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일기 9
문수산의 정상석이 눈앞에 나타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드물게 얼룩진 하늘이 확실히 가까워졌다 싶어 고개를 들었을 때 정상석 주위의 사람들이 보였다. 나의 두발은 대지의 가장 높은 곳으로 들어선 참이었다. 본능적으로 정자에 앉아 어딘지모를 한 점을 응시하다 기둥에 걸린 풍경이 아름다워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오늘만 존재하는 수묵화 한 점을 사진으로 남겨보는 것이다.
모든 것이 마냥 좋았다. 등 뒤에서 밀려오는 무해한 소음과 냄새들. 마루에 둘러앉은 가족들이 나누는 수수한 음식과 대화였다. 모처럼 귀한 휴일에 아이들과 함께 산에 가려 오갔을 언어와 살가운 마음이 예뻐 좋았다. 진하고도 익숙한 컵라면 냄새에 나는 점심으로 정해놓은 메뉴를 떠올리며 친구를 쳐다보았다. 제쳐두었던 허기가 제자리를 찾아왔다. 하산을 다그친다.
문수산에 온 것이 처음은 아니다. 팬데믹이 한창일 때 혼자 왔었고 이번에는 친구와 함께 왔다. 400m가 채 안 되는 높이의 문수산은 집에서 가깝기도 하고. 산행이 고단하지 않아 가볍게 오르기 괜찮다. 익히 알고 있는 병인양요, 지켜내려 부단히 애썼던 역사의 현장을 오르내릴 수 있음이 감사하여 또 좋다. 그저 좋기만 하니 분에 넘치는 기분마저 든다.
그저 좋은 것이 생소한 나이. 어른들의 선호는 오랜 공적인 일이라서 그렇다. 즐거워야 할 순간조차 타인의 시선 끝에 놓이니까. 반대로 아이들의 순수 그 기저는 사사로움이다. 얼마 전 어느 카페 야외 테이블에 하염없이 앉아있던 적이 있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작은 분수로 모여들었고 하나같이 고사리 같은 손을 물줄기에 대어보고는 신이 났다. 무엇이 그렇게도 좋을까. 그곳에는 나의 눈에는 담기지 않는 지극히 사사로운 즐거움이 있었다.
이유 없는, 정확히 말하자면 대수롭지 않은 이유들로 만끽할 수 있었던 문수산 산행. 그날의 즐거움이 아직 나의 마음에 걸려있다. 기둥에 걸려있던 여러 겹의 산과 구름과 하늘처럼. 최근에 회사 동료에게 등산이 여자의 노화를 늦추는데 효과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산에서만큼은 이목 없이 잡념 없이 아이마냥 좋아할 수 있어서가 아닐까. 나무의 흔들림 따위의 정말 대수롭지 않은 이유들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