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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람 Feb 14. 2024

이제는 사라질지도 모르는 연휴 TV 특선 영화

취향의 파편화와 개인주의의 심화

누구나 한 번쯤은 명절에 가족들과 함께 TV 앞에 모여 특선영화를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넷플릭스 시대의 특선영화를 떠올리자니 어딘가 향수 가득한 노스탤지어가 된듯한 기분이 든다. 아직도 방송사에서는 버젓이 매 연휴마다 특선영화를 방영해 주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확실히 과거에 비해 시청률은 대폭 감소했으며 방송사에 편성해 주는 영화 편수 자체도 줄었다. 심지어는 가족 단위 시청을 겨냥한 특집이나 파일럿 프로그램 자체도 줄어들어 들고 있다. 이러다간 머지않아 연휴 특선영화나 특집 방송들이 추억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날이 오고 말 것이다.


TV 특선영화의 쇠퇴

방송사가 특선영화를 방영하는 목적은 '시청률'이다. 물론 명절 특집 방송을 제작하기도 하지만 긴 연휴 기간을 다 채우기엔 예산에 문제가 있다. 그래서 방송사가 선택하게 된 것이 특선영화이다. 가성비 측면에서도 시청률을 붙잡아 두기 위한 수단으로써도 영화만 한 대중 매체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명절이 다가오면 방송사들이 인기 영화 방연권을 두고 경매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특선영화는 시청자 측에서도 꽤 메리트 있는 선택이었다. 당시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극장으로 직접 ‘이동’ 해야 했고 티켓값을 지불해야 했기 때문에 ‘돈’이 필요했다. 그리고 TV 특선영화는 이러한  번거로움을 상쇄시켰다.


Netflex

그러나 2000년대 후반, 영화 전문 채널이 생기면서 특선영화의 인기는 점차 시들어졌다. 그리고 다시 한번, IPTV와 VOD 서비스가 방송사와 영화계를 위협하더니 끝내 OTT 서비스 강자 넷플릭스가 등장하면서 특선 영화의 황금기는 막을 내리게 됐다. 시청자 입장에선 더는 극장에서 놓친 영화를 방송사가 방영해 줄 때까지 기다릴 이유도, 방송사가 선택한 영화만 볼 필요도 없어진 것이다. 그렇게 특선영화의 인기는 내리막길을 걷게 되면서 방송사는 더는 인기 영화 방영권을 두고 앞다투지 않게 되었다. 괜히 경쟁만 심해지면 가격만 오를 뿐 더라 현재의 저조한 시청률로는 이를 매울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2022년 mbc는 추석 특선영화로 <특송> 단 한편만 방영하기도 했다. 또 많은 방송사에서 특선영화의 비중을 줄이고 예능이나 파일럿 방송의 개수보단 퀄리티에 더 힘을 싣고 있는 추세이다.


‘함께‘에서 ‘따로’

TVN Drama <응답하라 1988>

연휴 특선영화 하면 빠질 수 없는 키워드는 ‘온 가족’이다. 특히 명절이 다가오면 방송사와 각종 기사에서 마치 하나의 슬로건을 외치는 듯 '온 가족이 함께 모여 보는 명절 특선영화'라는 문장을 쏟아낸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특선영화하면 가족과 함께 TV를 보는 군상이 강하다. 그런데 이런 특선영화의 시청률이 떨어진다는 것. 이는 함께 시청했던 가족도 줄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사실 명절이 아니더라도 1인 가구를 제외하면 TV는 함께 보는 특성이 강하다. 가구당 평균 TV의 개수는 한 대이기 때문에 홀로 있는 시간을 제외하면 혼자 TV를 독점하기엔 무리가 있다. 물론 아버지가 주말 낮 홀로 뉴스를 보는 시간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러나 OTT의 등장 이후 가족과 함께 TV를 보던 우리의 이미지는 희미해지고 있다.


Tommaso Del Croce <Digital light>

TV 시청이 가장 먼저 줄어든 구성원은 바로 자녀 세대이다. ‘어쩔 티비'라는 말을 들어 본 적 있는가? 이는 TV를 더는 보지 않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노트북으로 유튜브나 넷플릭스등 각종 미디어를 시청하게 된 자녀 세대가 부모세대 즉, 기성세대에게 '어쩌라고 티비나 봐'라는 뜻으로 그들을 조롱하는 은어로 유행되기도 하였다. 이삼십 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TV 자체를 안 본다기보다는 방송사에서 방영해 주는 방송을 안 본다는 게 더 맞다. IPTV로 웬만한 OTT 서비스가 가능하며 유튜브나 아프리카TV, 트윗치 같은 개인 방송이 주를 이루는 지금. 방송사가 특정 미디어를 선택하고 편성해 주는 스케줄에 개인이 맞출 필요가 더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특정 OTT 서비스 내에서 만든 드라마•영화•예능이 흥행을 더불어 쉼 없이 제작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부모 세대 또한 이끌고 있다. 이제는 가족 간에 함께 TV를 본다는 건 취향이 같지 않고서는 '굳이'가 되어버린 셈이다.


취향의 파편화와 나노사회


FLOWINGDATA.COM
나노사회: 개인의 취향, 산업의 형태, 사회 적 가치가 점차 극소 단위로 파편화되는 사회를 말한다. 산업화 이후 꾸준히 제기되어 온 문제이기는 하나, 그 경향성이 점점 더 강력해졌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트렌드 변화를 추동하는 중요한 동인이 되고 있다.  _<트렌드 코리아 2022>


각종 OTT 서비스는 AI 알고리즘을 이용해 이용자의 취향을 분석하고 그에 맞는 맞춤형 콘텐츠를 추천해 준다. 이는 긍정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면 자신의 취향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기회이자 편리한 기능이긴 하지만 비단 좋은 시각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오로지 자신에게 맞춰진 콘텐츠만을 소비하게 된다는 것은 개인의 개성과 취향이 뚜렷해지는 만큼 사회 구성원의 취향이 파편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개인 간의 공통분모가 줄어들었음을 의미하며 각자의 취향과 가치관에 맡게 사회구성원이 뿔뿔이 흩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를 두고 서울대학교 김난도 교수는 2022년 대표 트렌드 키워드로 ‘나노 사회’를 선정하며 이렇게 모래알처럼 흩어진 개인들이 앞으로는 단위 '나노'처럼 더 미세한 존재로 분해되어 흩어지게 될 것이라 이야기하기도 했다.


Liisa Lounila’s video features clips of deserts and dirt roads in constant motion

사실 TV가 우리 사회의 보급화 되었을 때 대두되었던 문제점은 TV가 공동체 의식의 약화를 초래해 소통의 단절을 일으킨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사례로 심리학자 윌리엄스(T.M Williams.1986)는 TV 도입이 공동체에 미친 영향을 장기적인 현장실험연구를 통해 이를 입증했다. 그는  TV가 도입되기 이전과 이후 그리고 먼저 TV가 도입된 다른 마을을 대상으로 아동 및 성인의 인식과 가치관에 미친 영향을 조사하였는데, 그 결과 TV 도입 이후 공동체 활동이나 스포츠 활동, 이웃과의 교제 활동이 모두 줄어든 것을 확인하였다. 즉 실제로 친구를 만나는 게 아니라 집에서 시티콤 프렌즈(Friends)를 보는 사람이 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TV가 우리 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완전히 약화시켰다고 확언할 수 있냐, 그것은 아니다. TV가 도입되면서 이웃 간의 교제활동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TV가 도입된 이후, 이는 사회 구성원 간의 또 다른 공통점을 형성하는데 한 몫했다. 과거 전 국민의 반 이상이 봤다고 과언이 아닌 <모래시계>, <허준>과 같은 드라마는 시청률 60% 넘겼으며 무한도전, 1박 2일, 스타킹과 같은 예능의 시청률은 30~40%를 넘기는 등 사회 구성원 다수가 공유하는 콘텐츠가 있었다.


Slaves of Time by Julio Vasile

나노 사회 속 각자의 취향과 관심사가  파편화된 오늘날 어떠한 특정 콘텐츠가 '주류'라고 특정하긴 어렵다. 예를 들어 한 유명 유튜버의 구독자가 233만 명이 넘을 만큼 유명한 대도 부모 세대는 해당 유튜버의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며, 친구나 주변 지인 다수가 그 유튜브를 꼭 시청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파편화된 취향은 주변인과의 연결성을 약화시키고, 불특정 다수와 연약한 유대 관계를 형성시킨다. 실제 KT 그룹의 디지털 광고대행사 플레이디에 따르면 요즘 세대는 오프라인에서 깊은 관계를 맺는 것보단 자신과 공통의 취향을 가진 사람과 가벼운 온라인 만남을 선호하며 실제로 만나지 않더라고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다면 연결과 소속감을 느낀다고 했다. 한 마디로 개인의 취향이나 가치관이 같지 않으면 관계를 맺는 것 자체를 꺼려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대중적'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느껴진다. 사람들의 취향이 잘게 나뉠수록 개인주의는 심화되고 공동체 의식은 점점 무너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나노 사회’와 ‘개인주의’가 약화되기는커녕 가속화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과연 개인주의는 공동체 의식을 약화시켜 우리 사회 구성원의 연대성을 끊어 놓는 부정적인 역할로써만 작용하는 것일까? 그보다 더 본질적으로 개인주의는 나쁜 것일까?


개인주의와 연대

개인주의는 공동체보다는 개인의 이익과 행복을 우선시하는 태도를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우선시'이다. 개인의 가치를 가장 우선으로 여기는 것일 뿐 공동체의 가치를 완전히 배제시키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한 사례로 언론사 <뉴시안>이 여론조사 전문 기관 리얼 미터와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MZ세대의 대표적인 특징, '개인주의(61.8%) 중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싫어한다.(48.3)' '다른 사람과의 갈등을 회피한다(31.3%)'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니까 개인주의는 타인의 이익과 행복을 희생시켜 이득을 갈취하는 '이기주의'의 개념이 아니다. 이는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존중함으로써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존중받고자 하는 태도이다. 이는 집단동조의 영향력을 감소시키며 개개인의 가치를 존중함으로써 서로 배려하는 사회를 이끌 수 있다.

<Long gay cat> by succpiss


유튜브 1인 콘텐츠가 활성화면서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다양한 직업군과 가치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게 되었다. 그중 자신의 성적취향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 자체를 숨기고 살았던 lgbt들이 온라인 사회에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인기를 끈 풍자와 김똘똘 같은 몇몇 크리에이터들은 보수적이던 공연방송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이는 우리 사회에 상당히 고무적인 변화이다. 게다가 국내 OTT 서비스 웨이브에서는 국내 최초로 성소수자 관찰 예능 프로그램 <메 리퀴어>와 <남의 연애>를 연달아 공개되어 화제를 끌기도 했으며 실제 많은 OTT 서비스에서는 LGBT와 관련된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터부시 했던 성소수자들을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임과 동시에 타인의 성적 취향과 가치관을 존중하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이기도 하다. 미국의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 리처드 로티는 "인류의 연대는 공통의 진리가 아니라, 공통의 이기적인 희망을 공유하는 문제이다."라고  말했다. 즉,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사회구성원이 서로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공동체의 이익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뜻 아닐까?


방송사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미디어와 기술이 계속해서 발전하는 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자신의 취향을 찾아 모래알처럼 흩어질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 일부 방송사들은 플랫폼, OTT 등을 같이 병행하는 것을 선택했다. 넷플릭스만 봐도 현재 방송사에서 방영하는 예능이나 TV 드라마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기존에 방송사 스케줄의 맞춰 방송을 송출하던 단방향 시스템에서 인터넷을 이용해 개인들이 원하는 시간에 볼 수 있도록 양방향 시스템으로 전환한 것이다. 게다가 MBC는 자체 제작한 콘텐츠 '피지컬:100', ‘나는 신이다’를 아예 경쟁자인 넷플릭스에서  론칭하기도 했다.


JTBC Logo


방송사 중 가장 특별한 행보를 예고한 건 JTBC다. JTBC는 근래 파편화된 시청방식으로 인해 식탁에서 온 가족이 즐길만한 ‘밥상 예능’ 사라지고 쓸쓸한 ‘혼밥예능’만이 남은 점을 언급하며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가족형 리얼리티 예능이 OTT 시대에서 TV라는 전통 매체가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이라 말했다. TV와 달리 매달 구독료를 내야 하는 OTT는 구독자를 유인하기 위해 대형자본을 쏟아부어 자극적인 콘텐츠 제작에 힘쓴다. JTBC는 이러한 점이 재미는 있을지 몰라도 후에 오는 허무감과 피로감이 크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문법을 따라야 하는 OTT와 달리 구독료도 없으며 다채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JTBC의 강점이임을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유튜브의 경우 크리에이터가 자신 일상을 공유하며 자연스럽게 스며든다는 강점이 있지만 스마트 폰으로 ‘홀로’ 시청하는 경향이 강하다. 반대로 TV라는 전통 매체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가족과 함께 보는 경향이 있다. JTBC는 이러한 TV의 전통적인 특성을 살려 유튜브·OTT에서 접하지 못하는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다고 전하며 앞으로의 포부를 드러냈다.


Actor Macaulay Culkin

한편 연휴 특선영화나 특집에 대한 방송사의 대책 방안은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게다가 올 설에는 단막극 형태의 특집극을 찾아볼 수도 없었다. 심지어 MBC에서는 나름 인기 특집 방송이었던 '아이돌 육상 선수권대회’를 편성조차 하지 않았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이것들은 고사하고 당장에 시청률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방송사가 앞서 언급한 방향들로 다시 시청자들을 끌어모으게 된다고 해도 사실 연휴 특선영화가 전처럼 인기를 끌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특집 예능의 경우는 특정 연휴와 해당 방송사에서만 볼 수 있는 희소성과 그날을 기념하는 기념비적 성격을 띠고 있지만 특선영화는 그렇지 않다. 지금의 영화는 언제 어디서든 시간과 장소를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영화를 볼 수 있다. 이는 가족단위 시청자를 공략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 방송사가 거대 자본을 가진 OTT나 VOD에 공개도 되지 않은 영화를 단지 특선영화를 위해 독점한다는 것은 수지타산에 맞지도 않다. 이대로 다음 연휴에 방송사 특선영화를 못 보게 된다고 할지라도 사실상 이상하지 않다. 정말 이대로 우리의 추억 속으로 영영 사라지게 될지도 모르는 연휴 특선영화. 이를 막고 싶다면 방송사가 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다 같이 해결방안을 한 번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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