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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욱림솔훈 Feb 07. 2024

오후

과거의 나 | 글쓰기 모임을 시작하기 전, 나의 이야기

안녕하세요. 욱림솔훈의 유림입니다.


오늘의 글은 대욱의 에세이입니다. 

독자님들은 영원이란 단어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저에게 영원은 '멈춤'과 비슷하게 느껴져요. 동시에 소리도 공기도 사라진 무중력상태의 우주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아마 가장 영원에 가까운 것이라 그런 걸까요? 글을 읽기 전 먼저 여러분만의 '영원'에 대해 생각해 보시면 대욱의 글을 더 풍부하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즐겁게 읽어주세요:)







º 주제: 과거의 나


책과 나의 옛날이야기 | 유림 

오후 | 대욱

18.03.02 | 은솔 (24.02.14)

사랑과 혀 | 영훈 (24.02.21)




오후


 영원이라는, 과거가 없는 미래뿐인 말을 오래 품고 걸었던 적이 있다. 나는 겨울에 걷는 일을 좋아한다. 머리와 귀 사이를 스치고 지나가는 겨울의 기척을 좋아하고 바람이 거친 날은 두 귀가 사이드미러가 된 것 같은 기분이라 뛰지는 않고 천천히, 오래 걸으며 낯선 카페가 나왔으면 하고 생각한다.


과거는 다가올 수도 다가갈 수도 없기에 내킬 때마다 멋대로 생각해도 된다. 오늘의 산책길에 마음에 드는 카페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은 누구도 탓할 일이 아니다. 카페는 움직일 수 없고 길은 놓여 있기에 길이고 걸을 수 있는 나는 영화에서처럼 골목 끝 모퉁이를 돌아섰을 때 운명처럼 등장할 카페가 없다고 해서 나 아닌 누군가를 탓할 수는 없다. 속으로 혼자 서운해해도 상관없지만 누군가에게 그런 실망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떤 날엔 어찌할 수 없는 일을 탓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우리 앞에 내리지 않는 눈 그리고 희박해지는 과거 같은.


그때에 우리는 아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이야기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오래 앉아 커피를 마시고 티라미수를 나눠 먹고 사진을 찍고 물을 두 번이나 받아 마셨다. 3층에서 1층까지 오르내리며 화장실을 몇 번이고 가는 동안 3층엔 아무도 오지 않았고 그럴 확률은 얼마나 될까. 아마 우리가 만나 이렇게 알게 되고 시간을 보낼 만큼의 가능성보단 훨씬 더 그럴듯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건 너무 뻔한 전개이지만) 나는 진부한 것을 좋아한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얕은 반전이 얼기설기 기워진 이야기를 책망하는 일을 좋아한다. 웃긴 장면이 나오기 전에 먼저 웃는 일을 좋아하고 눈물을 바라는 장면을 견디지 못해 뻔한 미래를 먼저 읊어버리곤 한다.


어떤 과거는 분명한 장면이 수없이 많아도 말하고 싶지 않고, 어떤 순간은 다 날아가 버려 떠오르는 것이 없는데도 자꾸 생각하게 된다.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그 말을 듣지 않았다면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그날이 없었다면 어떤 날엔 차라리 죽어 있었다면. 나는 조금씩 줄어드는 기분으로 오늘이 된다. 작아진 나를 견딜 수 없을 때면 두고 온 나를 찾아 데려오고 싶어 진다. 그럴 수 있을까. 어떤 꿈에선가 깼을 때 그 어둠은 온통 아름다워서 눈먼 채로 머물러 있고 싶기도 했다.


나는 영원이라는 낱말을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어떤 순간은 아주 오래 기억됐으면 했다.


2022. 02. 10

<오후>

대욱 쓰고 드림




대욱의 글을 읽고 은솔이 남긴 말



 대욱 씨는 시를 가장 자주 쓰고, 시를 써올 때마다 우리를 놀라게 하곤 한다. 열 개도 되지 않는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 한 줄에 이렇게 마음이 짙어질 수 있나 싶어 꼭 두 번, 세 번 그 문장에 시선을 멈추고 다시 읽는다. 그런 그가 주로 쓰는 시 대신 에세이나 소설을 써올 때면 또 한 번 입을 틀어막는다. 에세이도 소설도 시만큼 좋아서. 가장 잘 쓰는 글 다음에는 덜 잘 쓰는 글도 있어야 하는데, 반칙인 것 같다고 생각하며 이번 에세이도 첫 문장부터 얕게 감탄을 뱉으며 읽어 내려갔다.


그는 에세이도 시처럼 쓴다. 그의 시에서 보았던 단어들이 긴 문장에 녹아내릴 때 글 위에는 더 짙은 향기가 머물다 가기도 한다. 평범한 단어도 대욱의 문장들 사이에서는 다시 두 번, 세 번 읽으며 그 의미를 느끼고 생각해 보게 된다. 이번에 그가 고른 사진 속 날씨가 참 그의 글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뿌연 하늘에 선명한 빛은 없지만 은은한 빛이 낮의 존재를 드러내는 모습이.


글쓰기 모임 초반에는 그의 글을 읽고 느끼는 것이 지금보다 어려웠다. 책을 내면서 맺음말로 서로에게 서간문을 쓰기로 했을 때, 그에게 서간문을 쓸 수 없다고 당당하게(?) 밝혔을 만큼.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글은 이해가 어려워도 자꾸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생각하다 무언가를 느끼는 날도 있고 그렇지 못한 날도 있다. 하지만 그 문장을 품고 있으면 덜 외롭고 덜 어려운 기분이 든다.


대욱의 글을 읽은 수신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어떤 문장에 멈추어 서서 여운을 느끼고 있을까. 어쩌면 나의 글 보다도 그의 글에 관해 수신자들과 감상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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