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열여덟 한국을 떠나 혼자 일본으로 향하기 전 그리고 만 스물 일본을 또 떠나 미국으로 향하기 전 매 번 아빠가 내게 신신당부하던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다.
"해외에서는 같은 한국인을 특히나 더 조심해"
어린 딸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에 혼자 가서 산다 생각하니 노파심에 그런 말을 하셨던 듯하다. 부모님 눈에 비친 나는 마냥 여리고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지 아직 잘 몰라 휘둘리기 딱 좋은 아이로 보였을 것이다.
나와는 너무 다른 사람들을 주변에서 만날 일이 없기도 했고 나의 주변엔 나와 비슷한 그리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안전한 느낌이 드는 사람들만 모여들었기에 내가 보던 세상은 그저 평화롭고 안전했다. 마냥 온실 속의 화초로 자라온 건 아니었지만 인생의 큰 굴곡 없이 무난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왔으니 부모님이 하셨던 걱정이 알만하다.
믿을 구석
믿을 구석이 있다는 건 아주 중요하다. 나에게 있어 믿을 구석은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가족이 한국에 있다는 것 그리고 제2의 가족과도 같은 든든한 친구들이 이곳 일본에 있다는 것.
믿을 구석이 생기면 최악의 상황이 온다 하더라도 생각만큼 두렵지 않게 된다. 무언가를 내지를 용기가 생기고 아님 말고 (so what?)의 마인드가 장착된다.
많이도 필요 없다. 내 안의 믿을 구석 하나만 만들어놓으면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인생을 살기가 훨씬 더 쉬워진다.
건강한 일상의 루틴
루틴화 된 삶은 정신 건강에 좋다. 일상의 루틴을 가진다는 것은 타인이 아닌 나 스스로 나의 삶을 컨트롤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마음 가짐은 내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스스로 결정하고 지키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내지를 용기
그러나 가끔의 자극은 반드시 필요하다.
새로운 것들을 두려워하면서도 정기적으로 원하는 모순적인 나는 어느 날 갑자기 무언가에 꽂혀 앞뒤 안 가리고 (사실 나의 무의식 속에서 리스크 매니징은 다 한 상태이겠지만) 내지를 때가 있다. 갑자기 내 안에서 꿈틀 하는 느낌이 들 때 나는 생각만 해오던 것을 행동으로 지르기 시작했다.
・종이의 집을 보고 매력에 빠져 배우게 된 스페인 어
・죽기 전에 아프리카는 한번 가야지라는 생각으로 갑자기 사게 된 탄자니아행 티켓
・멋들어진 음악 믹스를 만들고 공유하고 싶어서 들어가게 된 DJ 커뮤니티
・창작 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에 10살 어린 친구들과 도쿄에서 같이 열게 된 전시회
생각만 해오던 것을 내지르게 되면 많은 것들이 따라온다.
해방감, 새로운 경험은 물론이고 거기에 따르는 책임감까지. 내지르는 행동에 뒤 따라오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나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알아가게 되며 더욱더 단단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