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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 Jun 12. 2024

눈이 슬퍼 보이는 사람


다음 교시 진로 수업을 받으려고 쉬는 시간 종 나자 마자 몇몇 아이들이 미리 와서 앉아있기도 하고 돌아다니기도 하는 시간. 민지(가명)가 진로실 안 교무실(2평 정도 크기) 문 앞에 서 있다.


"선생님, 들어가도 돼요?"


"응, 들어와"


문 안으로 들어와 공기청정기 위의 사각형 바구니에 담긴 문구류들을 살펴보더니


"선생님, 이건 뭐예요?"


재작년에 마을 선생님 협력 수업을 할 때 자작나무를 이용한 목공 수업을 진행하신 분이 선물한 자작나무숲 모양의 네모난 냉장고 자석이었다.


"응, 그거 냉장고에 붙이는 자석, 갖고 싶어? 가져"


"진짜요?"


진짜로 좋아하는 게 눈에 보인다.

그러고는 내 자리 가까이 한 발짝 더 다가오더니,


"선생님, 살 빼지 마세요"


뜬금없다. 내가 내 살에 대해서 민지에게 언급한 적이 없다. 그렇지만 요즘 허리가 안 좋아서 살을 빼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던 터였다. 뭔가 들킨 기분. 그렇지만 엉뚱한 민지의 입에서 또 무슨 말이 나오려나 내심 기대하며 미소 띤 얼굴로,


"왜?"


"선생님 제 주머니에 넣어 다니게요, 깔깔깔"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주머니에 넣어 다니려면 가벼워야 더 좋을 텐데, 주머니에 넣어 다니고 싶을 만큼 귀엽다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근데 민지 너 지난번에 나더러 눈이 슬퍼 보인다고 말했잖아"


"근데 그건 맞는 말이에요"


.....



올해 3월.

쉬는 시간에 도서실에서 눈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때 민지가 조용히 내 옆으로 다가왔다.


"선생님, 뭐 보세요?"


"응, 눈 내리는 거 봐"


"근데, 선생님을 보면요, 얼굴은 웃고 있는데 뭔가 눈이 슬퍼 보여요"


그리고는 다른 쪽으로 갔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웃고는 있지만 눈이 슬퍼 보이는 나의 인상에 대해 생각했다. 물론 태어나서 처음 듣는 말이긴 했다.



.....



작년 2학기 어느 날. 민지가 진로실에 왔다.


"선생님, 저 공부하려고 하는데 필통 하나 주시면 안 돼요?"


집에 가서 우리 집 애들 학교 다닐 때 쓰던 필통 중 상태가 제일 좋은 것을 골라 깨끗이 빨아서 그 안에 필기구 몇 개를 넣어서 진로실에 있던 공책 한 권과 같이 준 적이 있다. 그 공책과 필통으로 공부를 하는지는 모르겠다.


....



냉장고 자석을 손에 쥔 민지의 눈이 책장에 있던 누르면 눈알이 튀어나오는 엄지 손가락 크기의 고무 장난감을 발견했다. 손때가 묻어서 꼬질꼬질한 분홍색 주꾸미 모양의 고무 장난감이다.


"선생님 이건 또 뭐예요?"


"응 그거, 몇 년 전에 어떤 남학생이 준 거야, 너 가져"


"진짜요, 선물 받은 건데 제가 가져도 돼요, 이거 너무 귀여워요"


주꾸미 머리를 누르며 교무실을 나가는 뒷모습을 보는데 민지의 가발이 이제는 제법 단정하다. 학기 초에는 가발을 빗지 않아 삐죽삐죽하더니.


아, 참, 민지가 가발을 쓴 건 비밀이다. 학기 초 일주일에 한 번 우리 학교로 지원 나오는 이웃 학교 복지사 선생님이 민지의 학교생활에 대해 알고 싶다며 진로실에 찾아와 이야기해 줬다. 집에서 머리를 혼자 자르다 너무 짧아져서 미장원 가서 싹 밀어버리고 가발을 쓰고 다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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