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사하는 주에 퐁당퐁당 술을 마셨다. 이틀에 한 번꼴로 마셨다는 이야기다. 2월 둘째 주에, 내가 아는 모든 술쟁이를 만나 신도림, 을지로, 잠실새내로 서울을 누볐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을까. 왜 이랬을까.
드디어 15일이 되었다. 술에 찌든 몸을 일으켜 짐을 싸야 하는 날이다. 상자는 크면 클수록 다다익선이라는 생각에 5호 상자를 주문했다.(55 ×40 ×35cm) 그 결과 집에 상자를 놓으면 움직일 공간이 없어지는 상황에 처했다. 좁은 집에 큰 상자라니, 내가 상자 안에서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도저히 15일 이전에 짐을 챙길 수 없었다. 그래서 난 술에 찌든 몸을 이끌고 당장 집안의 모든 짐을 싸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집에 있는 물건 중, 가장 많은 품목은 단연 ‘지류’다. 포스터, 엽서, 스티커, 전시 설명문, 팸플릿 어느 하나 버릴 수 있는 게 없기에, 난 모든 지류를 껴안았다. 새해를 맞이하며 집에 있는 물건을 이미 정리했기 때문에 '도저히' 버릴 물건이 없었다. 그렇게 해가 뜰 때까지 짐을 꾸렸고...공과금 정산을 마친 후 부동산으로 향했다.
향했다가 돌아왔다. 왜냐면 OTP 카드를 놓고 갔기 때문이다. (흑…)
급하게 부동산중개인과 옥돌에게 전화로 사정을 설명한 후, 택시를 타고 부동산에 도착했다. 그런데 날 기다리는 사람은 옥돌뿐이었다. 다들 어디 간 걸까. 알고 보니 중개사는 다른 분에게 집을 보여주러 가셨고, 임대인은 5시 50분에 온단다. 우리가 만나기로 약속한 시각은 4시 30분인데??!!
Q) 미리 시간 약속을 했나요? A) 예.
Q) 다음 일정이 있나요? A) 예.
다음 일정이 있는 건 나와 옥돌이었고, 중개사와 임대인은 4시 반이 5시 50분이 되는 마법에 걸렸다. 나는 5시 반에 용달업체와 짐을 옮기기로 했고, 옥돌은 을지로에서 저녁 일정이 있었다. 마음은 급해지고 부동산중개인과의 믿음은 옅어졌다.
5시 20분이 되어서야 계약서 작성을 시작했다. 물론 임대인 없이. 이곳에서 20년간 부동산업을 했다는 그의 말뿐인 믿음 속에서 잔금을 이체하고, 여러 안내를 받았다.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자세히기억나지 않는다. 물론 옥돌도 그럴 것이다.
빠르게 계약을 하고, 부동산에서 나오며 “드디어 우리 집 계약을 하다니 소리라도 질러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하면서도 바삐 발걸음을 움직여 택시를 탔다. 각자의 일정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나는“정말 어이없어”를 외쳤다.