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8109. 팬톤 'Pantone'

by 사마리아인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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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야~ 이 빨간색 뭐냐 이거? 우리 회사에서 늘 쓰던 빨간색이랑 다르잖아!'

얼마 전 방영했던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에서 극중 김부장이 부하 직원의 보고서에 쓰인 빨간색 톤이 평소와 다르다며 끈질기게 지적하고, 톤을 낮춰야 한다는 의견을 묵살하며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는 일명 '꼰대짓'을 하는 인상깊었던 장면이다.

만약 김부장이 '늘 쓰던 빨간색'이 아니라 명확한 색의 언어를 알았다면, 적어도 이러한 꼰대짓 따윈 안 하지 않았을까?

나 역시 과거 홍보용 판넬 제작을 인쇄소에 맡겼다가 결과물의 미묘한 차이로 당황했던 경험이 있다.

'어? 이 파란색이랑 인쇄된 파란색이랑 다른 거 아닌가요?'

내가 화면에서 골랐던 파란색과 실제로 인쇄된 파란색이 달랐던 것이다. 미묘한 차이였지만 방송에 사용할 브랜드 로고에 그 '미묘한 차이'는 치명적이었다. 결국 클라이언트는 불같이 화를 냈고, 재인쇄 비용을 지불하고 다시 제작해야 했다.

색을 정확히 표현하는 언어를 알고 있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다.

색에 언어. 이것을 만든 회사가 있다.

오늘의 주제는 색에 번호를 붙인 회사 '팬톤(Panton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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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당시 색상에는 표준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회사마다, 사람마다 색상을 다르게 정의해 혼선을 빚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뉴욕의 클라이언트가 도쿄 인쇄소에 같은 색을 주문해도, 결과물은 다르게 나왔다. 서로가 파란색을 얘기했지만, 그 파란색은 몇 백 가지에 달했다.

팬톤의 창업주 '로렌스 허버트'는 화학과 출신으로 미술이나 예술쪽에는 문외한이었지만, 당시엔 광고회사였던 팬톤의 인쇄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색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원래 의과대학에 진학할 예정이었던 그는 마음을 바꿔 1962년 팬톤을 인수하고, 1963년 500개의 색상을 이용해 누구나 표준화된 언어로 색상을 소통할 수 있는 PMS(Pantone Matching System) 시스템을 개발하며 '색상 언어의 창제자'가 된다.

팬톤이 개발한 이 시스템은 이후 세상을 바꿨다.

전혀 다른 회사, 다른 나라에서 디자인과 인쇄를 진행하더라도 팬톤 컬러 넘버만 알면 오류 없이 같은 색상을 정확하게 인쇄할 수 있었다. 뉴욕에 있는 사람이 도쿄에서 인쇄한 제품을 원한다면, 단순히 책 한 권을 펴고 '팬톤 300번으로 인쇄해 주세요'라고 주문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이야 당연한 얘기가 되어버렸지만, 팬톤이 등장하기 전엔 불가능한 일이었다.

상품기획자로서 팬톤이 흥미로운 점은 그들이 만든 것이 색이 아니라 '색을 말하는 방식'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 팬톤은 색을 발명하지 않았다. 색은 이미 존재했고, 그들이 발명한 건 '색에 대한 공통 언어'였다.

브랜드가 단순히 제품을 만드는 것을 넘어 시스템을 만들었을 때 어떤 힘을 가지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팬톤'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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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차 상품 기획자이자 출간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일에서, 그리고 삶에서 배운 작은 것들이 누군가의 삶과 일에 긍정적 에너지로 반영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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