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괜찮다고 할 것인가

ep.9 새로운 시작을 꿈 꿔도, 그건 꿈일 뿐이야

by bella

검사 결과를 받은 후 며칠은 평화로웠다.

마치 오랜 전쟁이 끝난 후 찾아온 휴전 같은 시간이었다.

남편은 퇴근하면 아기 용품 사이트를 뒤적였고, 주말이면 아기 방을 어떻게 꾸밀지 스케치를 그렸다.

그의 눈빛에는 기대와 설렘이 가득했다.

신혼의 달콤함과 첫 아이에 대한 환상이 뒤섞인, 순수하고 투명한 행복이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밤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계산기를 두드렸다.

월세, 관리비, 식비, 보험료, 병원비. 거기에 더해질 분유값, 기저귀값, 육아용품, 나중의 교육비.

숫자들이 머릿속에서 쌓여갔다.

마이너스가 되지 않으려면 얼마나 더 벌어야 할까.

산후조리원은 갈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출산비용부터 감당할 수 있을까.


남편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하고 있었지만 내게 보이지 않으려 애쓰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는 밝은 얼굴로 말했다. 다 잘될 거라고, 힘들어도 함께 이겨내면 된다고,

우리 아들이 얼마나 귀여울지 상상이 안 된다고. 그의 말들은 따뜻했지만, 내게는 공허하게 들렸다.

현실의 무게를 알지 못하는 사람의 낙관처럼.


아니, 정확히는 다르게 아는 것이었다.

남편에게 이것은 첫 번째 결혼이었고, 첫 번째 아이였고, 첫 번째 가정이었다.

모든 것이 새롭고 설레는 시작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한 번 무너진 적이 있었다.

10년의 결혼생활이 얼마나 쉽게 깨지는지 알았다.

사랑만으로는 안 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경제적 문제가 관계를 얼마나 빠르게 잠식하는지 경험했다.

그래서 나는 즐길 수 없었다. 신혼의 달콤함도, 첫 아이에 대한 설렘도.

그 모든 것이 깨지기 쉬운 유리처럼 느껴졌다.


더 깊은 두려움도 있었다. 아들을 낳는다는 것. 남자아이를 키운다는 것.

밤마다 어두운 생각들이 찾아왔다.

만약 아이가 삐뚤게 자라면 어쩌지. 사춘기에 반항하고, 엇나가고, 나를 원망하면.

혹은 자라서 폭력적이 되면, 나를 해코지하면. 뉴스에서 봤던 끔찍한 사건들이 떠올랐다.

아들이 어머니를 때리는 이야기, 가족을 버리고 떠나는 이야기, 범죄자가 되는 이야기.

과잉된 불안이라는 것을 알았다.

합리적이지 않은 걱정이라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밤이 되면 이성은 힘을 잃었고, 두려움만이 증폭되었다.

남편은 옆에서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고, 나는 혼자 깨어 있었다. 이 간극이 점점 벌어지는 것 같았다.


이 사실을 말하면 그의 행복에 금이 갈 것 같았다.

신혼의 단꿈을 깨뜨릴 것 같았다. 그는 당연히 행복해야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고,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것.

그것은 축복이었고, 기뻐해야 할 일이었다. 내가 이상한 것이었다. 즐기지 못하는 내가 문제인 것이었다.

전 남편과의 결혼생활이 떠올랐다.

사랑으로 시작했지만 돈 문제로 금이 갔다. 그가 일을 그만두고, 나 혼자 벌어서 생활하고,

결국 지쳐서 무너졌다.

같은 일이 반복되면 어쩌지. 아이가 생기면 지출은 늘어나는데 수입은 줄어들면,

우리도 그렇게 금이 가면. 다시 혼자가 되면.

남편은 달랐다. 그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다. 매일 일을 나가고, 운동으로 건강을 관리하고,

나와 아이를 위해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두려움은 논리적이지 않았다. 과거의 상처는 합리적 판단을 마비시켰다.


신혼의 남편과 재혼의 아내. 우리는 같은 침대에서 자지만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그는 희망의 꿈을, 나는 불안의 악몽을. 그 간극이 점점 벌어지는 것 같았다.

아직은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웠지만,

언젠가는 너무 멀어져서 닿을 수 없게 되는 건 아닐까.


다음 날 아침, 남편이 나를 다정하게 안아주며 말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라고, 사랑한다고.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 말속에 담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두려움, 불안, 걱정, 과거의 상처.

새로운 시작을 꿈꿨다. 검사를 통과하고, 건강한 아들을 확인하고, 희망찬 미래를 그렸다.

하지만 그것은 꿈일 뿐이었다.

현실은 복잡하고, 무겁고, 두려웠다. 꿈과 현실 사이의 간극에서, 나는 표류하고 있었다.

남편은 여전히 꿈을 꾸고 있었다. 그것이 부러웠고, 동시에 답답했다.

나도 저렇게 가볍게 꿈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나는 이미 한 번 깨어난 사람이었다.

현실의 무게를 아는 사람은 다시 꿈꿀 수 없었다.


눈물이 흘렀다. 행복의 눈물이 아닌, 무력함의 눈물이었다.

하지만 닦아내지 않았다. 그저 흐르도록 내버려뒀다.

이것도 나의 일부였으니까. 불완전하고,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나.

그것이 이 아이의 엄마가 될 나였다.


간극은 벌어지고 있었다. 남편과 나 사이에. 꿈과 현실 사이에. 희망과 불안 사이에.

그 간극이 깊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언젠가는 좁혀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나는 그저 이 간극 속에서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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