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현장 르포 <학교 선생님 편 3편>
핵심 질문: 모든 선생님이 명 선생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선생님도 결국 월급 받고 사는 직업인이잖아.
친구들끼리 농담처럼 내뱉던 이 말은, 어느 순간 제심 질문: 모든 선생님이 명 선생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선생님도 결국 월급 받고 사는 직업인이잖아.
친구들끼리 농담처럼 내뱉던 이 말은, 어느 순간 제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학교에서 매일같이 마주치는 어른이 단지 ‘교과서를 잘 전달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왜 이토록 깊이 영향을 받을까요? 지난 장에서 암선생과 명 선생을 구분하며 느낀 것은, 선생님의 태도 하나가 학생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학교 선생님은 왜 반드시 명(明) 선생이어야 할까요? 이 질문은 곧 공교육의 존재 이유를 묻는 일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명明선생’이란, 단순히 수업을 잘하는 선생님 아니라 학생의 삶에 진심으로 관심을 갖고 동행하는 선생님을 뜻합니다.
분명 교사는 ‘직업’입니다. 국가가 임용 시험을 통해 선발하고, 정해진 급여와 근무 조건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공교육이 단순한 서비스업이라면, 학원과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사교육은 소비자가 돈을 내고 ‘원하는 결과’를 사는 구조입니다. 등급 상승, 대학 합격이라는 목표가 분명하다 보니,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불만족을 표시하고 다른 학원으로 갈아타면 되죠.
반면 공교육은 한 사람의 인격과 가치관을 다루는 공간입니다. 성적은 그 과정 중 하나일 뿐, 학생이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힘을 기르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죠. 그렇기에 학교 안에서 선생님은 ‘지식 판매자’가 아니라 삶의 코치가 되어야 합니다. 이 지점에서 직업과 사명은 교차합니다. 사명감 없는 교사는 교과서를 끝까지 읽어 주는 것만으로도 월급을 얻지만, 학생은 ‘사람’으로 성장할 기회를 잃죠. 공교육이 단순히 입시만 담당하는 순간, 학원과 다를 게 없어집니다. 요즘 공교육도 입시에 매몰되는 분위기입니다. 즉, 공교육이 무너지는 신호입니다.
선생님들이 사명감 없이 그냥 ‘직업’으로만 학교에 들어오면 어떻게 될까요? 학생들을 기계적으로 대하겠죠. 그 기계적이라는 의미에 대해서 2 가지 사례를 소개할게요.
1) "그냥 가르칠 테니까 너희가 알아서 해" 마인드
수업만 하고, 학생들과 소통하지 않음.
상담 요청하면 “나중에 얘기하자” 하고 미룸.
학생이 고민을 털어놔도 “다 너를 위한 거야” 하면서 넘겨버림.
이런 선생님은 학생들이 어려움에 처해도 도와줄 생각이 없는 선생님이죠. 이런 태도는 결국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기대를 접게 만들어요.
2) "입시 실적이 먼저지, 학생 고민은 나중에" 마인드
학생이 힘들어하면 "그래도 수능은 봐야지" 하면서 그냥 넘김.
특정 대학에 가야 한다고 압박함.
입시 실패하면 학생을 탓하거나 무관심해짐.
결국 이런 태도가 학생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선생님이 단순한 직업인이 되면, 학생들은 더 이상 보호받을 곳이 없어요. 이렇게 사명감을 잃은 교사는 종종 ‘실적 퍼스트’ 마인드에 빠집니다. 성적 좋은 학생에게 과도한 압박을 가하고, 그렇지 못한 학생은 ‘포기 반’으로 몰아세웁니다. 입시가 끝나면 관심도 끝나죠. 남는 건 경쟁에 지친 아이들과, “내 탓인가”라는 열등감뿐입니다. 공교육이 학원과 다를 바 없어지는 순간, 학생은 보호막을 잃고 무방비 상태로 시장 논리에 노출됩니다.
물론 모든 교사가 처음부터 의욕이 없었던 것은 아니죠. 저 역시 열정적이던 선생님이 해마다 무기력해지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두 가지 축이 존재합니다.
✅ 1) 학생들이 선생님을 존중하지 않음 → 선생님들도 점점 관심을 끊음
학생들이 “선생님이 뭘 알아요?” 하면서 냉소주의적인 태도를 보냄.
선생님이 공감하려 해도, 학생들이 무시하거나 조롱함.
결국 선생님들도 “그래, 나도 그냥 수업이나 하자” 하면서 포기함.
✅ 2) 교육 시스템이 선생님을 지치게 만듦
행정 업무가 많고, 평가 지표, 수능 성적 통계, 실적 압박이 심함.
학부모 민원 때문에 부담이 큼.
학생들의 개인적인 문제까지 다 감당해야 함.
아이 얼굴보다 서류를 더 오래 바라봐야 하는 구조는 교사의 고유한 사명감을 갉아먹습니다. 결국 "학생과 시스템이 선생님들을 사명감 없는 암선생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선생님도 변해야 하지만 시스템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정이 무너지거나 사교육 시장에서 밀려나도, 학교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입니다. 경제적 배경, 지역, 장애, 다문화 여부를 가리지 않습니다. 그 문턱을 누구나 넘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공교육의 존립 근거입니다. 그리고 그 공간을 지키는 교사가 사명감을 잃어버리면, 학생은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게 됩니다. 다시 말해 학교 선생님이 명선생이어야 하는 이유는 ‘대안 부재’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사는 어떻게 자신을 명 선생으로 단련할 수 있을까요? 거창한 교육 혁신 이전에, 교실에서 시작할 작은 실천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왜’ 대신 ‘어떻게’를 묻기 => “왜 공부 안 했어?”가 아니라 “어떻게 도울까?”라고 묻는 순간, 대화의 문이 열립니다.
일주일에 한 명, 이름 불러 칭찬하기 => 거창한 스피치보다 진심 어린 한 문장이 학생을 살립니다.
행정 업무를 ‘공부’로 여기지 않기 => 서류를 신속히 처리해 교실로 돌아가는 시간을 확보합니다. 그건 교사 스스로를 위한 셀프케어입니다.
동료 교사와의 ‘사명 공유’ => 공모전을 함께 준비하거나 공동 수업을 설계해, 열정을 팀플레이로 바꿉니다.
이 부분이 제일 중요합니다. 개인의 열정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교사를 소진시키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사명감은 금세 마모됩니다. 행정 보조 인력 확충, 교권 보호 장치 마련, 상담 전문 교사 배치 확대 같은 제도적 지지가 시급합니다. 동시에 학생과 학부모도 ‘교육은 공동 책임’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교사가 사명감을 유지하도록 돕는 것은, 곧 우리 모두가 더 나은 교육 환경을 누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전히 ‘명 선생’이라는 단어에 희망을 겁니다. 고3 시절, 저를 끝까지 믿어 준 담임선생님처럼 오늘도 어딘가의 교실에서는 누군가가 “괜찮다, 다시 해보자”를 외치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지켜 주는 사명감의 불씨가 꺼지지 않는 한, 공교육은 완전히 무너지지 않습니다.
명 선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공교육이 사회적 안전망으로 기능하려면, 교사는 지식 전달자를 넘어 학생의 삶을 함께 짊어지는 동행자가 되어야 합니다. 물론 그 길은 쉽지 않습니다. 학생의 거친 말 한마디, 학부모의 따가운 시선, 끝도 없는 행정 서류가 사명감을 시험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학교 선생님에게 ‘명 선생이 되어 달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아이들의 내일을 지키는 최소한의 장치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장에서는, 공교육이 왜 사교육과 달라야 하는지, 그리고 무너지는 공교육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해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입시에 갇힌 교실을 넘어, 사람을 키우는 공간으로서 학교를 상상하며, 이야기를 이어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