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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열 Oct 23. 2024

소실해 가는 것들에 대한 송가. 혹은 작별의 왈츠

이혁진 <사랑의 이해>


들어가기 전
이혁진 <사랑의 이해>






배경은 은행.

상수, 미경, 수영, 종현. 4명의 캐릭터가 나와요.

로맨스 소설이다 보니 네 명의 남녀가 얽히고 얽히는 이야기입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간극을 잘 보여주며, 사랑하지만 현실적인 벽에 부딪히는 장면들을 은근하게 보여줍니다.


보는 내내 각자의 입장이 다 이해가서 마음 아팠던 작품이었어요. 사실 그중에서도 가장 맘이 아프고 공감도 되었던 캐릭터는... 공격적이고 그늘진 사람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던 수영이었습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도 여운이 깊고 찐득하게 남았던 캐릭터였어요. 개인적으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영화가 생각나면서 이동진 평론가의 말이 떠올랐어요. 


부디 우리가 도망쳐 온 모든 것들에 축복이 있기를.





보통 이런 연애 소설은 용두사미거나 기승전 해피엔딩이라서 후반부 갈수록 읽는 속도가 더뎌지곤 하는데, 사랑의 이해는... 용두용미입니다. 오히려 후반부 갈수록 매력적인 작품이라,, 오죽하면 취한 상태에서도 결말을 읽고 잤다니까요? 마지막 책장을 덮기 전 작가의 말을 읽으며 혼자 곰곰이 생각했어요. 정말 사랑만큼 미화된 감정도 없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은 감정인데 우리는 왜 그런 감정에 목을 메가며 울고, 싸우고, 다짐하고 또다시 사랑을 하는 걸까요. 어제까지 꿀 떨어지는 눈빛을 주고 받으며 죽고 못 사는 사이였다가 하루아침에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어버리는, 사랑은 참 쉽지만 사랑은 참 어려운, 알 수 없는 모순 투성이의 감정.



우연히 제가 고민하던 부분과 요즘 감정에 잘 맞는 작품이었어요. 덕분에 저도 사랑을 약간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만.. 위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안수영 캐릭터를 보고 있으면 방어적이면서 공격적인 태도에 동질감이 느껴져서 그리 가벼운 마음으로 읽진 못했습니다. (눈물 슥,)



단순히 로맨스 소설이라기엔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적나라한 그렇기에 끝에 쓴맛이 감도는 사랑의 이해였습니다.





줄거리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에 대한 가장 보통의 사랑론







은행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네 남녀의 발칙하고 속물적이고 사실적인 사내 연애를 그린 작품으로, 회사로 표상되는 계급의 형상이 우리 인생 곳곳을, 무엇보다 사랑의 영역을 어떻게 구획 짓고 사랑의 행로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자세하게 담아냈다.



하상수 계장은 옆자리의 안수영 주임을 좋아하지만 둘 사이의 감정은 얽힌 실타래처럼 답답하게 꼬여 있다. 그러던 중 안수영 주임이 청원경찰인 종현과 호감을 주고받는 관계라는 사실을 눈치 챈 상수는 수영을 향한 마음을 접고 능력 있는 상사 박미경 대리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서서히 가까워진다. 한편 종현이 연거푸 경찰 시험에 떨어지며 둘 사이에는 미세한 불화의 조짐이 싹트고, 상수는 자신을 압도하는 미경에게 자격지심과 열등감을 느끼고 있는 스스로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데…….



은행이란 공간은 말없이 존재하는 배경인 동시에 모든 말들의 배경이기도 하다. 교환가치를 바탕으로 선택이 이뤄지고 선택이 또 다른 가치를 만들어 내는 은행은 자본주의의 꽃이자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보편적인 사고방식을 상징이기도 한다. 소설의 표면은 방황하는 연인들의 연애담이지만 그 이면은 설렘과 환희를 비롯해 자격지심, 열등감, 자존심, 질투, 시기심 등 사랑을 둘러싼 감정들, 즉 사랑할 때 우리가 말하는 것들과 이별할 때 우리가 침묵하는 것들에 대한 재발견으로 가득하다.








Index
사랑의 이해 속 문장들








아무 거리낌 없이, 거의 순진한 눈으로. “남자들은 늘 이렇게 비겁하죠. 세상없이 순한 척, 착한 척, 점잖은 척 다 내줄 것처럼 굴다가 몰리면 반말하고 으르렁거리고 주먹질 하려 들고, 벽에든 문짝에든 강아지한테든, 여자한테든, 자기보다 센 남자한테만 빼고, 그렇죠? 비겁도 남자들 본성인가? 아 종현 씨는 안 그렇던데.“


- 40p




방 안에는 희미한 술냄새와 빗물 같은 눈물 냄새가 났다. 두 사람은 어깨를 기댄 채 앉아 있었다. 곧 휩쓸려 갈 해변의 모래 더미처럼.


- 125p




행복에는 늘 거짓이 그림자처럼 드리우기 마련인 듯했다. 아니, 어쩌면 거짓은 조명일지도 몰랐다. 행복이라는 마네킹을 비추는 밝고 좁은 조명.


- 148p




사랑만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자신의 처지기 너무 기울어 있었다. 아마 사랑일 것이라고, 그렇게 믿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 이상을 바라는 것도, 더 깊게 생각하는 것도 지금의 자신에게는 모두 사치였다. 어쩔 수 없는 일 같았다. 빠르게 달릴수록 가까운 풍경은 흐릿해져 흘러가니까. 그럴게 흘려 지나치도록 달려야만 목표에 가까워질 수 있으니까.


- 160p




”사랑했어요. 확실했지만 이젠 모르겠어요. 사랑해서 여기에 있는지, 여기에 있을 수밖에 없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건지. 나도 이러는 게 싫는데, 미칠 것 같은데, 정말 모르겠어요.“


- 236p




좋아할수록 많은 것이 보이지만 그만큼 못 본 척해야 할 것도 많아진다. 기쁨과 슬픔음 함께 늘어난다.


- 283p




“나 계속 가?”


“결정은 네 거지.”


미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도 네 거고.“


- 323p




어쩌면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는지도 몰랐다. 설명할 수 없지만, 자신도 납득할 수 없지만 그런 것 같았다. 왜 이렇게 다 겪은 뒤에야 알 수밖에 없었을까. 왜 이제서야. 후회도 탄식도 아닌 쓰고 저린 감각이 마음의 낮은 곳에 고였다.


- 325p




수영은 방 안의 어둠을 바라봤다. 거울처럼 자신을 또렷이 비추는 어둠. 부끄럽고 참담했다. 후회조차 할 수 없었다. 상실감을 감당하지 않으려 했으므로 종현에게 한 짓은 결국 도망이었다. 애정 없이 다가갔으므로 상수에게 한 짓도 결국 유혹이었다. 사랑했지만 사랑을 믿지는 않았다. 사랑을 원했지만 사랑만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을 종현이나 상수에게서 구하려고 했을 뿐 자신에게서 구하려고도, 차라리 깨끗이 체념해 버리지도 않았다. 누구라도 자신과 같은 처지였다면 마찬가지였을 것이라는 말은 변명이 될 수 없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종현,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상수, 그리거 그 자신이란 명백히 안수영, 자기 자신이었다. 부서지는 모든 관계가 그렇듯, 자신이 망친 것이었다. 모든 것을 자신이 망쳤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자신이 만칠 수 있는 것은 모두, 스스로 망쳐 버린 것이었다. 자신이 누릴 수 있문 유일한 사치와 자유로, 유혹하고 유혹당할 수 있는 그 힘과 권리로.


- 329p




사랑이 다른 감정과 다르다면 결국 우리를 벌거벗게 만들기 때문 아닐까, 라도 생각했다. 사랑의 징후인 두려움과 떨림도, 보상인 환희와 자유로움도 그래서 생겨나는 것 아닐까, 하고.


- 35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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