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일기 7
노고단 성삼재 휴게소에 도착했다. 오는 길에 멀미가 났다. 버스가 사라진 자리에는 60명 남짓의 사람들이 남겨졌다. 편의점으로부터 새어 나오는 불빛에 의지해 끼니를 때우거나 장비를 갖추는 모습들이다. 낯선 시공간 속에 함께하는 다른 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메스꺼운 속과 새벽의 서늘함을 어루만져준다. 우리는 서둘러 떠나기 위해 몇 가지 행동식을 챙겨 들머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나는 몸이 놀라지 않도록 최대한 천천히 걸었다. 여전히 속이 좋지 않았다. 다리 역시 더디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평소라면 한창 잠들어있을 시간이니 그럴 만도 했다. 외투를 다시 여미고, 가방을 당겨 바짝 멘다. 굴하지 않겠다는 소리 없는 각오였을까. 나의 부실한 속도에 맞춰 걷는 일행이 고마우면서도 민망했는데 시작부터 추월당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오늘의 종착지인 세석 대피소까지는 24km. 산에서 24km를 걸어볼 일이 만무했다. 한라산 성판악 코스도 왕복 20km가 채 되지 않으니 말이다. 하룻밤 쉬려면 무엇보다 내려가기 위해서는 계속 걸어야 한다. 그렇게 새벽 4시 39분, 우리는 첫 관문 노고단 고개에 올랐다. 해가 붉은 힘을 내며 어둠을 밀어내는 광경에 우리는 분주했던 걸음을 멈추었다.
생각보다 시련은 일찌감치 찾아왔다. 걸어도 걸어도 다음 관문인 삼도봉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이 봉우리는 전라북도, 전라남도 그리고 경상남도에 걸쳐 있어 말 그대로 삼도봉이라 불린다. 3시간이 걸려서야 도착한 이곳에서 한참 숨을 골랐다. 앞으로 넘어야 할 봉우리가 6개나 남아있다는 사실이 어깨를 짓눌렀다. 포기하고 싶었던 첫 번째 순간은 바로 여기다.
토끼봉, 명선봉을 지나 연하천 대피소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마침 비어있는 벤치에 앉아 등산화를 벗으니 살 것 같았다. 적당히 부는 바람은 땀과 함께 피곤함마저 날려주었다. 우리는 라면과 빵으로 배를 채우며 간절했던 쉼을 만끽했다. 자리를 치우고 떠나려는 찰나 함께 버스에 탔던 모녀가 지친 기색으로 다가왔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반가운 마음에 얼른 자리를 내주었다.
걷다 보니 이정표에 처음으로 ‘세석대피소‘가 보였다. 무척이나 반가운 다섯 글자였지만, 남은 7.8km의 거리는 달갑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자 한 통.
세석대피소입니다. 금일 입실 마감시간은 19시입니다. 대피소 이용에 어려움이 있으시거나, 19시 전에 대피소에 도착 못할 경우 대피소로 전화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시계를 보니 벌써 1시 30분이다.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