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현장 르포 <학교 선생님 편 2편>
중고등학교 12년 동안, 저는 다양한 교실과 선생님을 경험했습니다. 교무실의 분위기, 복도에서 들리던 말투, 수업 중 질문 하나에 담긴 반응까지—그 모든 것은 한 사람의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1부에서 다룬 ‘암선생’은 성적과 권위를 앞세워 학생을 통제하려 했던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학생을 통계나 실적으로 대하며, 자율성과 개별성을 억눌렀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는, 더 말없이 빛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런 이들, 제가 명명한 '명 선생'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이 장에서는 제 경험 속 명 선생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진짜 좋은 선생님’의 기준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런 존재가 왜 중요한지를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명 선생'이란 단어를 들으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시나요? 착하고 친절한 선생님? 아니면 공부를 잘 가르쳐주는 선생님? 이 글에서는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명 선생을 좀 더 깊이 있게, 철학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보려 합니다. 명 선생은 단지 '좋은 선생님'이 아니라, 학생을 진심으로 바라보며 함께 성장하는 어른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레비나스는 "타인(남)은 나와 똑같지 않기에, 진정한 존중의 대상이 된다"라고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누군가를 내 기준으로 판단하기보다는, 그 사람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죠.
명 선생은 학생을 단순히 '공부 잘하는 아이', '문제아', '성적 낮은 아이'로 보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학생의 말과 행동, 표정 하나하나를 통해 그 학생만의 특별한 가능성과 이야기를 읽어냅니다. 그리고 "나는 네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라는 마음으로 다가갑니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을 '현존재'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인간이 항상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명 선생은 이런 생각을 실천합니다. "내가 답을 다 안다"는 태도가 아니라, "너와 함께 생각해 보자"는 자세로 학생을 대합니다. 예를 들어 진로 고민을 할 때도, "이게 정답이야"라고 단정하지 않고,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묻습니다. 학생이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죠.
교육은 빠르게 결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속도로 성장하기 때문에, 진짜 교육은 '기다림'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즉、 학생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명 선생은 시험 점수나 당장의 성적보다, 학생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신뢰하며 기다리는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동양 철학에서는 '무위(無爲)'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억지로 뭔가를 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이끌어주는 태도를 뜻합니다.
명 선생은 "이렇게 해!"라고 명령하지 않고,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질문을 던지고, 선택할 기회를 주고, 실수했을 때 비난하지 않고 함께 해결 방법을 고민합니다. 그 과정에서 학생은 단순히 공부를 넘어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성장하는 법을 배웁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하루 중 절반 이상을 교실에서 보냅니다. 부모 다음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어른이 담임 선생님과 과목 선생님입니다. 따라서 선생님이 학생을 믿고 존중하면 그 영향력도, 반대로 상처도 부모 못지않게 크죠. 교사의 존재는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닙니다. 학생의 존재 가치를 확인시켜 주는 거울이자,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촉진제입니다. 좋은 선생님 한 명이 인생을 통째로 바꿀 수 있고, 나쁜 선생님 한 명이 오랜 트라우마를 남길 수도 있습니다.
학교 선생님은 ‘제2의 부모’입니다
솔직한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면、현실적으로 모든 학교 선생님께서 명선생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학교에 계시는 선생님들이 단 한 명의 학생에게라도 ‘나는 너를 믿는다’는 신호를 보내줄 수 있다면, 그건 교육이 존재하는 이유이자 공교육이 감당해야 할 최소한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100% 그럴 순 없어도 그러려는 “태도”를 모든 학교 선생님들께서 가지게 되는 현실을 기대해 봅니다. 그럼 이제 제가 생각하는 명 선생의 사례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기존에 있던 트라우마 스트레스(병명:PTSD)가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고 병명을 말하기가 그 당시에는 부끄러웠습니다. “선생님, 재수할 생각입니다”라고 얼버무리며 도망칠 구실을 만들었죠. 대다수 선생님은 “그러다 망한다”, “정신 차려라” 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선생님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그래, 네 결정이라면 존중할게. 다만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와.” 그 한마디 덕분에 나는 불필요한 죄책감 대신 **‘믿어주는 어른이 한 명쯤은 내 뒤에 있다’**는 안도감을 얻었습니다. 그 믿음은 마치 단단한 바닥 같았습니다. 그와 받대 된 느낌은 열기구 풍선 위에서 둥둥 떠있는 느낌이겠죠. 저는 그 안도감이 주는 역할이 제 병을 감당하는 시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에는 ‘수업 축제’라는 행사가 있습니다. 이 행사에서 학생들은 직접 수업을 준비합니다. 역사 시간이었습니다. 제 차례가 왔습니다. 그래서 준비한 ppt자료를 띄우고 칠판 앞에 섰습니다. 그때, 객석 맨 끝에 앉은 역사 선생님 한 분과 눈이 잠시 마주쳤습니다. 그 순간, 선생님의 얼굴엔 ‘뿌듯하다’는 표정과 시선이 가득했습니다. 원래 그런 눈빛을 주지 않으시는 선생님이셨습니다. 칭찬 한마디, 말없는 박수조차 없었지만, 그 따뜻한 시선은 제 자존감을 단숨에 끌어올렸습니다. 덕분에 그 발표는 제가 상상했던 그 이상의 좋은 성과로 저에게 돌아왔습니다. 좋은 선생님은 거창한 격려가 아니라도, 학생이 성장하는 찰나를 놓치지 않고 밝은 눈빛으로 기록해 둡니다. 그리고 그 눈빛은 세월이 흘러도 학생 마음속에 오래도록 불을 밝힙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저는 교내‧교외 활동을 찾느라 늘 분주했습니다. 그때 진로선생님께서 “영철아, 국가교육위원회 학생위원 모집이 있단다. 네가 한번 해보면 어떨까?”라고 제안하셨습니다. 솔직히 그전까진 그런 기회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결국 저는 그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 가능성을 먼저 본 한 사람의 눈에 의해서 저는 상상할 수 없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명선생님은 학생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길을 열어주는 사람입니다.
명 선생 세 번째 사례까지는 다 학교 안에 계신 분들이었습니다. 공식적인 직업도 “선생님”이죠. 그러나 명선생님은 학교 안에만 존재하지 않아요. 학교 밖에도 명선생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제가 어느 날 다큐멘터리를 봤습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우연히 뜬 다큐멘터리였습니다. “ 「추적 60분 – 소년은 혼자 자라지 않는다」(1365회)이라는 이름의 다큐였습니다。 여기에는 학교 밖 청소년들과 더불어 청소년 지도사분들이 나왔습니다. 제가 본 ‘청년지도사’들은 공식 직함도, 학교라는 울타리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학교 밖에서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동시에 방황하는 청소년에게 차비를 쥐여 주고, 부모에게 대신 연락해 주며, 모텔까지 찾아가 아이들이 위험한 길로 빠지지 않도록 설득했습니다. 직업으로 따지자면 사회복지사에 가깝겠지만, 마음만큼은 분명 명 선생님이었습니다. ‘선생님’이라는 명패가 아니라 학생을 향한 진심이 그들을 “명선생님”으로 만듭니다.
학교 밖 명선생님이 또 있습니다. EBS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남자 선생님 이야기입니다. 2012년 11월 21일에 방송된 <다큐프라임 - 학교의 고백 6부 잘난 아이들>이라는 다큐입니다. 그 다큐 속 한 선생님의 인터뷰는 저를 울컥하게 했고, 제가 명 선생이라는 생각을 최초로 하게 만들어주셨던 선생님입니다.
제작진이 선생님에게 질문했어요.
"학생들을 이야기하실 때마다 울컥하시는 것 같아요."
선생님이 대답했죠.
"예, 아주 울컥합니다."
그리고 제작진이 다시 물었어요.
"근데 선생님은 부모가 아니잖아요?"
선생님이 대답하면서 눈물을 보였어요.
"그게 제일 가슴 아프다고요. 내가 부모가 아니기 때문에, 끝까지 책임질 수 없었잖아요. 그게 가장 마음에 아픕니다. "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법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학생 인생 전체를 책임질 수 없죠. 그럼에도 매일같이 *‘어디까지 학생 곁에 머물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 완벽할 수 없다는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거기서 멈추지 않는 마음—그 진솔한 고백이야말로 명 선생을 정의하는 문장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묻습니다. 명 선생은 누구인가요?
결국 명 선생은 학생을 점수로 보지 않고 ‘가능성’으로 바라보는 사람, 강요 대신 믿음으로 기다려 주는 사람, 찰나의 시선으로도 에너지를 건네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교실 안팎 어디에나 존재하며, 때로는 정식 교사라는 울타리 밖에서도 학생들의 길잡이가 됩니다. 완벽하지 않지만, 끝까지 학생의 미래를 고민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우리 모두의 롤모델이자, 교육이 지향해야 할 최종 형태입니다.
다음 장에서는 “왜 공교육이 명 선생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가”를 본격적으로 탐구하려 합니다.
이 글은 제가 연재 중인 팟캐스트 형식의 브런치북 ‘ 교육 고백록’에서 나눈 고민을 바탕으로 썼습니다. 여러분의 생각도 댓글로 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