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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장인J씨 Feb 26. 2024

안녕하세요. 처음 왔어요.

첫 인사는 두근두근.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


강렬하고도 잔인한 이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7년의 밤'은 내 인생 스릴러 소설이다.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는 물론이고 탄탄한 구성까지! 뭐 하나 빼놓을 게 없다.

아직도 두근거리며 마지막장까지 숨을 참고 읽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재미있다. 정말 정말 재미있는 책이다. 그럼 이제 이 책을 어떻게 독서모임에서 설명을 해야 할까.


'줄거리랑 느낀 점을 말하면 되나.'


오늘은 화요일. 드디어 독서 모임에 나가는 첫날이다. 출근길 버스 안에서 핸드폰을 열고 '7년의 밤' 줄거리를 정리해 보았다. 덜컹거리는 버스에 약간 멀미는 나지만 기분은 좋다.


'대학교에서 발표할 때 생각이 나네.'


지독하게 암울했던 고등학교 3학년 입시는 말 그대로 망했다. 열심히만 했으면 안 되었는지 그다지 뛰어나지 못한 그림 실력에 정시로 지원했던 대학에서 전부 떨어져 버렸다. 엉엉 울 시간도 없이 곧바로 재수를 했다. 재수 생활은 적응할 것도 없었다. 학교에서 재수 학원으로 장소만 옮겨진 것뿐이었다.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재수 학원에서 공부를 했고 지하철을 타고 미술학원으로 갔다.

밤 11시까지 그림을 그리고 학원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그렇게 고3때와 마찬가지로 열심히 했던 재수생활은  또 망했다. 그림에 재능이 없었던 걸까. 

또다시 엉엉 울 시간이 없었다. 이번에는 재수가 아닌 대학교 추가지원을 노렸다. 평균보다 살짝 높았던 수능 점수로 지방에 있는 미대 공예과에 입학을 했다. 딱 한 명 추가 모집에 붙었던 나는 재수에 성공한 것 같이 기뻤다.


"미술에 그렇게 돈을 쏟아부었는데 결국 성적으로 들어가냐!"


아버지 핀잔에도 마냥 좋았다. 나에게 드디어 대학생이라는 자격이 생겼다. 얼마나 든든하고 뿌듯했던지. 지방대라도 좋았다. 둥둥 떠다니는 그 기분은 첫날에 다 깨져버렸다.

생전 듣도보지도 못한 규칙과 선배들의 강압적인 태도. 교수님들의 방관과 조교들의 욕설. 


'아, 이래서 어른들이 공부 열심히 하라고 했던 거구나!'


근데 나 공부 열심히 했는데? 열심히 하라는 게 잘하라는 뜻이었구나. 이때 알았다. 적응하지 못하면 이제는 정말 낙오자가 되는 것 같아서 먹지도 못하는 술을 마셨고 이해되지 않았지만 선배들의 꾸중을 묵묵히 들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것은 전공 수업에서 배울 게 있었다는 것이었다. 


1학년 전공 첫 수업에서 교수님은 발표를 시켰다. 


"1학기 동안 하게 될 작업 방향을 지금부터 생각해 볼 거예요. 오늘은 간단하게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보죠. 자유로운 장소에서 편하게 생각해 보고 수업 끝나기 2시간 전에 다시 모여서 발표해 봐요."


4시간짜리 전공 수업이기에 가능했던 시간 분배였다. 자유로운 장소라는 조건에 아이들은 교실 밖으로 이탈하였고 정말 자유롭게 밖에서 놀고 들어왔다. 물론 나도 그랬다.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입만 잘 털면 발표는 무난하게 넘어갈 수 있을 줄 알았다. 


"본인 스스로 정리 안되어있네요. 가이드 메모도 없고. 다음 수업 시간에는 제대로 준비해 오세요."


그때 싸늘했던 교수님 눈빛이 아직도 선명하다. 분명 나랑 같이 놀았는데 가이드 메모 없이도 발표를 잘하는 친구들을 보며 깨달았다. 나는 화려하고 유수한 말주변이 없구나.  

집에서 챙겨 온 수첩에 '7년의 밤'에 대해서 내가 하고싶은 얘기를 적었다. 그리고 퇴근하고 독서모임에 가는 길에 계속해서 생각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딸랑


"어서 오세요. 독서모임 오셨죠? 여기로 앉으세요."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 남자가 반갑게 인사하며 다가왔다. 나는 가운데 테이블로 안내를 받았다. 화요일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는 남자는 책에 따라 자신이 임의로 자리를 나눴다고 설명해 주었다. 친절하고 능숙한 그의 모습에 베테랑 느낌이 물씬 났다. 4명씩 세 테이블로 앉은 채로 모임은 7시 30분에 시작되었다. 심장이 콩콩콩하고 뛰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살짝 긴장되고 설레는 두근거림이다.


"저희 인사부터 하고 시작할게요. 새로 오신 분이 계시네요. 닉네임이 어떻게 되세요?"


단발머리를 한 여자가 자상하게 웃으면서 내게 물었다.


"닉네임이요?"


"네. 카페 가입하신 닉네임이요. 모임에서는 이름을 대신해서 닉네임으로 불러요."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되었다. 잊고있었다. 모든 만남과 발표는 인사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책'에만 집중하여 결국 '나'를 놓쳐버렸다. 순간 떠오른 내 닉네임에 눈앞이 아찔해졌다. 대충 아무거나 떠오르는 대로 지었던 내 닉네임이 이렇게 쓰일 줄이야.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입술만 깨물던 나는 반쯤 포기한 상태로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호빵만두입니다."


발표를 하기 전부터 망해버렸다. 30대에 호빵만두로 불리게 되었다.

아, 내 부캐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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