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저녁은 빵과 라면과 과자를 먹었다고 했다. 어제 저녁은 삼겹살 300그람을 구워 먹고도 라면 두 개, 감, 빵을 먹었다고 했다. 평소 같지 않은 모습이다. 건강한 식습관을 갖고 절제된 식사를 하는 편인 그녀가 이렇게 흐트러진 식단을 이어가고 있는 건 생리 때문이 분명하다. 생리 전조증상이 틀림없다.
요즘 나는 그녀의 생리 예정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 주말에 그녀가 생리를 시작하면 모든 계획이 틀어지기 때문이다. 토요일이 오기 전에 생리를 끝내는 게 제일 좋지만 생리가 늦어져서 다음 주 월요일에 시작해도 좋다. 이번 주말만 아니면 된다. 그날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번 주 토요일.
오늘도 나는 그녀의 저녁 메뉴가 궁금하다. 사실은 그녀가 생리를 시작했는지가 더 궁금하다. 생리를 하려면 오늘쯤에는 시작해야 하는데, 그래야 그녀와 마음 놓고 1박 2일을 할 수 있는데. 그녀의 동의를 구해 어렵게 봉정암에 방도 예약을 해뒀다. 내가 얼마나 이날을 기대하고 있는지 모른다. 썩 내켜하지 않는 그녀의 눈치를 봐가며 겨우 허락받은 날이다. 몇 주 전에 날짜를 잡을 때도 나의 등쌀에 못 이겨 마지못해 승낙하는 것 같았다. 그랬는데 그날 그녀가 생리를 시작하면 말짱 꽝이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 또 언제 그런 기회가 나에게 올지 모른다.
그녀도 나의 생리일에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다. 사주전쯤, 그러니까 지난달 말 당일로 오색-대청봉-서북능선-한계령휴게소 코스를 다녀온 다음 날 둘이 같이 생리를 시작했다. 그녀도 이번주 들어서 나에게 날마다 묻는다.
"생리 시작하셨어요?"
1박 2일 동안 약 25km 정도의 거리를 18시간(항상 계획보다 2시간은 더 걸렸으니 아마도 20시간 정도) 가까이 걸을 예정인 우리에게 화장실은 큰 문제다. 거기다 둘이 생리까지 시작한다면. 그 다음은 상상도 하기 싫다. 화장실이 곳곳에 있어도 생리기간 중에는 신체 기능이 저하되기 때문에 등산을 지양해야 한다. 등산은 결코 만만한 운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번에 가기로 한 곳은 이름마저도 무시무시한 공룡능선이다.
지난달 대청봉 다녀올 때 생리기간이 아닌데도 화장실 때문에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다. 출발지점인 남설악탐방지원소 앞과 도착지점인 한계령 휴게소에만 화장실이 있고 우리가 걷는 코스 중간에 화장실이 하나도 없었다. 그날 새벽 4시부터 오후 6시까지 14시간을 걸었다. 대청봉 아래 600m 지점에 있는 중청대피소가 노후되어 작년 가을 부터 철거하고 다시 짓느라 대피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공사하는 분들을 위한 간이화장실은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했다.
간이화장실을 기대하고 중청대피소 공사장에 갔던 나는 일하는 분께 간이화장실이 어디 있냐고 물었다가 간이화장실이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을 때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용변볼 곳을 찾아 서북능선 어디를 어떻게 헤매고 다녔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대청봉에 다녀온 다음날 바로 국립공원공단 홈페이지에 중청대피소에 간이화장실 설치를 건의하는 글을 올렸으나 설치예정(공사 시작한 지가 언젠데)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대청봉에 다녀온 후 대청봉, 대청봉 단풍, 대청봉 단풍절정 이런 뉴스가 나올 때마다 나는 대청봉 아래에서 용변볼 곳을 찾아 헤맬 등산객들과 그분들의 용변을 받아낼 설악산이 심히 염려되었다.
오늘도 나는 그녀에게 카톡으로 묻는다.
"오늘 저녁은 뭐야?"
그녀가 답했다.
"오늘은 오랜만에 파스타"
그녀가 오랜만에 파스타를 맛있게 먹고 생리를 빨리 시작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며 예전에 몇 번 본 적 있는 생리 빨리 하는 법에 관한 영상을 다시 찾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