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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욱림솔훈 Jan 31. 2024

책과 나의 옛날이야기

과거의 나 | 글쓰기 모임을 시작하기 전, 나의 이야기


안녕하세요. 욱림솔훈의 유림입니다.

오늘의 글은 글쓰기 모임 이전의 욱림솔훈 멤버들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입니다. 

총 4편의 에세이로 여러분을 찾아뵐 예정입니다:) 부디 기대해 주시길!


첫 번째 글은 저의 이야기인데 오래전 쓴 글을 다시 읽으니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새롭기도 합니다. 브런치를 통해 저도 찬찬히 욱림솔훈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기분을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함께 걸어요!



º 주제: 과거의 나


책과 나의 옛날이야기 | 유림 

오후 | 대욱 (24.02.07)

18.03.02 | 은솔 (24.02.14)

사랑과 혀 | 영훈 (24.02.21)



책과 나의 옛날이야기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언제나 책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쉽게 꺼낼 수 있는, 책꽂이 아래에서 두 번째 칸을 채운 색색의 동화책들. 생각해 보면 종류도 한국, 미국, 독일 등 다양했는데, 유독 '바보 이반'이란 동화책이 기억에 남아있다. 어쩐지 눈의 초점이 안 맞는 이반이 웃으면서 정면을 응시하는 표지였는데 그 분위기가 무서워서 아직까지 기억하는다. 책장엔 '바보 이반'처럼 독특한 일러스트부터 동화책 다운 따뜻한 일러스트까지 다양한 책들이 있었고, 그날 기분에 따라 하나를 꺼내 가면 엄마는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책을 읽어주셨다. 나는 그 시간이 좋아서 매일매일 책을 골랐다. 엄마는 그런 나를 무척 기특해하며 꽉 안아 주셨고 나는 그때마다 책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럴까 엄마는 지금도 내가 책을 읽으면 나를 뿌듯한 눈빛으로 지그시 바라본다. 얼마 전에는 거실에서 김초엽 작가의 <지구 끝의 온실>을 읽고 있었더니, 어느새 엄마가 다가와서는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어린 나에게 동화책을 읽어주었는지 얘기해 주며 엄청 생색을 내셨다. "다 엄마 덕이야." 하곤 흠흠, 웃는 엄마를 보며 나도 같이 흠흠, 하고 웃었다. 그래 맞아, 다 엄마 덕이지.


앞니의 빈자리를 혀로 눌러보던 시절, 매일 밤 찾아오는 다른 세계 속 친구들을 좋아했다. 콩 나무를 키우는 잭이나 옥수수 빵을 굽는 암탉의 이야기는 어린 나를 설레게 했고, 매일 밤 꿈속에 다양한 친구들이 나왔던 것 같다. 엄마가 한참 동화책을 읽다가 조용해져서 나를 보면 내가 무척이나 행복한 얼굴로 잠들어있었다고 한다. 아마 다정한 엄마의 목소리와 포근한 동화책 속 세상이 그때의 내가 누릴 수 있었던 가장 안락하고 따뜻한 순간이지 않았을까. 그 따뜻하고 안락한 기억이 오래도록 남아 내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다만 엄마는 내가 엄마를 좋아해서, 그때의 기억이 너무 좋아서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생각은 못하는 것 같다. 그저 출력값처럼 엄마가 '책 읽어주기'를 해서 내가 '책을 좋아하는 아이'가 되었다고 믿는다. 그럴 때마다 그 사이에 분명히 존재했던 몽글한 시간이 '엄마의 교육법'에 갇히는 것 같아 조금은 슬프다. 음, 여기서 예상할 수 있겠지만 그 예상이 맞다. MBTI에서 엄마는 T이고 나는 F다. 이런 얘기를 하면 또 '네가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그래, 뉴스나 좀 봐.' 하신다. 이게 또 틀린 말은 아니라서 서러움을 삼키고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곤 속으로 툴툴거린다. 엄만 날 너무 몰라.


그 여섯 살짜리 아이가 대학을 졸업할 만큼 시간이 지났지만, 내 주변에는 여전히 책이 많다. 사실 내 방에만 많다. 크고 나서야 부모님이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가끔 벽 한쪽을 채웠던 그 많은 동화책을 떠올리면 새삼스레 마음이 울렁거린다. 딸에게 읽어주기 위해 앙증맞은 동화책을 잔뜩 사 모으던 지금보다 젊은 날의 두 분.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두 분은 나보다 조금 더 언니, 오빠일 뿐인데 어떻게 아이를 키우셨는지. 나는 못해...라고 생각하고 만다. 비록 지금은 딸 방에 책장이 있는지 없는지 신경도 안 쓰시는 두 분이지만, 그때는 그렇게 열심히 책을 읽어주셨다. 그때 동화책을 꽂아두었던 책장은 책 말고 다른 것들이 쌓이기 시작하더니 망가져서 버리고 말았다. 그 이후로 나는 책상 위에 둘 수 있는 적당히 큰 책꽂이를 들였다. 새 책장을 사고 싶었지만 책장을 둘 자리가 나지 않아 선택한 나름의 최선이었다. 그래도 두 단짜리 책꽂이 안에는 온전히 내가 고른 책들이 있다. 소설과 시집과 에세이와 몇 권의 인문학 책. 그리고 이제 책들은 책꽂이를 벗어나 책상의 1/3까지 자리를 넓혔다. 한 권의 책이 하나의 세상이라고 생각하면 이렇게 수많은 세상이 내 책상 위에 올라와 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내가 더 섬세하고 영리한 사람이었다면 그 세상들을 좀 더 빠르게 머릿속에 넣을 수 있었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서 책들을 그저 자주 꺼내보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소화하지 못한 세상을 오래 두고 몇 번이고 읽으면 언젠간 완전히 이해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미련을 가지고서.


언젠가 독립해서 온전한 내 공간을 가지게 된다면 크고 멋진 책장을 사고 싶다. 오래 걸릴 것 같은 예감이 들지만, 그래도. <오늘의 집>이나 <이케아>에서 자주 보이는 희고 차가운 느낌의 철제 책장이 아니라, 나뭇결이 살아있는 목제 책장을 사서 지금 가지고 있는 책들을 내가 자주 읽는 순서대로 꽂을 것이다. 그러면 책장이 아마 1/3 정도 찰 텐데, 남은 공간은 살아가면서 천천히 채우면 된다. 황인찬 시인의 시집은 가장 꺼내기 쉬운 4번째 칸에 넣을 거고, 내가 사랑하는 정세랑 작가와 이번에 읽은 김초엽 작가의 소설도 4번째 칸에 둘 것이다. 바닥과 가까운 첫 번째 칸에는 내가 좋아했던 동화책과 만화책을 넣을 것이다. 그리고 새롭게 채워질 책들을 위해 3번째 칸은 비워둘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책장만 보고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지 모른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흘러가서 내가 나를 잃어버렸을 때, 그 책장 앞으로 가서 첫 번째 칸부터 마지막 칸까지 천천히 둘러보는 나를 떠올린다. 수십 년의 삶 동안 나는 이런 책을 읽었고, 이 책을 좋아했고, 읽고 싶은 책이 아직 많구나. 분명 비워지고 다시 채워질 그 책장 앞에서 나는 삶에 젖어 잠시 길을 잃었던 '나'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ps.  멋지게 책 읽는 모습을 찾고 싶었는데 실패했다. 어쩌면 책이 아니라 과자를 좋아하던 아이였을지도... (참고로 저 과자는 맛동산:)



2022. 02. 08 

<책과 나의 옛날이야기>

유림 쓰고 드림



유림의 글을 읽고 영훈이 남긴 말


 유림은 시를 쓸 땐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여기저기를 새처럼 날아다니지만, 에세이를 쓸 때는 삐그덕거리는 로봇 같은 구석이 있다. 에세이를 쓰는 것은 어쩐지 어렵고 부끄럽다 말하는 유림은 많은 사람이 보는 메일링에 에세이를 쓰기 위해 아마도 굳은 결심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


이건 비밀이자 안 비밀인데 유림이 우리에게 처음 가져온 글에는 사실 이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단어를 고르고 표현을 압축하는 일이 즐거워 어릴 때부터 시를 곧잘 쓰는 유림이, 학교에서 배우는 시에 의문을 품으며 글을 쓰지 않게 되는 유림이, 어떤 계기로 다시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는 유림이까지. 유림이 꺼내어 보여준 과거의 유림들이 나는 빠짐없이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유림들을 익숙하지 않은 에세이의 언어로 꺼내어보는 노력을 해준 유림에게 고마웠다.


글을 쓰고 나눈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기 보단 필요한 일이라 생각하며 나는 이 글쓰기 모임을 하고 있다.  때로는 글을 쓰고 나누는 것이 오해할 일을 구태어 만들기도, 어떤 삶을 납작하게 묘사하기도 하니까. 그런 슬픈 상황과 두려움을 안고도 우리는 왜 계속해서 글을 읽고 쓰고 나눌까. 며칠간 메일링을 준비하며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질문했다. 글이 우리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정확하진 않은 것 같다. 책장을 신중히 채우고 비우는 유림들을 그려보며 나는 생각한다. 때로는 오해와 슬픔, 두려움을 받아들이며 어떤 세계를 이해하려는 우리의 '태도'가 글을 읽고 쓰게 만들지 않을까. 글이 우리를 좋은 곳으로 데려가듯 우리도 글을 좋은 곳으로 데려갈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말) 나는 항상 에세이를 '엣쎄이'라고 발음하는데, 유림이는 '에-세-이'라고 발음한다. 나는 왠지 글쓰기 모임에서 유림이가 에세이를 '에-세-이'라고 발음할 때마다 새가 떠오르고 그 순간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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