 몸이 보인다. 어깨가 큰 사람, 하체가 튼실한 사람, 발 등까지 주름이 가득한 사람……. 인간의 몸은 급소로 가득하다. 고간, 인중, 명치, 단전. 감각이 생생하다. 때를 밀고 나면 기를 빼앗기는 기분이다. 손님들에게 기를 나누어준 나는 허한 배를 문지르며 집으로 돌아간다. 


일요일이면 성당에 간다. 입구에 놓인 성수로 성호를 긋고 안으로 들어선다. 성당은 언제나 공기가 조금 차다. 기분 좋은 서늘함이 느껴진다. 고해소에 줄이 길다. 고해소에선 고해성사할 수 있다. 신부님께 죄를 말하면 보속을 해준다. 보속은 내 죄를 하느님이 용서해 주는 것이다. 과거에도 면죄부란 게 있다더니, 이 세상은 죄를 용서받기 쉽다. 종교는 잃을 게 많은 사람이 믿는다. 성당에 오면 금반지를 양손에 가득 낀 여자들과 직업 좋은 남자들로 빼곡하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기도한다. 남의 더러움을 벗길 줄이나 알지, 나 스스로는 아무것도 못 한다. 돈을 벌어도 사고 싶은 것이 별로 없는 데다가 가족도 없다. 그래서 성금을 두둑이 낸다. 미사의 내용은 별것 없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느님 죽인 죄로 수천 년을 후회하면서 산다. 죄지은 카인의 후손들이 기도한다.   


햇볕이 강해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들다. 운동장 한쪽에 세워둔 그늘막 아래에 선다. 이마에 손을 대고 운동장을 본다. 아이들은 종대로 늘어서 사회자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다. 정민이 저학년 쪽의 줄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부모와 자식은 서로를 찾아내는 본능 같은 것이 있나 보다. 아이는 준비체조를 하다 말고 정민을 발견했는지 손을 흔든다. 정민도 웃으며 크게 손을 흔든다. 정민이 전날 일이 끝나고 식사를 하던 중 망설이다 말을 꺼냈다. 도진의 학교에서 운동회를 한다는 것이다. 


“혹시 같이 가줄 수 있어요? 가까이 사는 친척도 없고, 저만 가기엔 도진이 기가 죽을까 봐요.” 


사람들은 여러 수단으로 상대를 재보곤 한다. 차의 엠블럼이나 어떤 건물에서 사는지, 가족 구성원은 어떻게 되는지. 학부모 참관 수업이나 운동회에서 곁눈질로 서로를 보며 자신의 수준에 만족하거나 실망하는 사람들. 아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나 또한 과거에 겪었던 일이니까. 도진은 어쩌면 이미 그런 순간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충동적으로 가겠다고 답했다. 정민이 눈에 띄게 안도했다. 문득 아버지도 이런 걱정을 했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마음이 갑갑해졌다. 침대에서 한참 뒤척이다가 몇 시간 자지 못하고 집을 나섰다. 

도진은 운동을 잘하는 편이었다. 다섯 명의 아이 중 일등으로 결승 지점에 도착한다. 정민이 물을 들고 달려가 건네준다. 나는 어색하게 그 옆에 서서 칭찬의 말을 던진다. 아이는 손바닥에 찍힌 일등 스탬프를 보여주며 자랑한다. 옆에서 다른 아이를 챙기던 학부모가 우리에게 말을 건다. 


“팔다리가 길어서 그런지 잘 뛰던데요! 저희 아들 병규가 도진이랑 친하다던데.” 

“도진이가 병규 얘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아이를 앞에 두고 우리는 겉치레로 서로를 칭찬하느라 바쁘다. 마이크에서 다음 식순을 얘기하자 자리를 옮겨 다시 그늘막으로 온다. 


“안녕하세요, 도진이 아버지.” 


그 말에 도진이 고개를 홱 돌려 나를 본다. 나는 애써 침착하게 대화에 어울린다. 도진과 나는 조금도 닮지 않았다. 그들과 함께 있으니 자연스레 부모로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 중 누구도 그 말을 부정하지 않는다. 바람에 나뭇잎이 부대끼며 부산스러운 소리를 낸다. 병규의 부모라던 사람들은 다른 자리로 가고 다시 셋이다. 떠들썩한 가족들 사이에서 우리는 조금 조용해진다. 


“창석 씨는 외롭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둘이 있는 시간이 늘어나며 언젠가 정민이 내게 그렇게 말했다. 일할 때는 바쁜 탓에 잡념이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일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면 문득 못했던 잡념이 물밀 듯 밀려왔다. 내가 어린 시절에 찾던 자유는 이런 것이 아니었다. 뭍에서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무엇을 보고 사는지 궁금했을 뿐이다. 조금 더 바란다면 그들처럼 살고 싶었다. 남들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섬에서 늙어갈 내가 싫었다. 나는 예전보다 더 초라해져 있었다.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의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관한 것이겠지. 정민과 도진, 그리고 내가 한집에 사는 모습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세 명 모이세요!” 


신나게 노래에 맞춰 춤을 추던 도진은 병규와 뭉친다. 옆에 있던 다른 아이까지 끌어당겨 셋이 된다. 도진이 마냥 조용한 줄 알았는데 또래들 사이에선 정민처럼 사교성이 좋았다. 나이에 맞게 재잘거리며 반장의 부모가 돌린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점심시간이 되어 운동장 뒤편 나무 아래 돗자리를 깐다. 저번에 봤던 삼단 도시락통을 정민이 꺼낸다. 


“그때 같이 못 가서 아쉬웠는데, 그래도 오늘 이렇게 셋이 먹으니 좋네요.” 

“불러줘서 고마워요. 도진이가 운동을 잘하는지 몰랐는데.” 


아이는 내색하지 않으며 별거 아니라고 말한다. 친구들 사이에서와 달리 다시 얌전해진다. 내가 어려운지 도진은 내 앞에서 자주 그랬다. 그래도 정민과는 밝게 대화를 잘 나눈다. 전에 정민이 곧 친해질 거라며 나를 격려했지만, 아이와 나는 아직 어떤 관계도 아니었다. 어른스럽게 먼저 다가서지 못하는 내가 한심하다. 


“저 하나만 더 부탁해도 될까요?” 

“무슨 부탁이요?” 

“오후에 도진이랑 이인삼각 경기를 나가기로 했는데 창석 씨가 저 대신 나가줄 수 있을까요?” 


정민은 미소를 띠고 내 대답을 기다린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라 당혹스러움을 감추기 어렵다. 도진은 밥을 먹다가 놀라서 내 눈치를 본다. 이제야 내 실수를 깨닫는다. 내가 누군가의 남편이나 아버지가 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나는 가족의 굴레나 책임에서 한번 도망쳤던 사람이다.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민에게 괜한 기대감을 주고 도진을 거북하게 만든 걸지 모른다. 빈자리라고 아무나 앉을 수 있는 게 아닌데. 확고한 의지도 없이 그 따뜻함만을 쫓고 있었다.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괜한 부탁이었나 봐요. 거절해도 돼요.” 

“아니에요. 잘 뛰지 못할까 봐 걱정한 거뿐이니까. 나가, 나갈게요.” 


정민의 실망한 얼굴을 보기 두려워서 나는 결국 나가겠다고 대답한다. 도진은 일찌감치 식사를 마치고 운동화를 구겨 신으며 친구들과 놀아도 되냐고 묻는다. 놀이터에서 뭉쳐있는 아이들 사이로 도진이 달려간다. 정민의 시선이 그 뒷모습을 따라간다. 


하지만 내 걱정은 괜한 기우였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했으니까. 순식간에 운동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도진의 반 앞에서 비에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훔친다. 남은 일정은 강당에서 진행한다고 말한다. 강당으로 도착한 사람들은 어수선하게 얘기를 나눈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고 단상 위로 올라가더니 목을 가다듬고 말한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이인삼각, 그리고 계주 경기는 취소되었습니다. 박 터트리기와 줄다리기는 실내에서 진행될 예정이니 준비 부탁드립니다.” 


실망한 아이들이 탄식을 뱉는다. 기껏 오후 경기를 준비했을 아이들이 아쉬워하는 게 보인다. 의젓한 도진도 아이였나 보다. 괜히 강당 바닥에 운동화를 부딪쳐 소리를 낸다. 정민이 달래주어도 토라진 아이는 말이 없다. 보다 못해 나까지 합세한다. 도진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한다. 


“도진이는 운동을 참 좋아하는구나. 경기는 다음에 또 나가면 되지.” 

“다음에 언제요? 아저씨랑 또 경기 나갈 수 있어요?” 


아이가 실망한 것은 이인삼각 경기가 취소됐기 때문이었다. 쭈뼛거리던 아이가 다시 한번 묻는다. 


“아저씨가 저희 아빠 하는 거예요?” 


역할 놀이를 하는 것처럼 가벼운 의미로 한 말이 아닐 것이다. 도진은 의젓하지만 소극적인 면이 있다. 아이의 상황이 그렇게 만든 것일까. 정확하게 내가 망설이는 점을 찍어 아이는 내게 묻는다. 아까처럼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하자 도진이 내 손을 내치고 바깥쪽으로 달려 나간다. 도진아! 도진의 발이 턱에 걸려 넘어진다. 정민이 아이에게 달려가 까진 무릎을 살핀다. 나는 멀리서 그것을 지켜만 본다. 


정민은 도진을 달래준 것처럼 내게 걱정 말라고 말한다. 운동회 이후로 도진은 나를 보지 않는다. 정민은 내가 망설이는 것을 아는지 오히려 가족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는다. 정민의 과분한 배려를 받으며 나는 아버지나 남편이 아닌 아저씨와 직장동료로서 그 곁에 머무른다. 


꿈을 꾼다. 나는 교복을 입고 항구로 나선다. 어리석은 과거의 내가 배를 타는 모습을 보고 지금의 나는 소리친다. 뭐라고 소리치는지 나도 알 수 없다. 손을 뻗어도 잡히지 않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고등학생 시절의 나는 떠난다. 그리고 아버지가 달려온다. 짝짝이 슬리퍼를 신고 난닝구 차림으로 헐레벌떡 나를 쫓는다. 턱에 걸려 그만 넘어지고 만다. 배는 이미 떠나버리고 아버지는 그것을 주저앉아서 보기만 한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나는 어린아이가 된다. 손에는 때수건을 걸친 채 울면서 항구에 다시 돌아온다. 아버지는 나를 다그치다 손을 잡아준다. 그 손을 잡고. 그리고 나는 잠에서 깬다. 


속이 아침부터 더부룩하더니, 체한 모양이다. 세신사는 일하는 동안 밥도 제대로 못 먹기 때문에 중간에 계란이나 음료수를 많이 먹는다. 급하게 너무 많이 먹었나 보다. 손발이 저리다. 일에 집중이 안 된다.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때도 잘 안 나온다. 참다못해 손님이 한마디 한다. 


“왜 이리 살살해요. 좀 더 세게 해 주시지.” 

“아. 죄송합니다.” 


아플 때 참고 일하다가 남들이 몰라주면 서럽다. 기계처럼 순서에 따라 때를 밀기는 하는데 더 서 있지 못할 것 같다. 옆에서 때를 미는 형진에게 잠깐만 쉬고 오겠다고 말한다. 토를 하고 싶은데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변기 앞에 앉아 있다가 탈의실로 돌아온다. 단단히 얹힌 것 같다. 몸에 물을 끼얹은 것처럼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벌을 받는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언제 어떤 형태로 올진 알 수 없으나 언젠가 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게 지금인가? 나는 아버지에게도, 정민과 도진에게도 상처를 주었다. 아버지에게 저지른 죄가 마지막일 거라 생각했는데 또 실수했다. 이런 내가 떳떳이 사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평상 위에 눕는다. 삼십 분가량이 지나니 형진이 나를 찾으러 온다. 


“뭐야. 어디 아프세요?” 

“속이 얹힌 모양인데. 나아지질 않네.” 


형진이 카운터로 나가더니 실과 바늘을 들고 온다. 아주머니가 손이라도 따보라고 준 것이다. 얻어온 실로 손가락을 칭칭 묶는다. 묶는데도 피를 모아야 한다고 형진이 한참이나 팔을 조물거리다가 겨우 묶는다. 형진은 엄지손가락에 실을 묶고서 망설인다. 손님들은 때밀이가 사라져서 찾으러 왔다가 도로 간다. 앉은 자세가 불편해서 속만 더 안 좋아진다. 나는 재촉한다. 


“얼른 좀 찔러봐. 일 나가야지.” 

“저도 손 따본 적이 없어서…….” 


체한 게 이렇게 고통스럽던가. 죽을 지경이다. 손님이 자꾸 들락날락 우리를 확인해서 형진에게 가보라 말한다. 형진이 급하게 들어가고 나는 도로 눕는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누가 내 손가락을 쥔다. 기력이 없어서 고개만 돌려 확인하니 도진이다. 오랜만에 보니 그 새에 더 자란 거 같다. 반가움과 두려움이 동시에 든다. 오늘도 목욕탕 주인 방에서 있던 모양이다. 매스꺼움을 참으며 말한다. 


“여긴 왜 왔니?” 

“아저씨 어디 아파요?” 


도진은 물음은 무시하고 내 몰골을 살핀다. 체한 거라고 답하니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나를 본다. 내가 저지른 잘못은 다 없던 일처럼. 


“저도 체한 적 있어요. 그때 엄마가 손 따줬는데?” 


정민이 손을 딸 줄 안다면 가서 부탁하고 싶지만 여탕에 들어갈 수도, 그녀가 여기로 올 수도 없다. 도진이 실타래에 꽂아둔 바늘을 빼더니 나를 빤히 본다. 설마 손을 따준다는 걸까. 


“저도 손 따는 법 알아요.” 


어린애한테 부탁할 일도 아니지만 이젠 한계다. 손을 내어주니 작은 손으로 그것을 잡는다. 묶어놓은 엄지손가락이 빨갛더니 이제는 검어질 지경이다. 아이는 단숨에 손톱과 관절 사이를 찌른다. 검은 피가 송골송골 맺히더니 손을 타고 흐른다. 도진이 화장실로 달려가 휴지를 들고 온다. 반대편 손도 마저 딴다. 속이 시원하다. 누가 명치를 꾹 누르고 있듯이 아팠던 게 편해진다. 왠지 모를 황홀함마저 느낀다. 아이는 나를 자기 무릎 위에 눕게 하더니 내 엄지와 검지 사이를 마저 주무른다. 눈물이 흐른다. 손에 피가 멎자 도진이 손을 닦던 휴지로 눈가를 닦아준다. 


“많이 아프세요?” 

“아니.” 


한참이나 어린 도진이가 나보다 더 어른스럽다. 내가 저지른 죄를 너무 쉽게 용서해 준다. 성당에서 매주 헌금을 해도 아무 기미도 보이지 않았는데, 내 몸이 가벼워진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도진의 손을 꼭 잡아본다. 거친 내 손을 도진의 부드러운 손이 마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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