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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생일이 나에게 더 큰 축복인 이유

by 벨찬

초콜릿케이크, 흔들리는 초, 그 뒤로 희미하게 보이는 얼굴들. 마주치는 손바닥 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는 생일 축하 노래. 함께 따라 부르다가 '사랑하는' 다음에 내 이름을 넣어 부르기가 민망해 어색하게 지어보는 미소. 마음속으로 갖고 싶은 선물의 순위를 정해두고, 슬쩍 내색하며 기대에 부풀던 그런 날. 생일이라면 이런 풍경이 자연스레 기다려졌고, 이에 생일이 있는 달은 1일부터 마음이 설레던 게 어린 시절의 추억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생일에 대한 감흥은 점차 희미해졌다. 생일이란 건 나만의 것이 아니라, 태어나면 누구에게나 자동으로 부여되는 날이 아닌가. 세상 모든 이가 갖는 1년에 한번씩 돌아오는 평범한 날인데, 돌아가며 축하하고 축하받는 일이 어쩐지 비효율적으로 느껴졌다. 이러한 이유로 내 생일이 카카오톡 생일인 친구 목록에 뜨지 않게 해두었다. 생일은 그저 별거 아닌 날이니까.


그러다 아빠가 된 이후, 생일에 대한 감상이 바뀌었다. 어릴 때보다 오히려 생일을 더 기다리게 되었고, 그날의 기쁨과 감동은 이전보다 한층 깊어졌다. 달라진 점은, 기다리고 고대하는 생일이 내 생일이 아닌 아이의 생일이라는 것. 더불어 2년 전 선이가 태어난 날은 나 역시 부모로서 첫걸음을 뗀 날이다. 결국 선이의 생일은 곧 나의 생일이기도 하다.


아이가 태어난다는 건 기적과 같은 일이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생명이 한 여자와 남자의 사랑으로 창조되어, 자신을 낳아준 이들에게 전부가 되어주는 일. 신비로운 생명의 섭리로 태동한 선이는 엄마 뱃속에서 38주를 지낸 뒤, 2023년 5월 2일 세상에 얼굴을 드러냈다.


갓 태어난 선이는 너무나 작고 가벼워서 작은 바람에도 상처날까 조심스러웠다. 얼굴에 미세한 긁힘이라도 생기면, 괜찮을 것을 알면서도 흔적이 남지 않을까 염려되었다. 손바닥 안에 포근히 감싸지는 작은 등을 토닥이며 건강하게 자라길 소망했다. 첫돌을 앞둔 어느 새벽에는, 고열에 축 늘어진 선이를 품에 안고 응급실로 향하며 간절히 기도했다. 아프지만 말아라.


그렇게 1년을 돌아 다시 맞이한 아이의 생일은 결코 평범한 하루가 될 수 없다. 이제 5월 2일은,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길고 긴 우주적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우리가 여전히 함께였다는 사실에 무한한 감사함을 느끼는 날이다.


이에, 1년 365일 중 가장 특별한 날인 선이의 생일에 아이에게 최고의 하루를 선물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평소에는 제약이 많았던 것들도 이날만큼은 마음껏 누릴 수 있게 했다. 나가자 하면 나가고, 달라고 하면 주고, ‘안아주세요’ 하면 기꺼이 안아주는 날. 먹고 싶은 건 배가 불러 더는 들어가지 않을 때까지 실컷 맛볼 수 있는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정성껏 끓인 미역국은 한 입도 대지 않았지만 억지로 권하지 않았다. 신발이 젖어도 물가에 내려가 돌멩이를 던지며 물장난쳤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아이를 굳이 제지하지 않았다. 대신 내가 아이의 사방을 살피며 양팔로 울타리를 만들어 함께 달렸다. 동네 뒷산에 올라 벌레에게 물리고 거미줄에 걸리고 흙먼지를 뒤집어쓰면서도 꽃과 풀을 만지며 함께 놀았다.


생일 축하 노래는 아내와 둘이서 도합 백 번쯤은 불러준 듯하다. 잠잘 시간이 되자 선이도 스스로 생일 축하 노래를 흥얼거릴 정도였다.

“태어나줘서 고마워, 엄마 아빠에게 와줘서 고마워.”

선이에게 고맙다고 끊임없이 되뇌었다. 아이의 작은 손을 맞잡고 우리가 가족이라는 사실에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선이를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스러운 아이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까지 선이를 지키고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가족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도를 이어갈수록 감사할 일들이 끝없이 떠올랐다. 하루아침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세상이기에, 더 그런 것 같았다. 더욱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내가 아이를 통해 누리는 모든 풍요가 내 힘이 아니라 전부 거저 받은 선물이기 때문이다.


거저 받았기에 나만 누릴 수 없는 노릇이다. 넘치는 행복을 혼자 차지하면 탈이 날 게 분명하기에 흘려보내기로 했다. 선이의 백일 때부터 연을 맺어온 ‘천사의 집’을 다시 찾았다. 이곳은 연고 없는 장애인 30여 분이 서로 가족처럼 지내는 생활 공간이다. 생일이면 친구들에게 생일 턱을 내듯, 선이 이름으로 쌀을 전달했다.


방문할 때마다 과분한 환대를 받는다. 특별한 것이 없어도 반갑게 맞아주시며 손을 잡아주시고, 포근히 안아주신다. 천사의 집 식구들이 선이와 아내, 그리고 나를 둘러싸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셨다. 천사들의 축복을 받은 선이는 분명 잘 자랄 수밖에 없을 거라는 조용한 확신이 마음속에 깃들었다.


생일 밤, 오렌지 케이크에 초를 꽂으며 문득 생각했다. 오늘 같은 하루가 부모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호사일지도 모르겠다. 선이의 환한 웃음은 그 어떤 선물보다 값진 보물이었고, 아이를 통해 삶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게 되니, 이 아이가 정말 나의 선생이 맞았다. 선이의 생일을 특별하게 해주려는 것이 마치 나의 생일을 보낸 것처럼 피곤한 행복이 밀려왔다. 매일 생일 같을 순 없겠지만 앞으로도 아이의 모든 순간을 축복하며 사랑을 나누고 싶다. 생일 축하해 우리 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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