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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멍구 Jan 06. 2017

지나고 보니, 반짝이던 순간들

시 -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생일이었다. 미처 못 먹어 남긴 음식들을 테이블에 깔아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야깃거리가 떨어져 서롤 바라보며 웃고만 있을 때, 남자친구는 이야기했다.


"내가 너를 조금 더 일찍 발견했다면, 그래도 영화를 한다고 했을까...?

처음 나를 좋아했을 때, 조금 더 추파를 던져주지 그랬어!"


나는 주말에 영화를 찍는 게 많이 힘들었구나 생각했다. 나는 "지금 만나는 게 최선이었어. 더 일찍 만났어도 우린 언제까지 기다리기만 해야하냔 말을 한참 달고 살아야 했을걸." 하고 말했다. 말해놓고, 그건 좋은 답변은 아니었던 것 같단 생각을 했다.



고기를 좋아하는 우리, 스테이크를 좋아하는 우디

 


 

남자친구는 가끔 사람들이 자기를 보는 시선이 동물원의 동물을 보는 시선 같다고 느낀다는 말을 했다. 우디는 공대 전자과를 다니다가 스물 셋의 나이로 다시 입시를 준비해 영화과에 입학했다. 그 결정을 할 때만 해도 스물 셋, 치기어린 결정이었다고 해도 당시는 꿈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수 있었던 나이였다. 그치만 미뤄뒀던 군대에 다녀오고 졸업까지하고 나면 스물 아홉이다. 아무래도 마냥 꿈을 위해 시행착오를 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됐나보다. 남의 시선에 동요하는 사람이 아녔지만 이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위태로운 불안이 보였다.



"동물원에는 일상에서 보기 힘든 것들이 있으니까 굳이 가게 되는 거잖아. 나도 그런 것 같았어.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재입학을 한 용기가 대단하다고 하는데, 그 사람들 눈에서 '쟤는 어떻게 되려나'하는 호기심이 더 먼저 느껴지기도 했어.

그런데 그렇다고 보란듯이 잘 살아주겠다고 동기부여가 된다거나 하지는 않고. 그냥 좋지않은 느낌이 든단 것만 알겠어."


그 이야기를 듣고

주말, 영화를 찍는 동안 많이 힘들었구나는 생각이 한 번 더 들었다.


우디는 특별한 날마다 편지를 내밀곤 했다

 



이전에 우디는 사람들이 꿈을 물어볼 때 자신이 찍고 싶은 영화나 이런 저런 꿈을 이야기했던 것 같다. 그치만 요즘은 사람들이 꿈이 뭐냐고 물어볼 때에 그저 '행복하게 사는 거' 라고 답하곤 한다고 했다. 예전에 내가 '너는 10년 뒤에 네가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어?' 하고 물었을 때에도 우디는 그렇게 대답했었다.


지금 가진 소중한 것들을 잃지 않고 간직하고 있으면 좋겠어...


나는 '나는 너가 꼭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하고 말했다가, 또 한 번 참 나쁜 대답을 했다고 느꼈다.



남멍 출판사. 발행인 남멍. 편집인 남멍.

허접한 책을 만들어서 선물했다. 크래프트지에 그림과 글을 적고, 바늘과 실로 바느질을 해서 엮었다. 상상으로는 예쁘게 만들어 질 것 같았는데, 글씨체와 그림실력이 이렇게 큰 부분을 차지할 지는 몰랐다.

내밀기도 민망한 그림책을 "선물이야-"하고 내밀고, 내가 먼저 웃음을 터트려 비웃어도 좋다는 밑밥을 깔았다. 그런데 우디는 책을 보고나서 울것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만들어준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아까 했던 얘기가 떠올랐어.

내가 너를 조금 더 일찍 발견했다면, 그래도 내가 영화를 했을까.하고 물었었잖아.

이 책 보면서 생각했어. 너를 일찍 만났어도 나는 영화를 했겠구나.


너는 나에게 너무 영감을 불러일으켜주는 사람이야."




얼마 전, 나는 마음을 울리는 시 한 편을 읽었다.

돌의 쓰임새를 고민하며 뜻없는 담소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을 그려적은 시.


제목부터 마음을 울리는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김민정


지지난 겨울 경북 울진에서 돌을 주웠다
닭장 속에서 달걀을 꺼내듯
너는 조심스럽게 돌을 집어 들었다
속살을 발리고 난 대게 다리 두 개가
V자 안테나처럼 돌의 양옆 모래 속에 꽂혀 있었다
눈사람의 몸통 같은 돌이었다
야호 하고 만세를 부르는 돌이었다

물을 채운 은빛 대야 속에 돌을 담그고
들여다보며 며칠을 지냈는가 하면
물을 버린 은빛 대야 속에 돌을 놔두고
들여다보며 며칠을 지내기도 했다

먹빛이었다가 흰빛이었다가
밤이었다가 낮이었다가
사과 쪼개듯 시간을 반토막 낼 줄 아는
유일한 칼날이 실은 돌이었다
필요할 땐 주먹처럼 쥐라던 돌이었다
네게 던져진 적은 없으나
네게 물려본 적은 있는 돌이었다
제모로 면도가 불필요해진 턱주가리처럼
밋밋한 남성성을 오래 쓰다듬게 해서
물이 나오게도 하는 돌이었다
한창때의 우리들이라면
없을 수 없는 물이잖아, 안 그래?

물은 죽은 사람이 하고 있는 얼굴을 몰라서
해도 해도 영 개운해질 수가 없는 게 세수라며
돌 위에 세숫비누를 올려둔 건 너였다
김을 담은 플라스틱 밀폐용기 뚜껑 위에
김이 나갈까 돌을 얹어둔 건 나였다
돌의 쓰임을 두고 머리를 맞대던 순간이
그러고 보면 사랑이었다




네가 아니면 꿈. 하나밖엔 가질 수 없을 것 같았던 우리들의 고민. 낭만의 콩깍지가 벗겨지고 난 뒤의 현실에서도 함께였으면 해 고민하고 답을 찾던 말들. 결국 각자의 꿈에 서로를 끼워넣어 너는 잃지 않겠다 약속했던 말들. 그러고 보면 사랑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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