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관 사건사고 일지
영화 범죄도시 2편의 소재가 되었던 필리핀 연쇄 납치 암매장 사건 당시에 근무했었던
영사와 코리안데스크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이다.
최세용, 김성곤 일당이 시신들을 암매장한 장소는 마닐라 근교에 위치한 개인주택이었는데
결정적인 증거인 시신을 발굴하기 위하여 집주인에게 협조 요청을 했음에도 이를 거부하는 바람에
심지어 법원 영장을 들고 갔음에도 영장이 진짜인지를 확인하겠다면서 계속해서 협조를 거부하여
집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집주인은 아예 그 집을 사라면서 터무니없는 액수를 불렀고 곤란하다고 하니
더 이상의 대화를 거부하였다.
해당 지자체의 시장을 찾아가 고충을 호소해 보았지만 시장도 딱히 방법이 없다고 하였다.
다만 그때 얻은 정보가 있는데 집주인이 어떤 특정 종교집단의 핵심 신도라는 것이다.
INC(Iglesia ni Cristo)라는 종교는 필리핀의 가톨릭에서는 이단이라고 불리지만
신도 수가 몇백만 명에 달하고 꽤 교세가 큰 교단이다.
필리핀에 와본 사람이라면 일반적인 성당과는 다르게 지붕이 뾰족하게 디자인된 교회들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INC의 교회이다.
우리는 종교 지도자를 면담하고 싶었지만 직접면담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의 비서진을 통하여
내용을 전달한 후에 갑자기 집주인이 허락을 해 주어서 원상복구 비용을 지불하고 들어가서
시신을 발굴할 수 있었다.
나중에 수감 중이던 김성곤이 이례적으로 한국송환이 결정되자 대사관에 연락을 해왔고
본인이 체포될 때 압수됐던 물품 중에 수첩이 있는데 그걸 찾아서 가져 달라고 요청해 왔다.
당시 경찰서에서 보관하고 있던 짐 중에 일기장 같은 것이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전달하기 전에 잠깐 내용을 훑어보았다.
혹시나 사건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있나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는데 그런 내용은 거의 없고
순 만났던 여자 관련한 추잡한 이야기뿐이었다.
한국에서 환전소 여직원을 살해하고 외국으로 도망쳐서 관광객들을 납치하여 돈을 뜯어내고 살해한
가장 악랄한 범죄자들인 이 일당은 모두 체포되고 자살하는 등의 결말을 맞았지만
아직도 일부 피해자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있다.
부디 고통과 후회 속에서 남은 삶을 뼈저리게 반성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