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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장인J씨 Mar 04. 2024

'7년의 밤'을 보셨나요?

포기했던 그 책을 다시 만났다.




부족함을 마주 보는 것은 어렵다.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남들보다 열심히 노력해야 하지만 노력의 결과가 실패인지 성공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지만 사회에 내던져진 이상 어쩔 수 없이 해야 될 때가 있다.  나에게 '발표'가 하기 싫어도 해야 되는 것이었다.

내 부족함을 깨닫고 아무리 열심히 준비를 해도 항상 결과가 아쉬웠다. 대본을 준비해도 꼭 한 번씩 말이 꼬이고 시계를 보면서 호흡을 조절해도 끝에 가면 항상 말이 빨라졌다. 적당히 듣기 좋은 말투와 어조는 금메달이었다. 금메달을 딸 정도의 노력과 정신력을 쏟아부어야 했다.


"누구부터 얘기를 시작할까요?"

"저부터 할게요!"


내가 손을 들자 '해바라기'라는 닉네임을 가진 단발머리 회원의 눈이 동그래진다. 처음인데 괜찮겠냐는 표정이다. 금메달을 따는 것은 포기한 지 오래다. 그리고 여긴 사회가 아닌 독서 모임이다. 즐겁자고 찾아온 곳이 아니겠는가. 횡설수설만 안 하면 만족한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났지.'


나름대로 떠올린 돌파구는 '내가 먼저 하기.' 독서 모임에 정석이 있을 리 없지만 나 스스로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위축될 때가 있다. 서른이 넘어서도 고치지 못한 못난 점이다. 못난 점을 갑자기 고칠 수 없기에 '내가 먼저 하기'를 선택했다. 내가 먼저 하면 비교할 대상이 없으니 준비한 대로만 하면 된다.


"제가 가지고 온 책은 '7년의 밤'입니다. 혹시 보신 분 계신가요?"


같은 테이블에 앉은 회원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스릴러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스릴러는 사건과 사건이 맞물려 거대한 결말을 향해 쉴 새 없이 달려간다. 비록 하나의 사건이 지루하고 늘어질 수는 있지만 결말에서 보상을 받는다. 작은 조각들이 모여 큰 그림이 만들어졌을 때의 짜릿함이란!


하지만 그 짜릿함을 설명하기에는 난 아직 독서 모임 레벨 0 회원이다. 사건 중심의 설명은 과감하게 포기하고 난 이렇게 '7년의 밤'을 풀어냈다. 




'7년의 밤' 인생을 포기한 남자와 인생을 통제하려고 한 두 남자의 처절한 복수극.


1. 최현수는 악인인가?

2. 오영제에서 존재는 무엇이었을까?

3. '7년의 밤'에서 제일 안쓰러운 인물을 누구일까?





"사건이 아니라 '인물'에 중점을 두셨군요."

"인물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내가 많은 스릴러 중에 '7년의 밤'을 첫 모임에 가져온 이유는 탄탄한 사건 구성뿐만 아니라 심리 묘사 또한 대단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놓였을 때 얼마나 유약하고 비열해지는지를 볼 수 있다.


난 '7년의 밤'을 통해서 소설이란 어쩌면 '사람'을 보는 또 다른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캐릭터가 상당히 복잡하면서 재미있네요. 특히 최현수에 대해 딱 정의 내리기가 힘드네요."

"맞아요. 전 오영제는 확실히 악인 같은데 최현수는 잘 모르겠어요."

"최현수도 악인이죠. 어찌 되었건 사람을 죽였잖아요."


서로의 의견이 자유롭게 오고 갔다. 마음이 점점 들떴다. 내가 좋아하는 책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니! 하지만 한정된 시간으로 언제까지 내 책에 대해서만 얘기할 수는 없었다.


"자, 그러면 이제 다음 책으로 넘어가죠."


아쉬움을 남기고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회원을 바라보았다. 해바라기님 차례였다. 살짝 수줍어하시면서 뒤집어 놓았던 책을 들으셨다.


"제가 가져온 책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입니다."


아마 다들 읽어보셨을 거라는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나만 빼고 말이다. 아, 읽긴 읽었다. 열 페이지 정도? 


'이 책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고등학교 때 읽다가 포기했던 책을 독서 모임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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