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카라를 하는 남편을 기다리는 카지노 앞입니다.

주차장에서 밤새 그를 기다리는 일.

by 크리스틴

나는 꽤 기억력이 좋은 편이었다.

지인들의 습관이나 좋아하는 것들을 기억하여서 챙겨줄 때 나만의 기쁨과 희열이 있었다.

그들은 내가 그들의 작은 한마디나 습관을 기억하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수 있지만, 나는 그들의 작은 목소리도 기억하며 스리슬쩍 관심과 배려를 베푸는 게 나만이 줄 수 있는 사랑의 방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망각에 대한 수많은 철학자들의 다른 이견들이 있는데(혹자는 불행이고, 혹자는 축복이라 말한다)

내가 인지 못했던 사이에 나는 망각을 사실 불행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아니, 정확히는 기억한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 있었기에 연애를 하며, 아이를 키우며 기억과 기록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보통 아이를 출산하고 둘째를 가지며 어떤 이들은 그 힘듦을 잊어버리고 다시 애를 낳았다며 장난 어린 말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의 경우는 임신과 출산 육아를 오롯이 혼자 담당하였다 보니 그 힘듦을 고스란히 가슴과 뇌에 새겨놓았다고나 할까.


그래서일까, 십여 년 전의 그날의 사건들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는 연대기처럼 사건 순서를 기억한다.

물론 세세하게 날짜까지 기억하는 가공할 정도의 기억력은 아니지만 말이다.

놀라운 것은, 십여 년이 지난 그것을 기억하며 그가 밉지 않다는 것이다.


이. 망할 선택적 기억력이라니.

남편이 얼마나 미운 놈인지는 기억하지 못하고 불쌍한 놈이란 것만 마음에 남는 것 때문에

나는 소위 세상은 바보 같다고 말하는, 나만의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살아왔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베드로 전서 4:8)


연애시절 그는 기독교인인 나를 따라 예수님을 믿었고, 교회에 나오며 신앙생활을 시작했었다.

꽤 오랜 연애시간과 장거리 연애에도 꾸준한 그를 보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걸어가고 싶다는 나에게 그는 너는 하나님을 따라가라고, 나는 그런 너를 따라 뒤에서 받쳐주며 걷겠다 말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는, 결혼 후, 신혼의 단꿈이 가시기도 전, 교회도 가고 싶지 않고 예수님도 믿고 싶지 않다며 탕자처럼 살았다.


처음에는 너무 당혹스러워, 이혼을 생각하기도 했었다.

남편이 폭탄을 던지고 간 날, 마음을 정리하며 청소하고 걸레를 빠는 중에 한 마음이 들었다.


'너는 선교사가 되고 싶다면서 남편하나도 전도하지 못하는 게 무슨 선교사가 되겠니..?'


그때부터 그는 나의 친구와 남편이자, 나의 전도대상자였다.

때때로 그는 나에게 "너는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왜 그렇게 행동하냐?"라고 날 선 눈초리와 말들을 하기도 했다. 나 또한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지 못한 죄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카지노에서 돌아오는 그를 용서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용서할 수밖에 없었다.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나는 항상 돌아온 그를 먹이고, 재우며 정신이 들어 일어난 그의 죄책감이 사라지기 전

도박을 끊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가정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물어본 뒤, 그를 위해 그를 안고 하나님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눈물로 기도할 뿐이었다.


그게 다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읽고 배우는 것도 즐기는 나는 그의 도박을 치료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강의, 논문, 책을 뒤지며 중독에 대한 내용을 보고 읽었다. 그와 함께 상담센터도 정신과도 가보았다. (그는 약물복용은 하지 않음)

처음에는 그에게 화를 내기도 했었고, 부드럽게도 단호하게도, 돈을 줘보기도 안 줘보기도, 사채업자과 싸우기도, 아이를 안고 울어보기도, 시부모님과 친구들에게 부탁하여 카지노에서 그를 데려오려고 애쓰기도..


혹자가.. 그를 위해 이렇게는 해봤나요? 저렇게는 해봤나요? 충분한 노력을 해봤나요?라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네.."라고 말할 정도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해보았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더 절절히 깨달았다.

단 이 말이 신의 도움만 바라는 무지성적인 요행을 바라는 것도 아니요, 하늘의 기적처럼 번쩍하고 기적이 임함을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도 그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나, 노력을 하면 할수록, 좌절을 맛볼 때마다 이것은 인간의 힘을 뛰어넘어 기도가 필요한 하나님의 영역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뜻이다.


앞선 글에 말한 것처럼 합법적으로 허용된 수도권의 카지도는 상당수가 있는데, 홍수에 둑이 터지듯, 한쪽을 막으면 다른 쪽에서 그의 소식이 들려왔다.


그로 인해 죄절할 시간보다 밀려드는 물을 막는 것이 먼저였기에 나는 항상 뒤처리를 감당하는 사람이었다. 죄절한 그의 부모님을 다독이거나, 담담히 평범히 아이를 챙기거나 무엇보다도 그가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독려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떤 날 밤. 카지노에 다녀온 그는 나에게 돈을 달라고 했다.

카지노에 가서 마지막으로 한번 더 하곤, 그가 생각하는 마지막 노력을 다하곤 미련 없이 나온다고 했다.

무슨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 하냐는 말이냐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걸 참는 와중, 그가 말했다. 정 못 믿겠으면 같이 가자고 말이다.

보통의 그와 너무나 다른 모양의 말과 돈을 달라 말하는 당당한 도둑 앞에서 어안이 벙벙했다.


그는 맘먹은 것은 꼭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돈을 주지 않으면 그냥 자기가 알아서 사채를 쓰든 뭘 가져다 팔든 할 것이고 같이 가든 안 가든 자기는 지금. 다시 가야 하겠다고 말하는 그를 우선 달래 담배를 피우며 기다리라 말하곤, 나는 담담히 짐을 챙겼다. 성경과 충전기, 휴지 따위들을 말이다..

나는 시어머니께 아이가 자는 동안 집에서 좀 함께 있어달라 부탁하곤 그를 따라나섰다.


적막이 차 안, 별이 흐르는 밤길을 운전하며,

그는 나에게 카지노에서 딴 포인트로 좋은 객실을 열어줄 테니(카지노 회원등급에 따라 객실 오픈이 가능하며, 객실 공실 있어야 가능) 그곳에서 자기를 기다리라고 말했다.

철이 없는 그는 자기는 VIP등급이라서 포인트가 많기에 가능하다며 자랑 아닌 자랑을 하는데 철딱서니가 없는 그를 옆에서 바라보는데 실소가 나왔다.


나는 카지노에서 제공하는 어떤 것도 누리고 싶지 않다며 그에게 주차장이든 24시간 카페든 길거리든 알아서 기다리겠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곤 말없이 밤길을 눈으로 읽었다.


카지노에 슬롯머신(세 가지 그림이 맞으면 쫘악하고 돈이 나오는) 외에도 얼마나 많은 종류의 게임이 존재하는지 그를 만나기 전까지 알지 못했다. 쓸데없는 뚝심(?)이 있는 그는 다른 게임은 하지도 않고 바카라만 한다며 가는 내내 카지노에 관련한 이야기를 하며 놀이동산을 가는 아이처럼 신나 보였다.


나는 관심도 없고 듣고 싶지도 않고, 들으면서 가슴이 쓸리는 이야기들을 저렇게 신나게 얘기하는 사람을, 이

나라도 모자라 중국의 하고많은 사람 중에서 내가, 내 눈으로 골랐다니.. 속으로 '이 헛똑똑이, 멍충아..'를 되뇌면서 멍하게 있자니 그가 물었다.


"미안, 듣기 싫은가?"

"응, 별로 들어서 기분 좋은 얘기는 아니라서. 지금 놀이동산 가고 있는 게 아니라서."

"아.."


담백하게 기분을 전하곤 나는 눈을 감았다. 네비게이션에서 남은 그 시간이 영영 줄어들지 않았다면 참 좋았겠지만.. 카지노 앞 주차장에 주차한 그는 내가 잘 있을지 아이러니한 걱정을 하곤 카지노로 사라졌다.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선.


나름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스스로 성경에 대해 꽤 많이 읽고 알고 있다고 생각하나 항상 의문이 남는 부분을꼽자면 욥기였다. 사람으로서 이해할 수도 없는 상상할 수도 없는 고난과 역경을 한날한시에 겪을 뿐 아니라 그것이 지속되면서 주위사람으로부터 얻는 멸시와 판단들이 적혀있는 욥기는 나에게 하나님이 너무한 게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부분 중에 하나였다.


이성적으로는 성경을 내가 원하는 부분만 취할 수 없고 모두 다 아멘으로 받고 믿어야 한다 생각하지만, 마음으로는 내심 "나는 그렇게는 못살겠다."라고 생각해 왔던 게 나의 솔직한 신앙의 현주소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가 카지노에 가거나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항상 욥기를 펼쳤었다.

처음에는 이 성경을 잘 이해하고 나면, 하나님이 나에게 깨달음을 주시지는 않을까? 나도 욥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알거나 또는 우리의 상황이 마법처럼 달라지진 않을까? 하는 헛된 꿈으로 다시 펼쳐보았고

횟수가 반복되고 시간이 길어지면서는, 도대체 욥은 이해가 불가한데 그 아내가 저렇게 말하는 게 정상적이지, 친구들이 저렇게까지 하는 것도 관심이지 하며 세부적인 줄거리와 인물을 보기도 하였었다.


주술사가 익숙한 주문이 아니라 어려운 주문을 외칠 때 마법의 책을 펼쳐 읽는 것처럼

또는 당황하면 습관적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거나 불자는 묵주를 세듯, 종교적 습관적 행위이진 않았나 싶다.


그런 날들의 마지막이길 바랐던 그날.

장장 42장에 걸친 욥기를 읽는 동안에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마법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어차피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나는 욥기를 덮었다.

그리곤 다시 카지노 앞에서 그를 기다리며 욥기를 읽는

나의 마음을 돌아보며 마치 물하나 떠놓고 소원비는냥읽지 않기로 맘먹었다.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욥기 42:1-6)


내가 욥기를 다 알았기에 더 이상 욥기를 읽을 필요가 없다가 아니라,

나는 아무리 읽어도 욥처럼 하나님을 이해할 수는 없겠구나. 체념에 가까운 덮음이랄까.

다만, 소망이 없는 체념이 아니었다.

아무리 애써도 내가 이해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는 것을 깨닫고 알려는 것보다 완전하시고 위대하신 창조자 그분 앞에 회개밖에 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난을 충분히 견디면 복이 온다는 기복신앙적 신앙이 아니라

어떤 환경, 어떤 상황을 이해하려는 기만적인 태도보다는

인간의 생각과 영역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영역이 있을 인정하고, 그 앞에 나는 작은 피조물임을 인정하는 것이면 충분하다 생각했다.


그리곤,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만 나와."

이전 02화실종신고와 납치신고를 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