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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w김정숙 Jun 05. 2024

아들과 인생 동반 그리고 기도

아들의 열정에 기립박수

아들과 음악 그리고 재도전     

아들과 인생 동반 아닌 기도하는 삶으로 살아가고 있다.     

아들은 스무 살 성년이 되었을 때 나의 그늘은 떠났다.

자신이 만들어가는 이야기 있는 삶을 향하여 담대히 나갔다.

나의 기도는 그가 쓰임 받기를 바라는 것, 그래서 멋진 청년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아들이 살아온 음악에 바친 시간들이 헛된 것이 아니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 앞선다.


아들은 중학교 2학년 학교 축제 때 관람만 하기보다는 한 가지 정도는 직접 참여하고자 했다. 

하루아침에 생각지도 않던 학교 밴드 동아리와 인연을 맺었고 포지션은 메인보컬이었다. 

그 밴드에는 이미 메인보컬이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아들이 메인보컬이 되는 것을 찬성했다고 한다. 

얼떨결에 아들은 보컬리스트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사람 앞에서 노래를 불러본 적 없었고 노래 부르기를 원하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우리는 너무 놀랄 수밖에 없었고 곧 포기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들은 노래를 부르기를 좋아했고 중학교 3학년 때는 자작곡으로 대회를 참가했다.

그리고 그 해 가을 청소년밴드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 후부터 아들의 진로는 당연히 싱어송라이터로 정했다. 


다른 이들은 아들이 노래를 만들어서 부르고 대중 앞에 서는 것으로 대단한 재능을 가졌다고들 말했다.

언제부턴가 아들은 공책에 시를 썼다. 그것이 노랫말이 될 줄은 몰랐다. 

초등학교 때 만들어 놓은 '어린이'라는 시집에서 


여가 시간에는 기타를 들고 좋아하는 가수나 그룹의 노래를 부르거나 곡을 만들어냈다. 

자작곡들이 점점 쌓여갔다. 

그러자 나에게도 꿈이 생겼다.

아들이 실용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관련 대학에 진학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명한 가수가 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아들은 아니었다. 

아들은 노래 부르는 시간을 즐기는 것이었다. 

아들은 그저 노래가 좋아서 부르고 만들고 노래가 있는 곳에 함께 하려고 했다. 

음악적 재능이 특별하다기보다 더 특별한 재능은 순전한 열정이 순간 빛을 내고 있음을 엄마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대학에 가는 것보다 노래를 부르는 현장에 일찍 가는 것을 선택했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밴드 친구들은 의기투합하여 상경했다. 

부모들은 그들의 자유와 노래와 꿈을 응원하며 넓은 세상으로 보냈다.     

‘스포르찬도(음원을 낼 때는 블루오션)’가 서울에 입성하여 홍대 근처에 월세를 얻었다. 

노래를 부르기 위해 생활비를 스스로 해결하기로 했다. 

네 명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1년 정도 서울 생활의 감각을 익혔고 공연할 수 있는 공간도 확보했다. 

시골에서 올라간 청년들은 비틀스를 닮기를 원했고 오아시스처럼 노래를 사랑하기를 원했다. 

열악한 조건 속에서 안전함과 행복을 기원하는 엄마의 기도를 영양제로 먹었다.  

    

열정을 쏟아내는 시간 중에도 그들의 직진을 막는 것은 병역의무였다.

상경 1년 후 병역의무를 마치기 위해 2년 정도 밴드 활동은 장기 방학에 들어갔다. 

4명 모두가 군 복무를 마친 후 다시 모였다. 

부모들은 아들들이 대학 진학이 아닌 음악 활동에 진심이라는 것을 알았고, 여러 가지 사정을 안고서 청년이 된 그들은 가난하고 힘든 서울 생활을 이어갔다. 

밴드 활동을 위한 연습에 열정을 쏟았고 생활비를 해결하기 위해 편의점, 햄버거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밴드의 이름을 알리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시작한 것이었다.     


아들은 무명의 싱어송라이터가 되었다. 

매주 주말에는 밴드공연을 했는데 좋아하는 팬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노래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에 대견함까지 느꼈다.

누군가 손잡아 줄 인맥도 없었고 서울에 친척이나 지인도 없이 대범하게 꿈만을 가지고 시작한 음악 도전이 어렵고 힘든 길이었음을 항상 느끼고 있었다. 

1년쯤 후에는 아르바이트 수입을 모아서 음원을 냈다. 

“별”이라는 곡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두 손 모아 희망을 걸어보는 시간도 있었다.      

3년간 아름다운 청년들은 밴드 활동에 열정과 영혼을 쏟아부었다. 

유명가수가 될 조건이 많이 부족했고 예술가의 길이 험난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좌절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그럴수록 응원과 기도를 쏟았다.


그러던 언제부턴가 서로가 마음이 하나가 될 때도 있었으나 자주 이견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음대로 밴드가 풀려가지는 않았다. 

하나 된 마음에 갈등이 생겼고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함께 밴드를 시작한 지 10년째가 된 스물다섯 12월에 아들은 밴드와 음악과 이별을 선언했다.      

아들이 그토록 사랑한 음악 활동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내 마음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모든 열정을 쏟은 청소년기의 꿈이 모래성처럼 파도에 휩쓸려가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렸다.

아들의 마음은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을지를 상상해 보면 더욱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아들의 고민의 순간들이 내게로 왔다.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기에 나는 어느새 새로운 출발을 응원하고 있었다.   

  

아들은 이제 자신의 재능과 특기와 흥미를 찾았던 시간을 만끽한 후 새로운 길을 가고 있다. 

성공의 유무보다 아들이 행복한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나는 지금도 기도 중이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철학을 배우며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기도한다. 

이 시대를 의미 있게 존재의 가치를 드러내는 일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더욱 빛나는 청년이 되어 새로운 꿈을 만들고 녹여내는 시간 속에서 새로운 창조물이 건설되기를 기도한다. 

이제 아들과 인생을 동반할 시간이 조금씩 줄어가고 있다. 

아들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존중하며 동반할 새로운 이에게 나의 자리를 조금씩 내줄 것이다. 

아니 벌써 스무 살이 되던 해, 서울로 상경할 때부터 나는 동반자가 아닌 기도자가 어울렸다.

나는 기도한다.

아들이 언제나 행복하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은 영원하다는 것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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