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레벌레 UN 입성기
꿈을 꿔본 적 없다. 늘 그래왔다. 별 다른 야망 없이 하루와 순간에 충실하며 살아왔다. 지나가는 순간의 사소함에 기뻐하며 그저 그렇게. 다들 원대한 포부를 가져야만 한다고들 하던데 그런 것 없이도 잘 살아졌다. 약간의 안일함에 젖어 권태로운 나날을 보내왔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흐르는 대로, 유속에 따라 살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뉴욕의 UN 본부 어드매다. 나로서도 당황스럽기만 한 전개이다. 반기문 전 사무총장을 따라 반의 모든 아이들이 UN의 꿈을 꿀 때에도 나는 심드렁하기만 했다. 관심이 없었던 만큼 무지했고, 덕분에 매 출근이 위태롭다.
나는 재학 중인 대학교의 중개로 이 먼 만리타향에 오게 되었다. 꽤나 파격적인 선발이었다. 분명 인턴십으로 선발되어 왔건만, UN 출입증에 적힌 내 신분은 Advisor, 즉 고문이다. 덕분에 내 수준을 벗어난 업무들을 잔뜩 마주하게 되었다. 학부생 나부랭이에겐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닌가 싶다가도, 과분한 기회라고 생각하면 또 버틸만 하다.
지난주였던가. 누군가 내 어린 시절의 꿈을 물어봤다. 참 곤란한 질문이다. 정말로, 나는 장래희망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급히 되고 싶은 것을 생각해냈다.
향유고래.
은유적 표현이 아니다. 말 그대로, 생물, 향유고래가 되고싶다. 깊은 바다로 잠수할 수 있고, 가장 큰 뇌를 가지고 있고, 매끈한 가죽이 미끈이고... 기타 등등.
이제는 나를 이렇게 소개할 수 있을 것 같다.
국제기구 인턴이고, 장래희망은 향유고래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