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완희 Apr 20. 2024

12화 5살 3살, 5학년 3학년

원시림 속 동백꽃이 보고 싶다면, 거제 지심도

 아이를 임신하고 내가 육아용품보다 먼저 구입했던 것은 임신. 출산과 관련된 '책'이었다. 지금처럼 유튜브와 인터넷이 많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절, 책을 찾아보며 하나씩 배우고 익혔던 것이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며 엄마가 되어가는 또 하나의 큰 기쁨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유아성장발달'  '개월수에 따른 이유식'에 관련된 책을,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턴 엄마표교육과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유튜브와 인터넷이 점점 활성화되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육아도 공부라 생각하고 교과서를 보듯, '육아서'를 보며 아이를 정성껏 키웠고, 첫째가 중1 둘째가 5학년인 지금도 '부모의 역할'과 관련된 책들을 읽어보며 아이를 정성껏 키우고 있는 중이다.


내가 여러 육아서들을 접하며 우리 모두 공감하고 알고 있지만, 나에게 한 번 더 각인되었던 놀랄만한 사실을 읽게 된 적이 있었다. 그건 바로 '아동기 기억상실증'.

'아동기 기억상실 (childhood amnesia)'이라는 것은 아동초기(5세 이전)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 상당 부분을 기억해 내지 못하는 현상이다. 발생 원인에 대해서는 아동기에는 아직 뇌의 발달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일 수 있으며, 약호화 하는 언어 능력의 부재 혹은 사전지식이나 도식의 미발달로 약호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으며, 약호화가 되더라도 정교화된 기억 표상을 구성하지 못할 수 있으며 아동기의 약호와 내용, 맥락 등이 성인기의 인출 맥락과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인출 실패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5세 이전의 경험을 아이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아이의 인생에서 영. 유아기는 굉장히 중요하다. 아동학자들마다 영. 유아기의 중요하다고 하는 요소들이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지만, 여러 부분들 중 나는 '아이와 부모의 애착관계 그리고 아이가 환경을 통해 받아들이는 여러 가지의 감각적인 요소'를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다.




 첫째 아이가 5학년 둘째 아이가 3학년이었을 때, 7년 전 그때의 모습(5살, 3살)을 자세히 기억하지 못했던 것과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고 하더라도, 어렸을 때 느껴보았던 감각적인 부분들과 7년이 지난 지금, 받아들이는 감각적인 부분들이 '분명'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린 두 아이들과 걸었던 둘레길이 너무 아름다워 다시 보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그곳을 찾았다.

(왼) 첫째 5살, 둘째 3살 /  (오) 첫째 12살, 둘째 10살

 7년 후, 찾은 그곳은 바로 거제 '지심도' 둘레길이다.

두 장의 사진모두 같은 장소로, 지심도 둘레길 중 '그대 발길 돌리는 곳' 바위 위에 앉아서 찍은 사진이다.

촌스러운 왼쪽사진은 첫째 아이 5살 둘째 아이 3살 때였고, 그나마(?) 세련된 오른쪽사진은 첫째 아이 5학년 둘째 아이 3학년때였다.




사진출처. 거제관광문화 홈페이지

 지심도(只心島)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섬의 생긴 모양이 마음 심(心) 자를 닮았다 하여 지심도(只心島)라고 불리고 있다. 남해안섬들 중 어느 곳보다 동백나무의 묘목수나 수령이 압도적이어서 '동백섬'이란 이름이 여타 섬들보다 훨씬 잘 어울리는 섬이다. 실제 동백숲을 둘러보면 현재 국내에서 원시상태가 가장 잘 유지되어 온 곳으로 알려져 있다. 숲으로 들어가면 한낮에도 어두컴컴하게 그늘진 동백숲동굴로 이어지고,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피고 지는 동백꽃의 특성 때문에 숲길을 걸을 때마다 바닥에 촘촘히 떨어진 붉은 꽃을 일부러 피해 가기도 힘들 정도로 동백꽃이 무성하다.



[지심도 배편]


1. 지세포 터미널 (경남 거제시 일운면 지세포해안로 89-19 지심도 유람선)

지심도도선/유람선 지심도터미널 (jisimdocruise.com)

요금: 대인 2만원, 소인 1만원(왕복비용)


지세포출발(2시간 간격)

08:45 / 10:45 / 12:45 / 14:45 / 16: 45

지심도출발(2시간 간격)

09:05 / 11:05 / 13:05 / 15:05 / 17:05




2. 장승포 항(지심도 터미널, 경상남도 거제시 장승포로 56-22, 지심도 터미널)

네이버 예약 :: 지심도 터미널 (naver.com)

요금: 대인 2만원, 소인 1만원(왕복비용)


장승포출발(2시간 간격)

08:30 / 10:30 / 12:30 / 14:30 / 16:30

지심도출발(2시간 간격)

08:50 / 10:50 / 12:50 / 14:50 / 16:50


※ 주의사항

승선시 반드시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늦어도 출항 10분 전에는 도착하여 승선명부를 작성하여야 한다.




 2022년 1월 19일, 우리가 도착한 곳은 '지세포 관광유람선 터미널'이다. 평일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주차장이 꽉 찼다. 혹시 현장예매가 마감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전날 미리 터미널에서 지심도로 출발하는 10시 45분 배를 인터넷으로 예약해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매표소 안으로 들어가 승선명부를 작성하고 바깥으로 나와 배 타기를 기다리려고 했으나!

피해 갈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새우깡'. 매표소 매점에 박스채로 진열되어 있었던 새우깡을 그냥 지나칠 없었다. 갈매기의 간식이자, 아이들의 간식인 새우깡을 봉지씩 들고서야 매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붐비는 사람들로 가득한 매점 안의 분위기와는 반대로, 매점 앞바다의 모습은 고요했다. 정박해 있는 배들의 흔들림도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파도도 잠잠했다. 그래서인지 잔잔한 바다 멀리 윤슬이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온 입간판하나, 길 건너편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커피라는 문구가 보였다. 배를 타기 전 아이들의 픽이 새우깡이라면, 나는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기분을 내고 싶었다. 배 타는 시간이 고작 15분이긴 하지만 말이다.


 드디어 승선이 시작됐다. 표를 검사하고 사람들이 차례로 배에 올랐다. 나는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주기 위해 서있는 아이들 옆 귀퉁이에 섰다. 시간이 되어 배는 서서히 출발했고 선착장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차갑게 불어오는 바닷바람과 바닷바람 안에 함께 섞여 날아오는 짠 바닷물이 분무기로 물을 분사하듯 나에게로 향했다. 추운 날씨였지만, 청량하게 느껴지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지심도에 가까워질수록 유독 출렁거리는 배로 살짝 뱃멀미가 날듯 말 듯 느껴질 때, 드디어 우린 '지심도'에 도착을 했다.

 지심도 선착장은 그전에 없던 '동백꽃'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하늘빛이었던 인어동상이 골드빛 인어동상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7년의 시간만큼이나 작았던 아이들도 어느새 훌쩍 커진 모습으로 인어공주동상, 범바위 앞에서 사진을 남겼다.


아이들은 인어동상을 유심히 살펴보고 만져보았다. 그리고 인어동상 아래 '범바위'와 관련된 전설을 읽어보았다.


예전 옥림마을 뒷산에 숫호랑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호랑이는 우연히 인어공주를 보고 사랑에 빠졌다. 호랑이는 인어공주에게 사랑을 고백했고, 인어공주는 용왕님이 내린 임무인 수달이 감성돔을 잡아먹지 못하게 하라는 임무를 호랑이에게 맡기고 용왕님에게 허락을 받고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한채 용궁으로 갔다. 인어공주는 끝내 오지 않았고, 호랑이는 인어공주를 그리워하다가 죽었다. 호랑이가 죽은 자리에 '나는 죽어서도 가죽을 남겨놓고 인어공주 당신을 기다렸다'는 표시를 새겨놓았는데 그때 새겨진 그림이 천상 호랑이였고, 천년만년 변하지 않을 바위가 바로 '범바위'라고 한다.


 범바위의 전설을 읽어보고 인어공주를 살펴보다 한순간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와 함께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지심도 마을입구로 향했고 우린 선착장에서 가장 늦게 지심도 둘레길 걷기를 시작했다.



[지심도 걷는 코스]

지심도 선착장 - 해안선 전망대 - 그대 발길 돌리는 곳 - 동백터널 - 활주로 - 지심도 선착장
(약 3.5km / 평균 2시간 정도 소요)

 

 배를 타고 들어와야 하는 섬이지만, 걷는데 평균 2시간 정도 소요되는 코스라 당일치기 트레킹 코스로 적당하다. 

 지심도 둘레길의 시작점인 마을입구까지는 완만한 경사길이 이어진다. 음식을 파는 가게를 지나 15분 정도 걸어올라 가면 멀리 바다지만, 넓은 호수처럼 보이기도 하는 뷰를 감상할 수 있다. 저기 멀리 건너편에 보이는 우뚝 솟은 높은 산은 거제 옥녀봉(555.5m)이라고 한다.


 그렇게 좁은 동백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넓은 호수가 아닌, 파란 바다와 파란 하늘이 맞닿아있는 수평선이 눈앞에 펼쳐진다. 자연의 경이로움이란 이런 게 아닐까? 바다와 하늘이 함께 어우러진 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모두 담기 어려웠던 풍경이었다.

사실 우리가 보는 파란 바다, 파란 하늘의 '파란색'은 빛의 착시에 의한 색이라고 한다. 빛이 산란되는 정도에 따라, 우리 눈에 파란색의 옅고 진함이 달리보이는 현상.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은 여러 '파란색'에 깊이 빠져든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해안선의 모습 또한 예술이다. 휘어진 곡선모양의 해안선에 파도가 밀려오며 또 밀려가길 반복했다. 하얗게 일어나는 파도의 물결 또한 내 발걸음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아름다움의 일부분이었다. 동백숲을 따라 걸을 땐 몰랐는데, 해안선 전망대에서는 파도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1월이라 그런지 동백꽃들이 많이 피어있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던 동백나무를 찾았다. 숨바꼭질을 하듯, 꽃잎을 활짝 펼친 동백꽃들을 찾아보며 아이들과 지심도를 걸었던 것 같다. 동백꽃은 11월부터 4월까지 피는데, 3월에 오면 동백꽃이 핀 가장 아름다운 지심도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드디어 활주로에 도착을 했다. 이곳은 지심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으며 넓은 평지로 되어있다. 활주로에서 가장눈에 띄는 한 가지는 바로 2016년 최병양 작가가 만든 '손가락 하트조형물'이다. 블랙야크 100대 명산&섬 인증하는 곳이기도 한 이곳에서 사진도 찍고, 아이들은 그네를 타기도, 남은 새우깡을 먹기도 하며 쉬어가는 시간을 가졌다.


 이곳에서는 날씨가 맑으면 일본의 대마도까지 보인다고 한다. 그만큼 가까워서였을까. 지심도 안내판에 있던 글을 옮겨본다.

1936년 4월 23일 일본군은 지심도에 거주하고 있는 10여 가구를 강제 이주시키고 같은 해 7월 10일 포대를 착공하기에 이른다. 일본군은 지심도 내에 4곳의 포대를 설치하는데, 45식 15밀리 캐논포 4문, 38식 기관총, 96식 측원기 등을 각각 배치했다. 총예산 1백46만 5천원을 투여하여 군 막사, 초소, 경계표찰 등이 1938년 1월 27일 완공되었다. 또한 지심도 포대를 보호하기 위해 1936년 7월 8일 지심도 헌병분주소를 설치하고 총 4명의 인원을 배치하였다. 지심도 포대에는 일본군 1개 중대 약 100여 명이 주둔하고 있었다. 지심도 포대는 한반도 전역을 일제의 병참기지화로 만들겠다는 계획에서 나온 것이다.


 아이들과 거문오름을 다녀왔을 때 느꼈던 감정들이 다시 되살아났다. 아이가 일본을 싫어하게 된 계기가 이런 것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아이는 아마 지심도에서 날씨가 맑으면 대마도까지 보인다고 했으니, 일본과 가까워서 지심도가 중일전쟁의 일본군 해군기지로 사용되지 않았을까.라는 이야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거문오름과 지심도는 많이 닮아있었다. 일제의 아픈 역사를 가진 곳이기도 하지만 '원시림'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섬 안이지만, 하늘과 바다가 보이지 않을 만큼 동백나무로 우거진 숲길을 걸을 때, 거문오름을 걸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면서 자연 그대로의 숲길을 느껴보았던 것 같다.




  지심도를 둘러보는 평균 소요시간이 2시간이라고 했는데, 걸음이 빨랐던 탓인지 쉬엄쉬엄 걸었음에도 1시간 40분 만에 선착장에 도착했다. 선착장 방파제에는 낚시를 하시는 분들이 꽤 많았다. 물고기가 많이 잡혔나 궁금해서 나와 아이들은 방파제 위에 올라가 낚시를 하시는 분들의 물고기바구니를 살펴봤는데, 물고기가 정말 많았다. 그리곤 방파제 아래를 봤는데 '물반 고기반'. 지심도의 낚시 포인트는 '지심도 선착장' 바로 여기다. 다음엔 지심도에 하루 머물며 '낚시'를 계획했다. 



 동백꽃의 꽃말은 '누구보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아동기 기억상실증'이란 건 핑계고, 5살 3살 때 보여주었던 지심도의 아름다움을, 5학년 3학년이 되어 한 번 더 보여주고 싶고, 마음 안에 담아주고 싶었던,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 때문은 아니었을까.



추운 날씨로 걷는 것이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늘 함께 동행해 주는 나연이 나예 너무 고마워.






아이들과의 열한 번째 걷기 여행 중, 어느 한순간.



우리의 걷기 여행은 계속 진행된다.







사진출처. 지심도 지도/ 재봉부부 블로그 일부수정하였습니다.

이전 11화 11화 발자취 따라가는 발걸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