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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Jun 20. 2024

종주는 진행 중 1

등산 일기 6

몸과 마음을 축내는 이유들에게서 멀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건강한 방식이었으면 하는 바람에 종주를 떠나기로 한다. 종주란 산의 능선을 따라 많은 산봉우리를 넘어 정상에 오르는 것을 말한다. 세석대피소에서 하룻밤 머무르는 지리산 성중종주를 결심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중압감이 되지는 않을 적당한 기대감과 함께.



성중종주는 성삼재에서 중산리로 하산하는 33km의 코스를 말한다. 우리나라 3대 종주 중 하나인 지리산 화대종주보다 10여 km 짧기 때문에 입문용으로 적합하다. 그렇다고 해서 허투루 준비할 생각은 금물이다. 갈아입을 옷부터 행동식까지 챙기다 보면 어느새 배낭은 10kg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살기 위해 챙긴 짐들을 살기 위해 덜어내야 하는 순간이다.



배낭의 무게를 견디며 봉우리를 넘나들기 위해서는 체력 관리가 필수다. 나의 경우에는 한 달 전부터 계양산을 다닌 것이 무척 유효했다. 계단길을 오르내리며 안정적인 속도와 걸음을 찾았고 호흡도 좋아졌다. 종주를 일주일 정도 남긴 시점에는 평소보다 강도 높은 산행을 통해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양평 용문산은 실전을 위한 사전 연습 장소로 제격이었다.



용문산에 다녀와서야 비로소 지리산 종주를 실감한다. 호기롭게 밀어붙였지만 소위 산꾼들에게도 만만치 않을 종주산행이 나에게 큰 도전임은 분명했다. 그럼에도 걱정이나 초조한 마음이 들지 않았던 까닭은 완주만이 목적은 아니었기 때문일 테다. 이른 아침 몸을 일으켜 등산에 나서는 순간이나 계양산 완등을 2시간 만에 해내었을 때. 디데이가 다가올수록 늘어가는 성취들은 일상의 활력이 되어주었다.



그날의 배낭 무게는 8kg이었다. 눈물을 머금고 티셔츠 하나를 더 포기한다. 가방 바깥으로 매달아야 하는 발포매트는 고민 끝에 결국 가져가기로 했다. 대피소에서 제대로 쉬어야 다음날 천왕봉으로 가는 일정을 차질 없이 소화할 수 있을 테니까. 밤 11시 버스를 타는 나는 오전 내내 분주하게 움직였다. 짐을 점검하고, 몸을 풀기 위해 마사지도 받았다. 어렴풋이 떨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동서울 터미널에서 노고단 성삼재 휴게소까지 버스는 꾸준히 내달렸다. 잠결에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니 여전한 어둠 속이다. 드러날 듯 말듯한 정상을 만나러 가는 길과 흡사하다. 승객들이 내보내는 고단함과 기대는 버스 안을 잔잔히 부유하고 있었다. 등산객들을 실어 나르는 2대의 버스만이 새벽을 비추는 지금. 내일 이 시간쯤이면 아마 우리는 천왕봉에 오를 채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노고단 고개에 찾아드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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