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 회복 루틴
우릉우릉대는 먹구름 사이에서 나는 머리에 찐덕하고 검은 숯검댕들을 지저분하게 달고 퉤 뱉어진다.
끝없이 추락하는 몸이 도착하는 곳은 건조한 베개로 이루어진 섬과 바다다.
풍덩 빠져 허우적대다 겨우 섬에 도착해 가만히 앉아 한참을 숨을 고르다 보면 숯검댕은 어느새 씻겨 없어진 상태이다.
그제야 나는 비로소 이번에도 또 이 섬을 찾았구나 한다.
섬이 꼭 눈물자국을 닮았다.
'왜 나는~'으로 시작해서 대충 부정어로 마무리하면 아주 끝내주고 강한 좌절 생성 주문이 된다.
나를 무너지게 만드는 것들은 너무나 많고 이것들은 외부에서 보기에는 아마 아주 사소할 테지만, 주문이 던지는 힘은 사소하고 가벼운 것일수록 날카롭게 손톱을 바짝 세워 무른 나를 벅벅 긁어놓는다.
좌절 속에 갇혀 머리 끝까지 눈물이 찰랑찰랑 넘치기 직전, 이 무거운 물기를 모두 받아낼 작은 섬을 찾아야 한다. 언제나 내 근처에 있는 헤진 베개 섬에 얼굴을 박고 엉엉 눈물을 쏟아낸다.
언제까지 우는가 하면, '아 지금 내가 베개에 엄청나고 리퀴드한 얼룩을 3개 이상 남겼구나' 하며 폭력적으로 남긴 감정의 찌꺼기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때까지다.
차분한 생각을 방해하듯 가득 찬 감정이 눈과 코를 통해 어느 정도 빠져나가면 비로소 내가 지금까지 한 것은 해결이 아닌 해소일 뿐이라는 인식을 할 수 있다. 눈물이 마른 베개에서는 나의 후회되는 과거의 행동을 다시 되돌릴 수도, 너무 안 그려지는 그림이 기적처럼 그려질 수도,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해소할 수도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알아차린다.
나는 지금 왜 울었고, 나를 울게 만든 상황에서 냉정하게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물기 쏙 빼고 감정 그다음의 스텝을 스스로 생각한다.
물기가 다 말라버린 베개 섬의 자리에서 일어나 딱 한 발짝 딛어본다.
그 방향이 전장 같은 어지러운 책상 앞이거나 며칠째 빈 공간으로 방치하고 있는 아이디어 노트 곁, 아니면 바깥으로 나가는 문이 될 수도 있다.
실현 가능한 것이 아주 작고 보잘 것 없이 사소하더라도 그것에 실망하지 않는다.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빠져나온 첫발자국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지리하게 반복되는 과정에서 나는 어느 순간 이것이 루틴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느끼는 좌절은 늘 비슷한 양상을 띄었기에 어쩌면 예측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내 고민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었다.
감정이 차오르는 것을 부정하지 않고 쏟아낸다, 그렇게 비워진 자리에서 나의 가장 가까운 부분 부터 바뀔 수 있는 무언가인지를 생각한다, 그 무언가를 위한 조각을 주변에서 찾는다, 일어선다.
이 루틴에 다다르기까지 그동안 나라는 사람에 대해 얼마나 수많은 머릿 속 페이지를 넘겼던가.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용기를 낼 수 있는 것과 끝까지 회피하고 싶은 것…….
자신을 객관적으로 나열하는 시간을 통과하며 나는 틈만 나면 베개 섬에 방문해 눈물 콧물을 적셨다.
조금씩 나는 이부자리에서 멀어져 그림을 그리는 자리로, 이벤트들이 가득한 밖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어느새 나는 좌절에서 멀어진다.
꾸준히 축적해 온 극복들이 루틴처럼 기록되어 내 자신을 빠르고 예측가능하게 구한다.
좌절은 여전히 내 근처에 있고 예비된 수많은 구덩이와 자극들이 아프고 두렵다. 또 그것들을 바로 이겨낼 자신은 솔직하게 말하자면 없다.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좌절한 다음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다는 것, 그 과정을 인식하고 스스로 만들었다는 믿음이 무너진 무릎을 일으켜 세운다.
나는 어쩌면 용감하고 대담하지 못한 채로 내 주위의 것들을 평생동안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런 좌절과 회복의 과정을 루틴으로 여길 줄 알며 나아가는 섬 주인도 꽤나 멋지지 않은가! 언젠가 나의 무언가를 기념하는 자리에서 한 마디 하게 된다면 이 영광을 너덜너덜한 황토 메밀베개에 돌리고 싶다. 늘 고맙고 아직도 한참 멀었고 더 고생해달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