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 피드백 그리고 쓰다
얼마 전부터 남자친구는 글쓰기에 열을 올렸다. 나는 '쓰기' 시작한 남자친구를 기특하게 여기며 논산행 버스티켓을 끊었다. 그 애의 머릿 속에 차지한 나의 자리가 비좁아진다고 느낄 때마다 그에게 면회를 가곤 했다. 남자친구의 글쓰기 열정은 꽤나 뜨거웠고 오래간 지속되었다. 질투많은 여자친구를 이기게 한 그 실체는 '마감일'이었다.
남자친구는 얼마 전 같은 수업을 들었던 사람에게서 정중한 문자를 받았다. 교내 잡지에 실을 A4용지 3매 분량의 원고를 써줄 수 있겠느냐는 문자였다. 원고료는 5만원. 그 사람은 '고료가 너무 적죠' 하며 미안해하기도 했다지만, 따질 바가 아니었다. 남자친구는 세상과의 연결고리에 목이 말라 있었던 (월급 18만원의) 군인이었다. 그 때부터 남자친구는 무기 창고를 지킨다며 보초를 설때나, 행군을 할 때 늘 글을 생각했다. 개인 시간이 생기면 김영하 작가의 에세이나 시집을 읽었다. 글감이 생각날 때면 바로 펜을 꺼내 적었다. 몸은 부대에 있지만 정신과 영혼은 글쓰기에 총동원된 셈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글쓰기가 뭐 쉬운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처음 쓰면 당연히 어렵고, 해도해도 쉽지 않은 것이 글쓰기였다. 나의 마음과 생각을 번역해서 글로 옮기는 것이 글쓰기라고 한다면, 글을 쓰는 사람은 먼저 외부 자극을 받아들이는 촉수가 예민해야 했고 무언가를 겪은 후엔 남들과 다르게 사유하고 풀어내는 능력도 필요했다. 또 느낀 것을 적확한 단어와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번역해낼 언어적 능력도 있어야 할 것이었다. 내가 아는 한, 그건 시간을 가지고 훈련해야 하는 것이었다. 글쓰는 학과에서 4년, 글쓰는 직업으로 1년 반을 일했던 나의 어금니 빠진 글이 글쓰기의 어려움을 증명한다 자신했다. 나는 남자친구를 도와야겠단 마음에, 내가 먼저 글을 보고 고쳐주겠다며 마감일을 앞당겼다.
남자친구는 초고를 완성되었다며 쓴 글을 한 줄 한 줄 읽어주었다. 남자친구의 글은 생각보다 훌륭했다. 이제는 늘 속이 빤히 보이는 익숙한 머릿속이라고 생각했는데, 같은 사람에게서 나왔다기엔 놀랍도록 세련된 글이었다. 글의 한 비유는 마음에 찰싹 달라붙기도 했다. 똑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아 예술가의 길을 선택했더니, 그 길에서도 예술가는 '우리'가 아니라 여전히 동경해야 하는 '그들'이었다는 생각을 나방과 나비의 특징으로 표현했었다. 그래도 고칠 부분은 많아 워드 문서 한 바닥이 빨간색으로 변했지만, 맛깔나는 글을 써낸 남자친구가 자랑스러웠다. 나는 남자친구를 대단히 띄워주며 이것만 고치고 내면 되겠다 말했다.
다음 날이었다. 남자친구는 전화를 걸어 핏기없는 웃음을 하.하. 웃었다. 제출한 원고는 다시 피드백으로 가득차 새빨갛게 변해있었다. 메일 본문에는 '그럴 상황이 아니신데 이런 요청을 드려 죄송하다'는 말도 적혀있었다고 했다. 메일의 '그럴 상황'이란 것은 현역 군인의 상황이라는 거였고 '이런 요청'은 바로 글쓰기였다. 원고 요청을 받고 부대 바깥을 향해 날개를 퍼덕였다가, 군대와 세상을 경계짓는 유리창에 몸을 철푸덕 들이받은 셈이었다. 그 메일로 남자친구는 한 번 더 '그들'과 분리 되었다!
동시에 그의 글을 고치고 칭찬했던 나도 함께 얼굴이 화끈화끈해졌다. '난 좋았는데 그 자식 왜 그러냐'고 해야할까, '나도 실은 별로라고 생각했다' 말할까? 내가 그 민망함을 대처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을 때 남자친구는 비겁하게도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 것에서 피드백을 받으니 전혀 기분 나쁘지 않고 감사하더라'고 말했다. 이제 화끈거림은 오로지 나의 몫이었다. 남자친구는 이어 말했다. 그리고 나비랑 나방 비유도 빼는 게 좋을 것 같대.
피드백은 오래간 잊히지 않았다. 나는 책상에 앉았다. 내 안의 '쓸 것'에 대해 생각했다. 글의 마중물이 되어주었으면 해 책도 몇 권 옆에 두었다. *버지니아울프가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하다고 했던 '나만의 방'과 '500파운드의 돈'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그런데도 머릿 속 생각은 응결될듯 되지 않을듯 나를 놀렸다. 최근에 나에게 화두가 된 생각들을 떠올려보았다. 완성은 쉽지 않았다.
나는 재수학원에서 '쓰기'를 배웠다. 고등학교 3학년, 입시에 실패하고 들어갔던 재수학원에서 나는 늘 이기적이었고, 혼자였고, 많이 걸었다. 학원을 오갈 때에 걸었고, 외출증을 끊어서까지 바깥으로 나와 공원을 걸었다.
걸으며 생각했다.
"나의 엉망인 인생도 하나의 서사일 뿐이구나."
그 때 나는 인생 처음 소설을 썼다. 그 소설의 제목은 <볕 들 날>이었다. 나는 다음 해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다. 그게 벌써 7년 전 일이다.
'아무래도 작가의 유전자와 독자의 유전자는 따로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후 오랜만에 다시 해보았다.
최근, 꼭 내가 꿈꾸었던 모습을 현재로 살고 있는 언니를 만났다. 영어학원 같은 스터디 조로 만났던, 그 때부터도 성실함이 유별났던 언니였다. 언니는 어린 나이에 9명 팀원을 이끄는 팀장이었고, 남들에게 쉽사리 이야기 못할 비밀한 꿈이 있었고, 그래서 계속 공부했다. 이미 이룬것이 무색하게 다음 진로를 꿈꾸며 시간을 쏟았고, 나는 언니가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모습이 빛나보였다.
언니는 최근 대만 여행이 가고 싶었다고 한다. 돈 버는 싱글의 여행을 누가 무어라 할까마는, 대만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곧바로 한 달 뒤에 스페인 여행을 떠날 예정이라는 게 마음의 걸림돌이었다. 언니는 고민했다.
나같은 한량이 듣기엔 너무나 황당하게도, 언니는 스스로에게 하기 싫은 숙제 3가지를 내주고 모두 지키면 대만 여행 가는 것을 허락해주기로 정했다. 그 세가지 숙제란 '논문 쓰기', '경제 다큐멘터리 5편 보기' 그리고 '아빠와 등산가기'.
그 중 등산가기가 최대의 장애물이라고 말하는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깔깔 웃었다. 언니는 곧 대만여행에 떠날 것처럼 보였다.
참 요상하게 성실한 언니였다. '자는 시간이 아까워 꼭 무어라도 하고 새벽 늦게 잔다' 하는 말을 들을 땐, 나라는 사람을 언니에게 위탁 운영해야겠단 결심이 들었다. 그럴 순 없으니 나도 언니를 따라 나 자신에게 세 가지 숙제를 주기로 했다.
<숙제>
1. 날 것의 표현이 워낙 많아 계속 읽기를 포기했던 김훈 수필 한 권 읽기
2. 시작과 끝이 있는 글 5편 쓰기
3. 달리기 5번 하기
고민해서 적고나니 또 고민이 되었다.
'숙제 다하면 보상은 뭘로 주지?'
한참을 고민하다 내가 떠올린 보상은 '스스로에게 책 10권 사주기'였다. 암만 고민해도 이런 것 밖엔 떠오르지 않았다. 참 글밖에 모르는 시시한 인생이라고 생각하다, 다시 생각했다. '자질'은 몰라도 내 '정체성'은 확실하게 글쓰는 쪽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욕심내고, 사랑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있어서 다행이라고도.
그렇게 나는 오늘도 회사에서 쓰고 퇴근해서 쓰고,
쓰는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쓰고
남자친구를 쓰게 만들며 나도 쓴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연간 500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썼다. 작가가 될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사람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모든 가능성을 빼앗겼던, 당시 여성 차별의 현실을 통탄해하며 쓴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