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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의 할배 Sep 17. 2024

미국 이민에서 느끼는 것들(정화조)

몸의 컨디션이 많이 좋지 않은 요즘 나는 거의 하루 종일 내 작업실에서 누워서 글을 쓰고 읽거나 잠을 잔다. 어제도 평소와 같이 리클라이너 의자에 누워서 블로그를 체크하고 있는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우리 집 뒤뜰에 묻혀 있는 정화조를 체크하러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을 열어 주고 몸이 좋지 않으니 조사 후 결과를 메일로 알려 달라고 부탁을 하고 다시 누워서 하던 일을 하였다.


정화조 검사를 나온 회사의 직원을 보니 문득 내가 어렸을 때 이용하던 재래식 화장실이 생각이 났다. 초가집이었던 우리 집의 화장실은 두 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집에 있었지만 대문 밖으로 나가서 출입을 해야 했고 다른 하나는 집에서 15m 정도 떨어진 곳에 거름을 썩힐 수 있도록 크게 지어진 화장실이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집에 있는 화장실이 꽉 차면 이를 퍼서 큰 화장실로 옮기시곤 하셨고 이 큰 화장실의 것은 농사에 필요한 거름으로 사용되었다. 그때 가끔 어느 동네 누가 이 큰 화장실에 빠졌다는 확인 안 된 이야기가 동네에 돌기도 했었다. 

비록 집과는 붙어 있었지만 대문 밖으로 가야 했던 화장실을 캄캄한 밤에 갈 때면 대단한 용기와 담력이 필요했던 시절이다. 그래서 칠흑 같은 밤에 혼자서 화장실을 갈 수 있으면 다 컸다는 칭찬을 듣던 시절이었고 그렇지 못할 때는 서로 같이 가서 망을 보면서 이야기를 했던 추억이 있다. 특히 무서운 옛날이야기나 귀신 이야기를 들은 후에 혼자서 밤에 화장실을 간다는 것은 성인들도 쉽지 않았던 일생일대의 도전이 되기도 했었다. 그래서 괜히 헛기침을 하거나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일을 본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흘러서 이곳 미국으로 이민을 오면서 다시 내가 어렸을 때 경험했던 퍼내는 화장실과 비슷한 정화조 환경에서 살게 되었다. 미국은 아시다시피 나라가 너무 넓어서 모든 집들이 시와 연결된 하수도가 설치되지 않았다. 대개 상수도는 설치가 되었어도 도시를 벗어난 시골에는 하수도 대신에 정화조를 이용해 화장실과 하수를 처리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단지는 사실 충분히 하수도를 설치할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해 있는데도 주민들의 반대로 정화조 시설로 화장실과 하수를 처리하고 있다. 물론 생활하는 데는 일반 하수도가 설치된 집이나 별반 다르지 않아서 특별히 불편함을 느끼지 않지만 뒤뜰에 정화조를 덮은 뚜껑 3개가 보인다는 점이 다르다. 그런데 이제 정화조가 꽉 차서 퍼내야 한다고 하니까 그동안 우리가 정화조를 이용한 하수 처리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신축으로 건설된 새집에 이사 온 지 11년이 되었는데 11년 만에 정화조를 비우고 청소를 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 메일로 온 비용은 $658.64 정도 내야 한다고 하니 하수를 처리하는데 대략 월평균 $5.00가 되지 않아 우리가 살고 있는 카운티의 평균 하수도 비용이 $64.00 정도에 비하면 매우 저렴한 편이다. 물론 집을 지을 때 정화조를 설치하는데 한꺼번에 많은 돈이 들어갔겠지만 그 이후의 비용이 이렇게 저렴하니 시에서 하수도에 연결하라는 제안이 들어왔는데도 이곳 주민 모두가 반대한 것 같다. 그래도 이렇게 11년 만에 내는 하수 처리 비용이 예상에 없던 비용이라서 신경이 쓰이는 것은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은 나로서는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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