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생님의 실적이 아니에요

교육 현장 르포 <학교 선생님 편 1편>

by 조영철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첫날, 저는 교실 칠판 위에 걸린 커다란 문구를 보았습니다.

“교사는 학생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제 마음에는 막연한 신뢰와 기대가 스며들었습니다. 마치 이 교실 안에서의 시간들이, 저의 인생을 환히 밝혀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학기가 거듭되고, 다양한 교사들과의 경험이 쌓이자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 빛이 모든 이에게 같은 온도와 방향으로 비추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어떤 불빛은 따스하게 길을 밝혔고, 어떤 불빛은 오히려 제 안의 그림자를 더욱 짙게 만들었습니다. 같은 교실, 같은 시간, 같은 칠판 앞이어도, 교사의 말과 태도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저를 움직였습니다.

그 차이를 저는 **‘명(明)-선생’과 ‘암(暗)-선생’**으로 명명하기로 했습니다. 단지 ‘좋은 교사’와 ‘나쁜 교사’를 구분하기 위함이 아니라, 교사의 존재가 학생에게 어떻게 다른 심리적 경험을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제가 국가교육위원회에 있었던 시절, 여러 경험들과 생각을 바탕으로 한 관계적 회고이자 교육적 분석입니다. 흔히 ‘가르침’이라고 불리는 말과 행동들 속에는 어떤 함의가 있었는가? 교사의 말은 언제부터 조언이 아닌 통제가 되었을까? 이 글은 그 물음에 대한 첫 번째 기록입니다.




1. 실적이 먼저일 때, 학생은 통계가 됩니다

우리가 학교를 다닐 때、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번에 우리 반에서 서울대 갈 학생이 생기는구나.”


말 한마디였지만, 묘한 이질감이 들죠. 그것은 **“네가 잘 돼서 기뻐”**가 아니라, **“우리 학교의 실적이 오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뉘앙스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일이 친구 B에게도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담임에게 기대받던 학생이었고, 선생님은 그 친구가 ‘안전하게’ 인서울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친구 B는 “좀 더 준비해서 도전하고 싶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길게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괜히 모험하다가 떨어지면 인생 꼬일 수 있어. 안전하게 가.”

말은 조언처럼 들렸지만, 그 이면에는 **“학교의 합격률에 불이익이 생기면 안 된다”**는 숨은 의도가 있었던 듯했습니다. 결국 B는 자신의 뜻을 고집했고, 재수를 거쳐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그제야 선생님은 “네가 옳았구나”라고 말했지만, 그 말은 미안함도, 존중도 없이 공허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처럼 실적 중심의 암선생은 학생을 ‘가능성’이 아닌 ‘수치’로 환원합니다. 학생의 도전은 시스템을 흔드는 ‘불확실성’으로 간주되며, 교사는 안정과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성적 관리’의 관리자가 됩니다. 그 안에서 학생의 주체성은 침묵당하고, 개성은 데이터에 편입됩니다.

물론, 공립학교 교사의 인사 고과에는 학생의 입시 실적이 공식적으로 반영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입시 실적이 교사의 평판, 학교 내 위상, 보직 배정 등에 비공식적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명문대 합격 실적은 교사 개인의 능력처럼 여겨지며, 특히 학부모나 동료 교사 사이에서 신뢰와 경쟁의 척도가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학생들은 “내가 이 학교에 어떤 이익이 되는가”를 먼저 고려하게 됩니다. 자기 결정은 자기 욕망이 아니라 외부 기준에 따른 전략적 행위가 되어버리고, 학생은 하나의 ‘성과 지표’로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교사 실적과 고과의 관계


현재 한국의 공립 고등학교에서 교사의 입시 실적이 공식적인 인사 고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교사들이 입시 실적을 중시하는 경향은 여전히 존재하며, 이는 학교 문화와 조직 구조, 그리고 사회적 기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공식적 고과 체계 : 공립학교 교사의 인사 고과는 주로 수업 능력, 생활 지도, 행정 업무 수행 등을 기준으로 평가됩니다. 입시 실적은 공식적인 평가 항목에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비공식적 영향력 : 그러나 실제로는 교사의 입시 실적이 학교 내에서의 평판이나 승진, 보직 배정 등에 비공식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특히, 명문 대학에 학생을 많이 진학시킨 교사는 동료나 학부모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관련 통계 및 연구


교사의 업무 부담 : 한국교육개발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교사들은 수업 외에도 다양한 행정 업무와 입시 관련 업무를 수행하며, 이로 인해 업무 과중과 소진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입시 중심의 교육 체계 : 한국의 교육 체계는 여전히 입시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이는 교사들이 학생의 전인적 성장보다는 성적과 입시 결과에 더 집중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입니다.




2. “너를 위해서야”라는 달콤한 함정

제 또 다른 친구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 친구는 중학교 3학년 시절, 시내 자율형 사립고에 지원하고자 했습니다. 그의 담임 선생님은 매우 강하게 만류했습니다. 대신 제시한 곳은, 성적상 한참 아래인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였습니다. 나중에야 들은 이유는 이랬습니다. 같은 재단 소속 학교로 전출 실적을 올리면 교사 평가가 유리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네 미래를 위한 조언”이었지만, 실은 학생을 통해 구조적 이익을 실현하려는 이면이 숨어 있던 것입니다. 암선생은 언제나 “너를 위해서야”로 말문을 엽니다. 그러나 그 말의 주어는 정작 ‘너’가 아닙니다. 학교, 교사, 제도, 통계 — 그 모든 것들이 학생의 앞에 놓여 있습니다.

더 문제는, 이런 말이 너무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게 들린다는 것입니다. “요즘 입시가 얼마나 힘든데…”, “안정이 최고야”라는 말은 따뜻한 보호처럼 포장되지만, 그 내면에는 학생의 미래가 아니라 조직의 안위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학생은 자신의 욕망을 교사의 ‘확신’에 의해 정정당당하게 누르게 되고, 시간이 흐른 뒤 그 선택이 내 것이 아니었다는 자각은 깊은 자책으로 남게 됩니다. “그땐 왜 그 말을 그대로 믿었을까?”라는 회한과 함께요.




3. 암선생을 구분하는 세 가지 신호


첫 번째、 실적과 평판 언급이 잦다

“내가 맡았던 애 중에 의대 간 친구 있어.”

“우리 학교가 올해 서울대 몇 명 붙었는지 아니?”

→ 학생이 ‘현재 진행 중인 존재’가 아니라, 과거의 자랑을 위한 배경으로 쓰일 때.


두 번째、 도전을 ‘위험’이라 규정하며 일괄 통제한다


“재수하면 망한다.”

“그 대학? 무리야, 꿈 깨.”

→ 가능성보다는 실패 가능성만을 강조하며, 도전의 복잡성을 단순화할 때.



세 번째、 대안이 지나치게 ‘안전’만 추구한다

“그냥 내 말 들어.”

“모험하지 말고, 적당히 가.”

→ 구체적 근거 없이 낮은 목표만 제시하거나, 학생의 판단력을 신뢰하지 않을 때.


이러한 신호들이 반복된다면, 그 교사의 조언은 학생의 삶이 아닌 교사의 안위를 향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4. 암선생을 만났을 때 학생의 대응 전략


1. 말의 주어를 바꿔서 듣기

“재수는 위험해.” → “선생님께는 재수가 위험하게 느껴지시는구나.”

→ 말을 내게 적용하기 전에, 그 조언이 누구의 관점에서 나왔는지 자각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2. 근거를 요구하기

“왜 위험하다고 생각하세요? 구체적인 이유가 있나요?”

→ 교사가 실제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학생의 권리입니다. 합리적인 조언이라면, 충분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복수의 조언을 구하기

부모님, 믿을 만한 교사, 입시 전문가, 선배 등에게 다양한 관점을 들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 자신의 판단이 단일한 권위에 의해 좌우되지 않도록, 입체적 정보를 확보하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무엇보다, 교사의 조언을 거스른 선택이 실패로 이어진다 해도, 그것이 곧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실패보다 더 큰 실패는,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입니다.


4. 선택은 결국 학생의 몫입니다

교실에서 교사는 언제나 권위의 중심에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결과는 학생의 몫으로 남습니다. 암선생의 조언을 따른 선택이 잘못되었을 때, 그 책임을 대신 져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반대로 스스로의 선택으로 실패했을 때는, 그것조차 자기 성장의 일부로 수용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실패의 경험은 단순한 좌절이 아니라, 책임 있는 주체로 성장하는 계기가 됩니다.

저는 암선생을 통해 역설적으로 배웠습니다. “선생님의 조언은 누구를 향해 있었는가?”

“이 말은 선생님의 실적을 위한 것인가, 내 성장을 위한 것인가?”


이 질문 하나가, 교사의 조언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되어주었습니다.




6. 다음 장을 열며 ― 명 선생의 빛

모든 교사가 암선생은 아닙니다. 명 선생은 질문으로 시작하는 교사입니다.

“네가 진짜 원하는 건 뭐야?”、 “그걸 위해 너는 무엇을 해볼 수 있을까?”

그들은 학생의 가능성을 정답으로 인도하지 않고, 물음으로 확장시켜 줍니다. 실수했을 때는 혼내기보다 함께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괜찮아, 다시 생각해 보자”는 말은, 진정한 동행의 말입니다.

2부에서는 제가 만난 명 선생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좋은 조언’이 어떻게 삶을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교사의 진정성이 어떻게 학생의 길을 넓히고, 스스로의 길을 찾게 해 주는지를 탐색할 것입니다.

이 글은 5부작 시리즈의 첫 번째 편입니다. 다음 장에서는 학생 곁에 머무는 빛, 그리고 그것이 가진 교육의 힘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이 글은 제가 연재 중인 팟캐스트 형식의 브런치북 ‘ 교육 고백록’에서 나눈 고민을 바탕으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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