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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w김정숙 May 06. 2024

아들과 인생동반 여섯 번
째 이야기

아들과 함께 한 아주 특별한 운동회

추억을 더듬어보며 사진첩을 꺼냈다. 

2009년 5월 8일 ‘한마음 운동회’를 마친 소감이 앨범 속에 고이 접혀 있었다. 

지금은 35세면 결혼이나 출산이 늦은 나이라고 하지 않지만

그때는 35세면 늦은 나이에 속했다. 

아들이 초등학교 갔을 때 40대가 넘은 나이 많은 엄마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에 대해 엄마로서 신경이 많이 쓰였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다시 오지 않을 시간들을 위해 가능하다면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돌아보니 아들과 함께 한 모든 순간이 내 인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여기서 아들은 딸들도 의미한다는 것을, 자식이라는 것을 언급해 둔다. 

아들이 6학년 때 일이었다. 

학교에서는 5월 8일에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을 종합세트처럼 엮어서 행사를 크게 했던 것 같다. 그것이 학부모, 가족과 함께 하는 ‘한마음 운동회’였다. 

그때 느낀 소감이 학교신문에 실려 있었다. 

그 내용을 그대로 이곳에 옮겨본다.     


제목: 아들과 함께한 아주 특별한 운동회    

 

연둣빛 잎사귀가 싱그러운 5월의 아침은 가족들의 소중한 만남을 준비하고 따사로운 햇살 가득한 운동장으로 손짓하고 있었다. 

마지막이다. 

막내인 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초등학교의 마지막 체육대회라는 것에 굳이 의미를 붙이며 오늘 하루는 아들과 함께 하리라고 마음을 먹고 가볍고 떨리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지난 5년간 학교행사에 온전히 참여하지 못했기에 오늘의 발걸음은 비장하리만치 예와 달랐다.      

학교에 도착하자, 6년이면 분위기에 적응되었으련만 아직도 손님처럼 몸 둘 곳을 모르는 어색함은 감추기가 힘들었다. 

아이들의 꿈을 그려 하늘에 매달아 놓은 만국기가 웃으며 맞이했다. 

해마다 영글어가는 그 꿈들이 오늘은 더욱 선명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청아하게 들려오는 ‘어린이날 노래’는 가슴 벅차게 들렸고, 연이은 ‘어머님의 은혜’ 노래는 구슬프고 눈물 나게 했다. 

순간 부끄러워 눈시울이 찡하게 아려왔다. 

하늘 같은 스승의 마음을 담은 ‘스승의 노래’를 들으면서 우리 아이들의 가슴은 크신 스승님의 사랑이 담길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은 참스승을 만났을까? 오늘 그 스승을 만나는 좋은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내 눈을 더욱 빛나게 했다. 


모든 경기가 규칙을 지키면서 재미있게 진행되고 있었고 교과서에 없는 ‘잔디 구장’의 특징을 살린 부설만의 창의성 짙은 다양한 경기는 더욱 흥미진진했다.

먼지 없는 체육대회를 맛볼 수 있음에 더욱 ‘부설인’ 그들이 부러웠다. 

자신들의 귀염둥이들이 참여하는 경기에서는 엄마들의 목청은 높아만 갔고 엉덩이는 들썩거렸다. 


누군가 나에게 ‘자모 달리기’ 대표로 나가라고 예의상(?) 권했다.

나는 40대 중반을 넘었고 20대 후반에 있는 엄마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앞으로 오지 않을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주위의 시선이 조금은 두려웠다. 

재웅 엄마의 무모한 도전에 놀라는 눈치를 뒤로하고 운동화를 다잡아 신었다. 떨렸다. 기분 좋은 긴장이 손과 발에 머물고 온몸으로 퍼져갔다.      


그런데 ‘운동장 한 바퀴라니! 이건 무리다!’ 만약 못하면 오늘만큼은 승부욕에 열을 올린 엄마들의 시선을 감당하기가 힘들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초등학교 나의 화려했던 시절로 돌아가야만 했다. 

장애물이 있는 경기였다. 앞 구르기 1번, 줄넘기 5번, 훌라후프 돌리기 5번이 중간중간 미션으로 있었다. 마음만은 자신 있었다. 

달리기가 여전히 문제였지만 6학년이 된 나는 온 힘을 다하여 뛰었다.

앞 구르기를 했는데 예상처럼 가볍지는 않았다. 줄넘기를 다섯 번 무사히 하고, 6학년 응원석 앞을 지날 때였다. “어~ 재웅이 이모다!” “재웅이 이모 파이팅!” 어디선가 “재웅이 엄마 파이팅!” ~~.     

내 책임의 육중함이 무겁게 다리를 잡았다. 

나의 필살기! 훌라후프를 돌리고 다음 주자를 향해 전력으로 뛰는데 몸은 뒤로 가는 듯 안타까웠다. 

내가 더 빨리! 꼴등을 면해야겠다는 정신력으로 뛰고 있었다. 모두가 자녀들 앞에서는 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으리라. 

아쉽게도, 한편으로는 자랑스럽게도 6명 중에 3등을 했다. 

수고했다는 다른 자모들의 격려는 정겨움을 더해 주었다. 


임원 자모들이 준비한 김밥과 맛있는 입담으로 점심시간은 더욱 즐거웠다. 

점심을 마친 후 부설인들 모두가 함께 손을 잡았다. ‘모두가 천사라면’ 음악에 맞춰 빙글빙글 돌 때는 한마음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동시에 신나는 오후 경기의 막이 올랐다.      


하이라이트는 ‘마라톤 경기’이다.

재웅이는 체육대회가 있기 며칠 전부터 마라톤에서 1등을 꼭 하겠노라고 호언장담을 했고, 집을 나설 때는 1등의 기쁨을 부모님께 드리겠다고까지 했다. 

그런 아들이 참여한 ‘부설 단축 마라톤경기’가 기다리고 있었기에 오후의 시간은 긴장과 흥분으로 변해갔다. 

학교운동장이 아닌 곳을 경로로 정해졌고 끝나는 지점은 모두가 지켜보는 운동장이었다.

아이들의 모습이 나타나기를 숨죽여 기다리는데 재웅이의 모습이 보였다. 

약속대로 마라톤에서 1등으로 들어왔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했을 아들이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내 아들에게서 큰 믿음을 보았기에!!     


 올해에는 아들이 속한 백군이 이겼다.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우승기를 받고 서 있는 아들의 뿌듯한 뒷모습은 나의 머릿속에 잊지 못할 감동으로 각인되고 있었다.     

아들과 함께 한 운동회는 너무 소중한 의미를 주었다. 어린 시절의 즐거움을 소환해 준 것 같았다. 서로 협동하는 법, 배려하는 마음, 박수 보낼 수 있는 여유를 배우게 했고 운동회를 통해 꿈을 꾸는 법, 목표를 세워 노력하는 법, 힘들어도 서로에게 기쁨을 주려는 사랑이 느껴지는 훌륭한 교육의 현장이었음을 고백한다.

 “부설인 들이여 그 붉고 푸른 마음 영원하라!!! ”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운동장에 걸렸던 그 아이들의 꿈은 어찌 되었을까? 를 생각하며 먼 하늘에 시선이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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