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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멍구 Sep 09. 2015

나는 사막에 태어난 물고기였다

내가 맞닥뜨린 문과 취업 현실에 대하여


 오늘은 뭐했냐고 묻던 오빠는 나를 앉혀 놓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너 현실을 직면 안하고 있는 것 같애. 돈 못 벌어도 네가 하고 싶은 일 하면 행복할 것 같지? 너는 너가 어떻게 살게 될 것 같아? 그렇게 살면서 괜찮은 전셋집 얻어서 여행도 종종 다니고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냐? 니 장점이 대체 뭐야? 그런 건 천 명 중에 오백 명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고. 니가 어필할 수 있는 너만의 장점이 뭐냐고. 취업시장엔 그것에 더해 더 내세울 거 많은 애들이 세고 셌어. 그리고 나는 영화 <화차>의 이 대사를 떠올리며 이를 꽉 물고 눈물을 참고 있었다.     




  『영주야 화차에 타. 너 아니면 누가 풀어낼 수 있어. 너는 알잖아. 자기 연민의 폭력 성을. 자기가 불쌍해 죽겠는 여자가 저지르는 일을. 자기가 불쌍해 죽겠는 여자가 타 인을 어떻게 잡아먹는지. - 영화 <화차> 중』     





   나는 스물 다섯. 곧장 졸업했다면 벌써 졸업하고 구직을 시작했을 나이였다. 그렇지만 재수와 휴학으로 학교는 두 학기나 남아있었고, 취업준비로 주어진 1년을 어떻게 채울지 끙끙대던 참이었다. 오빠는 이어 네 친구들은 지금 뭘 하고 있냐고 물었다. 취업한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 나는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A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고, B는 취업스터디 하면서 이력서 계속 넣고 있고, C랑 D랑 E는 공무원 준비해. 그나마 F는 취업을 했는데 벌써 세 번째 직장이야. 그전에는 회사가 너무 안 좋아서 스트레스로 방광염도 걸리고 그랬다나봐."

   개중에는 학교를 3학년이나 다니고 나서 취업을 이유로 다시 전자과로 재입학을 해서 아직 저학년인 친구도 있었고, 사회복지 일을 하다가 도저히 못하겠다며 여군을 준비하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내 친구들을 묻는 오빠의 물음이 주변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며 나의 한심함을 일깨우려는 의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의 친구들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열심히 설명하려 했다. 그러나 내 예상은 틀렸다. 나의 한심함을 일깨우려는 의도로 물었던 것은 맞았지만 오빠의 일깨워주고 싶어 했던 것은 문과 취업의 현실, 그 자체의 한심함이었다.


   "문과가 그래 윤아야. 친구 중에 한국외대 경영학과애가 있는데, 걔 졸업하고 지금 프로그래밍 공부하고 있어. 요즘은 연고대도 문과는 들어갈 데가 없어. 오죽하면 삼성 같은 대기업들은 공부 잘하는 문과들 뽑아서 프로그래밍 가르치고 일 시켜."     







  취업시장에서 문과는 유독 애물단지 신세다. 원인 도출은 어렵지 않다. 회사에서 문과 학생들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문, 이과 학생 수의 비율이 7:3이라면 회사에서 채용하는 비율은 2:8이라나. 몇 천 만원을 투자해가며 전공을 배웠는데, 이제 와서 취업 시장에서는 별 쓸모없다니 문과생들은 허탈하고 막막할 뿐이다. 이런 현실은 인문학의 위기와도 맞닿는다. 최근 ‘취업 경쟁력’을 이유로 인문학 관련 학과가 여럿 통폐합 되었다. 반면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애플의 성공을 운운하며 인문학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은 필요 없고 ‘돈 되는 인문학’만 하겠다는 거다. "진짜 문과엔 답이 없어. 일 많지. 근데 그게 좁다고. 내가 일하는 곳도 회사 건물 몇 십층이 개발 기술팀인데, 마케팅이나 인사팀 이런 건 한층도 자기네들이 다 안 써. 문과도 할 일 있지. 있는데 뽑는 사람이 적다고. 괜히 연고대 애들이 놀고 있는 게 아니야."

   오빠는 나에게 지금이라도 수능을 다시 보고 공대로 재입학 할 것을 추천했다.






한 때는 나도 김미경씨를 강의를 다니며 꿈을 좇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짜고짜 꿈만 부축이는 이런 글들이 정말 싫다.








   취업이 힘든 취업 준비생들이 자주 듣게 되는 한 마디가 있다. 눈을 낮춰. 틀린 말은 아니다. 무급 인턴자리에도 대외활동과 공모전 경력 등으로 파일을 꽉 채운 포트폴리오를 들고 면접에 들어오니, 굳이 눈을 낮추려 하지 않아도 절로 낮아진다.


   그래서 나도 최근 눈을 낮춰 한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갔다. 건물의 지하 1층을 차지하고 있던, 직원 수 10명 남짓의 작은 회사였다. 회사의 대표는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점심시간도 생략해가며 긴 면접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연봉협상 이야기를 하자던 회사 대표는 뜬금없이 물었다. "건축, 디자인, 광고를 하는 직업의 공통점이 뭐인 것 같아요?" 그 대표의 답을 요약하면 이거였다. 그 직업을 갖기까지는 시간과 돈을 많이 투자해야 한다. 그러나 대우나 봉급은 형편없고 노동 강도는 세다.


 "한국 디자인 회사에서 회사 CI하나 의뢰해서 받으려고 하면 300만원은 줘야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중국 회사에 맡기면 30만원이면 돼요. 중국 회사에 맡기면 3일도 안돼서 괜찮은 거 열 개는 만들어서 보내와요. 요즘 세상이 그래요. 글 쓰는 것도 똑같아요. 요즘 괜찮은 기사 하나 얻으려면, 작문 학원 있죠? 거기 수강생들한테 기사 부탁하면 돈 안줘도 괜찮은 걸로 금방 보내와요. 회사는 굳이 사람을 채용해서 오르는 연봉 줘가면서 일을 맡길 필요가 없어요."


   대표는 이어 내가 써낸 희망 연봉은 힘들 것 같다고 자신이 생각하는 연봉을 이야기했고, 그래도 이 회사에 다닐 마음이 있냐고 묻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그렇다 대답했다. 그리고 면접을 보고 온 그 날, 나는 늦은 시간에도 예배에 가서 찬양 시간 내내 엉엉 울었다. 모든 게 비싸고 나만 저렴한 이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그 회사에서도 채용 연락은 오지 않았다.





문예창작과가 취업이 힘들 거라는 건 나만 몰랐나보다.  (출처 : 문과취업원정대)






   공대 친구들의 상황은 문과의 현실과는 다른 것처럼 보인다. 공대 친구들의 취업 소식은 어렵지 않게 들려오고, 연봉도 높다. 나는 왜 문과를 선택한 걸까? 내가 고3이었을 때, 어떤 선생님도 우리가 진학할 학과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내가 어떤 것을 배우게 될지도 생각해보게 하지 않았으니, 하물며 대학 졸업 이후의 삶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에게 중요했던 건 그저 대학의 네임 밸류였다. 그때 우리는 무조건 높은 대학에 가고 싶어 했다. 학과는 상관없었다.




  다시 돌아간다면 취업이 잘 되는 공대를 선택했을까? 하지만 그것도 아녔다. 나는 언어가 좋았다. 중학교 국어 선생님께는 글을 쓰는 게 좋은데 잘은 못쓰겠다며 비밀스런 고민 상담을 하기도 했고, 고3 수험시절에는 내가 쓴 시를 교무실로 가져가 첨삭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따라가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다. 그리고 그 길목이 막다른 길인 줄은 벽에 머리를 찧고서야 알았다. 


  나는 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친구와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인지를 짚어나가다가, 우리의 잘못은 나의 선택에 있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사막에 태어난 물고기였다. 사방이 온통 모래뿐이고 우리가 살 수 있는 연못은 좁고 열악하다. 그곳에라도 비집고 들어가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데, 그곳을 들어가기 위해 경쟁해야 할 사람들은…. 그에 비해 나는….



  그 다음 단계가 자기연민이었다. 분노보다도 무섭다는 자기연민. 나는 이 생각을 멈추기로 했다.












  요즘도 오빠와 나는 종종 싸운다. 오빠는 대기업의 횡포를 긍정하고 재래시장 상인들이 죽어가는 것은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당연한 결과라 이야기한다. "우리 회사에 청소해주시는 아주머니만 몇 백 명이야. 환경도 좋고 돈도 많이 줘. 재래시장 상인들도 장사 안 된다고 우는 소리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돈 벌 수 있는 곳을 찾아서 먹고 살아야지." 그러면 나는 소리를 지른다. 오빠가 뭘 아냐고. 오빠 같으면 돈 줄 테니까 프로그래밍 관두고 청소부 하라고 하면 좋구나하고 그 일 할 거냐고. 괜히 더 씩씩대며 이야기한다.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다는 말이 참 나한테 하는 말 같아서.








  그래도 어쨌든, 사막에도 물고기는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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