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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May 19. 2024

다정한 사람들

등산 일기 3

정오부터 비가 쏟아진다는 소식에 우비를 챙겼다. 등산 메이트와 함께 강화에 있는 마니산에 가기로 한 날이다. 4개의 등산 코스 중 계단길로 올라 12시 전에 내려올 작정이다. 인천에서 가장 높은 산인만큼 계양산과는 달리 등산화를 신고 스틱도 준비했다. 주름진 등산화와 낡은 스틱을 바라보며 넘어온 산들을 반추하니 마니산은 짐짓 오랜만이다.



마니산은 입구에서 성인 기준 2,000원의 입장료를 받는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나는 돈을 냈고, 매표소 직원은 응원을 건넸다. 마니산은 유독 기가 강하기로 유명한 곳이어서, 전국에서 많이 찾아오는 곳이라고 한다. 실체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방금 전의 인사가 나에게 좋은 기운을 준 것은 분명했다. 이처럼 산속에서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인사를 주고받는다.



일상에서는 우연히 마주친 사람과 인사를 나눌 일이 거의 없다. 이웃사촌이란 말도 퇴색된 지 한참이라 이웃은 이웃이고, 사촌은 사촌이다. 요즘은 옆집 사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니까. 아파트 엘리베이터만큼 찰나의 순간을 어색하게 만드는 공간도 없을 것이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 나에게 인사를 건네온 것은 4년 전, 운악산에서였다.



운악산은 암릉 타기를 좋아하는 내가 종종 찾는 곳이다. 경기 5악 중 하나인 운악산은 해발 937.5m로, 경기도 가평과 포천의 경계에 있어 정상에 두 개의 정상석을 품고 있다. 처음 운악산에 혼자 갔던 무더운 여름날. 이제 막 현등사 입구로 들어서는 나에게 산에서 내려오던 한 사람이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얼결에 인사를 받으며 생각했다. ‘왜 인사하는 거지?‘



운악산 정상에는 두 개의 정상석이 있다.



이후로도 몇몇 사람들은 길을 알려주거나, 대가 없는 응원을 보내주었다. 만만치 않은 산에 혼자 와있는 것이 제법 신기하다는 눈치였다. 등산의 세계에 갓 발을 들인 나에게도 모든 것이 신기하긴 마찬가지였다. 동쪽 능선을 타고 미륵바위를 지나 정상에 조금 못 미치는 곳에 다다랐을 때 정돈된 몸짓의 한 아주머니가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흐느적대고 있는 나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단단한 그 모습이 멋지다고 느낄 때쯤 아주머니는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혼자 왔어요?” 예상대로 아주머니는 운악산에 자주 오신다고 했다. 물을 챙겨주시려는 것을 사양했더니, 사과라도 가져가라며 쥐여주신다. 사과 한 개는 나에게 “힘내! 거의 다 왔어.”라는 말 대신이었다.



올라갈 때는 간과했던 사람들의 표정이 내려가는 길에 비로소 보였다. 흐르는 땀과 함께 숨을 몰아쉬며 올라오는 사람들보다 먼저 내려가고 있다는 사실에 들뜨지 않는다. 좁다란 길이나 암릉 구간에서는 올라오는 사람이 먼저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사소한 배려가 지친 등산객의 걸음 한 번, 땀 한 방울을 아껴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산에는 다정한 사람들이 있었다.



여름날의 운악산 그리고 미륵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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