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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먼지 Feb 29. 2024

똬리

단편소설

  뱀의 눈자위가 UVB 램프를 받아 빛났다. 비늘은 기름칠한 듯 윤기가 돌았다. 이 뱀의 종은 볼 파이톤이다. 위협을 느끼면 몸을 둥글게 마는 습성 때문에 그런 명칭을 가지게 되었다. 낯선 것을 보고 움츠러드는 반응은 터득하지 않아도 누구나 가진 본능이다. 


  “곧 탈피할 시기라 활동이 적어. 그때 온 힘을 다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거든.”


  성진의 투박한 손이 사육장의 뚜껑을 열었다. 그는 해동시킨 새끼 쥐의 사체를 집게로 들어 볼 파이톤의 앞에서 흔들었다. 뱀이 다물고 있던 입을 벌리고 불그스름한 혀를 날름거렸다. 볼 파이톤이 쥐를 발견하고 잽싸게 물었다. 그리고 천천히 삼키기 시작했다. 뱀은 삼킨 것을 통째로 소화하는 재주를 가졌다. 씹지도 않고, 입안에 들어온 것이라면 뼈까지. 그래서 종종 몸에 비해 큰 것을 먹다가 죽기도 한다. 성진은 뱀이 먹이를 삼킨 것을 확인하고 뚜껑을 덮었다.      


  가로수길의 나무가 부쩍 울창해졌다. 이파리의 색도 일주일 전보다 진했다. 그에 반해 퇴근하는 직장인들의 구겨진 소매와 푸석한 뺨은 항상 비슷했다. 외투를 벗어 팔에 걸쳤다. 풀어진 날씨에 조금만 걸어도 땀이 났다. 젖은 머리카락이 몇 가닥 이마에 달라붙었다. 오랫동안 고수한 긴 머리가 문득 거슬렸다.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다가 한 행인을 발견했다. 


  머리를 민 남자였다. 그의 동그란 두상이 눈에 띄었다. 다음으로 시선을 끈 것은 그의 두 눈동자였다. 사람의 눈이 그렇게 무심할 수 있을까. 곁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관심조차 없었다. 상념에 빠져있거나 무언가에 체념한 사람이 할 법한 눈이었다. 그의 옆을 지날 때, 누군가와 어깨가 부딪혔다. 퇴근길에 늘어난 사람들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대로 발이 꼬여 엎어지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넘어지면서 민머리 남자의 가방을 붙잡았다. 그의 가방이 열려있었는지 소지품이 쏟아졌다. 사람들이 우리를 비껴지나가고 나는 긁힌 무릎을 살폈다. 남자는 나를 쳐다보지 않고 짐을 챙겼다. 그 모습을 보다가 뒤늦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마지막 물건을 챙긴 뒤 자리를 떠났다. 


  걸음을 옮기는데 구두에 뭔가가 걸렸다. 내가 앉아있던 자리에 그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물건이 남아 있었다. 그것을 들고 남자를 불렀지만 이미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손에 쥔 물건을 살폈다. 묵직하다 싶더니 쇠로 된 네모난 물체였다. 무작정 그의 뒤를 쫓았다. 떨어뜨린 물건을 전해주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은 아니었다. 불쑥 든 호기심이 걸음을 재촉했다. 


  그의 뒤를 쫓으며 심장이 두근대는 것을 느꼈다. 십 분 정도 걸었을까. 노을이 금세 빛을 잃고 하늘에 어둠이 드리워졌다.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그가 코너를 돌아 골목으로 들어갔다. 내가 골목길에 들어섰을 때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곳엔 Black mamba라는 이름의 건물만 있었다. Cafe&Pub라고 적힌 네온사인의 빛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블랙맘바의 실내는 어두웠다. 두꺼운 커튼을 쳐서 바깥의 빛이 새어들지 않았다. 곳곳에 배치된 조명이 아니라면 코앞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희미하게 흙냄새가 났다. 무성하게 자란 열대식물의 잎가지가 볼에 스쳤다. 


  어디선가 클리포드 브라운의 재즈가 들렸다. 테이블 배치는 보통 카페와 같지만 곳곳에 사육장이 진열되어 있다는 점이 달랐다. 사육장 안엔 뱀이 살았다. 손가락 굵기의 뱀이 있는가 하면 팔뚝보다 두꺼워 보이는 것도 있었다. 뱀이 날카로운 이로 내 목덜미를 무는 상상을 했다. 팔뚝에 조 알 같은 소름이 돋았다. 멀뚱히 서 있는 나를 보고 직원이 다가왔다.


  “이곳은 스네이크 카페입니다. 커피를 주문하면 뱀을 만져보실 수 있어요.”


  뱀을 만지는 카페라니, 처음 와보는 곳이었다. 직원이 안내해 준 자리에 앉았다. 붉은 가죽 소파의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대충 아무 커피를 골라서 시켰다.


  “뱀을 만져보시겠어요? 물지 않아요.”


  직원의 제안에 고개를 저었다. 강아지나 고양이도 아닌 뱀을 만진다는 행위에 거부감이 들었다. 삼십 분 뒤면 스네이크 카페에서 펍으로 바뀌어 뱀을 만질 수 없다고 했지만 아쉬움은 없었다. 블랙맘바의 묘한 분위기에 익숙한지 다른 손님들은 편해 보였다. 혼자 붕 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뒤늦게 여기에 들어온 이유를 떠올리고 그를 찾기 위해 주위를 살폈다. 


  남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 두리번거리다가 한숨을 쉬었다. 잘못 들어온 것일까. 그때 안쪽에서 그 사람이 커피를 들고 나왔다. 다른 직원처럼 검은 앞치마를 두른 채였다. 그는 말없이 테이블에 잔을 두고 돌아갔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아까 주운 물건을 쥐었다. 네모난 쇳덩이의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집에 돌아가 찾아보니 그 물건은 캐스트 퍼즐이라는 장난감이었다. 캐스트 퍼즐이란 금속으로 만들어진 입체 퍼즐이다. 한 개로 뭉쳐진 두 개 이상의 조각을 푸는 것이 목적이다. 어릴 때 비슷한 것을 문구점에서 산 적이 있다. 그때 갖고 놀던 것과 달리 남자의 물건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오기로 힘을 주어 마구 당겨봤지만 그대로였다. 그에게 전해줬어야 했는데 왜 주지 않은 건지. 몇 번 더 만지작거리다가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그 뒤로 주말이면 간혹 블랙맘바에 갔다. 낮에 가면 뱀을 만지는 손님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마셨고, 밤에 가면 늘어지는 재즈를 들으며 위스키를 마셨다. 그 사람과 대화한 적은 없다. 내가 먼저 말을 건다 한들 어떤 얘기를 해야 할지 짐작되지 않았다. 한 달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커피를 마시던 내게 그가 다가왔다. 그는 손님에게 잔을 내줄 때나 뱀을 꺼내줄 때 외엔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걸어오는 시간 동안 몸이 떨리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남자가 물었다.


  “뱀이 무서워서 보기만 하는 거예요?”


  고운 얼굴에 비해 목소리가 허스키했다. 그의 물음에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굳이 만지고 싶진 않아서요. 보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내 말을 들은 남자가 작게 웃었다. 비웃음에 가까운 미소였다. 왜 웃느냐고 묻지 않았다. 이유가 짐작됐다. 내가 뱀을 무서워하는 것처럼 보였겠지. 오히려 묻고 싶었다. 왜 뱀을 만져야 하느냐고. 물지 않는 뱀을 장난감처럼 만지고 노는 짓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생각을 가지고 블랙맘바에 계속 오는 내가 이상한 거겠지. 남자는 더 묻지 않고 사라졌다.


  어느 날은 블랙맘바에서 술을 같이 마시자는 제안을 받았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자에게서였다. 그녀는 등이 길게 파인 검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호기심에 같이 앉아 몇 마디를 나눴다. 그 덕에 알게 되었다. 펍의 분위기가 묘한 이유를. 블랙맘바는 이반들의 아지트였다. 재즈 음악 아래서 오가는 대화는 은밀했다. 모르는 사람도 있지만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것 같았다. 매번 이곳에 오는 나를 그녀는 레즈비언이라고 오해한 것이다. 그녀는 사과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잭 콕을 몇 잔 비운 그녀가 자신의 친구를 소개해주겠다며 일어섰다. 


  그녀를 따라온 것은 그 남자였다. 남자의 이름은 성진이었다. 그에게 비웃음을 받은 후로 대화를 해본 적이 없었다.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다트를 했다. 둘은 수준급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처참하게 지자 성진이 또 비뚜름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평소라면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을 텐데. 그걸 보고 술김에 화를 냈다. 직장상사도 나를 우습게 아는데, 모두가 나를 만만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저번부터 그러더니, 왜 저를 비웃는 거예요! 내가 이상해요? 객기 어린 말을 몇 마디하고 나자, 술이 깼다. 블랙맘바의 사장이 싸움 난 줄 알고 부엌에서 나왔다. 나를 말리려 다가오자 성진이 그에게 말했다.


  “형. 우리 싸우는 거 아니야. 내가 실수해서 그래.”


  그때 처음으로 성진의 다른 눈빛을 봤다. 그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일하는 내내 무표정하던 그인데. 내게 사과하는 성진의 모습을 보니, 더욱 민망해졌다. 사장은 싸우지 말라며 당부하고 돌아갔다. 성진은 그 남자의 뒷모습을 훑다가 고개를 돌렸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일순간 성진의 미소 뒤에 슬픈 기색을 보았다. 나는 그것을 보고 당황스러운 나머지 딴소리를 했다.


  “사장님한테 펍이 참 예쁘다고 전해주세요.”


  대답도 듣지 않고 짐을 챙겨 급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로 성진은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웠으나 싫지 않았다. 성진과 친해지면서 블랙맘바의 사장인 도훈과도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다. 도훈은 밝고 낙천적인 사람이었다. 가끔 농담을 던지거나 칵테일을 추천해주기도 했다.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다. 시키지 않은 메뉴를 서비스로 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성진의 시선이 줄곧 따라왔다.   

  

  뱀의 아름다움은 공포에서 오는 거야. 성진은 그 말을 자주 했다. 그는 뱀을 만질 때면 온몸에 소름이 돋고 손이 벌벌 떨린다고 했다. 성진은 자극을 원했다. 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큰 위험을. 그는 집에서도 뱀을 키웠다. 하나같이 크기가 크고 강한 녀석들로만. 밀수를 통해 독사를 키우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성진은 더 강한 뱀을 데려올 거라며 집의 가장 큰 사육장은 비워두었다. 빈 사육장을 보며 실없이 웃기도 하고, 먼지라도 앉을 새면 구석구석 유리를 닦았다. 


  성진의 턱에 땀이 맺혔다. 자칫하면 손이 미끄러질 뻔했다. 목이 붉게 변하고, 핏줄이 튀어나올 정도로 불거졌다. 그 위에 얹어진 내 손이 창백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그의 고개가 아예 뒤로 넘어가기 전에 힘을 풀었다. 성진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침대에 누웠다. 그에게 기대 가슴에 귀를 댔다. 맥동하는 심장 소리가 점점 차분해졌다. 손을 뻗어 바닥에 있던 물을 성진에게 건넸다. 성진의 몸엔 자잘한 흉터가 많았다. 대부분이 무언가에 베인 상처였다. 


  세상엔 아픈 것에서 쾌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그는 고통과 쾌락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성진의 피학증 Masochism을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를 정상이라고 할 수 없지만 결국 부탁에 응해주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땀범벅이 된 그의 몸을 매만지다가 팔뚝을 짚었다. 팔뚝에 새겨진 상흔은 생김새가 달랐다. 그 자국은 먹잇감을 씹을 수 없는 생물의 구강구조를 닮았다.


  “하연아. 너도 뱀을 키워보는 건 어때?”


  성진이 친절히 뱀의 사진까지 보여주며 말했다. 콘 스네이크, 킹 스네이크, 렛 스네이크, 물뱀까지. 이 뱀의 습성은 어떻고, 또 얼마나 위험하냐면……. 성진은 뱀과 도훈에 대한 것을 말할 때만 눈이 빛났다. 성진은 블랙맘바의 아르바이트면접 때 다짜고짜 숙식도 제공해 달라고 했다. 성진의 눈가에 든 멍을 본 도훈은 제안에 응했다. 


  성진이 얘기하길 도훈의 부모님은 지독한 호모포비아였다. 도훈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집에서 쫓겨나듯이 나와 일을 시작했다. 십 년 가까이 번 돈에 빚까지 내서 그는 겨우 블랙맘바를 열었다. 블랙맘바는 겨우 자리 잡은 도훈의 공간이었고, 곧 성진의 안식처가 되었다. 성진은 도훈의 집에서 살던 시절을 자주 얘기했다. 성진의 감정을 나는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민둥산 같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불그스름한 빛이 쏟아졌다. 반 정도 남은 칵테일 잔을 들어 단숨에 삼켰다. 독한 향에 기침이 나왔다. 혼자 바에 들려 몇 잔 마시는 것은 오래된 습관이었다. 블랙맘바를 갈 때도 있지만 보통은 멀리 돌아서라도 집과 거리가 있는 술집을 골랐다. 이렇게 마시다 보면 간혹 말을 거는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 가벼운 의도를 가진 사람이었기에 핑계를 대며 자리를 피했다. 오늘은 조금 경우가 달랐다.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 집에 갈 수 없었다. 


  한 남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시선을 애써 무시하고 눈으로 테이블의 무늬를 훑었다. 기분 나쁘게 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한 느긋함이 느껴져서 싫었다. 그 남자는 주위 풍경에 자연스럽게 어울려 있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있으나 분위기가 달랐다. 마치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던 사람처럼 녹아들었다. 


  그는 나를 정물화나 조각상 보듯이 감상했다. 미술관에서 한 작품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는 것처럼 정성 들여서. 어째서인지 그를 쳐다볼 수가 없었다. 문득 두려워졌다. 학습된 공포처럼, 내 안에 도사리고 있던 무언가가 몸을 굳게 만들었다. 그가 내게 걸어왔다.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와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술에 취했는지 정신이 몽롱했다. 남자의 이름은 재환이었다. 함께 술집에서 나와 그의 차에 탔다. 차가운 시트를 매만지다가 잠이 들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차가 가고 있었다. 눈이 침침했다. 어렴풋이 물건의 형태가 보였다. 대리를 부른 건지 다른 사람이 운전대에 있었다. 재환의 어깨에 기대어 숨을 들이셨다. 은은한 향기가 감돌았다. 


  향기의 정체를 찾으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앞 좌석에 모과가 놓여 있었다. 그것은 가로등의 불을 받아 빛났다. 윤기가 돌고 탐스러웠다. 어느새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왔다.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이 영겁처럼 이어졌다. 그는 집에 나를 바래다주고 떠났다. 다음 날 아침 지갑에 꽂혀있던 명함을 발견했다. 한재환. 명함에 적힌 이름을 엄지손가락으로 눌렀다 뗐다. 떫고 신 모과의 맛이 혀끝에 맴도는 듯했다.     


  “내일 퀴어퍼레이드가 끝나면 바에서 파티를 열기로 했어요.”


  도훈이 표정이 내내 밝더니, 이유가 있었다. 매년 여름에 열리는 서울 퀴어퍼레이드를 기념해서 행사가 끝나면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파티를 열기로 한 것이다. 퀴어퍼레이드는 성 소수자들의 축제였다. 동성애자들이 자신을 마음껏 표현하고 도심을 행진하는 일 년에 한 번뿐인 날이다. 인터넷상에서 만나던 지인들을 초대하기 위해 초대장도 만들었다고 도훈이 말했다. 도훈이 신나 있는 데 반해 성진은 별로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말없이 테이블을 닦는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너는 안 기뻐? 도훈 오빠는 저렇게 좋아하는데.”


  성진이 한숨을 쉬더니 불만을 표했다.


  “도훈 형은 너무 쉽게 생각해.”


  축제는 점점 규모가 커지고 있지만 한편으로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성진은 그날도 행사에 가지 않고 카페에서 일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은근히 가보는 게 좋지 않겠냐고 권유했지만 그는 확고했다. 억지로 가게 할 순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도훈의 신난 얼굴을 보니 나까지 내심 기대되었다. 아쉽게도 나는 내일은 회사에서 출장 일정이 잡혀있다. 화제를 바꿀 겸 성진에게 재환에 대해 얘기했다. 성진은 의심스럽다며 재환에게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고 웃었다. 그런 내게 성진이 진지하게 말했다.


  “너는 나와 닮았어. 그러니까 내 말을 이해할 거야.”


  항상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 그였지만, 유달리 단호한 말투였다. 그의 말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무슨 의미인지 묻지 않았지만, 애써 숨기고 있던 치부를 들킨 기분이었다. 굳은 표정으로 시선을 피했다. 잔을 쥔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성진에게 변명이나 반박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블랙맘바에서 나온 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무릎을 끌어안고 가만히 있었다. 뱀처럼 똬리를 틀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내 뻣뻣한 몸은 웅크려도 빈틈이 남았다. 


  일주일 만에 블랙맘바를 찾아갔을 땐, 평일인데도 가게의 문이 닫혀있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가게의 유리창을 손보는 중이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주변을 살펴보니 유리 조각이 문 앞에 널브러져 있었다. 핸드폰을 꺼내 성진의 번호를 누르다가 지우고 도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끊기기 전 간신히 그가 전화를 받았다. 하연 씨, 그날 안 오셔서 다행이에요. 퍼레이드가 끝나고 파티가 한창이던 블랙맘바에 한 남자가 돌을 던졌다. 주먹만 한 돌을. 


  술에 취해 웃고 떠들던 사람들은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도훈이 일찍 취해 성진에게 펍을 맡기고 집에 들어간 후였다. 성진이 나갔다가 멱살이 잡혀 실랑이까지 했다. 돌은 던진 남자는 퍼레이드에서 나눠준 초대장을 보고 뒤따라온 것으로 추정됐다. 그는 품에서 빨간색 종이를 꺼내 들었다. 반대 집회를 하는 사람들이 들고 있던 플래카드였다. 동성애 절대 반대! 그는 경찰차에 태워지는 순간에도 욕을 뱉었다. 이 얘기를 하는 도훈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리고 저, 고향에 돌아가기로 했어요.”


  도훈의 고향은 서울에서 네 시간은 가야 할 정도로 먼 곳에 있다. 그는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됐다는 전화를 받고 가게를 정리하는 중이라고 했다. 자신을 쫓아낸 부모에게 다시 돌아가야 한다니. 도훈은 짐짓 태연한 척하려 애썼다. 나는 예상치 못한 일에 당황했을 뿐 어쭙잖은 위로도 하지 못했다. 전화를 끊고 가게를 살폈다. 유리창 너머로 블랙맘바의 어두운 실내가 보였다. 검은 천에 덮인 진열장에 뱀들의 실루엣이 보일 듯 말 듯했다.      


  나는 입을 뗐다가 다시 다물었다. 성진의 손가락 사이에 있던 담배가 입으로 옮겨갔다. 시선이 그 연기를 따르다가 다시 바닥을 향했다. 성진을 위로하기 위해 그의 집에 왔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우물쭈물 물었다.

 

  “알고 있었어?”

  “뭘?”

  “도훈 오빠가 고향에 간다는 거.”


  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안 그래도 올해 초부터 부모님이 계속 연락하시더라. 지들 필요할 때만 찾지. 형 고생할 땐 모른 척하더니.”


  나는 그들을 알게 된 지 일 년도 되지 않았지만 도훈과 성진은 몇 년간 블랙맘바에 온 정성을 다했다. 그런 공간이 곧 사라진다는데, 성진은 괜찮은 걸까? 베란다로 걸어 나가는 그의 등 뒤로 연기가 흩어졌다. 성진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 그 남자한테 연락했어.”


  어젯밤 고민 끝에 재환에게 연락했다. 늦은 감이 있었지만 재환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도훈이 고향에 간다는 소식을 듣고 내내 재환이 떠올랐다. 성진이 고개를 홱 돌려 나를 쳐다봤다.


  “그 얘기를 왜 나한테 해?”

  “너는 괜찮아? 도훈 오빠를 이대로 보내도?”


  내 말을 들은 성진이 크게 웃었다. 깜짝 놀라 쳐다봤지만 성진은 고개를 숙여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사레가 들려 기침을 할 정도까지 웃던 그가 툭 뱉었다. 


  “너나, 도훈 형이나 모든 일이 쉽나 봐?”   


성진이 담배를 재떨이에 끄고 나를 내려 보며 말했다.


  “너는 나처럼 평생 혼자 있어야 하는 운명이야.”


  성진이 이런 말을 한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여러 번 들으면서도 모른 체하던 말이었지만 부인할 수 없었다. 그의 피학증을 도와줄 때면 목을 조르거나, 두꺼운 채찍으로 때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어떤 흉터도 남기지 않았다. 나는 병적으로 흔적이 남는 것을 피했다. 비단 성진과의 관계에서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깊이 속하는 게 두려워서 나는 매번 맴돌기만 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는 알고 있던 것이다. 


  말이 없던 그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서랍을 뒤지는 소리가 났다. 그가 들고 나온 것은 손바닥 크기의 칼이었다. 예리한 칼날이 형광등을 받아 빛났다. 성진을 그것을 건네며 말했다.


  “아니라면 증명해 봐. 그 칼로 내 손에 상처를 내.”


  칼을 받지 않자 억지로 손에 쥐게 했다. 그가 손바닥을 내밀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칼을 감싸 쥐었다. 새된 목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싫어. 어째서 내가 그런 짓을 해야 해?”

  “고작 이것도 못 하면서 뭘 하겠다는 거야. 왜 그날 나를 따라왔어?”


  성진은 내 밑바닥을 마구 헤집었다. 구역질이 날 것 같다. 그가 내 손을 잡고 끌어당겼다. 칼에 손바닥이 닿으려 했다. 땀이 나서 손잡이가 미끄러웠다. 손아귀에 힘을 주어 벗어나려고 애썼다. 칼을 아래로 눌러서 떨어뜨렸다. 툭. 바닥에 칼이 떨어졌다. 성진의 손을 살폈다. 얇게 그어진 선에서 피가 맺히더니 흘러내렸다. 그의 뺨을 때렸다. 도망치듯 짐을 챙겨 나섰다. 닫히는 문 새로 성진의 눈이 보였다.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거야. 문이 닫혔다.


  성진의 집에서 돌아와 바로 침대에 누웠다. 손을 쥐었다 폈다. 방의 불을 켜지 않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상처가 크면 어떡하지, 병원에 데려갔어야 했는데. 남겨진 그는 뭘 하고 있을까.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핸드폰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성진이 보낸 것일까 봐 재빨리 확인했다. 한재환. 그 남자가 보낸 문자였다. 확인하지 않고 구석에 핸드폰을 밀어 넣었다.


  마지막 소파를 트럭에 실었다. 빨간색 가죽 소파는 햇빛 아래서 보니 조금 색이 바랜 것 같았다. 낑낑대며 밖으로 튀어나온 가구를 밀어 넣자 성진이 말없이 도왔다. 블랙맘바의 멀쩡한 물건들은 중고로 팔고, 팔리지 않은 것들은 트럭에 실어 쓰레기장으로 보내기로 했다. 뱀을 분양시키는 게 가장 큰 일이었지만 성진이 몇 마리 데려가고 단골손님 몇 분에게 맡겨서 겨우 해결할 수 있었다. 땀에 젖어 축축해진 목장갑을 벗었다. 아늑하던 카페가 해일에 휩쓸려 나간 듯 휑했다. 화분에서 뽑힌 이름 모를 열대식물이 벌써 시들했다. 도훈이 눈썹 머리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내며 말했다.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올까 말까 고민했던 내가 못난 사람처럼 느껴졌다. 도훈은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순간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성진은 입술을 깨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덤덤한 줄 알았던 그가 그런 모습을 하고 있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도훈이 성진에게 다가갔다. 수건으로 성진의 이마를 닦아주다가 두 팔로 감싸 안았다. 성진의 날개뼈가 셔츠 위로 도드라졌다. 나는 그들을 지켜보았다. 도훈이 떠날 때, 연락하겠다는 한마디가 나오지 않아서 입에 뭐를 문 사람처럼 우물거렸다. 도훈이 탄 차가 멀어졌다. 나는 성진이 저번에 한 행동을 용서할 수 없었다. 모른 척하고 먼저 가려 했다. 하지만 성진의 몸이 마구 떨리고 있었다. 


  “괜찮아?”


  안 그래도 하얗던 그의 피부가 햇빛 아래 더 창백해 보였다.


  “안 괜찮을 게 뭐 있겠어.”


  그가 대뜸 손을 내밀었다. 손에 새겨진 희미한 흉터를 보여주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발견도 못 할 만큼 작은 자국이었다. 안도하는 동시에 왠지 모르게 허탈해졌다. 옆 가게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 대화 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성진은 위태로워 보이는 모습으로 떠났다.


  더워진 날씨에 창문을 열고, 선풍기를 쐬며 늘어졌다. 생각에 잠기기도 했지만, 훌쩍 다시 빠져나왔다. 잡념을 없애기 위해 일에 몰두했다. 엉뚱한 걸 인쇄하거나 상대방의 물음에 상관없는 대답을 하곤 했다. 그런 일이 잦아지자 직장동료가 무슨 일 있냐고 물었다. 아무 일 없다고 둘러대고 또 잡념에 빠졌다. 그러다 어느 날은 나도 모르게 블랙맘바의 앞에 도착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내부는 이사를 마치던 날 그대로였다. 문에 붙여진 임대스티커를 문지르다가 홧김에 떼버렸다. 내가 한 짓에 놀라서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왔다.     


  주말 아침부터 핸드폰이 울렸다. 알람인 줄 알고 확인해 보니 도훈이 건 전화였다. 마지막 만난 날 이후 한 달 만에 걸려온 전화를 잠결에 모르고 받아버렸다. 그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성진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나라고 연락을 하고 지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네 시간 걸려서 도훈이 찾아오는 것보다 삼십 분도 안 되는 거리에 사는 내가 찾아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마치고 누워있다가 모자를 썼다. 성진의 집으로 향했다. 성진을 만나면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성진이 사는 아파트에 도착했다. 꽤 오랫동안 나오지 않은 건지 문에 전단이나 청구서가 꾸깃꾸깃 끼워져 있었다. 문을 두드렸지만 성진은 나오지 않았다. 망설이다가 비밀번호를 쳤다. 한때 번질나게 드나들던 곳이라 비밀번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여름인데도 방 안에 한기가 돌았다. 오랫동안 환기를 안 했는지 공기가 습했다. 성진의 방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노크를 해보았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다급하게 문을 열었다. 성진은 침대에 누워있었다. 잠을 자고 있던 건가. 안심하며 방에 들어섰다. 유리 사육장이 모두 비어 있었다. 그가 아꼈던 뱀들은 모두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가장 컸던 사육장엔 천이 덮여 있었다. 먼지가 쌓일까 봐 덮어둔 걸까. 천을 거두니 무언가 있었다. 


  열심히 꾸며놓은 사육장에 뱀 한 마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 가장 강한 뱀을 데려온다더니 최근에 데려온 모양이었다. 칠흑처럼 검은 뱀이었다. 선명한 빛깔이 뱀에 대해 모르는 내가 봐도 아름다웠다. 구석 자리에 하얀 허물이 있다. 얼마 전에 탈피를 마친 모양이었다. 뱀은 탈피를 마치면 더 고운 빛깔을 띠지만 실패하면 죽을 수도 있었다. 성진이 키우는 뱀은 탈피를 실패한 적이 거의 없다. 충분한 먹이와 적절한 온도를 유지해 주기 때문이다. 뱀은 구석에 누워 나를 바라보았다. 다시 천을 덮어두고 성진의 방을 살폈다. 


  침대 옆 탁상의 물건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깔끔한 성격의 그가 방을 어지럽히다니. 손을 뻗어 그것들을 올려두다가 편지 봉투를 발견했다. 수취인이 적혀있지 않았지만 꽤 두툼했다. 읽어보고 싶은 마음을 참고 탁상 위에 놓았다. 그때 매캐한 악취를 맡았다. 원인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냄새는 침대 쪽에서 나고 있었다. 잠든 듯이 곤한 얼굴이었으나 어쩐지 성진의 얼굴에 핏기가 없었다. 마치, 죽은 사람처럼. 다급하게 이불을 걷어냈다. 그 안을 본 나는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팔 전체가 검게 괴사 한 채로 성진의 몸이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너무 놀라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119에 전화했다. 성진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경찰은 그의 방에 놓여 있던 유서를 토대로 자살이라고 추측했다. 탁상의 물건들에서 내 지문이 발견되어 조사를 받았다. 그 물건들은 고통에 몸부림치다 성진이 떨어뜨린 것이었다. 뱀에게 의도적으로 물려 자살한 것도 모자라, 그 뱀이 사육이 금지된 종류였기 때문에 큰 화제가 되었다. 며칠 동안 뉴스에 나왔다. 내가 아는 성진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얘기하는 것 같았다. 몇 번이고 같은 내용의 뉴스를 보다가 티비를 껐다.


  어느새 여름도 끝물이었다. 죽을 먹다가도 속이 얹혔다. 구역질하며 삼킨 것들을 모두 내뱉었다. 무단으로 출근하지 않아서 회사에서도 잘렸다. 회사에 들러 짐을 들고 오다가 현기증이 나서 길에서 쓰러졌다.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다가 눈을 감았다. 말수가 적던 성진의 유서는 참 두꺼웠다. 그중 두 장이 내게 전해졌다. 


  매일 그 종이를 읽다가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나는 블랙맘바의 안에 있었다. 성진이 먹이를 준 뱀은 사육장의 뚜껑을 닫는 소리에 놀라 몸을 둥글게 말았다. 자신의 몸에 파묻힌 뱀이 잠시 후에 고개를 슬그머니 내밀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한참 웃었다. 성진이 말했다.


  만져볼래?


  나는 망설였다. 그가 뱀을 쓰다듬다가 천천히 내게 전해주었다. 그것이 내 손에 닿기 전, 꿈에서 깼다. 눈을 다시 감고 꿈에서 봤던 성진의 모습을 떠올렸다. 책상에 손을 뻗어 어떤 물건을 쥐었다. 성진과 처음 만났을 때 주웠던 캐스트 퍼즐이었다. 손길에 따라 절그럭거리던 쇳덩이가 어느새 풀렸다. 그렇게 힘을 주어도 당겨도 풀리지 않았는데. 단단했던 고리가 두 개로 나뉘었다. 다시 조립해서 품에 안았다.


  재환에게 연락했다. 몇 달간 소식이 없다가 갑자기 만나자는 내 말에도 그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전에 만났던 칵테일 바에서 만나기로 했다. 오랜만에 꾸민 내 모습이 낯설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안쪽에 앉아있는 재환이 보였다. 그에게 걸어갔다. 등을 곧추세워 어깨부터 척추까지 빳빳하게 폈다.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가 나를 발견했다. 재환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나는 그의 앞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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