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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하우 May 31. 2024

세상이 온통 낯설기만 해, 혼란스러운 순간

Bach, Goldberg Variations, BWV988

부제 :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그런 날이 있다. 익숙한 것 투성이이던 세상이 서먹하게만 느껴지는 날이.


분명 늘상 걷던 길, 보던 사람, 하던 일이건만 죄다 낯설기만 하다. 그런 어스름한 날이면 어수룩한 걸음을 옮기며 생각한다. 세상이 너무 혼란스럽다고. 그래서 견딜 수가 없다고.


정처 없이 방황하는 미아가 된 기분으로 헤매고 있는 당신에게 들려드리고픈 곡.


바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지구에 남길 단 한곡의 노래를 고를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주저없이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택할 것이다. 그 정도로 온전하고 완전한 곡이다. 이 곡을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모든 게 괜찮아지리라는 근거 없는 안정감이 스믈스믈 피어오르곤 한다.


한 개의 주제곡과 서른 개의 변주곡으로 구성된 이 곡은 원점에서 시작하여 원점에서 끝난다. 마치 돌고돌아 원점으로 돌아가는 우리네 인생처럼 순환하는 구조를 띄고 있다.


끝이 또 다른 시작이 되는 아름다운 모양새다.


각기 다른 분위기의 서른개의 변주곡은 한낮의 봄볕 같기도, 백야의 눈보라 같기도, 정오의 뙤약볕 같기도, 새벽의 흰서리 같기도 하다. 지난한 세월의 인고를 담아내기라도 하듯 다채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였던가.


하지만 음악에 있어서는 백견이 불여일문이 되겠다. 일단 먼저 들어보시길 간청드린다.



추천 레코딩

굉장히 많은 피아니스트가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했다. 개중 애정하는 레코딩을 몇 개 소개하려고 한다.


- 글렌 굴드의 1981년 레코딩

간간이 섞여든 굴드의 허밍 소리에 마음이 평온해진다. 개성이 넘치고 독창적인 연주. 모든 음이 선명하고 단정하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있어 그의 위치가 견고한 이유를 증명하는 음반.


- 주 샤오메이의 2016년 레코딩

바흐와 노자의 결합이랄까. 곡 자체가 동양 철학의 정수인 것처럼 느껴진다. 주 샤오메이 개인의 인생사를 알고 들으면 감동이 배가 되는 연주. 숭고함마저 깃들어 있다.


- 빌헬름 켐프의 1970년 레코딩

듣기가 편안하다. 굳이 따지자면 '이지리스닝'으로 분류되는 팝송 같다. 낭만적이고, 음의 연결이 유연하다. 현대 피아노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연주.


+반다 란도프스카가 하프시코드로 연주한 레코딩도 좋답니다



감상 제안

<아리아 - 서른 개의 변주곡 -아리아>의 구성으로 이루어진 곡이다. 서른 개의 변주곡이 끝나고 약간의 적막 뒤에 다시 아리아가 울려퍼질 때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니, 아리아의 선율에 특히 집중해 볼 것. 끝이 또 다른 시작이 되는 순간이다.


공연장이 아닌 이상, 내리 집중하여 듣기엔 곡이 길다. 한 시간 내리 집중할 자신이 없다면 배경음악처럼 틀어두고 다른 일을 하며 들어보는 것도 추천.


그것마저 어렵다면 Aria, 1번, 8번, 14번, 28번, 29번이라도 시도해보시길.


골드베르크 변주곡

어떠셨는지.


내겐 근거 없는 자신감의 원천과도 같은 곡이다. 듣고 나면 괜시리 모든 것이 다 괜찮아 질 것만 같다.


세계는 여전하고, 지구는 돌고, 내일은 온다. 비록 오늘의 세상이 낯설 지라도.


어쩐지 곡이 논리정연하다는 감상이 들지는 않으셨는지? 특히나 구조가 아름다운 곡이다. 30개의 변주곡들이 단단하게 손을 맞잡고 있다.


3의 배수에 해당하는 변주곡은 캐논 양식을 띄고 있으며, 각 캐논 변주곡에서 음정이 1도씩 증가한다.

ex) 3번 : 1도 캐논, 6번 : 2도 캐논, ... , 27번 : 9도 캐논


다만 30번 변주곡은 예외적이게도 캐논이 아닌 quodlibet에 해당한다.


뭐, 이런 설명을 접어두더라도 충분히 아름다운 곡이다. 감상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의 몫이기에.


이 곡은 불면증을 겪고 있던 한 백작을 위해 작곡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들어보셨으면 알겠지만, 썩 숙면에 도움이 될 법한 음악은 아니다. 게다가 피아노가 아니라 하프시코드로 연주되었다고 생각하면 더더욱 숙면보다는 불면에 가깝게 느껴지는 곡이다.



*한줄지식

BWV는 바흐의 작품 번호를 뜻한다

ej) BWV988은 바흐 작품번호 988번


*추신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당신이 평온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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